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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중국 포위하는 비단주머니, 미국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결성 

가치 동맹으로 공급망 재편, 한국도 동참 기로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美, 인도·태평양 주요국 대상으로 경제·안보 아우르는 협정 연내 출범 시도
대만의 IPEF 합류 놓고 미·중 신경전… 中은 RCEP 발효 통해 미국에 대항


▎2021년 12월 9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백악관에서 110여 개국 정상과 시민사회 지도자들을 화상으로 모아놓고,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막 연설을 했다. 바이든 취임 이후 중국을 향한 미국의 견제는 집요하고 강경해졌다. / 사진:AP연합뉴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미국 인텔사의 펫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12월 13일 대만을 전격 방문해 국제 반도체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겔싱어 CEO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겔싱어 CEO는 TSMC가 2022년부터 양산할 예정인 3㎚(나노미터) 초미세 공정을 활용해 인텔의 차기 중앙처리장치(CPU)를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겔싱어 CEO는 그동안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를 제치겠다”며 “2024년부터 2㎚ 공정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겔싱어 CEO가 이처럼 라이벌인 TSMC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아직까지 인텔이 초미세 공정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라는 위상을 유지하려면 공급망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어 겔싱어 CEO는 대만 방문 직후인 2021년 12월 16일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이곳에 인텔이 300억 링깃(약 8조4000억원)을 들여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패키징이란 제조된 반도체를 탑재할 전자기기에 적합한 형태로 가공하는 공정을 일컫는다. 인텔의 말레이시아 반도체 패키징 공장은 2024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겔싱어 CEO의 대만과 말레이시아 방문은 반도체를 ‘핵심 인프라’로 선언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선 조 바이든 정부의 행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2월 ‘반도체, 전기자동차(EV) 등에 사용하는 고용량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를 포함한 중요 광물 등 중점 4개 품목의 공급망을 100일 이내에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을 확보하려면 미국에서 생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6월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필수 광물 및 재료, 의약품 등 4대 품목에 대해 미국 중심의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1946년의 케넌, 2021년의 블링컨

특히 미국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공급망 재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자국 중심 공급망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각국 및 인도 등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미국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중국에 의존할 경우,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민주주의국가들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런 전략을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라는 새로운 경제협력체 구축에 나서고 있다. IPEF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화상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EAS 회원국은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미국·중국·러시아·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8개국이다. 당시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우리의 공통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주요 분야로 ▷무역 활성화 ▷디지털 경제와 기술의 기준 마련 ▷공급망 탄력성 ▷탈탄소와 클린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노동 기준 등을 열거했다.

미국 정부의 IPEF 추진은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해 12월 14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방문해 국립 인도네시아대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바이든 정부가 추진할 인도·태평양 전략을 상세하게 밝혔다. ▷투명한 거버넌스·자유·개방 추구 ▷역내외 동맹·연계 강화 ▷직접투자 등을 통한 지역 번영 증진 ▷코로나·기후 위기 대응을 통한 회복 탄력성 구축 ▷통합 억제력을 통한 지역 안보 강화 등 인도·태평양 전략의 5대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인도·태평양은 세계 경제 60%, 최근 5년간 경제 성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라면서 “미국의 상위 무역 파트너의 절반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으며, 미국의 수출에서 이 지역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미국은 외교, 군사, 정보를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무역과 디지털 경제, 기술, 공급망, 탈탄소, 인프라 등의 분야를 포함해 공동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포괄적인 경제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런 연설 내용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중국을 겨냥한 안보·경제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선언한 장문의 연설(미국 국무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연설문 기준 4918 단어)은 미국의 대(對)소련 봉쇄전략의 기원이 된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의 유명한 8000자짜리 ‘긴 전문(Long Telegram)’을 떠올리게 한다. 소련 주재 외교관이던 케넌은 1946년 ‘소련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밀 보고서를 워싱턴에 보낸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언급했듯 조만간 IPEF 출범을 위한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러몬도 장관은 “올 초부터 IPEF가 만들어지는 공식적인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며 “오는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IPEF가 출범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IPEF 출범에 박차를 가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이 주도해온 세계 최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이 1월 1일부터 공식 발효됐기 때문이다.

