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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4년 전 판박이, 신구(新舊) 권력 대충돌 재연되나 

물 건너간 ‘통합 정부’… ‘협치’ 빠진 윤석열 리더십 시험대 올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민주당 ‘검수완박’ 강행하자 윤 당선인, 한동훈 법무장관 카드로 정국 급랭
문재인 정부 정책도 대수술 예고… 법안 충돌, 인사청문회 등 곳곳이 지뢰밭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 3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뒤 한국갤럽은 3일간(15~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윤 당선인에 대한 바람을 조사했다. 국민의 요구는 분명했다. 10여 개 항목 중 ‘통합·국민화합·협치’가 11%로 가장 많았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윤 당선인도 3월 10일 오전 당선인으로서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보를 얻어 단일화에 성공한 뒤에도 ‘국민통합정부’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안 후보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새 정부 밑그림 그리기를 진두지휘하면서 이 약속이 실현되는 듯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은 4월 들어 ‘화합’, ‘통합’ 메시지는 점점 빛이 바래고 있다. 현 정부여당과는 강대강으로 전선을 형성했고, 대선 기간 든든한 우군이었던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새 정부 내각 인선에서 소외됐다. 현재까지 상황으로는 국민 화합을 이끌 통합정부 구상은 요원한 일이 됐다.

정부여당과 당선인 측의 갈등은 2008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벌어진 상황과 판박이다. 정권 교체기의 신구(新舊) 권력은 서로를 경계하거나 압박하면서 더 유리한 정국을 조성하려고 치열하게 다퉜다.

30대 장관 많이 나올 것? 뚜껑 여니 ‘경육남 내각’


첫 충돌 지점은 첫 내각 인선이다. 새 정부의 첫 내각 인선은 통합에 대한 기대를 충족하기에 역부족이다. 두 차례 조각(組閣)을 통해 발표한 장관 후보자는 16명이다. 그중 영남 출신이 7명이고, 호남 출신은 1명뿐이다. 믿는 사람을 계속 쓰는 윤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장관 후보 인선에 그대로 반영됐다. 인선 결과를 압축하면 윤 당선인의 법조계 인맥과 정치 입문 후 조언해온 4선 중진 그룹으로 모아진다.

여기에 경제통을 지근거리에 배치한 점도 눈에 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로 이어지는 정책 라인은 경제통의 독무대다. 한 총리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추 부총리 후보는 행정고시로 입문해 줄곧 경제부처에서 근무한 경제 관료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박근혜 정부의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조정 실장을 지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줄곧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도 행정고시로 공직에 발을 들인 뒤 기획예산처,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정책실장을 지냈다. 김 내정자는 4월 13일 서울 종로구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 당선자께서 생각하는 국정철학이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 두 가지”라면서 “특히 경제 쪽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층=진보 지지’라는 공식을 깨고 윤 당선인에게 많은 표를 몰아준 젊은 층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제가 정부를 맡으면 정부 조직의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화를 하겠다”면서 “이렇게 되면 30대 장관이 자동으로 많이 나올 것”이라고 공언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윤 당선인의 호언장담이 무색했다. 30대는 한 명도 없고, 40대(한동훈 49세)도 한 명뿐이다. 16명 후보자 중 60대가 9명이고, 50대가 6명이다. 평균 연령은 59.7세다.

지역과 출신학교 편중도 두드러진다. 서울(4명)·영남(7명), 강원·대전·부산·전북·제주·충북이 각 1명씩으로 나타났다. 출신 대학은 서울대(7명)·고려대(4명)·경북대(2명), 광운대·육군사관학교·한국외대(각 1명씩)다. 여성은 3명에 불과했다.

정치권은 이 같은 인선 결과에 비판 수위를 높였다. 정의당은 “경육남(경상도·60대·남성) 잔치판”이라고 규정했다. 장태수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27명 위원 중 단 4명만 여성이었던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인수위원회에서 ‘경육남 내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국민통합이다. 윤 당선인은 균형과 조화를 ‘나눠 먹기’로 잘못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사 기조는 갈등의 전조에 불과했다.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법무부장관 후보에 내정하면서 갈등이 절정에 이르렀다. 한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에서 윤 당선인과 손발을 맞췄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2017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2019년) 등 승승장구하는 듯하다가 2019년 9월 ‘조국사태’를 계기로 윤 당선인과 함께 정부 눈 밖에 났다. 이후 부산고검 차장검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비수사 보직을 전전했다. 또 채널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일명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돼 2년 동안 수사를 받아오다 지난 4월 6일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文 정부 ‘눈엣가시’ 한동훈을 법무장관에 파격 발탁


