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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4) 서울 개화산에서 

 

속이 꽉 찬 한 떨기 연꽃… “행복은 가까이에”

128m. 활짝 만개한 고고하고 아름다운 연꽃을 닮아서 개화산이라 이름 지어졌다는 설,

신라 시대 주룡거사가 득도를 위해 머무른 성스러운 곳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주룡산이라고 부르다가, 그가 죽은 후 그의 묘지에서 상스러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자 열 개(開), 꽃 화(花)를 사용해 개화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

정상에 봉수대가 2개가 있고, 한강 넘어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한 곳이자 주요 군사적 핵심 요충지로, 당시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에 불 화(火)자를 넣어서 개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 등 오랜 역사를 품은 개화산은 참으로 아담하고 예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강서구의 상징 산이자 개화산역이란 지명이 있어 수백 수천 번 귀가 따갑게 들었고, 불과 4㎞ 근처에 회사가 있어 거의 매일 그 산을 보고도 어처구니없이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간과하듯 바로 그 산이 그 개화산인지 몰랐다.

마치 학처럼 고고하여 오랜 세월 동안 차마 이름을 묻지 못한 한 여인이 퇴근 후 개화산에서 운동 삼아 등산을 한다는 우연한 문자를 보고 갑자기 개화산이 어떤 산인지 알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용기를 내 같이 등산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우연히 10여 년 전 친구의 개업식에서 통성명하고 고향 향우회에서 서너 번 얼굴을 스친, 아주 가끔 업무차 전화를 한 친구의 친구로 여태껏 자신감이 부족해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고향 마을 너머 남도에서 이쁘고 똑똑하면서도 너무나도 우애가 깊어 명성이 자자한 5자매인지라…. 의젓한 첫째 딸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가간다는 셋째 딸과 함께해서 그런지, 시작부터 발걸음이 구름을 날았다.

이름도 생소하고 이국적인 ‘약사사’, ‘미타사’가 진달래 산수유와 함께 고즈넉한 저녁을 기다리고, 서울의 서쪽 관문 산으로서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얼떨떨한 수많은 여행객을 편안하게 수도 서울로 맞이하고, 심신이 지친 이웃들을 따뜻하게 배웅했다.


저 멀리 화선 겸재 정선이 감탄한 행주산성 북한산 남산…. 한양의 넓은 뜰이 운무 속에 아득히 보이고, 한강이 유유자적 그 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었다. 6·25 때 최고의 격전지로 그들의 넋을 기리는 호국탑, 우주선처럼 보이는 레이더 군 시설, 한강을 발 아래에 둔 개화산의 백미 치현정, 신선바위, 너무나 비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딱 좋은 나무들이 자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를 편안한 행복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마디로 개화산은 속이 꽉 찬 한 떨기 아름다운 연꽃이었다. 나는 고고한 학이 아닌 조금 키가 큰,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 맏이로서 딱 그 자리에 서 있는, 자매가 모두 건강하고 우애가 깊어 행복한,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라며 겸연쩍게 미소 짓는 그녀가 진짜로 고고한 학처럼 우아해 보였고...

산만하고 시답지 않은 내 글의 ‘찐팬’이라는 셋째 딸은 진정으로 깊은 맛이 우러나는 문학소녀였고, 어딘가 모르게 세상을 달관하면서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참 멋지고 좋아 보였다.

소문대로, 자매끼리 챙겨주고 아껴주며 천진난만한 미소 속 포근한 사랑이 참 샘나고 부러웠다.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 좋은 산, 좋은 장소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를 실감하는 잊지 못할 등산으로 오랜 시간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어느 날 문자 하나에 일타삼피, 천군만마 평생지기를 얻은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들면서 행복이 저절로 예쁘게 만개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라는 깊은 속뜻을 몸으로 체감하는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 그렇게, 그렇게 저물어 갔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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