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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슈] 역대급 돈 잔치 열린 프로야구 FA 시장 총결산 

15명 이적에 1000억원이 움직였다 

배영은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야구 인기 하락 와중에 터진 잭팟, KIA 나성범·양현종 등 ‘100억 계약’만 5명
LG·두산 김현수·김재환과 잔류계약 끌어내, SSG는 FA 안된 선수들과 장기계약


▎스토브리그 최고의 뉴스는 ‘NC의 심장’ 나성범의 KIA 이적이었다. KIA는 나성범, 양현종의 가세로 단숨에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 사진:KIA 타이거즈
올겨울 프로야구에 ‘돈 잔치’가 벌어졌다. KBO리그 자유계약선수(FA) 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1000억원에 육박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 FA 권리 행사를 신청한 선수 15명의 계약 총액 합계는 총 989억원. 1999년 FA 제도 도입 후 역대 최대 규모다. 한 달간 총액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따낸 선수가 5명(박건우·김재환·김현수·나성범·양현종)에 이른다. 그 전까지만 해도 FA 총액 100억원을 돌파한 선수는 단 5명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스토브리그에만 ‘100억 클럽’ 회원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뿐만 아니다. 1년 전 열린 FA 시장에선 계약 선수 15명의 몸값 총액이 446억5000만원이었다. 2021시즌이 끝난 뒤엔 똑같은 15명이 989억원(1인 평균 66억원)에 사인했다. 이들 중 유일한 10억원 미만 계약자인 허도환(LG 트윈스·2년 총액 4억원)의 계약 금액을 빼면, 14명이 985억원을 받는 셈이라 평균 총액은 71억원으로 더 올라간다. 심지어 그중 7명은 팀을 옮기게 돼 원소속구단에 줘야 하는 보상금까지 발생한다. 실질적으로는 구단들의 금고에서 1000억원이 넘는 돈이 흘러나오는 셈이다.

FA 시장이 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매머드급 계약 행렬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각 구단 재정 상태가 썩 좋지 못해서다. 프로야구는 두 시즌 동안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관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광고 수입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2023년엔 연봉총액 상한제(샐러리캡) 도입도 예정돼 있다. 구단들은 지난 2년간 긴축 재정에 돌입했고, 시즌 후에는 선수단 인원을 대거 축소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수가 방출 칼바람을 맞았다.

야구의 인기 자체도 하락했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대중의 관심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전반기 막바지 야구계를 강타한 NC 다이노스발 방역 수칙 위반 사태와 그로 인한 리그 중단도 큰 악재였다. 야구 중계 시청률이 계속 하락해 중계 방송사들도 막대한 손해를 봤다. 올겨울 대형 FA가 여럿 나왔지만, 몸값 인플레 현상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실제로 최근 4년간 FA 시장 규모는 계속 축소됐다. 2016년(계약 첫해 기준) 21명이 766억2000만원, 2017년 16명이 703억원을 각각 받아 정점을 찍은 뒤 2018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향세를 탔다. 그해 계약한 선수 19명이 631억500만원을 받았고, 1년 뒤인 2019년에는 선수 수는 19명으로 같은데 몸값 총액 규모가 49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2020년에는 401억2000만원(19명)으로 더 줄었다. 2021년 15명이 총 446억5000만원에 계약해 그래프가 반등했지만,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일부 ‘대어급’ 선수들만 큰돈을 벌었을 뿐, 웬만한 FA들은 이적을 노리기도 어려울 만큼 시장이 얼어붙었다. 특정 선수에게만 돈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했다.

그러나 2021시즌 후 막상 장이 열리자 뜻밖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엄청난 자금이 FA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장, 단장, 감독을 모두 교체하고 새출발하는 KIA 타이거즈가 모기업의 두둑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선봉에 섰다. ‘빼앗으려는 팀’과 ‘지키려는 팀’ 그리고 ‘빼앗겼으니 채우려는 팀’이 잇따라 지갑을 열면서 FA들의 몸값도 연쇄적으로 치솟았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계약이 NC 간판타자였던 나성범의 KIA 이적이다.

