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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본 14만원짜리 햄버거에 열광 이유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 아시아 최초 ‘고든 램지 버거’ 오픈, 인증 열풍 거세
■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과시 욕구 때문인 듯


▎영국 출신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버거 레스토랑인 ‘고든 램지 버거’가 정식 오픈한 7일 오전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의 매장에서 직원이 버거를 준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서울 잠실에 문을 연 ‘고든 램지 버거’ 레스토랑이 연일 화제다. ‘간편식’으로 취급되던 햄버거에 명품업계의 ‘오픈런(매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영업 시작과 동시에 뛰어가는 것)’ 열기가 나타나 더욱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명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고든 램지 버거’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고든 램지 버거’는 오픈 2주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고든 램지 버거’는 영국 출신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론칭한 햄버거 가게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시카고, 영국 런던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상륙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사전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30분 만에 2000명 넘는 사람이 몰려 전 시간대 예약이 마감됐고, 정식 오픈 첫날이었던 1월 7일에는 매장 앞에 긴 대기 줄이 이어지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연예인과 기업 총수, 인기 유튜버 등 유명인들의 인증 릴레이가 화제에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개그우먼 김민경은 오픈 당일인 1월 7일 “24만원 어치 내돈내산 고든 램지 버거 먹고 왔다”라는 리뷰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9일 “롯데 가서 3만1000원짜리 고든 램지 버거 먹고 옴”이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1월 11일에는 5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먹방’ 유튜버 쯔양도 “외국 셰프님도 놀라셨어요. 14만원 고든 램지 버거 전 메뉴 먹방”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목을 끄는 건 고든 램지 버거의 높은 가격대다. 명품 수제버거를 표방하는 고든 램지 버거의 가격은 일반 수제버거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다. 버거 하나 가격이 단품 기준 최소 2만7000원에서 최대 14만원에 달한다. 대표 메뉴인 ‘헬스키친 버거’는 3만1000원이고, 고든 램지의 출생연도에서 따온 ‘1966 버거’가 14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이 메뉴에는 투플러스(1++) 한우로 만든 패티와 채끝등심, 트러플 슬라이스 등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5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 쯔양이 지난 11일 올린 ‘고든 램지 버거’ 전 메뉴 ‘먹방’ 영상은 18일 현재 조회수 300만회를 돌파했다. / 사진:유튜브 쯔양 채널 캡처
‘햄버거도 요리’라는 명제에 사람들이 동의

왜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긴 줄을 서가며 고가의 햄버거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먼저 사람들의 ‘차별화 욕구’를 공통으로 지목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나 이거 먹어봤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SNS 인증 문화가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든 램지 버거의 흥행 이유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보복 소비 심리도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인식·과시 욕구가 있다”며 “국내 유수의 사람들이 인증을 하니, 셀럽의 소비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느낌도 든다. 국내에 매장이 딱 한 군데 있다는 ‘희소성’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 교수도 월간중앙 전화 통화에서 “값싸고 평범한 햄버거를 먹는 건 특별하지 않다. 가격이 비싸든, 맛이 특별하든 ‘남들과 다른 것을 소비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을 때 (고든 램지 버거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호텔 뷔페에서 한 끼 먹는 것에 비하면 특별히 고가도 아니다. 그것이 웬만큼 가용할 수 있는 수준에 있는 아이템이고, 그 소비를 통해 본인이 쉽게 다른 이들과 차별화를 하거나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는 누구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두 심리학자는 이 현상을 개인의 ‘욕망 충족’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해석했다. 황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각기 사람들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가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며 “그런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남다를 수 있거나 또는 그것이 각자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몇 시간씩 기다리는 수고를 너무나 기꺼이 한다. 단순히 이 햄버거만의 현상이 아니라 (각자가) ‘어느 아이템에 꽂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심 교수도 “사람들이 이것을 단지 ‘햄버거’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고급 식사’로 생각하는 것 같다” 며 “흔히들 ’이거 한 번 먹어줘야 돼’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호화스러운 사치를 통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호기심도 충족시켜주는 ‘자기 강화’가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이 햄버거의 프리미엄은 ‘고든 램지’와 ‘미슐랭’이다. 즉, 세계 최고의 버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라며 “’햄버거는 싼 음식’이라는 명제를 고든 램지가 ‘햄버거도 요리’라는 명제로 전환시킨 거다. 그 명제에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화랑 월간중앙 인턴기자 hwarang_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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