중국 주도로 올해 출범한 RCEP에 대응


▎2021년 11월 대만을 방문한 미국 의회 대표단은 차이잉원 총통과 만났다. / 사진:대만중앙통신사 캡처
RCEP에는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RCEP에 참여하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은 26조2000억 달러, 무역규모 5조4000억 달러, 인구 22억 명이며 전 세계의 30%에 달한다. RCEP의 경제 규모는 미국·캐나다·멕시코 자유무역협정(USMCA)과 일본이 주도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보다 크다. 말 그대로 세계 최대 규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RCEP 발효로 참가국들의 역내 무역액은 2%, 금액으로는 420억 달러(50조원)나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RCEP 발효로 참가국들은 역내 교역에서 전체 상품 중 90%에 대한 관세가 사라지거나 대폭 인하된다. 이에 따라 RCEP 참가국들이 역외 국가들로부터 빼앗을 수 있는 수출 수요는 250억 달러, 무역 확대 효과는 170억 달러로 각각 전망된다.

RCEP 발효로 세계 최대 자유무역 지대가 출범함에 따라 중국은 세계 경제 주도권 경쟁에서 미국보다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됐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런훙빈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RCEP는 중국이 새로운 발전 구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대한 의의를 가지며 대외 개방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RCEP 발효로 그동안 중국 경제에 미쳐왔던 부정적인 영향이 효과적으로 상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RCEP 발효가 중국의 2022년 GDP 성장률을 1∼2%p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오간청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아·태문제연구원장은 “RCEP가 중국과 아세안 국가 간의 무역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RCEP 참여국 간의 강화된 경제적 유대는 향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다른 RCEP 참여국 간 교역 규모는 지난해 1~11월 10조9600억 위안(2045조원)으로 중국 전체 교역액의 31%를 차지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 RCEP 출범 후 세계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기관차가 될 수 있다”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급망을 더욱 긴밀하게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헨리 가오 싱가포르 경영대(SMU) 교수는 “RCEP는 동남아시아 공급망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한국과 일본과의 무역을 증진함으로써 중국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를 맡았던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도 “RCEP는 새로운 규칙과 표준을 개발하기 위한 모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RCEP를 통해 경제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IPEF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고위 관리들을 각국에 파견해 IPEF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러몬도 상무장관을 비롯해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대표와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차관 등은 이미 한국·일본·인도·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을 방문해 IPEF 참여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미국의 인도와 대만 포섭 작전


▎2020년 국경 분쟁 이후 인도 국민의 반중 정서가 커졌다. 이 틈새를 파고든 미국이 인도를 향한 구애를 펼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미국 정부 고위관리의 방문국에서 볼 수 있듯이 IPEF의 참여 대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다. 특히 미국은 인도를 앞세우고 있다.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고 위협을 느끼는 국가가 인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경 분쟁사태에서 보았듯이 인도는 중국과의 무력 대결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반중(反中)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인도는 중국이 주도한 RCEP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이 IPEF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페르난데스 차관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 참석해 “코로나19로 인한 반도체 수급난은 반도체가 일상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필수적인 파트너이자 리더라는 점에 이목을 집중시켰다”고 밝히는 등 한국의 IPEF 참여를 설득했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브루나이 등 아세안 회원국들도 IPEF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참여를 바라는 국가는 인도를 제외하면 모두 RCEP 참가국들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대만을 IPEF에 참여시킬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러몬도 장관은 지난해 12월 6일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장과의 전화 회담에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원, 양국 간 상업과 투자,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양국 협력을 강조했다. 두 장관은 양국이 반도체를 비롯해 핵심 공급망 구축에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거친 반발에도 지난해 6월 대만과 FTA의 전 단계로 평가되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5년 만에 재개했다. 양국은 당시 협상에서 지식재산권, 디지털 무역, 제약·의료 원료, 무역 촉진, 규제 투명성, 투자, 비시장 경제, 금융 서비스, 노동권과 복지, 환경 보호 등을 논의했다. 특히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이 처음으로 당시 협상에 포함됐다. 미국은 대만과 1995~2016년 10차례 TIFA 관련 회담을 했지만 이후 협상이 교착된 상태였다. TIFA가 성사된다면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만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 미국 정부의 반도체 동맹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12월 개최된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에 대만을 초청했으며, 대만 정부 대표가 이 회의에 참석했다.

