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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21장 얄타 (11) 

1941년 12월 일본과 미국이 전쟁에 들어감으로써, 일본이 러시아를 침공하는 것을 막으려는 태평양문제연구소(IPR)의 공작은 성공했다. IPR은 곧 다음 목표인 중국 국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당이 중국을 차지하도록 하는 일에 들어갔다.
NKGB의 ‘눈 작전(Operation Snow)’에 따른 첫 공작과 달리, 이번 공작은 적어도 초기엔 러시아 정보기관이 관여하지 않았고 IPR이 스스로 수행했다. 당시 러시아로선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을 약화시킬 이유가 없었다. 국민당을 창설하고 이끈 손문은 공산주의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려 했고 중국 공산당과 연합을 추구했다. 러시아도 손문을 지지해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은 협력했다. 손문이 죽은 뒤, 국민당의 실권은 국민혁명군을 장악한 장개석에게 넘어갔다. 러시아는 장개석에게도 호의적이어서 1926년 국민혁명군이 ‘북벌(北伐)’을 시작하자 장개석에게 군사자문관들을 보냈다. 북벌에 성공한 장개석이 공산군을 공격해서 변방으로 몰아낸 뒤에도 러시아는 장개석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중국에 묶어 놓아 일본이 시베리아를 침공할 힘을 줄인다는 계산에서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장개석과 국민혁명군을 도왔다. 러시아는 중국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했고 단장 알렉산드르 체레파노프(Aleksandr Cherepanov) 소장은 양자강 중류의 요충 무한(武漢)의 방어 작전을 도왔다. 특히 일본군의 공격으로 무너진 중국 공군을 도우려고 1937년엔 전투기 155대, 폭격기 62대, 훈련기 8대와 이들 항공기를 운용할 조종사와 기술병을 ‘지원군(Volunteer Group)’이란 이름을 붙여서 중국으로 보냈다. 이들은 대만의 일본군 기지들을 폭격해 큰 피해를 줬고 무한의 생산 기지를 공습한 일본군 항공기들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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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호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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