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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단체장] 31년 지방정치 외길 걸어온 박윤국 경기 포천시장 

“시장은 시민의 마음 얻는 ‘로비스트’가 돼야 한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기초·광역의원·3선 단체장의 관록으로 시민 문제 해결사 자처
사통팔달 교통망·스포츠타운 이용 남북 교류 중심 도시 꿈꿔


▎박윤국 포천시장은 초대 포천군의원으로 지방정치에 입문해 30년 넘게 포천시에서만 지방정치에 몸담았다. 박 시장은 지방정치의 본령을 “이념이 아닌 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3월 11일 오후 포천시청 2층에 있는 시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긴 회의용 탁자 위에 수북한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메모 형식의 작은 쪽지 보고서부터 두툼한 자료집까지 8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 위는 온갖 서류가 산더미를 이뤘다. 박윤국 시장은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던 참이었다. 박 시장은 “남들 보기엔 엉망인 것 같아도 나는 무슨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안다”고 했다. “박 시장은 천생 선비”라던 중견 언론인의 귀띔 그대로였다. “4년 내내 연구해도 끝이 없다”는 박 시장의 말에 녹록지 않은 시장 직무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 묻어났다.

박 시장은 기초단체장들 중에서도 관록이 만만치 않기로 손꼽힌다. 제1대 포천군의원과 경기도의원을 거쳐 포천군수, 초대 포천시장을 지냈다. 10년의 공백기를 지나 2018년에 세 번째 시장직을 맡았다. 절치부심했던 만큼 왕성한 시정 활동으로 경기 북부의강소 도시로 도약하는 토대 마련을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세 차례에 걸쳐 시민 1인당 70만원(경기도 지원금 제외),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는데 재정 부담은 없었나?

“4년 전 취임할 때만 해도 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채무를 조기 상환해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채무 제로’를 달성했다. 우리와 규모가 비슷한 지자체의 평균 채무액이 109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꽤 큰 성과다. 그렇게 아껴서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께 돌려 드린 거다.”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았겠다.

“우리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없어서 못 주는 주변 지자체 주민들한테 부러움을 많이 샀다. 그래서 ‘포천으로 이사 가자’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씀씀이를 줄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 남다른 비결이 있었나?

“우리 시는 재정자립도가 전국 지자체 평균보다 약간 낮은 편이다. 정부와 경기도에 가서 돈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우리 시 부담을 최소화하되, 정부와 경기도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 시가 관리해야 할 도로를 지방도로 승격시켜서 경기도가 관리비용을 부담하게끔 하는 거다. 그래야 우리는 시민에게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다.”

10년 공백을 극복하고 시정에 복귀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겠다.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돌아와서 감회를 느낄 틈도 없었다. 돌아와보니 도시가 엉망이 돼 있더라. 주변 도시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미래가 희망이 거의 안 보이니 시민들이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런 시민들을 일으켜 세워서 같이 나가려고 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장은 ‘로비스트’가 돼야 한다”


▎포천시가 해체 예정인 6군단 부지에 건설을 추진 중인 ‘평화스포츠타운’. 시는 이곳에서 2029년 청소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포천시
시민의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어서 시민들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끌어내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시민 협조를 구할 때도 협상 기술이 필요하다. 시장은 ‘로비스트’가 돼야 한다. 무조건 한다, 안 한다고만 하고 밀어붙이면 싸움만 일어날 뿐이다. 시민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원하는 걸 간파해 조건을 제시하면 쉽게 해결된다. 한번은 주민들이 집단민원을 들고 시청으로 몰려온 적이 있었다. 식사 시간이 됐기에 짜장면을 시켜서 돌렸다. 그랬더니 감정이 누그러져 별 탈 없이 문제가 해결됐다. 인간적으로 대하니 어떤 민원이 생겨도 악다구니를 쓰거나 멱살 잡는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포천시 곳곳에 발전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특히 몇 년 사이에 도로 사정이 크게 좋아진 것 같다.

“포천은 한반도 중심에 있다. 남북 교류의 인적·물적·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한 초석으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4차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에 ‘옥정-포천 광역철도’가 반영됐다. 내년에 개통하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수원산터널 건설공사도 경기도로부터 60억원을 확보해 공사를 시작했다. 터널이 완공되면 가평, 춘천 지역의 접근성이 크게 좋아질 거다.”

도시 개발을 추진하면서 어떤 콘셉트로 주안점을 두는지 궁금하다.

“교통과 주거, 산업이 어우러진 콤팩트 시티를 만들려 한다. 이를 위해 권역별로 나눠 소흘 도심 지역은 주거 중심으로, 선단 도심 지역은 비즈니스센터와 산학연계 연구단지로, 포천 도심 지역은 상업과 행정 중심으로, 그 외 지역은 생태관광 중심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집무실 한쪽에 걸린 커다란 시설 조감도가 눈에 띈다. 어떤 시설인가.

“포천의 중심부인 선단동과 포천동 사이 6군단 부지에 지을 ‘포천 평화스포츠타운’의 모습이다. 약 15만 평 부지에 육상트랙경기장, 축구전용경기장, 수영장, 다목적 실내체육관, 실내사격장, 야구장 등 주요 경기장과 아웃렛, 컨벤션센터, 테마파크 등의 부대시설을 구성하려고 한다.”

시설 이름에 ‘평화’를 넣은 것은 남북 스포츠 교류를 염두에 둔 건가?

“그렇다. 2029년 청소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인접한 파주시가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 경제협력을 도모하듯이, 포천시는 스포츠를 통한 남북 협력의 장이자 국내에서 유일한 남북 교류 지자체로 자리매김할 거다. 또 6차 산업으로 발전하는 스포츠산업을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것도 염두에 뒀다. 그래서 도시 브랜드도 ‘스포츠도시 포천’으로 정했다.”

