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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화] 박소현 서울대 교수와 이춘희 세종시장이 말하는 ‘행정수도의 비상(飛上)’ 

“세종시, 국가균형발전의 마지막 기회”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국회세종의사당, 대통령 제2 집무실이라는 양 날개 돋는다”
“계획도시 이점 살려 세계가 주목하는 정책 테스트베드로 발돋움”
“동네 예산 집행을 주민들이 결정하는 마을 자치 실험 중”


▎박소현(왼쪽) 서울대 교수와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은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시로 온다면 대통령과 중앙부처가 더 긴밀하고 신속하게 소통한다고 강조한다.
세종시 청사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행정수도 논의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에 따르면 1971년 제7대 대선에 나선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충남·충북·대전을 행정수도로 정하겠다”고 포문을 열었고,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의 인구 집중을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안은 행정수도 이전”이라고 못박았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도 “11개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해 제2의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강조했고, 2002년엔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수도권 집중억제를 위해 충청권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획을 그은 주요 인물 대부분이 수도권 집중 억제와 행정력 분산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에 국정의 방점을 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구상은 ‘백지계획(白紙計劃)’이라고 불렸다. 1977년 임시행정수도건설계획을 발표한 뒤 백지상태에서 이상적인 새 행정수도를 구상한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이 백지계획에서 후보지로 지목된 충청남도 연기와 공주 일대에 지금의 세종시가 들어서 있다.

대한민국 행정수도 논의의 역사는 반세기를 넘어선다. ‘행복중심복합도시’라는 명칭을 가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때가 2012년 7월 1일이므로 그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지도 올 7월이면 만 10년을 맞이한다. 현재 18개 중앙 부처 중 외교·통일·국방·여성부(서울), 법무부(과천)를 제외한 13개 부처가 세종시 이전을 완료했다. 47개 중앙행정기관과 국책연구기관을 포함한 31개 공공기관이 세종시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입법화한 국회세종의사당,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대통령 세종 집무실이 더해진다면 세종시는 자기 완결적인 정치·행정수도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은 힘줘 말한다. 이 시장은 건설교통부 차관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지내면서 세종시 행정수도의 얼개를 짠 당사자이자 2014년부터 시정(市政)을 이끌어오는 세종시 수장이다.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종시에 자리한 정부출연기관장으로 재임하면서 세종시의 진화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봐온 전문가다. 박 교수는 국가건축정책위원, 도시재생특별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을 역임하는 등 건축 분야 권위자로 통한다. 두 사람은 4월 13일 세종시청 책문화센터에서 만나 세종시 과거 10년의 성과와 미래 10년의 비전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서울 강남이 강북 제칠 때 등판한 세종시


세종시는 다른 시·도에 견줘 역사는 짧지만 역동성은 압도적이다. 세종시의 정체성을 설명한다면?

박소현 서울대 교수_ 제가 국무총리실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 원장으로 일할 때 세종시에서 3년 동안 살아본 적이 있다. 세종시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거대담론에 의해 만들어진 행정수도로만 이해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막상 세종시에 살아보니 이 도시에 대해 놀랄 일이 많았다. 그 짧은 시간에 38만 인구를 가진 중견 도시로 성장했고, 각종 사회·경제 지표에서 1위를 달린다. 출산율, 삶의 질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우뚝 섰다. 서울대 행복연구소가 각 시·도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주민 만족도 역시 으뜸이 세종시였다. 세종시의 정체성과 함께 이런 일상의 변화는 다른 도시에 주는 자극도 적지 않다. 가장 늦게 출범한 도시이지만 어느 도시에도 밀리지 않는 특수성을 갖춘 미래형 공동체라 하겠다.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_ 세종시의 태동을 설명하자면 서울의 강남·북 얘기부터 하게 된다. 서울의 무게중심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던 시기가 대략 1989년, 1990년 즈음일 것이다. 이때를 전후로 강남·북 인구가 역전되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무게중심이 전국에 고루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수도권으로 확 넘어온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 2002년, 2003년쯤이라고 본다. 세종시 조성 논의도 그때가 한창이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한번 수도권에 힘이 집중된 뒤에는 그 힘 때문에 뭘 하고자 해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세종시가 대한민국 균형 발전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하셨다. 그때만 해도 국회의원 구성에서 비수도권이 조금 더 많을 시점이었으니까. 그래서 ‘지방화 3법’이라고 해서 신행정수도법, 국가균형발전법, 지방분권법 등 3개 법을 추진했다. 그 지방화 3법이라는 명칭을 제가 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게 세종시였고, 노 전 대통령에게 세종시는 국가균형발전의 거의 마지막 수단이었다. 따라서 세종시의 첫째 정체성은 국가균형발전에 뿌리를 둔다.

