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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가 말하는 K콘텐트의 미래 

“경계성과 저항성 무기인 K콘텐트, 민주주의 발전하면 전 세계 성장동력 될 것” 

K콘텐트 성공은 10년 전부터 예고돼, 문화사대주의로 인식 못 했을 뿐
다양성 존중하고 창의적 비판 살아나야 K콘텐트 경쟁력 확보할 수 있어


▎2022년 2월 6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 설치된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팝업존을 찾은 시민들이 각종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전 세계 드라마 소비자의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세 번째 K콘텐트 히트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우학]은 이미 [지옥]의 기록을 넘어 13일째 OTT 순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오징어 게임]이 세운 최고기록에 다가서고 있는 상황이다. [오징어 게임]이 1위를 차지했을 때만 해도, 한국 언론들은 두 번째 전 세계 1위 K드라마가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특히 50일 넘게 정상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오징어 게임]이 마치 특별한 현상인 것처럼 분석하기 바빴다. 전 세계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분석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외신에서 보도되는 분석을 번역해놓고 비로소 이해했다는 식의 사대주의적 기사까지 난무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골든글로브상 수상자가 나오고 오히려 한국 제작진들이 골든글로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며 시상식 참여를 보이콧하는 상황에까지 이르자, 한국의 언론들은 여태껏 게을렀던 자신의 책임을 도외시한 채, 다른 K드라마가 세계 순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뉴스로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플릭스패트롤 기준으로 전 세계 3위까지 오른 [고요의 바다]는 일부 한국 언론에서 실패작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였고, 실패를 입증하는 저마다의 ‘뇌피셜’까지 따라붙기도 했다. K드라마 최초의 본격 SF시리즈가 이렇게 폄하된 이유 중 그나마 근거가 있었던 것은 [오징어 게임]보다 늦게 공개되었다는 사실 하나밖에는 찾지 못한 필자로서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K드라마를 비롯한 K콘텐트의 수월성은 전 세계 그 어떤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가성비와 완성도에서 경쟁할 수 있는 나라가 없는 수준이다. 이미 이런 성공은 10여 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고, 몇 가지 장벽만 넘어서면 전 세계 콘텐트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다는 예언도 많았다. 하지만 문화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는 한국 언론들과 학계에서만 그 사실을 몰랐거나 어쩌면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가장 큰 장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달리 외신들은 K콘텐트의 경쟁력을 비교적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11월 3일, “BTS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은 어떻게 문화 강국이 되었나(From BTS to ‘Squid Game’: How South Korea Became a Cultural Juggernau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콘텐트의 장점을 다양하게 짚어냈다. 이 기사가 의미 있었던 것은, 외신들 중 거의 최초로 K콘텐트의 특성이자 장점 중에서 ‘경계성’과 ‘저항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우선 한국 작가들과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K콘텐트가 할리우드 시스템과 그 특유의 스타일을 동경하면서도 자기만의 색채를 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기술한다. 이는 한국이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구의 스타일과 시스템을 도입해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는 의미다.

BTS ‘버터’, 정체성 잃지 않고 서구 스타일 도입한 성공 사례


▎방탄소년단(BTS) ‘버터’가 2021년 8월 23일(현지시간) 공개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며 13주째 10위권을 지켰다. / 사진:연합뉴스
BTS의 노래 버터(Butter)는 이 경계성에 대한 찬양이고 K콘텐트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텍스트다. 즉 버터는 경계성과 이질성의 문화 상징이다. 유목민이 만들었지만 농경민을 구원한 음식 버터는, 우유에서 왔지만 우유가 아니고, 분명 고체지만 일정한 온도가 넘으면 액체가 되며, 흔히 노란색이지만 반죽에 들어가면 색이 사라진다. BTS는 미국 팝시장에서 자신들이 ‘하얀 빵 위에 놓인 버터’처럼 이질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빵이 일정한 온도(!)를 품고 있다면 버터는 미끄러지듯 빵의 표면 위로 녹아 스며들어 빵과 하나가 된다. 버터를 품은 빵은 더는 예전의 빵이 아니다. 곡물에서 온 탄수화물과 동물성 지방이 어우러진 균형 잡힌 음식이 되고, 이는 노래 버터의 가사 그대로 “건강한 몸과 정신(right body & right mind)”을 만든다. BTS는, 버터가 자신들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어디에든 속할 수 있는 경계에 있어 더욱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노래한다. “Breakin’ into your heart like that!(널 사로잡을 거야, 이렇게!)”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돋보이는 것은 이런 K콘텐트의 매력이 어떻게 ‘발굴’됐는지도 탐구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해당 기사에서 ‘검열관’이란 단어와 국영방송의 ‘통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국이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진실을 드러낸다. K콘텐트는 꽤 오랜 시간 권위주의 정권의 검열관들과 싸워 승리했지만, 그 후에는 방송사와 유력 언론들의 독점과 맞서 싸워야 했다.