나성범은 NC 구단의 역사를 함께 쓴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다. NC에 창단 첫 골든글러브를 안겼고, 첫 가을잔치와 첫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프로 데뷔 후 첫 FA 자격을 얻었지만, 풍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NC가 나성범과 수월하게 잔류 계약을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KIA는 광주 진흥고 출신인 나성범을 1순위 영입 타깃으로 삼고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6년 최대 150억원을 약속하면서 올해 FA 최대어의 몸과 마음을 잡는 데 성공했다. 나성범의 계약 총액 150억원은 KBO리그 역대 FA 최고액이다. 2017년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복귀하면서 받은 4년 150억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물론 이대호는 4년, 나성범은 6년 기준이라 연평균 금액에선 여전히 이대호가 앞선다. 하지만 원소속구단 롯데에 남은 이대호와 달리, 나성범은 KIA가 외부에서 영입한 FA다. A등급 FA인 나성범의 2021년 연봉은 7억8000만원. 따라서 KIA는 규약에 따라 나성범의 직전 시즌 연봉 200%에 해당하는 보상금 15억6000만원과 FA 보상선수 하준영을 NC에 내줬다. 새로운 간판타자를 영입하기 위해 총 165억6000만원을 지출한 셈이다.

대흥행 시장의 트리거, 나성범의 KIA 이적


▎KBO리그 홈런타자 박병호(왼쪽)는 36살의 나이에도 KT와의 3년 장기계약에 성공했다. / 사진:KT 위즈
나성범을 빼앗긴 NC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간판 외야수의 타 구단 이적이 현실화되자 발 빠르게 대안을 마련했다. 그 1순위 카드가 두산 베어스 출신 FA 외야수 박건우였다. KIA가 내부 사정으로 나성범 영입 발표를 미루는 사이, NC가 먼저 박건우와 6년 총액 100억원 계약을 발표했다. 이번 스토브리그의 첫 100억원대 계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산도 내부 FA 외야수 김재환과 4년 최대 115억 원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외야에서만 대형 FA 두 명이 시장에 나와 머리가 아팠던 두산은 박건우 이적 후 홀가분하게 ‘잠실 홈런왕’ 김재환에게 올인했다. 30대 중반인 김재환이 115억원 중 110억원을 보장액으로 약속받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우승에 도전했다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 LG는 내부 FA 외야수 김현수에게 또 한 번 4+2년 115억원을 투자했다. 4년간 계약금 50억원과 연봉 40억원을 합친 90억 원을 보장한 뒤, 그 기간 구단과 서로 합의한 옵션을 달성하면 이후 2년간 총액 25억원을 자동으로 연장해 지급하는 조건이다. 2018년 LG와 4년 총액 115억 원에 사인했던 김현수는 두 번의 FA 계약으로 최대 230억원을 약속받게 됐다. KBO리그 FA 역사상 최고 액수다.

동시에 KIA도 본격적으로 대형 계약 릴레이에 합류했다. 나성범 영입을 공식 발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랜차이즈 스타인 FA 투수 양현종과 올해 마지막 100억원대 계약을 완료했다. 양현종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역대 FA 투수 최고액인 4년 최대 103억원에 사인해 ‘예비 영구결번’ 대우를 확실히 받았다. 당초 KIA가 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양현종이 이를 거부해 협상 기간이 길어졌지만, 결국 구단과 선수가 한 발씩 양보해 보장액 55억원에 옵션 48억원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지난해 9위에 그친 KIA는 단숨에 5강 그 이상의 후보로 급부상했다. 두둑한 취임 선물을 받은 김종국 KIA 신임 감독은 “프로라면 누구나 우승을 꿈꾼다. ‘윈 나우’를 향해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단 한 팀만 돈을 펑펑 써도 연쇄적으로 요동치는 게 FA 시장이다. 한 구단 단장은 “FA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예측불허다. 언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비유했다. 그런데 올해는 무려 네 팀이 금고 문을 활짝 열었다. 안 그래도 과열됐던 영입 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마음이 급해진 구단들은 ‘100억원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 외에 다른 FA들에게도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특히 LG와 NC는 나란히 FA 외야수 계약에만 160억원 이상을 썼다. LG는 삼성 라이온즈 출신 국가대표 외야수 박해민을 4년 총액 60억원에 영입한 뒤 김현수 계약까지 성사시켜 최강 외야진을 구축했다. 박건우를 먼저 품은 NC도 이후 롯데 자이언츠 출신 베테랑 외야수 손아섭까지 4년 총액 64억원에 데려와 ‘1+1’로 나성범의 빈자리를 메웠다. 이뿐 아니다. 한화이글스는 내부 FA 포수 최재훈과 5년 총액 54억원에 사인했고, 삼성은 내부 FA 포수 강민호(4년 36억원)와 투수 백정현(4년 38억원)을 모두 붙잡았다.

