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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38)] ‘멕시코의 유재석’ 꿈꾸는 크리스티안 

“멕시코 광산서 고스톱 배워 빨리빨리 한국 문화엔 충격” 

한국 기업서 통역으로 일하면서 멕시코와 다른 낯선 문화에 반해 한국행
예능·교양·시사 넘나들며 방송가 종횡무진… 최초 외국인 국민 MC 도전


▎서울 서소문동 중앙일보 사진 스튜디오에서 메인 사진을 촬영한 크리스티안. 멕시코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과 빨강 조명을 은은하게 가미해 크리스티안의 아이덴티티를 살렸다. / 사진:전민규 기자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손님을 모셨다. 크리스티안 샤메드 부르고스 아탈라(Christian Shamed Burgos Atala)라는 긴 이름을 가진 멕시코 청년이다.

크리스티안은 요즘 말로 ‘방송가를 씹어먹고 다니는’ 우량주다. 멕시코 사람이니까 스페인어가 네이티브고, 영어도 기본으로 잘한다. 게다가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2015년 JTBC 외국인 예능 [비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을 알린 크리스티안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복면가왕] [히든싱어] 등 음악프로그램에서 춤·노래·악기 등으로 다채로운 예능감을 뽐내기도 했다.

크리스티안은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한복홍보 대사로 위촉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홍보대사 활동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삼성전자가 전 세계 32개국 VIP 고객을 대상으로 온라인상에서 개최한 ‘스마트워치 런칭 파티’의 메인 MC를 맡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대한민국 최초 외국인 전문 MC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며, 멕시코와 한국을 서로 알리는 비공식 외교관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고 옹골차게 말했다. 그는 ‘멕시코의 유재석’이라는 자신의 꿈에 성큼 다가서 있다.

부산 사람한테 한국어 배워 급할 땐 사투리 나와


▎강원도 사북의 폐광에서 크리스티안이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 / 사진:(주)FMG
이름이 굉장히 기네요.

“맞아요. 그래서 은행에서 본인 인증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웃음). 크리스티안과 샤메드는 첫 번째 두 번째 이름이고요. 부르고스는 아버지, 아탈라는 어머니 쪽 성(姓)입니다. 우리 가족은 짬뽕이에요. 하하. 외할머니 쪽이 이탈리아 사람과 결혼했고, 아빠 쪽은 스페인 사람이 많아요. 아빠는 크리스티안이란 이름이 갖고 싶었대요. 그래서 저한테 그 이름을 주셨는데, 샤메드는 왜 주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어떤 책에서 봤는데 맘에 들었다고 하네요.”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2010년쯤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MBC에서 방송한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라고 기억하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멕시코에는 그런 예능 프로 자체가 없거든요. ‘어, 이런 것 좀 알아봐야겠다’ ‘밑에 달리는 한글 자막이라도 알아먹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한글을 독학하게 됐죠. 인터넷 들어가서 한글 읽는 법, 쓰는 법을 공부했고,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웠죠. 당시 선생님이 멕시코에서 20년 사신 부산 분이었는데 그분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 했더니 나중에 한국 분들이 ‘부산에서 오래 살다 왔냐’고 물어요. 한국 가 본 적도 없는데요. 하하.”

그곳에서 몇 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셨나요?

“어학당은 몇 개월 과정이었어요. 지금만큼 K-POP이나 한국문화가 알려지지 않아서 한국말 공부할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었어요. 당시 한국어 능력은 여섯 살 아이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죠. 원래 전공은 마케팅입니다. 무엇이든 팔 수 있는 비즈니스 능력을 키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한국어를 그렇게 잘해요?

