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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화]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창무 한양대 교수가 말하는 ‘도시와 국가의 미래’ 

“서울 경쟁력이 대한민국 성장동력의 원천”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독선과 이념이 서울시 10년 퇴행 불러… 시의회 입장 이율배반적”
■“아파트 35층 높이 규제 일률적으로 풀지 않아… 주변 경관 고려”
■“서울대도시권의 중심, 현재 사당역쯤이지만 양재 쪽으로 이동할 것”
■“서울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해야 지역균형발전, 국익 도모 가능해”


▎2월 11일 초현대식 통유리 건물로 지어진 서울시 청사 3층에서 만난 오세훈(오른쪽) 서울시장과 이창무 한양대 교수.
중세 독일 격언엔 “도시의 공기는 (봉건적 예속에 갇힌 인간에게) 자유를 준다”는 말이 있다. 농노 해방에서부터 평등과 시민권, 민주주의, 심지어 자본주의의 요람이 도시였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는 온갖 물질적 풍요와 번영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노예라는 감옥’, ‘생동감을 상실한 감옥’이라는 자조적인 반응을 낳기도 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가 도시에 짙은 소외의 그림자를 드리운 까닭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는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로 와닿을까? 서울시야말로 대한민국의 모순과 변화를 가장 잘 입증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현대의 대도시”라며 “서울시는 시민이 마음껏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혁신을 이루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문화·예술적 감수성이 넘치는 인재들, 풍부한 여가를 즐길 소재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창의적 인재가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서울을 만들고 싶다.”

오 시장은 궁극적으로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기반이자 대한민국 성장동력의 원천이라고 보고 그에 걸맞은 서울시의 장기 발전 전략을 수립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 첫 단추가 지난해 발표한 ‘서울비전 2030’이고, 올 상반기 중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도 공개할 예정이다.

2월 11일 서울시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시청 3층 인터뷰룸에서 진행된 오 시장과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의 대담은 서울의 미래를 도시공간 활용 관점에서 조망해보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창무 교수는 서울대 도시공학과(학·석사)를 졸업하고 미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토교통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자문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 시장은 11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미래의 서울시는 어떤 도시여야 한다고 보나?

오세훈 서울시장_ 저는 궁극적으로 서울이 세계인이 오고 싶어 하고, 즐길 것이 넘쳐나는 그런 도시였으면 좋겠다. 상상력이 풍부한 분들 그리고 문화·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분들도 찾아와 혁신과 성취를 이루고 삶의 여유를 느끼는 도시말이다. 여기에 최첨단 과학기술 지식으로 무장한 디지털 신인류가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를 일구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더할 나위 없다. 문화적 감수성과 품격이 잘 어우러져 한번 가서 보고, 즐기고, 살아보고 싶은 도시 서울을 꿈꾸고 있다. 또 일자리를 만드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도시가 경쟁력 있는 도시다. 주거·교통·산업·문화·여가·환경이 모두 궁극적으로 일자리에 연결된다. 사람과 기업·돈·정보·기술이 몰리는 도시 서울을 만들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9월 ‘서울비전 2030’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향후 10년 서울 시정(市政)의 마스터플랜을 담았고, 최상위 비전으로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을 제시했다. 이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4가지 미래상으로 ▷상생도시 ▷글로벌선도도시 ▷안심도시 ▷미래감성도시를 설정했다.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해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서울, 추락한 글로벌 도시경쟁력을 회복해 사람과 기업과 투자가 다시 몰리는 매력적인 서울을 만든다는 게 이 비전의 목표다.

“공정도시 서울은 청년의 여망”


이창무 한양대 교수_ 흔히 도시를 혁신의 산실이라 부른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다. 지난 10년간 침체를 면치 못한 서울시에는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자 하는 굉장히 오랫동안 축적된 힘이 내재해 있다. 여기에 혁신을 실행할 시장이 새로 등장했다.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에게서 혁신과 통찰을 끌어내는 게 도시의 역할이고 이런 구도를 만드는 건 시장의 몫이다. 현대로 오면서 도시는 변하고, 시민의 소비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생산 기지에서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함께하는 공간으로 도시는 진화했다. 어찌 보면 시민이 소비하는 건 시간이고 정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정보라는 건 내가 맛있는 걸 먹어 얻는 화학적 정보일수도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일 수도 있다. 즐거움을 많이 담을 도시가 미래형 도시다.

