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스포츠 이슈] 말 많고 탈 많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국 체전’ 핀잔 들은 이상한 판정의 향연 

배영은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해도 너무한 쇼트트랙 홈 텃세로 반중정서 자초… 한국, IOC에 항의서한 보내
황대헌, 억울한 실격 딛고 男1500m 金… 도핑 걸린 발리예바 출전 강행 얼룩


▎2022년 2월 9일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황대헌은 1500m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포효했다. 개최국 중국의 편파 판정을 딛고 따낸 성과라서 더욱 값졌다.
코로나19 위협 속에 어렵게 막을 올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황당한 판정 논란으로 얼룩졌다. 한국은 개최국 중국의 도를 넘은 홈 텃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가 됐다. 한국의 메달 텃밭인 쇼트트랙에서 횡포에 가까운 홈 어드밴티지가 쏟아진 탓이다.

한국은 2월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 도전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다. 남자 쇼트트랙의 간판 황대헌이 준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심판진은 “황대헌이 1위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레인을 너무 늦게 변경했다”는 이유로 페널티를 줬다. 공교롭게도 황대헌이 제친 두 선수는 중국의 런쯔웨이와 리원룽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이준서 역시 조 2위로 들어왔지만, 심판진은 다시 비디오 판독을 통해 “이준석이 류 사오린 산도르(헝가리)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레인을 바꿨다”고 판정했다. 그 결과 이준서가 실격되고, 탈락 위기에 놓였던 중국의 우다징이 조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중국 선수 세 명과 중국계 혼혈 선수 2명(헝가리의 류 사오린·류 사오앙 형제)의 대결로 치러졌다.

‘블루투스 터치’부터 ‘나쁜 손’까지

쇼트트랙에서 중국의 홈 텃세는 어느 정도 예견된 장애물이었다. 쇼트트랙은 중국이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는 종목인 데다, 심판이 경기 결과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실제 중국은 2월 5일 2000m 혼성 계주 금메달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일명 ‘블루투스 터치’로 통하는 판정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중국은 준결승에서 헝가리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해 B 파이널(5~8위 결정전)로 밀리는 듯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무려 10여 분이나 비디오 판독을 실시한 끝에 미국과 ROC(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실격 처리했고, 중국이 헝가리에 이어 2위로 결승에 올랐다.

13바퀴를 남기고 3위로 달리던 중국은 장위팅에서 런쯔웨이로 주자를 바꾸는 순간, ROC 선수가 둘 사이에 끼어들자 터치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여러 선수가 엉키는 쇼트트랙 계주 특성상, ‘선수 교대 시 다른 팀 선수 때문에 터치를 하지 못하면 기존 주자가 반 바퀴를 더 돈 뒤 터치하고 경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원래 달리던 장위팅이 반 바퀴를 더 돈 뒤 런쯔웨이와 터치 후 교대하지 않았는데도 실격되지 않았다.

한국 쇼트트랙의 맏형 곽윤기는 “계주 경기 때 선수끼리 터치가 안 된 상황에서 결과가 인정된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일이다. 다른 나라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결승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며 “미국·ROC·중국이 모두 실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고, 뒤에서 보던 네덜란드 선수들도 같은 말을 했다. 판독이 길어지면서 ‘설마’ 하던 차에 두 팀만 떨어지고 한 팀은 남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중국 선수들은 공격적인 레이스를 한다. 일부 선수는 예전부터 반칙성 플레이로 악명도 높았다. 한국 선수들이 중국의 홈 어드밴티지를 의식하는 게 당연하다. 곽윤기는 “지난해 10월 1차 월드컵 때 이미 한 차례 (중국의 홈 텃세를) 경험했다. 선수들끼리 ‘바람만 스쳐도 실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눌 정도로 판정에 대해 예민해져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려는 끝내 현실이 됐다. 혼성 계주 이틀 뒤 열린 남자 1000m 준결승 두 차례 레이스에서 거듭 중국 선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판정이 나왔다. 중국이 가장 견제하는 한국은 두 번 모두 피해자였다. 1조에서 실격 처리된 황대헌의 레이스는 흠잡을 데 없었다. 준결승을 3위로 출발한 황대헌은 결승선을 4바퀴 남기고 인코스로 절묘하게 파고들면서 선두 자리를 꿰찼다. 중국 선수 둘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황대헌은 이후 1위 자리를 유지하며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앞서 언급한 ‘뒤늦은 레인 변경’을 이유로 페널티를 줬다. 이정수 KBS 해설위원이 “세계적으로 박수를 받을 만한 경기 운영과 플레이였다. 한국 선수들만 보여줄 수 있는 영리한 스킬이었다”고 칭찬한 기술이 순식간에 실격 행위로 뒤바뀌었다.