“멕시코 북쪽에 구리 광산이 있는데 한국 기업에서 인수해서 2000명 정도 한국 분들이 일하러 오셨어요. 통역사가 필요해서 한국말 배운지 6개월밖에 안 된 제가 가게 됐죠. 가보니 정말 새로웠어요. 제가 예상했던 한국문화랑 굉장히 달랐어요. 한국 분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사실 위험한 광산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한국말은 많이 늘었죠. 쓰는 건 안 늘었지만요. 광산 용어들은 복잡하고 어려워서 일상생활에서는 쓰이지 않잖아요. 저는 한국 와서 지하철역에 붙은 ‘환승’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어요. 멕시코에서 쓴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크리스티안은 운명처럼 태평양을 건너왔다. 하지만 이국 생활이 절대 녹록하지는 않았다. 주한 외국인들이 필수 코스로 다니는 대학교의 한국어학당에 등록해 공부할 여유도 돈도 없었다. 처음부터 폼 나게 방송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 와서 방송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죠. 처음에는 3D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녔어요. 멕시코에서 영상 제작을 했거든요.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어서 카메라 만져도 보고 짧은 뮤직비디오도 찍어봤어요. 한국에서 3D 애니메이션 배워서 나중에 멕시코 가서 3D 학원을 차리려고 했죠.”

크리스티안은 원래 6개월만 있다가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한국이란 나라가 자신이랑 너무 잘 맞더란다. 있을수록 더 있고 싶고,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고 잘해주고 음식도 맛있고…. 심지어 소주도 데킬라와 비슷해서 좋았다고 한다. 비자 받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스페인어 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한국과는 천생연분인 셈이네요. 지금은 예능뿐만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하니까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시겠네요.

“그렇죠. 천생연분이란 말을 저도 좋아해요. 영어로 ‘Match made in Heaven’이란 뜻이잖아요. 뭐든지 겁 없이 도전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시사프로를 한 게 KBS의 [특파원 보고-세계는 지금]이었는데 거기선 외국인으로서 뉴스를 소개하는 역할로 나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됐지요. 제일 힘든 게 시사용어 중에 한자(漢字)가 많이 나오고 어려운 단어가 많다는 겁니다. 사전을 항상 곁에 두고 있었고, 해당 국제 뉴스의 스페인어 버전이나 영어 버전을 찾아서 공부했죠. 그 뉴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지 읽기만 해서는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고, 그러면 방송이 깨져버리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준비하고 공부하는 스타일입니다.”

‘우리는 하나’ 탄핵 시위하는 한국인에 깜짝


▎오늘의 크리스티안을 있게 한 JTBC 외국인 예능 프로 [비정상회담]의 멤버들. 왼쪽 셋째가 크리스티안.
한복 홍보대사를 한 적도 있는데, 한복이 몸에 잘 맞던가요?

“한국에서 한복 입은 외국인을 많이 봤는데 한국 사람의 모습이 외국인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변 외국인들이 입은 걸 보면서 안 어울리는구나, 나랑은 어울릴까 걱정도 했거든요. 그런데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분이 저랑 정말 잘 맞는 특별한 한복을 제작해 주셨어요. 편하고 통풍성 좋고, 최고였어요.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 출연자들이 한복은 필수로 입게 되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역시 왕 복장이었죠. 커다란 벨트를 멋있게 차고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멕시코에는 전통의상이랄 게 없어요. 전통이라 하면 마야나 아스테카 문명 같은 건데 다 사라졌잖아요.”

한국에 살면서 ‘한국사람 진짜 놀랍다’고 느낀 것 세 가지만 들자면?

“첫째는 커뮤니티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느낌이죠. 몇 년 전 탄핵 시위할 때 깜짝 놀랐어요. 멕시코에서 시위하러 간다 하면 ‘왜 가? 뭐하러? 시간 낭비야. 어차피 우리 말 안 들어줄 건데’ 이런 인식이거든요. 한국에선 ‘왜 가냐?’고 하니 ‘내 나라를 위해 가는 거다’고 말하는 겁니다. 아, 이게 생각의 차이구나 하고 느꼈죠. 이런 사회성이 일할 때나 다른 액티비티를 할 때도 느껴지거든요. 뭉쳐서 하는 걸 보면서 놀랄 때가 많아요. 멕시코는 주로 셀프 문화거든요. 멕시코 사람이 하나 될 때는 딱 한 번 있어요. 축구 할 때. 하하.”

