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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윤석열 또 충돌… 5년마다 반복되는 대선 불복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 윤 당선인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청와대 반대 나서
■ 국민의힘 “새 정부 흔들어 광우병 시즌 2 만들려는 의도”
■ 이명박 때는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노무현은 탄핵까지
■ 윤석열·이재명 24만 표차 불과…민주당 인정하기 싫을 수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또 충돌했다. 3월 16일 청와대 오찬 회동 불발에 이어 3·9 대선 이후 신구 권력 간 두 번째 파열음이 난 것이다. 사진은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또 충돌했다. 3월 16일 청와대 오찬 회동 불발에 이어 신구 권력 간 두 번째 파열음이 났다.

지난 21일 청와대가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반대하자 국민의힘은 “대선 불복”이라며 발끈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중앙일보〉 전화 통화 등에서 “청와대는 차기 대통령이 어디에서 근무할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정권 교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대선 불복이다. 새 정부를 초장부터 흔들어서 ‘광우병 시즌 2’를 다시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안보 공백’을 이유로 집무실 이전에 반대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안보 공백은 없다”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도 합참은 이전하지 않고 현재의 대비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수십 차례 미사일을 발사해도 도발이라 말조차 하지 못했는데 안보 공백 운운하는 것은 쇼”라고도 했다.

김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사실상의 ‘대선 불복’이 5년마다 재현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두 달 이후 치러졌던 지난 2017년 대선 직후만 예외였다. 당시 보수 진영은 궤멸 상태였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력조차 없었다.


▎2013년 ‘귀태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홍익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 그는 파문이 커지자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원내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중앙포토
홍익표는 ‘귀태, 이해찬은 ‘당선 무효’ 언급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대선 반년이 지난 이후로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승복할 수 없다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2013년 7월 홍익표 의원은 당시 박 대통령을 가리켜 ‘귀태(鬼胎·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라고 비난했다. 친노 좌장인 이해찬(현 상임고문)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을) 비호하고 거짓말하면 당선 무효까지 주장하는 세력이 더 늘어나게 된다”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당시 민주당과 일부 지지자 사이에서 드러난 대선 불복 심리는 박빙 승부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진보·보수 일대일 대결로 치러졌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51.55%를 얻어 48.02%의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힘겹게 따돌렸다.


▎2008년 6월 9일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가를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 중앙포토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로 MB 정권 치명상

그 5년 전인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530만 표 차로 크게 이겼다. 극우인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15% 득표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자, 이명박 당선인 측은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정권 출범 전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과 함께 반대 세력의 반발을 자초했다.

결국 2008년 이명박(MB)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대규모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가 벌어지면서 MB 정권은 치명상을 입었다.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이면에는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불복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2년 대선 이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57만 표 신승을 거두자 한나라당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여러 차례 보였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 당시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여야 의원들.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은 전체 의원 271명 중 193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중앙포토
한나라당 167일간 JP 국무총리 인준 거부

한나라당 내부적으로는 대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을 ‘정치 검찰’의 지원을 받은 ‘김대업 병풍 공작’으로 규정하는 한편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정서도 강했다.

강경파들은 사상 초유의 대선 재검표를 요청했고, 이 같은 대선 불복 심리는 2004년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사태를 초래했다.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에서 1당 지위를 열린우리당에 내준 데 이어 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사상 첫 여야 간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1997년 대선 이후에도 한나라당의 ‘몽니’가 오랜 시간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김종필(JP) 국무총리 인준을 167일이나 거부함으로써 새 정부 구성에 큰 차질을 야기했다.


▎1997년 12월 19일 새벽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 결과 승복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뒤로 조순 총재, 손학규 의원 등이 보인다. 중앙포토
국민의힘 “광우병 집회? 더 큰 심판받게 될 것”

당시 온 나라가 IMF(국제금융기구) 외환위기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난(國難)에 시달렸음에도 야당은 국회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새 정부를 흔들었다.

2022년 3·9 대선은 1997년 39만 표(김대중 vs 이회창)를 넘어 역대 최저 표차 대선으로 기록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표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전체 무효표가 30만 표였음을 감안하면 민주당으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결과일 수도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최대한 지연해 6월 1일 열리는 지방선거 때까지 논란을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저들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를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나온다면 더 큰 국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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