6군단 부지 활용해 남북 스포츠 교류 메카 도약


▎2017년 6월 세종-포천 고속도로 (구리-포천 구간)가 개통되면서 서울(강동)과 포천이 30분 거리로 좁혀졌다. / 사진:국토교통부
스포츠를 지역 발전의 매개체로 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경기도, 특히 북부에서는 대형 국제 경기를 유치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국내에는 전지훈련장이 마땅치 않다. 대부분 해외로 가거나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데, 추운 곳에도 훈련장이 필요하다. 수만 명의 체육 선수들이 1년 내내 와서 먹고 자고 훈련하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다. 1970년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서울 강남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르고서 어떻게 변했나? 스포츠가 도시 부흥의 기폭제가 되지 않았나.”

군부대가 점유하고 있는 땅을 남북 스포츠 교류의 중심지로 활용한다는 생각이 다소 도전적으로 들린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에 따라 6군단을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본래 6군단 부지는 포천시 소유다. 1953년에 6군단이 창설되면서 포천의 노른자 땅을 반세기 넘게 무상으로 사용했다. 해체 후 반환 조건으로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무상사용 수익허가를 내준 상태다. 부대를 해체하기로 했으니 시민에게 땅을 돌려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6군단 해체 후에도 자주포 부대와 기무부대 등 굳이 그곳에 없어도 되는 부대를 재배치하겠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105㎜ 자주포의 경우 여기에서 쏘아도 휴전선 근처까지 날아가지도 못한다. 전략상 필요하다면 이해하겠지만, 이건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경직된 조직 특성상 군을 상대로 한 협상이 쉽진 않을 텐데.

“우리 시는 무상사용 기간 종료에 따른 반환계획서를 지속해서 요청했지만, 군에서 우리와 협의하지 않고 부대를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포천시에는 수백만 평짜리 한·미 연합 사격장 등 군부대가 산재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푼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피해를 감수해왔다. 사격장을 옮기든지, 우리 시 땅을 돌려주든지 군에서 선택해 결정해야 한다. 올해 초에 김부겸 총리를 만나 상생협의체 구성을 요청, 국방부와 첫 실무접촉을 가졌다. 앞으로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부지반환을 꼭 이뤄낼 거다.”

경기장 시설 외에 스포츠와 접목할 다른 산업에 대한 비전은 없나?

“건강을 매개로 한 산업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포천시는 서울의 1.4배나 되는 넓은 땅 중에 3분의 1이 온천지구다. 온천을 활용해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특화 관광 상품을 만들려고 한다. 또 포천은 인삼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철원평야와 이어져 고품질 쌀과 농산물을 재배하기에도 좋다. 이런 것들을 묶어서 메디푸드 산업을 육성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책상에 놓인 비행기 모형이 눈에 띈다. 비행기 모형을 집무실에 둔 의미가 있나?

“이게 제트엔진 대신 프로펠러를 단 중거리용 여객기다. 포천시가 민간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진행한 공항개발 사전 타당성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경기 북부에서 처음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수도권 북부지역은 항공 인프라가 전무하다. 비행기를 타려면 인천이나 김포까지 가야 한다. 이런 불편을 줄이려고 국토부 중장기 계획인 ‘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포천비행장 내 민항시설 설치사업이 반영됐다. 군용으로 사용하는 포천비행장 4개 활주로 중 하나를 이용해 중거리 여객·물류 수송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철도, 도로 등 광역 교통 인프라와 연계하면 상당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지방자치단체장들 중 지방행정 외길만 고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중앙정치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예전에 꿈꿔본 적은 있다(웃음). 2007년경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대선을 준비하면서 중앙정치에 입문하길 권했다. 당시 포천지역 국회의원이 어떤 사건에 연루돼 공석이었다. 공천을 약속받고 그해 말 시장직을 내려놨는데 나중에 공천자 명단에 이름이 빠져 있더라. 정치가 냉혹하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할 수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포천에서는 승리했지만, 같은 지역구로 묶인 연천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낙선했다. 그 뒤로 다시는 중앙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일하지 않으면 시민의 마음 못 얻는다”

뼈아픈 경험이었겠지만, 지방정치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한 계기였을 수 있겠다.

“중앙정치는 어차피 정당 중심이다. 의원 개인의 활동 폭이 제한적이다. 우리 지역이 보수적이라고 해서 내가 중앙정치를 흉내 냈다면 시민들이 기회를 주지 않았을 거다. 지방정치에서 이념을 가르고 내세우는 건 지역 발전에 전혀 도움 안 된다.”

보수 성향이 뚜렷한 곳에서 오래도록 시민의 지지를 얻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포천의 역사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 보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역 정치의 목적은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일반 회사에서 직원을 뽑았는데 4년 동안 일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지 않으면 시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걸 늘 되새긴다. 지금까지 포천의 미래를 그리는 밑바탕 작업을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밑그림에 색을 입힐 때다.”

시장께서 그리는 미래 포천은 어떤 모습인가?

“요약하면 ‘자족형 콤팩트 도시’다. 포천시는 사통팔달의 한반도 중심지다. 교통인프라가 구축되면 남북교류에 있어 평화시대 경제협력의 거점 도시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거다. 지금까지 구상하고 추진해온 사업들이 마무리되면 교통과 주거, 산업이 어우러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선진국형 전원도시가 만들어진다.”

※ 박윤국 포천시장
- 대진대 법무행정대학원 법학 석사
- 제1대 포천군의원
- 제4대 경기도의원
- 민선3기 포천군수(초대 포천시장)
- 민선4기 포천시장
- 민선7기 포천시장(현재)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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