‘한국 사람 놀랍다’ 두 번째는요?

“빨리빨리 문화죠. 아, 충격이었어요. 멕시코는 여유가 많잖아요. 한국 사람은 일단 오늘, 무조건 오늘입니다. 광산에서 제일 문제 됐던 것도 속도 차이예요. 한국 사람은 ‘퇴근 시간인 거 알겠는데 조금 늦게 퇴근하더라도 일 끝내놓고 가라’ 하지만 멕시코 사람은 ‘퇴근 시간이니까 퇴근하고 내일 할게. 내일 조금 일찍 나와서 하면 되잖아’ 하면서 퇴근해버리죠. ‘마냐나(내일)’라는 말은 한국 사람들도 알아요. 멕시코 사람이 ‘마냐나’ 하는 순간 ‘노노노, 노 마냐나’ 이러죠. 멕시코 사람들도 ‘빨리빨리’는 알아들어서 그 말 듣는 순간 ‘노노노, 노 빨리’ 하면서 싸우는 것도 많이 봤어요. 하하하.”

세 번째는 뭡니까?

“눈치 문화입니다. 영어나 스페인어에는 ‘눈치’라는 단어가 없어요.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커먼 센스(Common Sense)?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살다보니 알겠더라고요. 상황이나 분위기를 빨리 캐치하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눈치를 많이 봅니다. 휴가를 가야 하는데 윗사람 눈치를 보는 거죠. 멕시코 사람들은 눈치 안 봅니다. ‘눈치’라는 단어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요.”

짜장면 바닥에 놓고 먹는 것 보고 당황


▎KBS [국악한마당]에서 공동 MC를 맡았던 크리스티안은 국악기인 해금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고 싶어 했다. / 사진:(주)FMG
그렇다면 한국에 살면서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점 세 가지는?

“첫 번째는 유교 문화죠. 사실 잘 이해를 못 했어요. 나이 든 사람한테 고개 숙이고 하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멕시코에서는 ‘나한테 먼저 리스펙트(respect·존중) 받을 만한 행동을 하면 나도 리스펙트 해 줄게. You give me respect, I give you respect’ 이거든요. 나이·성별 이런 건 상관없어요. 한국선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사과하고 넘어가는 걸 많이 봤어요. 멕시코 있을 땐 부모님이 저를 위해 다 해줬어요. 제 손님이 오면 엄마 아빠가 제일 바빠요. 식사 차리고 이것저것 해 주는데 저는 앉아만 있었거든요. 한국에서는 가만 못 있잖아요. 뭐라도 해야 하고 아니면 ‘어머님 뭐 좀 도와 드릴까요?’라고 말이라도 하잖아요. 제가 한국서 3년 살다 멕시코 돌아가서 엄마 아빠 도와드리니까 ‘야, 너 한국 잘 갔다’ 하시더라고요. 하하. 이게 바로 문화 차이죠.”

두 번째로 이상한 점은요?

“생으로 날로 먹는 거요. 회,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왜 생으로 먹을까 했는데 지금은 7년 만에 회 맛을 발견했죠. 한국에선 웬만한 건 다 먹는 것 같아요. 족발·닭발·삼겹살 같은 건 다른 나라에선 안 먹잖아요. 심지어 밥을 다 먹고 나서 물을 부어서 또 먹고, 거기에 ‘누룽지’라는 이름까지 있잖습니까. 그래서 건강하게 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산낙지요? 먹어는 봤는데 쉽지가 않아요. 외국인에게 난도가 매우 높아요. 살아있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어쨌든 꿈틀꿈틀 움직이잖아요. 옆에서 한국 사람이 ‘와, 맛있겠다’ 해서 ‘뭐지? 어떤 맛으로 먹나?’ 했더니 초장이나 기름소금장 맛으로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시도해 봤더니 어느 순간 그 맛이 다시 생각나는 거 있죠. 홍어는 아직 도전 못 해봤습니다.”

한국에서 이상한 것, 세 번째는요?

