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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 미학(2) 원주 치악산에서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인생은 선(線)이고, 점(點)이더라.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지나가는 나그네가 불쌍히 여겨 꿩을 구해주고,
야심한 밤에 그 구렁이가 잠자고 있던 나그네를 해치려 하자 낮에 그 꿩이 상원사 종을 머리로 냅다 박아
그 종소리에 깨어난 나그네는 살고, 꿩은 뇌진탕으로 죽었다는 희생정신 결초보은의 뜻을 기려
꿩 치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부르게 된,
수많은 전설과 설화가 살아 숨 쉬는 강원도 원주의 명산을 생전 처음 올랐다.


오래전부터 이름에 악(岳) 글자가 붙어 있고, 험한 급경사로 쉽게 1288m 비로봉 정상을 내주지 않는다는 민담이 있어,
내심 걱정을 했는데, 등산코스가 잘 정비돼 있고, 함께 한 일행과 마음이 맞아서인지 5시간 30분 내내 여느 산들보다 힘들지 않고 즐겁고 행복했다.

신기하게도 그 명성과 신묘한 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정상에 다다를수록 정신이 맑아졌고,
연한 흰 구름 실루엣 커튼 속에서, 사방팔방 360도, 이름 모를 수많은 산봉우리가 파란 하늘과 맞닿아 달콤하고 감미로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속삭이고 있었다.


정말 높은 산 정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장관, 카타르시스, 이상 세계, 별천지였다.

산 아래 시작점에서는 겨우 몇 나무와 산의 일면 일부만 보이고 그것이 마치 산의 다 인양, 마치 코끼리 발뒤꿈치를 보고 코끼리를 다 본 듯, 대부분 사람은 오르지도 않고 힘들고 시시하고 어렵다고 말을 하곤 한다.

결국 참고 이겨내어 최고 높은 정상에서 보면 그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낭떠러지도, 한 뼘도 안 되는

너무나 작고 초라한 티끌 장애물에 불과하고, 이 세상은 수많은 선(線)으로 끊임없이 이어졌고, 어쩌면 그 무한대의 선 중에 나는 겨우 작은 선 하나를 따라가고 있고, 그것도 잠깐 일장춘몽처럼 가다가, 어느 날 초연히 영원히 하나의 점에서 멈춰 선다는 그것을
치악산 정상 산봉우리는 웅변하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어렴풋이 세상이, 인생이 한눈에 그려지면서 사라졌다.

세상이 다 그런 것!
도긴개긴 어차피 한 점에서 만나고, 막히면 잠깐만 돌고 넘어, 너의 눈 밑을 바로 보면 수많은 새 길이 뻗어 있음을 보이지 않느냐?

뭐, 그리 작은 일, 근심 걱정에 매몰되어 한 치도 안 되는 접싯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느냐?

하산길 구룡사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제발 향기 나는 인간으로 살게 해달라고 8배를 올리고 다시 속세에 몸을 실었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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