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남성욱의 평양리포트] 새 정부 대북·외교 정책의 방향은? 

‘평양 바라기’ 멈추고 안보동맹 재건해야 할 때 

윤석열 당선인, 비핵화와 한·미 동맹 앞세워 대북정책 대수술 예고
안보 중심 자유민주 진영 동맹 재건해 북한의 고강도 도발 대비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비핵화와 한·미 동맹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 사진:임현동 기자
[늑대의 선거]는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세계적인 작가 다비드 칼리의 우화 그림책이다. 선거철을 맞이한 농장의 동물들이 대표를 뽑는 선거를 치르면서 겪게 되는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선거의 개념이나 과정 등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현실의 선거는 동물농장의 선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격렬하며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다. 누가 선거를 축제라고 했는가? 선거는 허약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등불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0.73% 앞선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초박빙 선거 과정은 동물농장에서 늑대, 돼지, 닭들이 대표가 되기 위해 뛰었던 경쟁보다 훨씬 치열했다.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만큼 ‘문재인 정책 제외(Anything but Moon)’라는 의미의 ‘ABM’이 새 정부의 정책 키워드가 될 것이다. ABM의 핵심은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탈원전, 편향된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 정책이다. 복지혜택, 세금, 연금개혁, 노사관계, 코로나 지원 등은 여야 후보가 포장지만 달리할 뿐 내용물은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정책에서 노선 변화가 불가피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청와대에 ‘매파(hawkish)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업무가 종료된 저녁 7시 40분 당선 수락 후 5시간 만에 윤석열 당선인과 20분간 통화했다. 이처럼 역대 당선자 통화에서 가장 신속하게 소통한 점은 향후 한·미 동맹의 방향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정상이 일과가 끝난 후에 해외 정상과 통화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당초 11일에서 미국의 요청으로 당겨졌다는 후문이다.

정상 간 통화의 핵심 키워드는 ‘린치핀(linchpin)’이다.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핵심축이 느슨해져 수레바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다. 워싱턴은 이제 다시 축을 연결하는 핀을 단단히 고정해 미·일 동맹의 코너스톤(corner stone, 주춧돌)과 함께 대(對)동북아 정책의 양 날개로 활용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부작용만 낳은 文 정부의 일방적인 유화정책


▎2021년 10월 26일 경북 포항시 송라면 독석리 해안에서 한·미 두 나라 해병대가 참가하는 연합 상륙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정책 나침반을 수리해야 할 것 같다. 국익의 자침이 평양에 고정돼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던 나침반은 정비가 필요하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한·미 동맹의 진정한 가치를 음미할 시대가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 정책 중에서 계승 발전시킬 것은 지속해야겠지만, 절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새 정부의 외교·안보 글로벌 비전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폐해부터 교정돼야 한다.

평양에 대한 무작정 대화와 끝없는 유화정책은 부작용을 유발했다. 판돈 전체를 평양에 베팅했던 문 정부의 남북관계는 과유불급 수준을 넘어 갑을, 주종 관계로 재편됐다. 북한의 압박으로 제정된 대북전단금지법과 9·19 군사합의 및 종전선언은 문 정부가 평양에 제공한 3대 종합선물세트로서 국민의 자긍심과 국격에 상처를 입혔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다.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것을 청와대에 요구했고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던 정부여당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단독으로 법을 통과시켰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가 유엔에 보낸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서한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대북전단금지법은 김정은 남매를 달래기 위한 조치”라며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북한 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자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토마스 오헤아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대북전단금지법(개정남북관계발전법)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처벌의 비례성”이라며 “처벌 수위가 국제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접경지의 평화와 안전이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에 대한 정보 유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의 변화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토대로서 주민들의 인식 전환에서 시작된다. 대북전단은 그나마 주민들이 북한 내부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는 실마리다. 공산주의 독재자가 싫어한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이를 수용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인권에 눈을 감는 처사다. 여대야소 정국이라 당장 법을 폐기하기는 어렵지만, 처벌 수위를 낮추는 개정안은 불가피하다.