22억 보상금에도 박병호 영입한 KT


▎정용진(가운데) SSG 구단주가 직접 챙긴 문승원(왼쪽)과 박종훈(오른쪽)은 FA 신분이 아님에도 5년 장기계약에 합의했다. / 사진:정용진 구단주 인스타그램
2021년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일군 ‘디펜딩 챔피언’ KT 위즈도 경쟁팀들의 공격적인 행보에 질세라 집안 단속과 전력 강화에 나섰다. 내부 FA 포수 장성우와 4년 42억원 잔류 계약을 한 뒤 주전 3루수였던 FA 내야수 황재균과도 4년 60억원에 다시 계약했다. 이와 함께 키움 히어로즈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거포 박병호를 3년 총액 30억원에 영입하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이목을 끌었다.

박병호는 ‘35세 이상 신규 FA’에 해당돼 C등급으로 분류됐다. 박병호를 영입하려는 팀은 보상선수 유출 부담 없이 FA 계약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박병호는 최근 2년간 성적이 급격한 하락세를 탔지만, 다섯 번 홈런왕에 오른 선수답게 홈런 20개 이상을 꼬박꼬박 쳤다. KT는 타자 친화적인 홈구장을 쓰고, 키움보다 거포형 타자가 많은 팀이다. 박병호가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만 박병호의 타 팀 이적이 어려워 보였던 이유는 보상금 규모 때문이다. 박병호는 2021시즌 연봉 15억원을 받았다. 박병호를 영입하려면 선수와의 계약 금액 외에도 직전 시즌 연봉의 150%인 22억5000만원을 키움에 보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내야수와 계약하면서 추가로 지출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액수. 웬만한 팀은 박병호 영입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KT는 타선 보강이 절실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팀의 정신적 지주인 유한준이 은퇴했기에 더 그랬다. 100억원대 FA 영입전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대신, 키움과 잔류 협상이 지지부진한 박병호를 계속 눈여겨봤다. 결국 보상금을 포함한 52억5000만원을 쓰기로 결심하고 박병호와 계약에 성공했다.

과열된 FA 영입 경쟁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탈을 부른다. 데뷔 후 줄곧 한 팀에만 몸담았던 나성범, 손아섭, 박병호, 박해민 등은 원소속구단 팬들에게 유독 큰 사랑을 받았던 간판스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시장 논리에 따라 팀을 옮겼고, 팬들은 큰 상실감과 충격을 호소했다. 이들이 계약 발표 직후 일제히 이전 소속팀 팬들에게 손편지를 써 미안한 마음과 작별 인사를 직접 전한 이유다.

창단 2년째를 맞는 SSG는 ‘신박한’ 해결책으로 추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다. 아직 FA 자격을 얻지 못한 간판선수 세 명을 미리 다년 계약으로 붙잡은 것이다. FA 시장에 참전하진 않았지만, 선수 계약에 거액을 쏟아부은 건 똑같다는 점에서 올겨울의 ‘큰손’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SSG의 한 박자 빠른 내부단속

SSG는 먼저 최근 5~6년간 꾸준히 토종 선발진을 지킨 투수 박종훈과 문승원을 ‘단속’했다. 박종훈과 5년 총액 65억원, 문승원과 5년 총액 55억원에 각각 계약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둘 다 지난해 6월 나란히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탈해 FA 자격 취득이 1년 미뤄졌고, 올해 6월 마운드에 복귀해 남은 기간을 채워야 한다. 하지만 SSG는 “핵심 선수들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향후 전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로 KBO리그 사상 첫 비(非) FA 다년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다음은 외야수 한유섬 차례였다. 박종훈, 문승원과 함께 다년 계약 제의를 받고 신중하게 고민하던 한유섬은 결국 열흘 뒤 구단의 뜻을 받아들여 5년 총액 60억원에 사인했다. 보장액 56억원, 옵션 4억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역시 첫 FA까지 1년을 남겨뒀던 그는 계약 후 “FA라는 큰 기회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날 믿고 다년 계약을 제시한 구단에 고마운 마음이 더 커서 팀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올겨울 SSG가 투타 핵심 전력 3명에게 쓴 돈은 총 180억원. 다른 팀이 험난한 FA 시장에서 불꽃 튀는 ‘머니 게임’을 벌일 때, SSG는 안락한 안방에 조용히 협상 테이블을 차린 뒤 상대적으로 ‘적절한 가격’에 의도한 바를 이뤘다. 이로써 SSG는 대형 예비 FA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1년 뒤 스토브리그를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됐다. 반드시 붙잡았어야 할 내부 FA들은 이미 ‘우리 선수’가 돼 있으니, 꼭 데려오고 싶은 외부 FA에 투자를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다.

- 배영은 중앙일보 체육부 기자 yeb@joongang.co.kr

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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