‘서울비전 2030’ 최상위 비전에 ‘공정’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 또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가?

오 시장_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은 이른바 MZ세대라고 서울시민의 거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2030세대의 미래 비전을 담은 슬로건이다. 이들 젊은 세대는 상생과 공정에 대한 갈증이 굉장히 크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는 도달하고픈 인생 목표가 있었다. 부모 세대는 어떤 직업, 자리, 재산과 같은 물질적 목표가 젊은 시절의 사고체계를 지배하는 산업화 시대를 살았다면 다음 세대인 MZ세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MZ세대에겐 개발도상국에서나 있을 법한 구호로서의 경제적인 성취 같은 가치에 그다지 중요한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신세대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추구할 만한 가치이자 갈구할 대상이라고 여긴다. MZ세대는 불공정한 경쟁 환경 탓에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내 아들딸 세대도 그러하리라는 데서 오는 회의, 좌절감에 시달리는 세대다. 요 몇 년 동안의 부동산 가격 급등도 좌절감을 부추겼다. 그래서 서울시가 추구해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든다면 단연 공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지난 10년 동안 서울 시정에서 경쟁 요소들의 순위는 뒤로 밀리고 퇴보했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뛰는’ 공정도시라는 비전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교수_ 서울시 최상위 비전으로 형평, 균형과는 뉘앙스가 사뭇 다른 공정이라는 단어를 쓴 점에 주목한다. 형평이 분배의 결과에 집착한다면 공정은 과정에 중점을 두고 흐름을 잡아가는 게임이다. 형평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나눠 먹기 게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공정은 올바른 경쟁을 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도시 경영에서 나눠 먹기 게임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 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MZ세대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의 하나일 뿐이다. 가령 도시 정책, 주택 정책을 다룰 때 MZ세대만 배려할 수 있을까? 베이비부머 세대 중에서도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집을 못 가진 이들, 자산 축적이 안 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노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MZ세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세대 지원은 줄어든다. 지금 중년기를 벗어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자가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나중에 MZ세대가 노년 빈곤문제로 인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급조된 시민단체에 혈세 배정


예산 조정권을 가진 시의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이런 비전의 실행도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당장 얼마 전 시의회의 제동으로 시 집행부 예산안이 삭감, 수정되지 않았나?

오 시장_ 서울시의회는 저와 당을 달리하는 분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분들은 도시를 바라보는 철학이 저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전임 시장의 10년은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보존’과 같은 키워드들로 점철된 10년이었다. 자연스럽게 허물고 새로 짓는 재개발·재건축보다는 주거 환경 개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보존에 방점이 찍혔었다. 여기에 시민단체를 자임하는 분들이 서울시에 들어와 관련 정책에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배정했고 그 예산은 비효율적으로 집행됐다. 이런 일을 뒷받침해준 게 서울시 의원들이고 민주당이었다. 서울시의 도시 경쟁력이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고민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교수_ 지난 10년의 서울시는 이념이 강했던 10년이다. 그 이념도 많은 이가 동의하는 이념이 아니라 굉장히 소수의 이념이고 독선적인 이념이었다.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 단지에 39년 된 연탄 아파트를 보존토록 한 결정이 상징적이다. 이는 당시 시장과 이념을 함께 하는 한 분의 시각이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결정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로 회자한다. 제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으로 얼마 전 해당 결정에 대한 재고(再考)가 이루어진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연탄 아파트 보존 결정이 합리성이 부족한 독선적 선택이었지만 그 결정을 뒤집는 것은 임의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과정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도시계획에서 정말 중요한 건 공정한 절차다. 특히 심미(審美)적 규제 문제는 그 누구도 정답을 쉬 내놓기 어려운 까닭에 사전에 준비된 룰에 따라 합리적 토론과 공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또 독선적 이념에 취한 누군가는 아무도 뽑지 못할 정책 대못을 박는다고 하는데 그건 해선 안 될 일이다. 도시는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에 충분한 가변성을 인정해주는 게 올바른 행정이다.

