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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패트롤] 심리학자가 본 정용진의 SNS 삼매경 이유 

“익살·조롱·관심·주목을 모두 즐기는 유형”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與 “입만 살아 있다” vs 野 “다 같이 멸공 캠페인 하자”
이마트 노조 “본인이 해온 사업 먼저 돌아보라” 비판


▎정용진(오른쪽 사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1월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빠꾸”라고 글자 장식을 한 케이크 사진을 올렸다. 그는 “나의 멸공은 오로지 우리를 위협하는 위에 있는 애들(북한)을 향한 멸공”이라며 “날 비난할 시간에 좌우 없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멸공을 외치자”고 했다. / 사진:정용진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54)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에서 ‘색깔’이 강한 오너로 통한다. 정 부회장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노빠꾸(No Back·결정을 바꾸지 않겠다)’라고 부른다. 혹자는 이 같은 정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취향’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평소 인스타그램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에 적극적인 정 부회장이 최근 ‘멸공’(滅共·공산주의를 멸망시키다) 논란을 확산시켜 입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입만 살았다”,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한다”고 정 부회장을 일제히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멸치와 콩을 인증하는 이른바 ‘멸공 챌린지’로 정 부회장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 급기야 신세계 주가까지 크게 출렁였다.

발단은 정 부회장이 1월 5일 SNS에 숙취해소제 사진을 게시하면서 붙인 “멸공”이라는 해시태그(검색 주제어)였다. 정 부회장은 이전에도 이따금 ‘멸공’ 단어를 SNS에서 사용했다. 네티즌들은 이를 현 정부의 친북·친중 행보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해석했다. 그러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정 부회장을 겨냥해서 “21세기 대한민국에 멸공이란 글을 올리는 재벌 회장이 있다.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김태년 민주당 의원도 “중국을 자극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정 부회장은 조 전 장관의 글을 자신의 SNS에 소개하면서 “리스펙(트)[존경한다]”이라고 화답해 반어적 표현으로 비아냥거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에 질세라 국민의힘도 멸공 논란에 참전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월 8일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멸치+콩=멸공’이라는 해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어 윤 후보와 가까운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도 멸치와 콩을 사거나 멸치와 콩 반찬으로 식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김진태 전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다 같이 멸공 캠페인 어떨까요”라고 SNS에 적기도 했다.

돌아보면 정 부회장처럼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대기업 오너는 극히 드물다. 한 재계 인사는 “오너뿐 아니라 CEO(최고경영자)들도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평은 가급적 자제할 뿐 아니라 논란을 일으킬 만한 주제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귀띔했다.

노조 “회사 이미지에 타격 주는 언행에 깊은 우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1월 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 사진:정용진 인스타그램 캡처
그렇다면 정 부회장은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논란의 중심이 되는 걸 마다치 않는 걸까. 그 이전에 정 부회장이 SNS 삼매경에 빠진 이유는 뭘까.

익명을 원한 한 심리학과 교수는 “정 부회장의 SNS 이용 행태를 분석해보면 익살·조롱·관심·주목을 모두 즐기는 유형인 것 같다”며 “특히 멸공이란 단어에서는 최고 권력에 대한 도전과 그 최고 권력의 반응까지 즐기려는 모습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리학자는 “신세계그룹의 대표적인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노브랜드’ 역시 최고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뚝심’의 정 부회장이지만, 삐에로쇼핑·제주소주·PK마켓 등 실패한 사업과 쓰라린 경험도 적지 않다. 최근 정 부회장의 SNS 발언을 정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 부회장은 일단 ‘자숙’ 모드에 들어갔지만, 파장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여권 지지자 중심으로 신세계 불매운동 조짐까지 보이자, 급기야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마트 노조)이 우려를 표했다.

이마트 노조는 1월 12일 성명서를 내고 정용진 부회장에 대해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그룹의 주력인 이마트가 온라인 쇼핑 증가와 각종 규제에도 직원들의 노력으로 타사 대비 선방하고 있는 어려운 환경에서 고객과 국민께 분란을 일으키고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정용진 부회장의 언행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여파가 수만 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말 ‘자유인’이고자 한다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될 것이나 본인이 스스로 기업인이라 한다면 이제 그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정 부회장을 직격했다.

노조는 최근 몇 년간 철수했거나 철수 진행 중인 PK마켓·삐에로쇼핑·부츠 등의 사업을 언급하며 정 부회장에게 사업가로서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봐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노조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해도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동시에 나오고 있음을 노조와 사원들은 걱정한다”며 “이 상황을 정 부회장은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해 벽두에 한바탕 평지풍파를 일으킨 정용진 부회장의 SNS 활동이 잠잠해질지, 아니면 그만의 색깔을 다시 선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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