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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희대의 ‘오스템임플란트 2000억대 횡령 사건’ 전말 

엔씨 3000억 주식 매입한 통 큰 개미, 회삿돈 빼돌린 간 큰 도둑이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재무팀장이 2년 동안 2215억 빼돌려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 손실 내자 회삿돈 횡령
초기 횡령 시점 몰라 우왕좌왕, 회계 감사인도 ‘적정’ 의견 내는 등 고양이에 생선 맡긴 격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 1월 3일 자사 자금관리 직원 이모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지난해 12월 31일 고소했다고 공시했다. 횡령 추정 액수는 1880억원에서 추후 2215억원으로 정정공시했다. / 사진:석경민 기자
2000년 임플란트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지 20년 만에 첫해 매출 34억원에서 2021년 기준 6316억원으로 20배 가까이 몸집을 키운 오스템임플란트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1월 3일 자금관리 직원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공시를 내면서부터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즉시 주권매매 거래를 중단했다. 거래소는 자기자본의 5%가 넘는 횡령금액이 발생하면 매매거래를 정지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포함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개미 투자자는 물론이고 오스템임플란트를 포트폴리오에 담아뒀던 투자은행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 측 공시에 따르면 재무팀장 이모(45)씨가 횡령한 회삿돈은 처음에는 2215억원이었다. 이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자기자본(2047억원)의 108.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회사를 통째로 빼돌린 수준이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말 돌연 잠적했다. 그는 엿새 만인 1월 5일 자택에 숨어 있다가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던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 8일 구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이 돈으로 가족 명의로 건물, 리조트 회원권 등을 사고 금괴로 바꿔 보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씨와 가족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1㎏짜리 금괴 855개를 되찾았다. 이씨가 지난해 12월 6차례에 걸쳐 한국금거래소 파주점에서 약 681억원에 사들인 것들이다. 또 계좌에 남아 있는 주식 약 252억원어치도 동결 조치했다. 횡령금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를 받는 이씨의 부인과 처제, 이씨의 여동생과 처제의 남편도 각각 공범 및 범죄수익 은닉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이 사건으로 이씨와 친인척 5명이 수사 대상이 됐다. 금괴 은닉을 도운 혐의를 받던 이씨의 아버지는 1월 11일 파주시의 한 공터에 세워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 이씨, 회삿돈 빼돌려 주식 투자했다 수백억 손실


▎1월 5일 경찰이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모씨를 붙잡아 압송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개인의 횡령액 규모로 전례 없는 대형 사고다. 막대한 돈을 빼돌리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한때 회사 윗선이 개입한 공동범행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이번 사건을 조직적 범죄가 아닌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 이씨도 경찰 조사에서 단독범행이라고 인정했다. 이씨는 2018년 입사해 자금담당자로 일했다. 업무상 권한을 이용해 입출금 내역과 자금 수지, 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수사에서 이씨가 빼돌린 회삿돈을 주식 투자에 사용한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코스닥 상장사인 동진쎄미켐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 당시 한 개미 투자자가 동진쎄미켐 지분 7.62%인 약 1430억원어치를 한 번에 사들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씨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당 3만6492원에 사들였지만 큰 적자를 봤다.

11월에는 엔씨소프트(엔씨) 주식 49만2392주(2.24%)를 매수했다. 매수 규모가 3000억원대에 달했다. 이씨는 전문투자자에게 허용된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해 횡령액을 증거금으로 삼아 최대 2.5배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작 게임에 대한 저조한 반응 때문에 약세를 이어가던 엔씨 주가는 개미 투자자의 통 큰 매수 소식에 상한가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엔씨의 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해 증권사들이 목표주가를 하향하면서 주가는 다시 내려갔다. 결국 이씨는 엔씨 주식 투자에서 수백억 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총 1조2000억원어치를 거래해 760억원대 손실을 봤다. 연이은 투자 실패로 빼돌린 돈을 메우기가 어려워지자 남은 돈을 금괴로 바꿔 도주를 준비했을 거로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이씨의 단독범행으로 보인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시가총액은 2조원이 넘는다. 코스닥 순위 20위 권에 있다. 작지 않은 기업에서 직원 한 명이 회사 자본금 이상의 거액을 횡령하는 동안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거액의 회삿돈을 개인 계좌로 이체하는 과정에 곳곳에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이씨가 회삿돈을 빼돌리기 시작한 건 2020년 말부터였다. 당시 그는 235억원을 출금했다가 반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이후 지난해 3월부터 이씨의 범행은 더 과감해졌다. 이씨가 회삿돈으로 사고판 주식은 42개 종목에 달한다.