사실 K콘텐트의 ‘저항성’이라는 특성은 [뉴욕타임스]의 분석대로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창작자들의 긴 ‘투쟁’을 통해 획득한 것이었다. 지정학적 특수성이 빚어낸 분단과 이를 악용해서 탄생한 권위주의 정권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통제해왔다. 특히 유신 말기와 5공화국 시대의 3S 정책(Screen·Sport·Sex에 의한 우민정책)은 시대정신과 콘텐트를 완전히 분리하려는 시도였는데,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 콘텐트는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이 시기의 창작자들은 비합법 공간에서 새로운 유통체계를 만들거나, 상징과 기호를 통해 검열을 극복하는 방법을 시도해야만 했다. 이 시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던 콘텐트들은 [씨받이]처럼 예술영화의 탈을 쓰고 봉건사회에서 유린당하는 인권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중첩된 은유였다.

검열 시대 끝나면서 색다른 발상 가미한 K콘텐트 ‘빅뱅’


▎정태춘(오른쪽)·박은옥 씨가 2019년 3월 7일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데뷔 40주년 기자회견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씨는 1990년 앨범 [아,대한민국…]을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제작·발표했다. 이후 정씨는 사전심의 제도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고 1996년 헌법재판소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헌법이 바뀌면서 정치적·형식적 민주주의는 도입됐지만 법 제도 및 사회시스템 전반에 남아 있는 반민주적 잔재들은 창작자들의 헌신적 노력과 투쟁으로 극복해야만 했다. 정태춘, 박은옥은 1990년 <아, 대한민국…> 이래 6년 넘게 불법 음반을 발매하며 싸웠고, 6·10 항쟁 이후 대거 대중문화판으로 들어가 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젊은 창작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이 싸움에 합류했다. 이 저항은 당시 지역 민영방송과 케이블 채널, PC 통신 등으로 콘텐트 관련 유통 시장을 확대해가는 상황과 맞물려 있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창작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결국 정부는 대중문화산업의 성장을 위해 검열 철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물꼬가 터지듯 색다른 발상들이 콘텐트가 돼 쏟아졌다. K콘텐트의 빅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검열의 시대가 완전히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2000년대 말부터 권위주의 정부의 공영언론 장악 시도가 진행되면서 유통 독점 구조를 활용한 변형된 사전 검열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드라마는 지상파 방송국이 아니면 아예 제작조차 힘든 상황이었으며, 음악과 콘텐트 역시 지상파 음악방송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국은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언론사이기도 했기에 콘텐트 관련 정보의 제작·유통까지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콘텐트의 수월성이 아닌 흔히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라 불리는 정권 지지 여부를 담은 불법 지침을 기준으로 창작자들이 시장이 아닌 밀실에서 취사 선택되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은 이 은밀한 검열구조 덕에 11년이나 [오징어 게임]의 기획안을 거부당해야 했다.

이 구조를 깨뜨린 것이 바로 유튜브와 OTT 그리고 SNS였다. 지상파 음악·예능 방송을 장악한 기획사들 틈바구니에서 고사할 위기에 있던 BTS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고,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대되는 감독이 되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영화를 찍기 힘들었던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의 도움을 받아 영화 [옥자]를 찍어 스트리밍 서비스 형태로 개봉했다. 그리고 마침내 황동혁 감독은 11년 만에 [오징어 게임]의 투자자를 만나 K콘텐트의 골든글로브 수상 기록을 세웠다.

한국 언론들은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에 더해 확정 수익을 20%나 먼저 주는데도, 엄청난 초과 수익이 발생했을 경우 계약‘대로’ 창작자에게 배분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제작비의 70%(평균)밖에 주지 않는 갑질 계약을 강요하는 한국 방송사들의 억지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급하지 않는 30%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PPL이 과다해지고, 무리하게 촬영을 감행하고, 심지어 가장 약자인 단역 배우나 일용직 기술인력의 인건비가 상습 체납되고 있는 현실조차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지원은 하되 현장에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창작자들의 아이디어와 표현의 자유까지 지키고 있는 것은 보도하지 않고, 방송사들이 이런 갑질 계약을 하고도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대본 수정을 요구하고 심지어 일방적으로 조기 종영까지 하는 행태를 벌이고 있는 사실도 비판하지 않는다. 정말 황당한 것은 창작자에게 돌아갈 초과 수익을 넷플릭스가 가로챈다는 비판 보도가 대개 ‘망 사용료를 지불하라’는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는 일이다. 창작자의 몫을 가로챈다고 비판하면서 그 돈을 왜 통신 대기업에 주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엉뚱한 전개는 통신 대기업이 광고주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예비 창작자들 지키는 창작자 기본소득 정책 바람직


▎2022년 1월 10일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게재한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 사진: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K콘텐트가 가진 경쟁력은 몇 년 사이에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이 가진 경계성이라는 정체성이 갑자기 사라질 리 만무하며, 수십 년간 쌓아온 창작자들의 노력과 무너진 유통 독점의 긍정적 효과가 시너지가 돼 선순환을 만드는데 지금은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라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유독 한국만 지키고 있는 이 선순환 구조는 심지어 이웃 국가의 창작자들까지 빨아들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 예비 창작자를 지키는 창작자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검토되고 있으니 더욱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한국 언론과 방송사들이 정말 K콘텐트의 지속적 성장을 갈망한다면 남의 콘텐트를 베껴 와도 장사할 수 있는 구조부터 버려야 한다. 이런 개혁은 다양성과 창의적 비판이 살아나도록 해서 언론과 방송사가 K콘텐트의 비판적 지원자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며 이렇게 되면 K콘텐트의 경쟁력도 확보돼 앞으로 전 세계의 성장 동력으로까지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saintkss@hanmail.net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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