다음은 무용지물로 변해가는 9·19 군사합의 조정이다. 그동안 GP 철수 등 남한의 일방적인 무장 해제 수준으로 진행됐던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에 안보 취약점을 노출하고 군사훈련을 동결시킴으로써 대북 방어태세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군사합의 1조 2항은 다음과 같이 훈련 중단을 규정했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 이북으로부터 북측 초도 이남까지의 수역,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폐쇄 조처를 하기로 했다.’ 또 2조 1항에서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에 감시초소(GP)를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적 조치로 상호 1㎞ 이내 근접해 있는 남북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고 합의함으로써 40여 개 이상의 GP가 철거되고 동해안 지역에서는 탈북자가 자유롭게 월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 동서부 지역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 내에서 고정익 항공기의 공대지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 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함에 따라 총 한 번 안 쏴보고 병사들이 전역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의 기습 도발이 감행될 경우 과연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군사합의 무용지물


▎지난 3월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전용 가능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서해위성발사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간이 지나면서 군사합의는 휴짓조각이 되고 있다. 선거를 하루 앞둔 3월 8일 북한 경비정이 NLL(서해북방한계선)을 7분간 월선함으로써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2019년 11월 25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창린도’를 시찰하고 포사격을 진행함으로써 합의는 사실상 불능화했다. 당시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오늘 아침 북한 언론매체에서 밝힌 서해 완충구역 일대에서의 해안포사격 훈련 관련 사항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준다.

그럴싸한 포장지에 싸인 군사합의 속에는 무장해제라는 독극물이 들어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다. 북한도 역시 남한이 합의를 준수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은 합의를 지키지 않는 만큼 흐지부지될 거라고 예상할 것이다. 북한은 정초부터 8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고 2017년 선언한 핵과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인 모라토리엄의 파기를 검토한 만큼 사문화된 군사합의 준수에 목숨을 걸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군사합의가 자신들의 계속되는 군사도발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국전쟁 종전선언 주장도 접어야 한다. 지난 세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 이후 문 정부가 꺼내 든 종전선언은 맥락과 시점이 맞지 않는 자충수였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당사자인 북한조차 설득하지 못한 현실성 없는 종전선언 카드로 인해 임기 말 외교를 통한 국익 실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통일부, 국정원은 물론이고 외교부, 국방부 등 전 부처에서 평양 바라기에만 몰입해 북한 이외의 국익을 달성하는 데 무관심했다. 외교·안보 부처 장·차관들이 임기 말 청와대의 종전선언 미션을 수행하느라 전 세계를 쏘다녔다. 프랑스 상원을 대상으로 종전선언 지지를 유도하는 작업이 대가 없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제한된 국력으로 스마트한 외교를 전개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당사자인 북한조차 공허하게 평가하는 종전선언 올인 정책은 문 정부가 국력을 낭비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5년간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한 비난 수위는 역설적으로 역대 정부에서 최악이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9년 9월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평화경제’ 실현 구상에 대해 “남조선 당국자의 말 대로라면 저들이 대화 분위기를 유지하고 북남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조선반도(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비난했다. 이 외에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막말 퍼레이드는 어찌 보면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수용했다고 인식하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애써 무시했지만,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유화정책은 더 큰 양보를 유발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갑자기 돌변하는 공산주의 정권의 야수적 본성을 망각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자긍심을 세우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보여주는 대북관계 수립 과제를 안고 있다.

이제 새 정부 5년간의 외교·안보 비전을 전망해보자.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2월 24일 ‘강한 국가지도자’로서의 당당하고 튼튼한 자유·평화·번영의 외교·안보 글로벌 비전을 발표했다. 윤 당선인은 당시 대북정책, 외교정책, 국방정책 등으로 나눠 총 20가지 외교·안보 공약을 제시했다. 주요 공약은 ▷비핵·번영의 한반도 실현 ▷한·미 동맹 재건과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 ▷경제안보외교 적극화 ▷AI 과학기술 강군 육성 ▷북핵·미사일 대응체계 구축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실현을 담았다.

