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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수입한 미국 칡은 단맛 대신 향신료 맛칡은 예전부터 구황작물로 이용했으며, 자양강장제 등 건강식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갈근(葛根)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발한·해열 등에 효과가 있고, 감기에는 갈근탕을 처방한다. 그리고 뿌리의 녹말을 갈분(葛粉)이라 하며, 녹두 가루와 섞어서 갈분 국수를 만들기도 했고, 자루에 넣고 치대어 전분을 낸 뒤 죽이나 묵을 쑤어 먹었다. 또 줄기의 껍질은 갈포(葛布, 칡 섬유로 짠 베)의 원료로 쓰였고, 최근에는 뿌리에서 생즙을 짜서 먹으며, 뿌리를 삶은 물은 칡차로 이용한다.칡의 새순(갈용, 葛茸)은 봄에, 꽃(갈화, 葛花)은 여름에, 씨앗(갈곡, 葛穀)은 가을에, 뿌리(갈근, 葛根)는 겨울에 채취해 햇볕에 말려서 쓴다. 칡은 간에 좋으며 피로를 푸는 데 효과적이다. 술독을 풀고 간 질환, 고혈압에 말린 칡 10g과 물 700㎖을 넣고 달여 마신다. 그리고 간혹 뿌리(속)에 물이 차는 경우가 있는데 그대로 약으로 쓴다. 허기를 달래고 당분을 공급하기 위해 힘들게 캔 뿌리의 흙을 적당히 털어내, 낫으로 척척 베어 꾹꾹 씹어서 단물을 빼먹기도 했다.칡은 미국 남동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 관상용으로 일본에서 수입됐고, 이후에도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칡을 심었다고 하는데, 생육이 워낙 왕성해 순식간에 미국의 숲이 칡덩굴로 뒤덮여 버렸다. 게다가 미국인들은 칡뿌리를 식용하는 법도 몰랐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농약을 아무리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원산지인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임야를 덮어버리는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달 이 자리에서 말했듯, 외래식물인 ‘가시박’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에 그림자를 지워 나무를 고사시켜 ‘죽일 놈’ 대접을 받는다고 했는데, 사실 여태껏 같이 살아온 재래종 칡도 못잖게 말썽꾸러기이다.그런데 미국에서 자라는 칡은 일본에서 들여온 종이어서 그런지, 한국의 칡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의 칡은 뿌리가 굵고, 퍼지는 범위가 넓으며, 껍질도 한국산보다 훨씬 질겨 껍질을 벗겨내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칡을 캐다 먹으려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만 다치는 한인이 심심찮게 있다 한다. 그리고 날로 먹으면 단맛이 나는 한국의 칡과는 달리 미국 칡은 독한 향신료 맛이 난다고 한다.칡은 생명력이 워낙에 강하고, 주위의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는 탓에 칡덩굴이 우거진 곳은 금방 황폐해진다. 그 때문에 쓰임새가 많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유해(有害) 식물로 지정됐다. 또 뿌리가 굵고, 깊이 파고들며, 땅 위로는 잎줄기가 뒤엉키면서 금방 주변을 초토로 만들어버린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