오 시장_ 전임 시장 시절 서울시 민간위탁·민간보조 사업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들은 그들의 인건비로 전체 예산의 절반을 지출했다. 예컨대 어떤 사업을 새로 시작하면 서울시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지원센터’ 같은 중간 지원 조직을 만들어 민간단체에 운영을 위임한다. 시청이나 구청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시민단체에 넘기는 식이다. 제가 시장에 취임하고 위탁사업과 보조금의 규모를 없애거나 줄이니까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더라. 시민단체를 자임하는 분들은 자신의 위상과 정체성이 시민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들에게 오는 예산을 줄인다거나 본인들이 해왔던 일에 가중치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가면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다”, “협치를 파괴한다”며 공격한다. 저는 그분들을 시민단체라기보다는 사업자 단체로 본다. 아마 대부분의 시민도 그분들이 시민단체라고 하는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시민단체는 인건비를 중앙이나 지방 정부에서 받아 해결하지 않고 자체 조달하는 게 오랜 관행이다. 특이한 점은 전임 시장 시절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시의회에서도 시민단체에 주어지는 위탁 사업이나 보조금 사업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서울시는 이른바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국장, 과장이니 해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해 위탁 및 보조금 지원 업무를 맡겼다. 그 시민단체라는 게 역사가 있는 게 아니고 급조되곤 했는데 그런 사람이 상관으로 오니 서울시 공무원들은 일할 의욕을 잃었다. 시의회가 보기에도 너무 과하다 싶었던지 민간위탁·민간보조 사업의 사후 평가가 부실하고, 견제도 되지 않는다며 호된 비판을 가했었다. 그런데 제가 취임해서 시의회가 했던 비판 논리에 근거해 변화를 주려 하니 이제는 반발하는 등 시의회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들이 지적할 때는 정당한 비판이고 새로 온 시장이 그 점을 지적하면 정파적이고 퇴행적이라고 한다.

이 교수_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저도 박원순 시장 임기 초에는 서울시에서 (정책 자문 명목으로) 불러주고 하더니 후반으로 넘어가서는 아무 소식이 없더라. 어쨌든 반대되는 목소리도 때론 들을 필요가 있다. 초기 경험에 비춰볼 때 서울시회의 같은 데 가면 공조직하고 관계가 없는 시민단체 인사들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회의를 거듭할수록 글쎄 비선(秘線)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어쨌든 인포멀(비공식적)한 의사결정 체계가 따로 있어 불합리한 결과를 많이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들이 존재 이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 서울은 대한민국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지금의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신속통합기획’을 제시하는 등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인데.

이 교수_ 도시계획, 도시행정은 공무원이 현장을 찾아 시민의 욕구를 채워주고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것을 요체로 한다. 도시 정비사업은 규제와 절차가 많고 복잡해 주민도 답답하고 진척도 잘 안 되는 게 특징이다. ‘신속통합기획’은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공공성과 사업성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추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저는 처음엔 ‘완장’ 찬 공무원들이 진행하는 ‘신속통합기획’이 과연 잘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건축 단지를 찾아가 주민을 상대로 설명회를 여는 공무원들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변화와 혁신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7층 2종 주거지역 해제 등 몇몇 제도적 완화만으로도 ‘신속통합기획’은 효과를 발하고 있다.

오 시장_ 박원순 시장 10년 동안 서울시는 재개발 지구를 단 한 곳도 지정하지 않았다. 2015년 이전에는 기존 재개발 지구를 해체하기에 바빴고 이후에는 아예 지정하지 않았으니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얼마나 답답했겠나. 또 본인들이 해야 할 주택, 건물 관련 업무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는 등의 사유로 외부 시민단체로 넘겼으니 존재 이유가 사라진 부서도 있었다. 지금 이 교수님 말씀처럼 신속통합기획이 생기니까 담당 공무원들에게 힘이 솟구치는 거다. 서울시 공무원노조에서도 지지하는 성명이 나왔다. 공무원들이 고대하던 변화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이 교수_ 서울시는 서울시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수도권, 더 나아가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도시 정비사업도 단순히 서울시 내에서 주택을 짓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을 아우르는 ‘서울대도시권’의 공간구조 효율화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도입되면 2000만 명 인구가 도시로 연결된다. 서울대도시권은 수도권과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흥망성쇠와 연결된다. 서울시도 서울시라는 행정구역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서울대도시권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 서울의 중심이 서울대도시권의 중심은 아니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도시권의 중심은 사당역쯤으로 남동진한 상태이며, 앞으로 경기도 하남이나 동탄 입주가 가속하면 양재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주택 가격 급등이나 주택 공급 같은 단기적 현안에 치우쳐서 도시 구조 효율화라는 장기적 과제를 소홀히 해서는 곤란하다. 박원순 전 시장의 가장 큰 실책도 단순하게 보존 중심의 정비 사업에 있는 게 아니라 도시와 대도시권의 경쟁력을 함양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장의 힘을 무시한 데 있다.