이준서의 실격도 석연치 않았다. 류 사오린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레인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바꾸는 추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페널티를 받았다. 국제빙상연맹(ISU) 국제심판인 최용구 쇼트트랙 대표팀 지원단장은 “이준서는 인코스로 정상 추월했고, 오히려 뒤에 있던 류 샤오앙과 우다징이 부딪혔다. 영상을 보면 우다징의 손이 류 샤오앙의 엉덩이에 닿았고, 류 사오앙이 중심이 흔들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이준서와 충돌했다. 오히려 두 선수가 실격을 받아야 한다”고 짚었다.

‘눈 뜨고 코베이징 올림픽’으로 희화화


▎2022년 2월 7일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중국의 런쯔웨이(오른쪽)는 헝가리 선수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정작 실격은 헝가리 선수가 당했다.
결승전에서도 중국에 유리한 판정이 이어졌다. 류 샤오린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런쯔웨이는 류 사오린의 팔을 잡아당기며 저지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또 류사오린이 “경기 도중 두 차례 런쯔웨이의 진로를 방해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실격돼 런쯔웨이가 금메달을 가져갔다. 결승선 앞에서 상대 선수의 팔을 당긴 런쯔웨이의 ‘비매너’는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경기장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국가 선수들까지 야유를 퍼부은 판정이었다.

해외 주요 언론도 경기 후 관련 논란을 비중 있게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실격 상황을 상세히 전하면서 “쇼트트랙에선 심판 판정이 중요하고, 실격 사례에 종종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 선수들에게 유리해 보이는 판정으로 중국이 금메달 2개를 얻었기 때문에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고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이징 올림픽에선 비디오 판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리플레이 재생 전까진 공식 결과를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AP통신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결승전”이라며 “류 사오린은 레이스 후반 선두를 달리던 런쯔웨이와 충돌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런쯔웨이는 류를 붙잡았는데, 심판은 류에게만 페널티를 줬다”고 의아해했다.

황대헌은 하루 뒤 “다른 선수들과 몸이 전혀 닿지 않았는데도 이런 판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화가 많이 나지만, 남은 경기가 많으니 잘 먹고 잘 자려고 한다. 응원해주시는 국민이 많아 든든하다”고 애써 허탈함을 달랬다. 준준결승에서 왼손을 크게 다쳐 준결승에서 기권한 박장혁도 “1차 월드컵 때 (편파 판정을) 느껴서 예상을 하고 준비했는데도 솔직히 이 정도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정말 당황스럽다”며 “선수들이 해탈한 기분을 느낄 정도로 판정이 과했다. 남은 종목에서 다시 최선을 다하자고 선수들끼리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한국 선수단은 이례적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윤홍근 선수 단장은 경기 다음 날인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피땀 흘린 쇼트트랙 선수들의 4년을 지켜내지 못한 점에 대해 선수단을 대표해서 사죄한다. 죄송하다”며 “스포츠는 페어플레이가 담보되어야 한다. 이 경기를 지켜본 전 세계 80억 인류 전원이 심판”이라고 말했다.

윤 단장은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 경기 직후 현장에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ISU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항의서한을 보냈다”고 했다. 금메달을 잃은 헝가리도 한국처럼 곧바로 ISU에 공식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ISU는 “연맹 규정에 근거해 주심 판정에 대한 한국과 헝가리 대표팀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경기 규칙 위반에 따른 실격 여부에 대한 심판 판정에는 항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한체육회는 남자 1500m를 앞둔 9일 ISU 회장을 포함한 고위 관계자들과 화상 면담을 진행했고, “남자 1000m 준결승의 판정은 편향됐으며, 잘못된 판정으로 인해 한·중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고 거듭 유감을 표명했다. 또 “한국 국내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 곧 열리는 남자 1500m 경기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황대헌의 완벽했던 레이스, 클린 금메달로

공교롭게도 그날 밤 열린 1500m에선 중국 선수 세 명이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쑨룽은 준준결승, 런쯔웨이는 준결승에서 각각 반칙으로 페널티를 받아 실격됐다. 장톈위는 준준결승 경기 도중 넘어져 4위로 들어왔지만, 심판진이 비디오 판독 없이 그대로 순위를 확정해 탈락했다. 중국 선수가 모두 빠진 이날 결승에는 준결승 3개 조 1·2위 6명과 상대 페널티로 구제받은 선수 4명이 한꺼번에 레이스를 펼쳤다. 그런데도 10명 중 누구도 넘어지거나 실격 처리되지 않았다. 비디오 판독도 필요 없었다.