▎윤석열 당선인이 새 정부 첫 법무부 장관 후보에 한동훈(오른쪽)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내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 강행 의지를 굳히며 정국이 얼어붙었다. /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한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윤 당선인의 분신과 다름없을 정도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전을 벌일 때 한 후보자는 자신의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부여당의 검찰 옥죄기를 서슴없이 비판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주는 사냥개를 원했다면 저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분들이 환호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기업들 수사 때나, 욕하던 조국 수사 때나, 저는 똑같이 할 일 한 거고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뒤 대통령직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는 “저도 지난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에 수사지휘권이 남용된 사례가 얼마나 국민에게 해악이 큰 것이었는지 생각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채널A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에는 입장문을 통해 추미애·박범계 장관이 자신의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수사지휘권을 남발했다며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내각 인선에 관한 문제는 14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표한 초대 내각 구성은 13개 부처 장관 후보 중 영남 출신이 5명, 수도권 3명, 충청 2명, 호남·강원·평북이 각 1명이었다. 이후 통합민주당과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영남이 한 명 줄고 호남 출신을 3명으로 늘려 지역 균형을 어느 정도 맞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적어도 얻을 것은 얻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협상에는 유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로 현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기 싸움을 벌이는 형국도 14년 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윤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발표하자 청와대는 하루 만에 안보 공백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이 계속 협조를 거부하면 정부 출범 직후 통의동에서 집무를 시작하겠다면서 배수진을 쳤다. 결국 3월 28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나 집무실 이전에 관해 협조하기로 합의하면서 집무실 이전 갈등이 일단락됐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이명박 당선인 측과 정부조직 개편을 두고 충돌한 바 있다. 2008년 초 이명박 당선인은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18부 4처였던 정부조직을 13부 2처로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에 노 대통령이 반기를 들었다. 노 대통령은 약 2주 뒤 기자회견을 열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공포하는 게 맞을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암시했다. 결국 인수위와 여야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6인 회동을 통해 정부조직 개편 합의를 끌어냈고, 이 당선인의 임기 시작 나흘 전에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다.

신구 권력 갈등 이면에 어른거리는 ‘노무현 트라우마’


▎2007년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 뒤에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떠난 대통령과 새로 취임한 대통령의 갈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로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박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사저로 가져간 대통령기록물을 모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국가기록물 불법유출 논란은 정국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선처를 호소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와 구속 수사가 이어졌고, 칼끝은 결국 ‘몸통’, 노 전 대통령을 향했다.

민주당이 내심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14년 전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다. 이른바 ‘노무현 트라우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정에 관해 박범계 장관은 “여러 갈래의 해석이 필요 없는 지명”이라며 “(의도가) 심플한 것 아니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온 검찰개혁을 되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박 장관의 인사평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우려와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게 검찰개혁은 일생일대의 목표나 다름 없었다. 2017년 정권을 잡은 직후 적폐 청산을 명분삼아 이른바 ‘우병우 라인’을 솎아내면서 ‘윤석열사단’을 중용한 것도 검찰개혁을 위한 포석이었다. 이후 검찰의 범죄정보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일련의 조치로 검찰을 무력화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이 서두르고 있는 검찰 수사권 폐지(검수완박) 입법은 정권 5년간 단행해온 검찰개혁의 마침표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당선인과 함께 현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해온 한 후보자 내정에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는 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검찰개혁이 여기에서 무산되면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뇌관 한동훈’을 제거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첫째 근거는 한 번 믿는 사람은 끝까지 챙기는 윤 당선인의 성향이다. 검찰에 있을 때부터 윤 당선인은 특수부 라인의 맏형을 자처하며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기로 유명했다. 둘째 근거는 비타협적 원칙주의자에 가까운 그의 강골 기질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당선인의 말은 원칙에 대한 그의 신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 윤석열’ 리더십 시험대


▎3월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위해 나란히 들어오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더구나 윤 당선인 측은 이미 현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의 대수술을 예고하고 나섰다. 전방위적이다. 인수위는 현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겠다면서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식화했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현 정부가 2025년 3월까지 모두 폐지하기로 한 자율형사립고를 존치하는 방향으로 정책 수정을 예고했다.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부동산 정책도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 인수위는 과도하게 올린 공시 가격과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조정을 최우선 과제로 택하고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정책도 대폭 수정을 예고한 상태다. 곳곳에 갈등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셈이다.

민주당은 강경한 입장이다. 전 정부의 정책이란 이유로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뜯어고치는 일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과반 의석을 장악한 민주당은 입법이 수반되는 정책 결정권을 사실상 쥔 거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는 타협과 협상으로 작동하는데 초대 내각 구성과 정책을 두고 과연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겠냐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새 정부가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려면 과반 의석인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주당이 한동훈 후보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게 빤한데 윤 당선인이 자기가 동생처럼 아끼는 한 후보를 타협의 희생양으로 삼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을 끝까지 보호하려 했던 것처럼 윤 당선인도 한 후보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 2주 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새 정부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윤 당선인의 정치력을 검증할 시험대다. 검사가 아닌 ‘대통령 윤석열’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될지 국민은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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