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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돈이 보이는 경제(2)] 돈과 인플레-어떻게 ‘물가’를 잡을 것인가 

공급 요인으로 불안해질 때 더더욱 공급 요인 통해 안정시켜야 

지나치게 낮은 0%대 기준금리 고쳐져야… 통화정책 정상화 필요하다
‘보커式’으로 수요 억제해 물가 잡으려 하면 스텝 꼬이고 정책도 실패


▎4월 11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 재료비가 올라 가격을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랐다. 1998년 4월 이후 23년 11개월 만에 가장 상승 폭이 컸다. /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1980년 이후 40여 년 만에 최고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9%였는데 이는 1982년 1월 8.4% 이후 481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생산자물가 상승률도 2022년 2월 10.0%를 기록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더 높았는데 이 또한 지난 4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 물가만 높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도 올해 3월 4.14%를 기록해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인 2008년 11월 4.5%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1년 11월 생산자물가 상승률도 9.8%로 2008년 10월의 10.8% 다음으로 4년 이래 가장 높았다.

인플레율(率) 높아지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로 임금생활자의 실질소득이 떨어진다. 예컨대 물가가 5% 오르면 월급생활자들은 실질적으로 월급이 5% 깎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월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식당 음식 가격이 오르면서 생활비 부담이 커진다. 국민은 그만큼 가난해진다.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에서 근로자 임금이 대략 1000조원이라고 보면 5% 물가 상승은 국민 소득을 실질적으로 50조원 깎아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둘째,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자산 가치를 실질적으로 깎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컨대 예금을 1억원 보유한 예금주는 5% 인플레 때문에 예금이 실질적으로 500만원 줄어든다. 2022년 말 현재 우리나라 총 금융기관 유동성은 약 4900조원이므로 인플레가 5%가 되면 이들 금융기관 유동성의 실질가치는 245조원이 사라지는 셈이고 총 유동성 6290조원으로 계산하면 인플레 5%로 인한 자산 가치 소멸은 315조원에 달한다. 인플레로 인한 연간 실질임금 50조원에 비하면 실질자산 가치 소멸이 거의 다섯 배 혹은 여섯 배나 되는 셈이다.

혹자는 인플레로 인해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만큼 기업가의 실질이익은 늘어나는 것이고 금융자산 보유자의 실질자산 가치가 축소되는 만큼 금융채무자의 실질채무도 줄어드는 것이므로 거시경제 전체 차원에서 보면 제로섬 게임이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런 논리는 매우 위험하고 강퍅한 논리이다. 내 주머니의 돈을 강도의 주머니로 강제로 빼앗아 옮기는 강도 행위도 결국 국가 전체로 보면 상관없다는 논리와 이치가 같다.

경제 행위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임금삭감 혹은 자산 가치 축소와 같은 경제 행위는 제로섬 게임이든 아니든 간에 절대로 경제적으로 정당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기본원리를 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는 일반 국민의 재산과 임금을 정당한 이유 없이 ‘강탈’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인플레의 피해는 실질임금의 축소나 금융자산의 실질 가치 하락에만 그치지 않는다. 훨씬 미세하고도 심각한 잘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율성 피해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먼저 경제 행위자들이 인플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산을 매우 비생산적인 곳으로 옮기려 한다는 점이다. 토지나 부동산을 보유하면 물가가 오름에 따라 실물자산의 가격도 따라 오를 것이므로 인플레에 따른 실질적 피해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안다.

따라서 금융자산을 기피하고 실물자산으로 옮겨감에 따라 금융기관의 대출 기능이 떨어지고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플레 불안에 따라 불확실성이 증대하면서 불필요한 자원 낭비가 수반되게 된다. 예를 들어 등산하는 사람이 오늘 기상 상태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 비 올 때, 눈 올 때, 바람 불 때 등 모든 경우를 고려해 모든 장비를 갖춰야 한다면 얼마나 어렵고 곤란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앞으로 물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우 기업가들은 그에 대비해 투자 계획, 자금 조달, 구매 계획, 인력 조달 등 거의 모든 경영 분야에서 추가로 대비해야 하는 데 따른 엄청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좀 더 저렴한 원자재나 금융비용을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므로 그에 따른 비효율성도 대단히 크다. 또 인플레가 낮을 때보다 더 자주 가격표를 고쳐야 하는 소위 ‘메뉴 비용’도 무시 못할 인플레의 비효율성이다.