또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실현해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와 안전을 구현하기 위해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협상하고 한·미 공조하에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판문점에 남·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3자간 대화 채널을 상설화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국제적 대북제재는 유지하되 그 이전이라도 실질적 비핵화 조치 시 유엔 제재 면제 등을 활용하며 대북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북핵 미사일 위협 억제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한·미 간 전구급 연합연습, 야외기동훈련을 정상 시행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해 성주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미 외교·국방(2+2)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의 실질적 가동과 전략자산(전략폭격기·항공모함·핵잠수함 등) 전개, 정례적 연습 강화를 통한 한·미 확장억제(핵우산)의 실행력을 강화하고 문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한국형 3축 체계’를 조기에 복원하겠다”고도 했다. 또한 “킬 체인(Kill-chain)이라 불리는 선제타격능력 확보와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대량응징보복(KMPR) 역량 강화를 위해 북한 전 지역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정찰 능력과 초정밀·극초음속 미사일을 구비하고 레이저 무기를 비롯한 새로운 요격 무기를 개발할 것임을 밝히며 수도권 방어를 위한 ‘한국형 아이언 돔’ 조기 전력화”도 약속했다.

한·미·일 동맹 복원해 비핵화 노선 강화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가능성을 예고했다. 2019년 4월 평택 미군기지에서 미국 장병들이 사드 발사대 장착 훈련을 하고 있다.
주요 공약 외 14개 공약을 추가로 발표했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공동번영추진 ▷국민합의에 기초한 통일방안을 충실히 추진 ▷‘북한인권재단’ 조속히 설립 ▷상호존중에 기반한 한·중 관계 구현 ▷한·일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 실현 ▷한·러 협력의 미래 지평 확대 ▷지역별로 특화된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 ▷‘국격에 걸맞은 글로벌 기여 외교’ 실천 ▷총리실 직속 신흥안보위원회(ESC) 설치 ▷‘재외동포청’ 설치 ▷사이버안보 위협 대처 능력 제고 ▷원전 수출 외교에 적극 주력 ▷‘미래세대에 맞는 병영체계’ 구축 ▷‘민군상생 복합타운’ 건설 등이다.

요컨대, 외교·안보 공약의 핵심과 출발은 한·미 전략 동맹의 강화다. 3월 10일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의 통화 이후 백악관은 “두 사람은 인도·태평양의 평화, 안보, 번영의 중심축인 한·미 동맹의 강점을 확인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두 사람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한 조율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5월 말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4국 안보협의체)’ 정상회의 참석을 전후해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5월 10일 취임하는 윤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양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B급으로 추락한 혈맹을 바로 세우는 데 주력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간의 줄타기 외교를 손질할 것이다.

윤 당선인 “사드 추가 배치 개방적 자세 보여야”


▎우크라이나 사태는 ‘낀 국가’의 불행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다리 아래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하천을 건너 피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대선후보들은 선거 전 정치·외교 전문지에 기고문을 올려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설명한다. 바이든 대통령도 후보 시절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2020년 3/4월 호에 ‘왜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 하는가(Why America Must Lead Again)’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바 있다. 과거 한국의 대선후보들도 기고문을 올린 바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8일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대북관계에만 집중하느라 한국의 국제적 역할이 축소됐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의 기고문 제목은 ‘대한민국: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품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South Korea Needs to Step Up Seoul Must Embrace a More Expansive Role in Asia and Beyond)’였다. 기고문에서는 이재명 후보와 토론에서 설전을 벌였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은 주권의 문제이며, 서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비례해 사드 추가 배치에 개방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한국은 자국의 안보 이익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중국의 경제 보복에 굴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정부가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해 사드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망(MD) 참여, 미국·일본과의 3자 군사동맹 구축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 정책’을 거론하며 “이런 약속은 국민을 보호할 한국의 주권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은 “현 한국 정부가 국익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각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외교정책을 맞추느라 국제적 역할이 축소됐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북한과의 협력에 주력하고, 미국은 북한의 핵 위협과 인권 침해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한·미 동맹이 이견으로 표류하고 있다”며 “북한을 대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것이 외교 정책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전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특히 “한국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단계적 보상 조치’도 언급했다. 윤 후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북한이 응하는 각 단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년간 문 정부는 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격하시키고 깎아내림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동맹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다. 청와대는 함께 피를 흘리고 싸웠던 동맹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어설픈 운전자론, 섣부른 중재자론을 내세워 동맹의 품격을 내팽개쳤다. 지난해 5월 미국은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참전 노병을 내세워 음수사원(飮水思原)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기억하지 않는 한국 지도자에게 던지는 무언의 이벤트였다.