1500m는 쇼트트랙 개인전 중 최장거리 경기다. 선두로 나서면 바람을 안고 달려야 해 체력 소모가 크다. 하지만 황대헌은 8바퀴를 남기고 단숨에 아웃코스로 치고 나가 선두로 올라섰다. 몸싸움을 최대한 피하고, 힘과 지구력으로 버텼다. 기량이 압도적이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렇게 황대헌은 개막 닷새 만에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논란도, 의혹도 없는 ‘클린 금메달’이었다.

쇼트트랙 판정 논란이 채 잠잠해지기도 전에 피겨스케이팅에서도 큰 잡음이 발생했다. 이번 올림픽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16살 ‘피겨 천재’ 카밀라 발리예바(ROC)가 금지 약물인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 선수 중 최연소인 발리예바는 남자 선수들도 어려워하는 4회전 점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금메달 유력 후보다. 7일 끝난 피겨 단체전에서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압도적인 1위에 올라 ROC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점입가경 러시아올림픽위원회 발리예바 약물 스캔들


▎러시아의 발리예바는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됐는데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허가됐다. 이는 스포츠 정신을 위협하는 스캔들로 비화했다.
그러나 IOC는 8일로 예정됐던 피겨 단체전 시상식을 돌연 연기하고 “ISU와 법적으로 논의 중인 돌발 사안이 생겼다”고 발표했다. AP통신 등은 “ROC 선수들이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한 도핑 검사 결과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고, 곧 발리예바를 도핑 적발 선수로 지목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러시아선수권 당시 발리예바가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 협심증 치료제인 트리메타지딘은 운동선수들의 신체 효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인정돼 2014년 1월 도핑 금지 약물로 지정됐다.

검사 결과는 샘플 채집 후 한 달 반이 지난 이달 8일에야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에 통보됐다. ROC가 올림픽 피겨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다음 날이었다. RUSADA는 곧바로 발리예바에게 잠정적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발리예바가 이의를 제기하자 하루 만에 다시 징계를 철회했다. 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즉각 “RUSADA의 징계 철회가 부당하다”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다.

CAS는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긴급 청문회를 열어 장시간 논의한 끝에 IOC와 WADA, ISU가 제기한 이의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CAS는 “도핑 위반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는 게 의무 조항이지만, 이번 사례는 예외가 인정된다”며 “선수가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발리예바가 16세 이하(2006년 4월 26일생)라 반도핑법의 보호를 받는 점 ▷올림픽 기간에 진행한 도핑 테스트 결과가 아니라는 점 ▷WADA가 도핑 결과를 46일 만에 통보한 점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이에 따라 발리예바는 15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예정대로 출전했다.

이에 대해 많은 빙상인은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는 SNS에 검은 이미지와 함께 영어로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준수돼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썼다. 김연아가 영어로 SNS에 견해를 밝힌 건 지난해 12월 유니세프 창설 75주년 축하 이후 처음이다. 국제 스포츠계에 던지는 메시지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피겨 여자 싱글 대표 김예림도 “대다수 선수는 이 일을 안 좋게 생각한다. 한 미국 선수와 대화했는데, 발리예바의 연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정상 출전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공감했다”고 말했다.

IOC의 입장도 강경했다. IOC는 14일 성명을 내고 “발리예바가 피겨 여자 싱글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하면, 플라워 세리머니(간이 시상식)와 메달 수여식을 모두 열지 않겠다”며 “발리예바 사건이 마무리된 뒤 관련 선수들과 협의해 품격 있는 메달 수여식을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ROC의 피겨 단체전 시상식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이래저래 말 많고 탈 많은 베이징 올림픽이다.

- 배영은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yeb@joongang.co.kr

202203호 (2022.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