물론 인플레가 갖는 긍정적인 효과도 없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명목임금이 인플레에 따라 상승하는 속도가 늦기 때문에 인플레는 기업가들에게 실질적인 노동비용을 줄여주고 따라서 그만큼 이익을 얻게 하면서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또 인플레가 있으면 금융채무의 실질부담이 줄어들 것이므로 기업가들이 돈을 빌려서 실물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성장에 긍정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를 먼델-토빈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먼델-토빈 효과도 인플레가 2% 혹은 3% 이내로 아주 안정적으로 지속될 때 해당되는 말이지 인플레가 5% 혹은 10%처럼 매우 불안정적이 되면 적용되지 않는다. 먼델과 토빈도 그 점을 인정한다. 현재 상황은 인플레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매우 우려스러운 상태라는 데 거의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잡기 위해서는 원인부터 알아야… 크게 네 가지


▎그림:신세돈
최근 문제가 되는 인플레가 촉발된 시점은 2021년 4월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 초에는 물가가 오히려 떨어졌는데 2020년 4월부터는 그 떨어진 것 이상 폭등하면서 물가가 오른 것이다. 2021년 4월부터 시작된 지금의 글로벌 인플레 현상의 원인에 대해 미국 연준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첫째로 팬데믹으로 인한 원자재 생산 공장이 멈춰 서면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2021년 3월 대비 2022년 3월 가격은 원유 69.5%, 니켈 100.3%, 알루미늄 59.1%, 소맥 62.8%, 옥수수 32.7% 올랐다.

둘째로 공급망 교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생산 공장 가동은 물론 운송 수단이 멈추면서 물자의 공급이 줄어들고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해석이다.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화물 운송업자들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조기 은퇴함으로써 발생하는 운송체계 차질도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세계 거의 모든 해운 노선에서 콘테이너 운임은 지난해보다 100% 이상 올랐다.

셋째로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우려한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압력이 물가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지난 12월 임금상승률은 4%를 기록해 2001년 이후 임금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끝으로 탄탄한 실물경제로 인해 수요가 증대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특히 주택가격이나 중고차 수요 급증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보다 근원적인 인플레 원인이 잠재해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즉, 지난 10여 년 동안 과도하게 돈이 풀린 것이 인플레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미국의 본원통화는 800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22년 말에는 6조5000억 달러로 여덟 배나 늘었다. 신용통화를 감안한 총통화(M2)는 같은 기간 7.5조 달러에서 21.8조 달러로 세 배 가까이 불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연준은 전례가 없는 통화증가를 단행했다.

그러나 물가는 경이로울 정도로 안정됐다. 2008년과 2021년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98.7에서 124.3으로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통화량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아웃소싱에 따라 값싼 이머징 국가들의 상품들이 수입됐고, 또 인구 구조가 고령화하면서 소비 수요가 크게 감퇴됐으며, 끝으로 생산성의 발전으로 생산단가가 크게 떨어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인플레 우려는 이런 해석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으면서 연준의 통화 남발을 가장 중요한 인플레 원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한 셈이다.

어떻게 잡을 것인가: 폴 보커의 처방은 유효한가


인플레를 잡기 위해서는 원인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원인을 모르면 전혀 엉뚱한 대책이 나오면서 경제를 망치고 만다. 대표적인 경우가 1970년대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 대책이다. 1970년대 전 세계적인 인플레는 단연코 원유 가격 상승이 주도한 ‘공급 주도형’ 물가 상승이었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원유를 재료 원료로 쓰는 모든 물건 가격이 올랐고 그에 따라 인플레 기대가 고착되면서 임금이 따라 오르는 상황이 전개됐다. 소위 ‘인플레-임금-인플레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통화정책 당국은 6% 내외이던 평상시 기준금리를 1980년 22.0%까지 올렸고 총통화 공급 증가율도 1979년 18.8%에서 1979년과 1980년 8%대로 낮췄다. 두 자릿수 기준금리는 소비자물가가 3%대로 안착한 1983년까지 이어졌고 총통화 증가율도 8%로 안정되면서 물가 불안은 가라앉았다.