“집에 가면 방바닥에 앉는 거요. 몇백만 원짜리 소파를 사 놓고 그걸 등받이로 쓰잖아요. 한국은 온돌문화라서 바닥이 따뜻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멕시코는 온돌문화가 없고 ‘바닥은 청결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신발 신고 돌아다니니까요. 그래서 옷이나 음식 같은 걸 바닥에 두면 깜짝 놀라고,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짜장면 배달 오면 바닥에 놓잖아요. 처음엔 깜짝 놀랐죠. 이제는 바닥에 신문지 깔아 놓고 짜장면·만두 막 먹어요. 그런데 저는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바닥에 오래는 못 앉아있어요. 하하.”

한국이 아무리 좋고 천생연분이라 해도 외국인은 외국인일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크리스티안은 어떻게 느낄까.

“요즘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SNS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외나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고 그만큼 거부감과 두려움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 길거리 나가면 국제커플을 참 많이 볼 수 있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정보가 없어서 생기는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정보를 많이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가끔 택시를 타서 멕시코에서 왔다고 하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기 위험하지 않아?”라고 묻는 기사들이 있다고 한다. 크리스티안은 “그럴 때 상처받을 수도 있죠. 멕시코가 워낙 멀리 있다 보니 가끔 뉴스에 나오는 것만 보고 그럴 거라는 선입견을 갖는 거죠. 저는 방송에서 활동하면서 멕시코 정보를 많이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외국인들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지하철에서든 학교에서든 행동을 잘못하면 그 사람 때문에 그 나라 인식이 나빠질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쌍꺼풀 없는 눈 매력적인데 왜 수술하는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과 멕시코는 같은 조에 속했다. ‘월드컵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크리스티안. / 사진:(주)FMG
한국 여성이 정말 매력적이죠? 그런데 그걸 잘 모르는 한국 남성들이 많아요.

“한국 여성 진짜로 매력적입니다. 외모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쌍꺼풀 없는 눈이죠. 그게 굉장히 예쁘고 눈 모양이 매력적이에요. 그런데 그걸 수술해서 없애버리려는 분들이 있어서 충격이었죠. 정말 매력적인 눈을 갖고 태어났는데 그걸 왜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성격은 아주 착한 것 같아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예의 같은 것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좋아요. 멕시코는 리스펙트를 주고받는 거라고 했잖아요. 한국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주고, 안 돌아와도 내가 줬다는 것으로 쿨 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한국과 멕시코는 축구나 복싱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만나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작년 도쿄 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에서도 만났잖아요. 한국 친구들과 같이 경기를 봤는데 되게 어색하더라고요. 그만 넣어도 되는데 계속 골을 넣어서 6-3으로 이겼잖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죠. 한국과 멕시코가 같은 조였는데 조별예선 마지막 날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기는 바람에 멕시코는 스웨덴에 0-3으로 지고도 16강에 올랐고, 한국은 탈락했죠. 그날도 한국 친구들과 같이 경기를 봤는데 친구들이 저한테 화풀이를 했어요. 우리는 ‘멕시코는 창피한 진출, 한국은 영광스러운 탈락’이라고 말했죠. 하하.”

요즘 꽂힌 스포츠 종목이 있나요?

“축구는 멕시코 사람이니까 당연히 즐기고요. 최근에 빠진 건 탁구입니다. 탁구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는데 은근히 재미있어요. 그리고 스키 타는 걸 좋아하게 됐습니다. 멕시코는 눈이 없어서 스키 탈 일이 없는데 여기 와서 해 보니 생각보다 저랑 너무 잘 맞아요. 탁구와 스키를 원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저는 한국이 좋습니다. 하하하.”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못 하는 게 없는 엔터테이너 기질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엄마·아빠한테 받은 재능이 있어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하셨고 아빠도 음악인입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집에는 드럼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가 항상 있었어요. 부모님이 매일 음악을 틀어줬고 엄마랑 같이 노래도 많이 불렀어요. 음악에 대한 접근이 자연스럽다 보니까 한국에서도 음악 관련 활동이라면 행복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거 갑자기 하라고 요청 오면 ‘해본 적은 없는데 도전해 볼게요’ 합니다. 제가 워낙 사고방식이 긍정적이니까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실패해도 배움이 되니까 도전하는 게 좋다는 걸 한국에서 방송하면서 느끼게 됐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윤종신 같은 20년 전 감성을 좋아하시네요.

