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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최종회)] 칡, 임야 황폐화시키는 말썽꾸러기 

 

생명력 강해 토양 양분 모조리 흡수, 주변 식물 고사시켜
구황작물·자양강장제 등 쓰임새 많지만 유해식물로 지정


▎‘울산생명의숲’은 2017년 7월 17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재약산 주암계곡에서 전국 최고령·최대 크기로 추정되는 등칡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 사진:연합뉴스
'우갈좌등(右葛左藤)’이란 말이 있다. 칡처럼 줄기로 다른 식물을 감싸며 자라는 식물들은 줄기를 감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즉, 칡넝쿨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는 뜻으로, 이러한 칡과 등나무와의 관계처럼 서로 얽혀 곤란한 상태를 일컬어 ‘갈등(葛藤)’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갈등(conflict)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칡은 대표적인 콩과의 덩굴성 식물로, 줄기는 이웃 나무나 바위에 기대어 감고 뻗어간다.

칡(Pueraria montana)은 낙엽이 지는 덩굴성 활엽 목본으로 다년생 식물이다. 100~1200m의 양지바르고 토질이 좋은 산기슭이나 언덕에 주로 서식하는데, 겨울에도 굵은 원줄기는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또한 줄기는 매년 부피 자람(肥大 生長)이 일어나 굵은 줄기를 이루므로 풀(草本)이 아닌 나무(木本)로 분류한다. 줄기는 20m 이상 뻗고, 추위에도 강하지만 염분이 많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란다. 밑동에서 가지가 많이 나오며, 새로 생긴 줄기에만 갈색 또는 흰색의 털이 달려있고, 자라면서 곧 없어진다.

칡잎은 3출복엽(trifoliate, 3장의 작은 잎으로 구성된 겹잎)으로 어긋나게 붙으며, 긴 잎자루(엽병, 葉柄)를 가지고 있다. 작은 잎(소엽, 小葉, leaflet)은 길이와 폭이 모두 15㎝나 되는데, 특히 꼭대기에 있는 작은 잎이 더 크다. 소엽은 끝이 뾰족한 둥근 마름모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세 갈래로 얕게 갈라진다. 잎 뒷면은 흰색을 띠고, 턱잎(탁엽, 托葉, 잎자루의 밑동에 나는 한 쌍의 작은 잎)은 길이 1.5~2.0㎝로 바소(피침, 鈹鍼, 곪은 데를 째는 데 쓰는 침) 꼴이다.

꽃은 8월에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길이 10~25㎝의 총상꽃차례(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핌)를 이루며 많은 수가 달린다. 다시 말해 같은 길이로 어긋나게 갈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1.8~2.5㎝ 정도의 꽃이 달린다. 양성화(兩性花, 한 꽃 속에 수술과 암술을 모두 갖춘 꽃)로 꽃잎은 5장이며, 바깥에는 노란 무늬가 있는 큰 꽃잎 1장, 중간에 작은 날개 모양의 꽃잎 2장, 안쪽에 새 부리처럼 모여 암술과 수술을 감싸는 꽃잎 2장이 나비 모양을 이룬다. 꽃받침 잎은 다섯 갈래로 뾰족하게 갈라지며 흰 보라색을 띤다. 열매는 협과(莢果,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이고, 길이 4~9㎝의 넓은 줄 모양이며, 굵은 털이 있고, 9~10월에 익는다.

일본서 수입한 미국 칡은 단맛 대신 향신료 맛

칡은 예전부터 구황작물로 이용했으며, 자양강장제 등 건강식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갈근(葛根)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발한·해열 등에 효과가 있고, 감기에는 갈근탕을 처방한다. 그리고 뿌리의 녹말을 갈분(葛粉)이라 하며, 녹두 가루와 섞어서 갈분 국수를 만들기도 했고, 자루에 넣고 치대어 전분을 낸 뒤 죽이나 묵을 쑤어 먹었다. 또 줄기의 껍질은 갈포(葛布, 칡 섬유로 짠 베)의 원료로 쓰였고, 최근에는 뿌리에서 생즙을 짜서 먹으며, 뿌리를 삶은 물은 칡차로 이용한다.

칡의 새순(갈용, 葛茸)은 봄에, 꽃(갈화, 葛花)은 여름에, 씨앗(갈곡, 葛穀)은 가을에, 뿌리(갈근, 葛根)는 겨울에 채취해 햇볕에 말려서 쓴다. 칡은 간에 좋으며 피로를 푸는 데 효과적이다. 술독을 풀고 간 질환, 고혈압에 말린 칡 10g과 물 700㎖을 넣고 달여 마신다. 그리고 간혹 뿌리(속)에 물이 차는 경우가 있는데 그대로 약으로 쓴다. 허기를 달래고 당분을 공급하기 위해 힘들게 캔 뿌리의 흙을 적당히 털어내, 낫으로 척척 베어 꾹꾹 씹어서 단물을 빼먹기도 했다.

칡은 미국 남동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 관상용으로 일본에서 수입됐고, 이후에도 토양 유실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칡을 심었다고 하는데, 생육이 워낙 왕성해 순식간에 미국의 숲이 칡덩굴로 뒤덮여 버렸다. 게다가 미국인들은 칡뿌리를 식용하는 법도 몰랐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농약을 아무리 퍼부어도 소용이 없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원산지인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임야를 덮어버리는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달 이 자리에서 말했듯, 외래식물인 ‘가시박’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에 그림자를 지워 나무를 고사시켜 ‘죽일 놈’ 대접을 받는다고 했는데, 사실 여태껏 같이 살아온 재래종 칡도 못잖게 말썽꾸러기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라는 칡은 일본에서 들여온 종이어서 그런지, 한국의 칡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의 칡은 뿌리가 굵고, 퍼지는 범위가 넓으며, 껍질도 한국산보다 훨씬 질겨 껍질을 벗겨내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칡을 캐다 먹으려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만 다치는 한인이 심심찮게 있다 한다. 그리고 날로 먹으면 단맛이 나는 한국의 칡과는 달리 미국 칡은 독한 향신료 맛이 난다고 한다.

칡은 생명력이 워낙에 강하고, 주위의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는 탓에 칡덩굴이 우거진 곳은 금방 황폐해진다. 그 때문에 쓰임새가 많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도 유해(有害) 식물로 지정됐다. 또 뿌리가 굵고, 깊이 파고들며, 땅 위로는 잎줄기가 뒤엉키면서 금방 주변을 초토로 만들어버린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203호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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