‘특별자치시’라는 명칭은 대한민국에 유일하고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준다. 외부인들의 생각엔 세종시는 왜 특별자치시라는 이름을 쓰는지 궁금할 수 있다. 무엇이 그리 특별한 건가?

이 시장_ 현재 지방 행정 구조는 광역시·도, 시·군·구, 읍·면·동 등 3계층으로 구성된다. 오래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단계를 하나 줄여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광역과 기초를 겸하는 행정기구를 만들어보자는 첫 시도로 출범한 게 제주특별자치도였다. 세종시도 처음부터 광역과 기초를 겸하는 구조를 택했다. 특별자치시가 되면 어떤 변화가 있느냐. 중앙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면 기존 시·도는 정책 시행에 필요한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고, 실제 집행은 시·군·구에서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세종시는 방법과 절차를 만들고 집행도 직접 한다. 행정이 훨씬 신속하게 이뤄지는 장점이 있다.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소속 시·군 간 견해차로 일이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세종시는 그런 갈등을 빚을 일이 없다. 세종시는 중앙정부가 직접 투자해서 만드는 도시였다. 국토부 산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이 사업을 주도했다. 만약 세종시가 기초자치단체의 위상을 갖게 되면 사안별로 충남도, 충북도, 연기군 등 세종시에 관여하는 지자체로부터 일일이 인허가를 다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행정체계가 복잡하게 꼬여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세종시가 그저 예전 경제부처가 자리했던 경기도 과천시와 비슷한 입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우려도 드셌다. 이런 연유로 세종시는 중앙정부 직할로 출범하게 됐고 특별자치시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행정수도 옮겨 서울 집값 폭락했나?”


박 교수_이게 역설적이다. 중앙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특별자치’라는 드라이브를 걸어 신속하게 출범하게 된 도시가 바로 세종시다. 그리고 10년 만에 인구 38만 명이라는 획기적인 확장을 일구었다. 말이 쉽지, 단기간에 이와 같은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도시 공간 변화를 가져오는 건 과거에도 미래에도 목격하기 어려운 비상(非常)한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종시는 대한민국과 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의 도시 숙제에 혁신적으로 대응해봄 직한 인프라를 갖춘 공동체다.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에 힘입어 정책 결정과 함께 새로운 집행이 가능하다. 계획된 도시만이 갖는 이점을 토대로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 실험이 용이한 테스트베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세종시를 정책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고, 세종시 사례를 도시 실험의 텍스트로 원용할 가능성도 기대한다.

지난해 9월 국회세종의사당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유세 당시 세종시 제2 대통령 집무실 설치를 공약했다. 시민들의 열망이 정책에 반영된 결과인가?

박 교수_ 세종시는 분명 행정 도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 대통령 집무실까지 오면 입법·사법·행정 기능의 완결성이 강화되고 도시의 성장동력에도 더욱 탄력이 붙는다. 대통령 집무실이 세종시에 온다면 대통령과 중앙부처가 더 긴밀하고 신속하게 소통해 정책의 질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정의 효율도 끌어올린다는 기대가 높다. 이와 함께 교육과 문화, 의료 등 주민 생활 편의 시설 면에서도 특별한 변화가 따르지 않겠나.

이 시장_ 행정수도 건설 논의가 절정에 달했던 2002년만 해도 수도를 옮기면 서울은 공동화하고 집값은 폭락한다는 별의별 걱정이 다 나왔다. 그런데 지금 서울은 어떤가. 부동산은 너무 올라서 문제고 수도권 집중은 나라에 근심을 안긴다. 세종시 기능을 키우고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더 속도감 있게 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국민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정치는 서울, 행정은 세종, 이렇게 공간적으로 분리돼서는 국정도 효율적이지 않다. 정치권도 마음을 바꿔 지난해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세종의사당을 두도록 하는 법적, 예산상 근거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설계 작업에 들어가 있다. 또 중앙부처 청사들이 모인 세종시에서 대통령이 국무회의도 하고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아야 하며, 그러자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둬야 한다는 여론도 힘을 얻었다.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한결같이 제2 집무실 설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 당선인도 같은 공약을 했고 심지어 세종시에 행정이라는 이름을 뺀 진짜 수도를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박 교수_ 세종의사당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건물의 모양이나 기능 이런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기능적 요인만 잘 발휘하는 건물이 아닌 누가 보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대의를 충분히 표출하는 공간으로서의 세종의사당에 주안점을 뒀으면 한다. 사실 세종시는 공간 이용의 퀄리티 측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긴다. 세종시의 경우 이렇게 단기간에 도시를 급박하게 만들다 보면 공간적으로 세세하게 디자인이나 품격을 다 챙기기는 어려운 측면도 없진 않을 것이다.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이는 과정을 찬찬히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도시 건축물이 ‘공간 복지’를 구현하는 시대여서 더욱 그러하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충돌한 국립세종도서관


▎걷기 전용 원형 다리로 건설된 금강보행교 북측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강 건너 남측에 세종시 청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은 지 8년 된 국립세종도서관이 정밀안전진단에서 보수가 필요한 D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휴관에 이어 다시 휴관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세종시의 아픈 손가락에 해당한다.