“35층 규제 완화는 사회적 공감대 필요”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서울시의 35층 층수 규제 완화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주거용 아파트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는 일명 ‘35층 룰’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가 높다. 상반기에 발표할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높이 규제는 어떻게 가져갈 계획인가?

오 시장_ 이 문제에 오해가 많은 것 같다. 35층 규제 완화는 일률적으로 층수를 높이는 게 아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다양성과 융통성을 주는 기본적인 규제의 해제일 뿐, 전반적인 밀집도를 높이기 위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는 점을 대전제로 한다. 35층 높이를 풀었다고 해서 하나의 권역을 모두 50층으로 올리는 건 아니다. 동일한 권역 내에 높고 낮은 건축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배치가 가능한 방향으로 규제를 조정할 것이다. 이 문제는 오해가 따를 수 있어 사전 정지 작업과 함께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 교수_ 서울대도시권의 공간구조는 기본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중심도시의 개발 밀도가 도시 외곽의 개발 밀도보다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공간구조 역시 서울 대도시권 전체의 공간구조 안에서 모색돼야 할 것이다. 도심으로의 공간 이동을 위한 사회 비용, 환경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도시의 가장 중심부가 고층 고밀로 올라가는 게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

이 현안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오 시장_ 키워드는 다양성과 융통성이다. 한강 건너편에서 잠실을 바라보면 마치 두부를 칼로 자른 듯한 똑같은 높이의 아파트 수십 동이 쫙 줄지어 서 있다. 층수를 35층 높이로 제한한 결과다. 이것을 50층으로 높인다고 할 때 모두 똑같이 또 50층으로 높아지는 걸로 착각을 하는데, 그건 아니다. 한강변에 일률적으로 50층 아파트를 허용하면 그 뒤편에 있는 아파트들은 한강 조망권이 없어진다는 우려도 따른다. 멀리서 볼 때 50층부터 40, 30, 20층까지 슬림한 건축물이 자연스럽게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도시계획을 구상 중이다.

이 교수_ 대도시의 도심 고층·고밀화는 도시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다. 공간적 집적과 공간 이동 비용의 효율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요구이기도 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하철역에서 100m 가까워질수록 시민이 대중교통을 선택하는 비율이 4% 정도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급적 철도역사 가까운 곳에 더 고층·고밀 주거지를 짓고자 하는 것이다. 더 많은 시민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고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고층·고밀화는 공간을 3차원적으로,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안인 공간을 2차원적으로 소비하는 중층·고밀화에 비해 물리적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탄소발자국을 가장 적게 만드는 도시구조의 모델이다. 저는 심미적인 관점에서도 고층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다만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서울시 미래의 큰 그림 위에서 고층화될 수 있는 곳과 그럴 수 없는 곳에 대해 모든 이가 동의할 수 있는 룰을 만들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모빌리티와 자율주행이 상용화된다면 지역 간 이동성이 높아진다. 시 외곽이나 신도시에서도 서울 도심으로 이동하는 시간, 불편이 대폭 줄어든다. 굳이 서울의 도심 집적을 높이지 않아도 외곽에서 잘사는 시대가 오진 않겠나?

