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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다시 열린 제주행 바닷길 취항한 비욘드 트러스트호 

안전, 신뢰를 넘어 ‘앎’으로 

정준희 기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7년 만에 열린 인천-제주 노선 새 여객선 취항
참사에서 얻은 교훈으로 안전관리 강화하고 긴급 상황 탈출 시설도 보강 사진·


▎지난 1월 6일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제주 앞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5일 저녁 인천항을 떠난 지 약 13시간만인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에 입항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약 7년 동안 끊겼던 인천-제주 뱃길이 열렸다. 뱃길을 다시 이은 배는 하이덱스스토리지의 카 페리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 호다. 지난해 12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운항을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지났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이름에 걸맞게 ‘신뢰, 그 이상’을 보여주는 운항을 하고 있을까.

“사슬과 벨트가 축 처지면 고정하는 의미가 없어요. 반드시 팽팽히 당겨져야 합니다.” 분주한 화물칸에서 윤석현(36) 운항관리자가 고박 장치를 꼼꼼히 살핀다. 자가용을 바다 너머로 가져갈 수 있는 카페리의 장점 때문에 많은 승객이 트럭·승용차·오토바이를 싣고 탑승한다. 트럭은 쇠사슬로 여섯 방향. 승용차는 화물 벨트로 네 방향으로 단단히 묶는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서 나온 운항관리자는 고박 상태뿐만 아니라 실시간 화물적재관리 시스템을 통해 화물이 얼마나 선적됐는지, 배의 평형은 맞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부실한 고박과 과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선적이 끝나면 승객들은 배에서 느긋한 여행을 즐긴다. 비욘드 트러스트호에는 카페·오락실·코인노래방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다. 선내를 거닐다 보면 구름사다리 같은 특이한 천장이 눈길을 끈다. 윤태정(60) 사무장은 “여객선이 기울거나 뒤집히는 등 긴급 상황에서 사다리나 손잡이로 사용하게 설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비의 테이블과 의자 역시 흔들리지 않게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돼있다. 갑판도 대형 구명조끼 보관함과 대규모 해상탈출설비 등을 갖추고 있어 ‘안전 최우선’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캄캄한 밤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에서 모두가 여행을 즐기는 늦은 밤, 조타실은 모든 전등을 끄고 암막 커튼까지 쳐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를 유지한다. 다른 빛을 차단해 밤바다를 더욱 잘 관찰하기 위해서다. 암흑 속에서 조타실은 낮보다 더 분주하다. 고경남(50)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등 모든 선원이 ‘초집중’ 상태를 유지한 채 전방을 주시한다. 야간 항해는 다른 선박이나 장애물과의 충돌, 높은 파도로 인한 파손 등 다양한 위험이 도사린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만 은은한 빛을 내뿜는 조타실에서는 밤새 선장의 명령과 복창하는 선원의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자 어둠의 장막이 걷힌다. 어두웠던 조타실이 점점 환해진다. 그때야 선장의 노란색 손목 밴드가 보인다. 세월호 기억 팔찌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안전하게 배를 운항하겠다는 선장의 각오가 담겨있다. 출항한 지 약 13시간이 지나 배는 제주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승객들은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대한 신뢰, 그 이상을 얻고 배에서 내려 각자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믿음을 넘어 인천-제주 여객선이 이제 안전하다는 ‘앎’이다. 세월호 참사로 국민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조금씩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비욘드 트러스트호 조타실에서 맞이하는 일출. 제주도 도착까지 약 30㎞ 남은 지점이다.



▎제주항에 도착한 비욘드 트러스트호에서 승객들이 하선하고 있다.



▎야간 운항 중 항해사의 눈과 귀가 되는 레이더 시스템.



▎작업자가 대형 트럭을 사슬로 단단히 묶고 있다.



▎8인실 스탠다드룸. 각 객실에 구명조끼가 인원수에 맞게 갖춰져 있다.



▎제주도 도착 전 한 가족이 갑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배가 기울어지는 등 긴급 상황에서 사다리로 쓸 수 있는 천장.
- 사진·글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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