이 시장_ 저도 늘 그런 고민을 안고 살았다. 건물의 경우,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지나가면서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아주 실용적인 건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보는 입장에서는 멋진 외양을 갖췄으면 한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양립하는 셈이다. 양쪽의 입장이 만족하고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설계 공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후자에 기울 수 있다. 건축물이 좀 튀어야 주목을 받으니까. 국립세종도서관도 다들 볼 때 참으로 멋진 건물이다. 디자인 관련 상도 받았다. 하지만 막상 국립세종도서관을 이용해보면 실용성이 떨어지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세종시 기반 시설을 확충하면서 이 두 가지 요구를 어떻게 잘 조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박 교수_ 이는 비단 세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계가 당면한 숙제이기도 하다. 소위 공공건축의 퀄리티 문제인 셈이다. 이제는 세종시가 한번 새롭게 해볼 계기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세종시의 상가 공실률이 너무 높기도 하다. 이는 복합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해법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같다.

이 시장_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와 시간적인 문제, 이 두 가지가 결부돼 있다. 구조적인 문제란 상가를 조성할 당시에는 상업지역 면적을 적정하게 선정했는데 나중에 상황이 달라진 것과 관련이 있다. 우선 상가 이용 패턴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보통 상가라 하면 1층이나 2층은 식당 등 장사를 하고 그 위층은 사무실로 쓰는 게 통상적이었다. 그 패턴이 변하기 시작해서 언제부턴가 상가의 중층, 상층부까지 모두 식당과 같은 자영업 하는 분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둘째로는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비대면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상가 수요 자체가 많이 줄었다. 결과적으로 처음 계획보다 상가 면적 자체가 좀 과하게 설정되면서 과잉 공급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또 시기적인 문제도 겹쳤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변변한 식당도 없고 상가가 부족하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상가 건축이 일시적으로 몰렸다. 정부가 건축 시기를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조성한 용지를 판매하고 나면 민간에서 언제 건물을 짓든지 관여할 수 없다. 일순간에 상가 건물이 확 올라가다 보니 역시 공급 과잉을 빚게 된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최적화된 도시 구조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부청사와 아파트 단지.
박 교수_ 대규모 건축 사업을 ‘짓는 일’로만 바라보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공급 측면과 아울러 ‘기획’에서부터 ‘운영’과 ‘관리’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건축물 조성 사업은 추진돼야 한다.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변화하는 사회적 여건과 인구 변동 추이 등을 고려하는 건축물 유지·관리 방안이 함께 모색됐으면 좋았겠다.

이 시장_ 앞으로는 상가 공급을 좀 줄여야겠다. 세종시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서고 대통령 집무실이 오는 등 행정수도의 면모를 강화한다면 정부 유관기관들의 세종시 입주가 가속화할 것이다. 예컨대 국토교통부는 내려왔지만, 국토부와 함께 일하는 주택 및 건설 관련 협회, 교통 관련 단체들도 오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이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결국 움직이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상가 수요가 늘어나게 되리라 예상한다.

박 교수_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런 도시를 만들다 보면 부작용도 따른다. 건축이나 디자인의 품격이랄까 이런 영역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체험하는 세종시는 다른 도시에서와는 사뭇 다른 가족 중심의 일상이 존재하고, 행복도와 출산율도 높은 도시다. 주택 공급과 주민 편의 시설, 자연환경 등 도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구비된 덕에 세종 시민의 도시 만족도는 높다. 저는 세종시에 자리한 연구기관에서 3년 동안 도시의 민주주의가 마을 단위에서 이뤄지는 현실을 목격하기도 했다. 다른 지자체와 세종시의 차별점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주민자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시장_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는 나로부터 권력은 나온다는데 도대체 그 권력이 어디에 가 있는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종시 행정을 들여다보면 그 권력을 진짜 주인인 시민들이 행사하는 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는 재임 동안 세종 시민이 선출한 시장이나 시의원에 위임된 권력 중에서 시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시민에게 돌려주는 행정을 추구해왔다. 그게 바로 마을 민주주의 콘셉트다. 우리 법체계상 읍·면·동은 자치단체가 아니다. 하지만 세종시에서는 읍·면·동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읍·면·동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한다. 동네의 도로를 보수하거나 골목길을 넓히는 데 쓰이는 예산의 집행을 세종시가 하지 않고 동네 주민들이 토론을 해서 결정하는 식이다. 그렇게 시행된 사업에는 나중에 주민들이 다른 소리를 하지 않더라. 사업의 우선순위를 주민이 스스로 정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주도할 때보다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를 뒷받침하고자 마을에 주민자치회를 만들고, 22개 읍·면·동장을 시민이 직접 추천하도록 했다. 시장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시민과 공유해 주민이 심의를 통해 추천한 후보자를 읍·면·동장에 임명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마을의 사업을 주민이 스스로 발굴하고 실행하는 마을 자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세종시는 주민자치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고자 2019년 자치분권특별회계를 도입했다.