“제가 멕시코 광산에서 일할 때 부장님들이 저를 참 좋아하셨어요. 퇴근한 뒤에 부장님들이 전화해서 ‘뭐 해? 숙소로 와’ 해서 가 보면 고스톱 치면서 회를 드시고 있어요. 고스톱 가르쳐 주셔서 열심히 치고 있으면 김완선·조덕배 노래가 흘러나왔죠. 제가 MBC 음악 예능 [복면가왕]에서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불렀는데 사실 끝까지 아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옛날 한국 노래는 참 매력 있어요. 가사가 들리는 게 아니라 보여요. 너무 예쁘게 표현해서 저한테는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어릴 적엔 웅변대회에서 1등 한 적도 있다면서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솔직히 저는 친구도 없고 누구한테 말도 걸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선생님이 ‘너 목소리 좋으니 웅변대회 한번 나가봐라’ 하셨어요. 어떻게 하는 건지 여쭤보니까 4~5페이지짜리 시를 외워서 읊으면 된다고 해요. 스페인어 시가 워낙 복잡해서 어렵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그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가 대중 앞에서는 그게 되더라고요. 그것도 엄마·아빠한테 물려받은 기질이 아닌가 싶어요.”

잠깐만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힘찬 목소리로 웅변을 들려줬다. ‘이 시대의 남자’라는 주제인데, 지금보다 훨씬 까랑까랑한 아이 목소리였으니까 전달이 잘 돼서 1등을 했다며 그는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워했다.

자연스러운 방송이 가장 좋은 방송

최근에 관심을 갖고 보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제가 한국 방송을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멕시코 방송을 열심히 봅니다. 팟캐스트 시장이 한국에선 아직 크지 않은데 멕시코와 미국에선 폭발적이거든요. 멕시코 개그맨 두 명이 티키타카처럼 말을 주고받는 프로가 있는데 한국어 자막을 깔고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재밌어요. 제가 나중에 그런 프로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라마다 유머 코드가 다를 텐데요.

“맞습니다. 멕시코 광산에서 일할 때인데요. 멕시코 사람은 인생의 70%가 농담이라고 할 정도로 농담을 좋아하거든요. 한국 부장님이 멕시코 직원한테 ‘기계 청소 다 했나?’ 물어보니까 직원이 ‘공주님 엉덩이처럼 깨끗하게 했다’고 대답했어요. 공주님 엉덩이가 얼마나 깨끗하고 뽀송뽀송하겠습니까. 제가 통역을 하고 나니 그 직원이 ‘통역 제대로 했어? 왜 부장님이 안 웃으셔?’라고 불만을 터뜨렸어요. 그 내용 그대로 다시 통역했더니 부장님이 ‘뭐? 무슨 개소리야. 일하는 게 장난이야? 똑바로 해’라면서 버럭 야단을 치시지 뭡니까. 매를 번 거죠. 하하하. 그래도 웃는 건 좋은 겁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방송이란?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미리 대본을 정하고 촬영하는 게 많았고, 조금 티가 나도 사람들이 몰랐잖아요. 지금은 유튜브나 자연스러운 콘텐트가 많이 생기다 보니 ‘이거 왠지 짠 것 같은데’ ‘대본이 있는 것 같은데’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관찰 예능이나 대본이 없을 것 같은 프로그램 인기가 올라가는 이유가 그거 같아요. 저도 많은 분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프로를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역할이나 분야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마케팅 전공자답게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방송에선 MC(진행자) 역할을 더 집중적으로 배워서 잘해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최초의 외국인 국민 MC가 되고 싶어요. ‘멕시코의 유재석’이 되고 싶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 정영재 |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튜브 방송국인 중앙UCN의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202204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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