중국도 가만히 당하지 않는다


▎2020년 11월 15일 문재인(왼쪽) 대통령은 중국이 주도하는 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화상으로 참석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정부가 일본이 RCEP의 대항마로서 추진해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행정부가 신속한 통상협상을 위해 의회에서 한시적으로 위임받는 무역촉진권한(TPA)이 지난해 6월에 만료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로선 CPTPP보다는 IPEF를 신속하게 출범시키는 것이 RCEP를 견제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CPTPP에 가입할 경우 11개 참가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의회의 비준을 받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IPEF를 의회 승인이 불필요한 행정협정 형태로 출범시킬 방침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IPEF를 선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CPTPP가 중국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CPTPP의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 등의 조항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데 상당히 미흡하다. 게다가 CPTPP에는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공급망 재편, 반도체, 수출통제, 인프라 관련 조항이 아예 없다. 미국 정부가 IPEF에 포함하려는 핵심 조항은 공급망이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품목의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구축해 중국을 견제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할 경우 중국의 목줄을 죄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IPEF는 경제·통상과 안보가 어우러진 전략 협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IPEF에는 반도체를 포함해 국가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상품의 공급망 구축과 미래의 성장엔진인 디지털 무역의 표준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통제 등의 항목이 포함된다. 더욱이 노동 기준도 중요 항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서명한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을 들 수 있다.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 법은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을 강제노동으로 생산되었다고 전제하는 일응추정(rebuttable presumption) 원칙을 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권 문제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만큼 IPEF에는 이 법처럼 노동 기준으로 인권 보호 원칙이 적시될 수도 있다.

IPEF에 디지털 무역의 표준 조항을 만들 경우,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를 통제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하기 위해 IPEF에 인프라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할 수도 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추구하는 양질의 수준 높은 인프라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은 지난해 6월 정상회의에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이라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IPEF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 개방 위주의 기존 자유무역협정(FTA)과는 개념이 전혀 새로운 협정인 셈이다.

중국 정부도 RCEP 출범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IPEF에 맞서기 위한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30일 사상 처음으로 ‘수출 규제 백서’를 발간한 것도 미국의 IPEF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 정부는 백서에서 ‘글로벌 안보 체계와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중국은 법적 제도 수립을 통해 수출 규제 질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 서방이 연대를 통해 무역과 공급망 등 중국 경제를 압박할 경우, 수출 규제를 맞대응 카드로 쓰겠다는 의미다. 또 보복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자원이 무기가 되는 세상

중국 정부는 수출 규제에 대해 ‘국가 안보, 군수품, 원자력,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등과 관련된 상품과 기술, 서비스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한 조치’라고 규정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IPEF를 통해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할 경우 이에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백서에서 수출 규제 품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원자재와 광물 등 공급망과 관련된 품목이 모두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희토류가 첫 규제 품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희토류는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산업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대형 희토류 생산 국유기업인 중국알루미늄그룹, 중국우쾅그룹, 간저우희토그룹 3곳과 국유 연구기관 2곳 등 총 5개 기관을 통폐합해 국유기업인 ‘중국희토그룹’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또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에 가입을 신청하는 등 새로운 국제표준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DEPA는 전자송장과 전자결제 관련 규범을 포함해 디지털 ID, 핀테크, 개인정보 보호와 공공정보 개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각종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만리방화벽(The Great Firewall)’이라는 인터넷 검열 장치를 가동해왔던 중국 정부가 이제는 강력한 통제와 관리를 위주로 한 자국 특유의 디지털 질서를 새로운 표준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미국 정부가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IPEF를 출범시킬 경우 중국에 대한 포위망이 더욱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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