횡령이 시작된 시점은 외부 회계 보고서가 제출된 11월 15일 이전이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외부 회계는 2020년에는 삼덕회계법인이, 2021년에는 인덕회계법인이 맡았다. 통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출의 원인이 되는 사람과 실제 돈을 지출해주는 사람은 분리돼 있어야 하고,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당연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직원이 이씨의 지시에 따라 자료를 위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이 재무팀 직원 등 회사 관계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씨와 함께 일한 재무팀 직원들이 이씨 지시로 PDF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잔고증명서 잔액을 바꾸는 식으로 위조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2년 동안 회삿돈 횡령했는데 내부통제서 못 걸러


취재 결과 오스템임플란트는 회사 차원에서 수년 동안 대규모 주식 투자를 해온 것으로 밝혔졌다. 오스템임플란트의 최근 3년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에 오스템임플란트는 주로 대형주를 장기 보유하는 투자 전략을 유지했다. 2018년 1분기 오스템임플란트가 보유한 주식은 SK디스커버리(63억9709만원), SK케미칼(59억5790만원), 코덱스200선물인버스2X(12억3108만원) 등이었다. 2분기에는 삼성전자 주식 3억5265만원어치를 추가로 사들였다. 3분기에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고 기존 주식을 추가 매수했지만, 종목은 큰 변동이 없었다. 201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2020년 3분기 말부터 분기별로 2~5개 종목을 사고팔며 적극적으로 바꿨다. 대형 우량주만 고집하던 것에서 소형주로 포트폴리오에도 변화를 줬다. 2020년 4분기부터 오스템임플란트가 거래한 종목은 나이벡(74억6328만원), 텔콘RF제약(61억104만원), 삼성물산(13억8000만원), SK하이닉스(15억6061만원), 삼성전자(6억7745만원), 씨에스윈드(4억6061만원), 효성중공업(12억3713만원), 금호석유(5억8253만원) 등이다. 텔콘RF제약은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기대주로 주가가 급등했고, 금호석유는 국제유가 상승 영향을 받았다. 씨에스윈드는 신재생에너지 테마주로 주목받던 종목이다.

이런 변화가 이씨에게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씨가 횡령한 돈으로 투자한 종목이 주로 단기 급등을 노린 단타 위주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스템임플란트는 투자 성향이 바뀐 뒤 손실이 잦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액 투자자들은 이와 관련해 부실 회계관리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한다. 2017년 오스템임플란트는 금융당국의 특별감리에서 분식회계가 적발됐지만, 경징계에 그쳤던 적이 있다. 당시 감리에서 내부통제 결함이 보완되지 않은 게 이번 대형 사고의 실마리가 됐다는 지적이다.

회사의 관리 부실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횡령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회사 측은 정확한 피해액과 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소액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최초 횡령 사실을 공시한 지난해 12월 31일 이씨의 횡령액을 1430억원으로 밝혔다가 며칠 뒤 550억원을 추가했다. 횡령 시점도 2021년 10월이라고 했다가 추후 3월이라고 정정했다. 다시 며칠 뒤에는 이씨가 2020년 4분기와 2021년에 각각 235억원, 100억원을 출금한 뒤 반환했다고 정정공시했다.

외부통제도 이씨의 범행을 걸러내지는 못했다. 2020년 회계감사를 맡았던 삼덕회계법인은 지난해 3월 내놓은 감사보고서에서 오스템임플란트의 내부 회계관리 제도에 문제가 없다며 감사의견으로 ‘적정’을 제시했다. 이씨가 235억원을 횡령한 뒤였지만, 사후 감사에서도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집단소송 나선 개미들, 손해배상 받을 수 있나


이씨가 횡령한 돈으로 사들인 금괴는 모두 찾았지만, 횡령액 전부 회수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태다. 경찰이 용처를 확인해 확보한 횡령액은 ▷금괴 855개(685억원) ▷부동산 및 리조트 회원권(80억원) ▷증권계좌 잔액(252억원) ▷현금 4억3000만원 등이다. 주식 투자로 입은 손해 761억원과 채무 상환 등에 쓰인 30억원은 확보가 불가능하다. 회수 불가능액이 회사의 영업 외 손실로 잡히면 적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오스템임플란트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74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오는 3월까지 제출하는 감사보고서의 감사의견이 ‘거절’ 등 부적정으로 나올 경우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이 경우 오스템임플란트 투자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오스템임플란트 소액주주는 1만9856명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인다. 가장 먼저 소액주주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한 법무법인 한누리는 1월 12일까지 주주 1300여 명을 모았다. 그 밖에도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 법무법인 오킴스 등 여러 곳에서 집단소송에 참여할 주주를 모집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오스템임플란트가 횡령 금액을 회복한다고 해도 소액주주의 피해 복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주대표 소송이나 부실 공시 등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주영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내부 회계시스템이 불투명하고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회사가 횡령액을 상당 부분 회복해도 주가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지난해 3분기 보고서상 재무제표가 허위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보고서에 대해 회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부실 기재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높게 본다. 엄태섭 오킴스 변호사도 “비어 있는 계좌 잔고가 마치 정상적으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잘못 공시된 내용을 믿고 투자한 사람은 자본시장법상 허위공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시장법 단서 조항에 따라 회사가 횡령 사실을 당시에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배상 책임을 면할 수는 있다. 또 이번 사건으로 거래 재개 후 주식 가격이 폭락하거나 상장 폐지될 경우 주주들이 본 손해에 대한 배상 가능성은 다소 제한적이다. 이성우 법무법인 대호 변호사는 “직원의 횡령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손해를 입은 건 회사고, 이로 인한 주주들의 경제적 이익은 간접적으로 침해된 것”이라며 “간접적인 손해는 상법 제401조 제1항에서 말하는 손해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통상적 판례”라고 설명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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