보수 정권 출범할 때마다 도발로 위기 고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유엔이 3월 2일 긴급 특별총회에서 채택한 결의안에는 141개국이 찬성했다. 중국과 인도 등 35개국은 기권했고, 북한을 포함한 5개국은 반대했다. 김성주 UN 북한대사는 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정책에 있다”면서 “안보 보장을 해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도 했다. 이것이 지난 5년간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양보했던 평양 지도부의 발언이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미화하고 동조하는 북한의 주장은 결단코 수용할 수 없다. 탄도미사일 발사를 우주 정찰위성 시험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자가 틀림없다.

스트롱맨의 시대에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모호성은 지켜내기 쉽지 않다. 경제도 안보도 미국이라는 전략적 선명성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에 외교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스진키(Zbigniew Brzezinski)는 1998년 펴낸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으로 정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낀 국가’의 불행을 예고했다. 한국이나 우크라이나처럼 지정학적 중추국은 강대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열강이 충돌하는 현장이 될 수도 있다. 가치와 국익이라는 균형이 무너진 한국 외교를 정상화해 선진국형 외교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신냉전의 파고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수호하는 길을 고심해야 할 때가 왔다.

선거 승리의 축배는 순간이고 한반도 현실은 냉엄하고 복잡하다. 상대들도 만만치 않다. 대북정책은 리셋될 것이지만 과정은 성장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북한은 역대 보수 정당 대통령에 대해서는 취임 초반부터 강 대 강 전략을 택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취임 초부터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10·4 선언의 이행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됐다. 임기 말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진행한 무리한 정상회담이 초래한 후유증이었다. 전임 대통령이 약속한 식량 지원 등을 둘러싼 남북한의 갈등은 결국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동안에는 2016년 1월 4차 핵실험과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감행했다. 윤 당선인 취임 초반에도 북한은 과격한 도발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4월 10일 김일성 생일 110주년을 맞이해 ICBM 발사를 감행하면서 수위를 높일 것이다. 북한은 7차 핵실험 카드도 검토할 것이다. 김정은은 5년 내 군사정찰위성을 다량 배치하겠다고 천명했다. 한국 새 대통령이 확정된 날 김정은이 직접 ICBM 발사 재개를 공식화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신냉전 구도를 활용한 북한의 강공 정책은 윤석열 정부가 부딪치는 첫 외교·안보 과제가 될 것이다.

친미노선 강화 행보에 견제구 던지는 중국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 미국의 바이든,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북한의 김정은 이 네 정상을 만날 순서를 우선순위로 말해보라”는 질문에 윤 당선인은 바이든, 기시다, 시진핑, 김정은으로 순서를 제시했다. 시진핑보다 기시다를 먼저 택한 것이 색달랐다. 윤 당선인은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하는 한·미, 한·일 관계 복원을 강조했다. 실제 3월 11일 기시다 총리와 통화하고 양측의 미래지향적 관개 개선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아마 광복절을 지나 한·미·일 정상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역설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방점을 둔 것은 문 정부의 대중국 저자세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교는 친구가 생기면 반대로 적이 생긴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다소 정체 국면을 맞을 것이다. 중국의 기관지 [환구시보]는 대선 결과를 평가하면서 “한·중은 수교 30년 만에 양국의 경제적·정치적 상호 신뢰 구도가 형성됐고, 중국이 한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자 경제 파트너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한국 정치인은 없다”면서 “한국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지키면서 그에 맞는 외교 정책을 수립해야 미래의 지향점에 부합할 수 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의 공약 중 한·미 동맹 강화 등 중국과 충돌 소지가 큰 것들에 주목하면서도 윤 당선인이 경제 등에서 깊이 엮인 한·중 관계를 흔들 수 있는 조치에는 신중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이는 중국 정부의 기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한국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견제구’를 던지는 의미도 있다. 대중 관계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정학적으로 ‘낀 국가’인 한국의 외교·안보는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주변 열강들로부터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 다른 세상사와 같이 외교·안보도 희생 없이 관계를 업그레이드할 수 없고 이를 극복해야만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다. 윤석열 정부는 고려 태조 집권 시기인 993년 외교적 담판으로 거란으로부터 압록강 동쪽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徐熙)의 스마트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안고 있다. 축배의 시간은 지나가고 고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204호 (2022.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