23개 마을이 모여 도시를 이루다


▎국회세종의사당 설치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해 정기국회를 통과하자 세종시청 1층 홍보전시관에 국회세종의사당 건립 확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세종시는 지역민들의 소통과 자치가 용이한 구조로 설계된 듯하다. 신생 세종시의 도심 조성 콘셉트가 궁금하다.

이 시장_ 세종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어졌다. 전국 각지, 특히 수도권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 만든 도시였기에 도시 공동체, 지역 공동체를 조기에 정착케 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고민 끝에 도시 내에 마을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세종시 인구는 궁극적으로 50만 명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50만 명 도시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마을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했고, 한 마을당 2만 내지 3만 안팎의 주민이 산다고 가정할 때 23개 마을을 조성하는 그림을 그렸다. 단위 마을 크기도 대략 1㎢ 정도면 족했다. 가로세로 1㎞인 지역에 주민들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학교, 은행, 우체국 같은 기반 시설을 갖춰 일정한 완결성을 갖는 구조로 도시 계획을 구상한 것이다. 나아가 자연스레 만나 친분을 다지고 공동체 의식도 깃들게 하는 방안도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울타리를 없앴다. 그래서 세종시에서는 울타리나 담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 교수_ 시민들의 삶의 질, 만족도와 출산율이 높다는 사실은 중요한 포인트다. 이렇게 10년 만에 급조된 도시가 공간적으로 많은 인구를 담아내는 방식, 또 앞으로도 더 많은 인구를 유인하는 계획 등등이 모두 국내외적으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세종시는 도시의 민주주의 실험장으로서도 주목받지만, 도농 복합도시로서 음식을 매개로 한 로컬 푸드 운동을 통해 건강한 식생활을 유도하는 등 기존의 도시들이 갈구하지만 잘 이루어내지 못한 과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세종시에 사는 분들은 많은 복을 받은 것 같다. 그렇다면 세종시 밖에 있는 분들, 예컨대 타 시·도 주민이나 외국인에게 세종시는 어떤 경쟁력, 매력을 자랑할 수 있을까?

박 교수_ 특히 흥미로운 점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로서의 세종시 가능성이다. 스마트시티는 환경, 교통, 의료, 레저 시설 등에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해 시민 삶을 더욱 편하고 쾌적하게 지원하는 도시를 뜻한다. 지금 해외 각국에서는 시범 스마트시티 사업이 교착 상태로 접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지난 2020년 구글은 자회사인 사이드워크랩을 통해 캐나다 토론토시에 추진 중이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접었다. 토론토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도 스마트시티 계획은 벽에 부딪히는 등 난관에 직면해 있다. 자신의 정보가 그렇게 공개되고 활용되는 것에 대한 현지인들의 우려와 반대가 가장 근본적인 장애물로 등장했다. 후발 주자 격인 세종시의 스마트시티 실험은 그런 면에서 주목 대상이기도 하다. 세종시는 ‘5-1생활권’에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정보를 내놓아야 가능한 이 사업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보일 것인가가 흥미로운 관찰 포인트다. 특히 세종시는 지난 10년간 시 정부와 주민들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플랫폼을 많이 개발해왔다. 시민 참여 분위기가 세종시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다. 여기에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얼리 어댑터로서의 면모가 가미되면서 세종시는 새로운 가치와 기술을 주도적으로 검증하고 창출하는 공동체로서 가능성을 발휘한다. 연구자들은 세종시의 이런 기능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다.

스마트시티로 가는 도시 혁신

이 시장_ 스마트시티는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해 과거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도시의 파생 과제들을 극복하는 개념이다. 코로나 국면에서도 그 효능은 대단했다. 주민들이 코로나 선별검사소에서 줄을 서지 않고도 앱을 통해 자기 순번을 확인하는 등 불편을 확 줄였다. 세종시의 많은 주민은 공공 자전거인 ‘어울링’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시 전역에서 3500대 정도 운용하는데 2019년 총 이용 건수가 58만 건에 달했다. 이후 빅데이터에 기반해 어울링을 수요가 많은 곳에 배치했더니 사용 건수가 2020년 120만 건, 2021년 160만 건으로 수직 상승했다. 인도네시아는 칼리만탄주에 행정수도를 건설 중이다. 인도네시아 측에서 세종시 사례를 배우고자 했고 우리도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영국 벨파스트시와도 도시 혁신 분야에서 협업하기로 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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