오 시장_ 자율주행 자동차나 UAM(도심항공교통) 등 신교통수단이 가져올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비춰보면 그런 예측도 가능하다. 시 외곽에서 도심으로 출근하는 차량 안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업무를 보고, 심지어 잠을 잘 수도 있겠지만 일자리 바로 옆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직장·주거 근접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시민들은 직장과 주거지가 한 공간 내지는 가까운 공간에 배치되는 걸 더 선호한다. 광화문 인근에 경희궁의아침 같은 주거공간이 들어선다면 도심에 직장을 둔 시민들은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 어쨌든 도시계획, 도시 개발 방식의 근본을 재조명할 시점이기는 하다. 현재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등 토지의 용도를 지역별로 나누는 조닝(zoning)에 기초해 도시계획을 짠다. 하지만 최근 추세는 상업지역과 주거지역, 공업지역 구분을 없애고 시민에게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많은 모색이 이뤄지고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지금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도심 고밀(高密)은 필요”


▎서울시는 문화적 감수성과 품격이 어우러진 도심 개발을 꿈꾼다.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여의도 방면
이 교수_ 전화기가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때 도시가 쇠퇴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두했다. 전화 통화로 용무를 해결하다 보면 굳이 도시 같은 밀집된 공간에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전화가 보급되고 사람들의 만남의 빈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자율주행차와 같은 모빌리티가 주는 이점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물리적 접촉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이 고도화할수록 질적으로 높은 만남에 대한 요구도 증가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도심 고밀(高密)의 필요성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지역 간 불균형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이 교수_ 지역균형발전이라면 정치적으로 좋은 화두이고 또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슈이기는 하다. 그런데 균형발전 논의는 일단 시작하면 제로섬게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이너스게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혁신도시만 해도 처음의 큰 그림은 지역별로 n분의 1로 나눠 먹기 게임은 아니었다. 전국에 몇 개 거점을 둬서 권역별 성장 잠재력을 만들어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게 지역별 이해가 충돌하면서 결국 모두가 하나씩 나눠 가지는 결과로 귀착되고 말았다. 수도권 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도시 개발을 한다면 저마다 자족도시를 자처하는데 서울 자치구의 반도 안 되는 인구를 가진 신도시가 어떻게 자족 기능을 가질 수 있을까. 모두가 자족적 신도시를 표방하는 바람에 그 어느 도시도 자족 기능을 갖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고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글로벌 대도시들은 균형발전에 방점 두지 않아”


▎오세훈(왼쪽) 서울시장과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소수의 이념과 지향보다는 시민의 공감대에 기반을 둔 행정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오 시장_ 물론 지방 소멸이라는 화두를 놓고 보면 흡인력 강한 서울이 지방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게 비수도권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서울을 눌러서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에서 서울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전락한다면 서울의 젊은이, 또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지방의 젊은이에게 제공되는 기회 또한 제한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세계적 도시들, 예컨대 런던·파리 같은 도시는 1970~1980년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고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쳤다. 영국·프랑스는 자국의 수도에 국제 자본, 인재, 기술을 몰리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존의 국내 스탠더드(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수정, 폐기한 것이다. 일본 도쿄도 런던·파리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간 도시들의 경험도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서울시와 서울시민에게 당부를 남긴다면?

이 교수_ 도시가 발전하고 혁신하는 과정에서 공공의 역할과 비중에 대한 고민은 늘 수반된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은 공공의 관점에서 새 혁신을 만드는 좋은 사례다. 그런데 공공의 역할을 너무 강조하다가 결과적으로 박원순 전 시장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소수의 신념과 믿음이 지나치게 시정에 개입하면 나중에 시민에게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만 해도 작게 실험적으로 시도됐다면 평가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겠지만, 순식간에 400개 정비구역을 해제하고 1년에 1조원을 퍼부어버리니 그걸 바로잡고 복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오 시장의 서울시도 어떤 사업 구상이든 조심스럽게 순차적으로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가면서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 시장_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민은 많은 경험을 했다. 지난 10년은 시장의 리더십과 비전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일자리가 어떻게 되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가 드린 서울시 새로운 계획은 시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뒷받침이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10여 년 전 제가 그런 실험을 할 때는 비교 대상이 없었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서울시가 어디를 향해 간다는 것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 같은 게 만들어지기가 어려웠다. 이제 (박원순 전 시장 재임) 10년을 거치면서 비교 대상이 생겼기 때문에 오세훈 시장이 추구하는 서울시의 비전은 이런 것이라는 그림을 그릴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저한테 다시 일할 기회를 주신 시민들께 큰 책임감을 느낀다. ‘오세훈 네가 만들고 싶은 도시를 한번 마음 놓고 만들어보라’는 책무를 주신 것이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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