이 시기 영웅적인 인플레 정책을 수행한 사람이 당시 연준 의장 폴 보커다. 카터 대통령이 지명한 보커는 1979년 8월 취임한 직후 11.2%이던 기준금리 평균치를 1981년 20.0%까지 올렸고 연준의 우량대출금리도 21%까지 올렸다. 물가는 대체로 1983년부터 잡혔고 그 공은 대부분 보커의 인플레 대책 때문으로 평가됐다.

비록 물가를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보커의 초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심각한 불경기가 따라왔다. 실업률은 10%대까지 치솟았고 1982년 경제성장률은 -1.8%를 기록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준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던 것이 이때였다. 기업계는 물론 건설업계와 농업계와 일반 민간이 모두 치솟은 고금리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화가 난 농민들은 워싱턴 D.C.의 연준 빌딩까지 트랙터를 몰고 와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력한 정치적 반발을 접한 연준은 1982년부터 통화 공급을 늘리면서 기준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폈고 1983년부터는 다행히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

보커의 초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해 비판은 근본적으로 인플레 원인을 잘못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인플레 원인이 원유 가격과 같은 공급 요인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면 인플레 대책도 공급요인, 즉 규제 완화나 세금 인하나 기술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정통 교과서의 이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건 대통령 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보커는 통화와 민간 수요를 억제해서 물가를 잡는 잘못된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경제를 위축시키고 실업자를 발생시켰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원인은 공급 애로인데 대책은 수요를 줄이는 악수를 뒀다는 것이 보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보커는 물가에 미치는 공급 요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로지 전통적인 화폐수량설에 따라 통화량을 줄이면 물가가 잡힌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었다. 스티글리츠가 비판한 대로 보커는 규제 완화 같은 공급 부문의 혁신을 꿰뚫지 못한 이유로 레이건에 의해 세 번째 연임되지 못하고 앨런 그린스펀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미국의 물가가 안정된 것에 대해 폴 보커 방식의 긴축통화 정책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하다. 오히려 레이건 정부의 규제 완화와 혁신과 기업 간의 경쟁 촉진, 그리고 글로벌 개방화 추세가 지난 40여 년 동안의 미국 물가 안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

감세 포함한 규제 완화와 혁신·생산성 증대 통한 물가 안정

미국 연준은 조심스럽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양적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임 한국은행 총재를 중심으로 통화 긴축 기조를 예고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지나치게 낮은 0%대의 기준금리는 고쳐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통화정책의 정상화는 물가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문제는 그 정도다. 미국의 경우 연준은 정상수준의 기준금리를 올해 2%대, 내년에는 3%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현재 1.25%인 기준금리는 언제,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 하는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미국보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낮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2년 동안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지금보다도 2%p 더 올려야 하고 그에 따라 시중 대출금리도 2%p 혹은 3%p 이상 오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끌족, 빚끌족은 물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심각한 이자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나 미국보다 물가상승률도 낮고 경상수지도 흑자이면서 원화 환율이 안정적이라면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낮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제로 2006년 전후와 2018~2019년 전후 여러 번 그런 적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 정책당국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보다도 더 낮은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기 위한 인플레 대책을 찾는 데 혈안이 돼야 한다. 그것은 규제 혁파와 기술 혁신과 생산성 증대를 통한 물가 안정이다. 공급 요인으로 인해 물가가 불안해질 때는 더더욱 공급 요인을 통한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 보커식으로 수요 억제를 통해 물가를 잡으려고 하면 스텝이 꼬이면서 정책이 실패하고 만다.

※ 신세돈 - 미국 UCLA에서 경제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조사부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9년부터 숙명여대에서 33년째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종대왕의 통치 업적을 분석한 [외천본민]을 저술했으며, 중국 고대 역사서 [자치통감]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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