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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정치부 기자가 본 [대통령의 사람 쓰기]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 대통령의 인사권 구현 과정 세밀하게 담아
■ ‘정실 인사’는 곤란, 시스템 인사 구축돼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4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새 정부 첫 국무위원급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자 개인의 자질과 도덕성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초대 국무위원은 상징성이 남다르다. 대통령의 향후 5년간 국정 방향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정부 조직 전반을 재정비하는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의 중요한 권한 중 하나인 용인(用人)을 가늠할 기회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통치행위의 근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세(治世)는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두고 제대로 일하게끔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미치는 자리는 직접적으론 1000개가 넘고, 넓게는 1만8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방대한 국가 조직 전체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자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0여년간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해온 정치부 기자가 자신의 경험과 직접 취재하고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대통령의 사람 쓰기](송국건, SAY KOREA)는 대통령의 인사권이 구현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또 역대 정부의 인사 실패와 성공 사례를 통해 새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도록 했다. 저자는 [영남일보] 서울본부장을 지내며 1988년 기자가 된 이래 줄곧 서울 정치부에서 일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권력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인사 성패의 순간을 목도했다.

방대한 국가 인재 활용을 대통령 한 사람이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인재풀이 있어야 하고, 적절한 인재를 천거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인사비서관실이 인재를 추천하는 ‘시스템 인사’와 대통령과 권력의 측근들이 천거해 밀어 넣는 ‘정실 인사’로 구분된다. 잡음은 대개 정실 인사에서 생긴다. 정권 실세들의 파워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사이기 때문이다. 아직 인사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정권교체기에 정실 인사는 특히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인재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인재 등용의 기초 자료로 활용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에는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www.grdb.go.kr)를 만들었다. 일정 직급 이상의 공무원, 학자, 기업인, 중요 기능인, 사회활동가 33만 명의 정보가 수록돼 있다. 인사 수요가 생기면 인사비서관실이나 각 부처의 인사 부서에서 적합한 인물을 찾는 데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람 쓰기](송국건 지음, SAY KOREA). 사진 SAY KOREA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외주화’ 실험

하지만 국가인재DB보다 더 많이 활용되는 건 ‘존안자료’다. 일종의 인사 ‘족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민간인 사찰용으로 만들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계 주요 인물의 신상정보를 세세히 담았다. 민주화 이후 민간인 사찰이 금지됐지만, 여전히 고위공직자 후보군을 추릴 때 활용되곤 한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인사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민정과 인사를 분리했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직후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추천회의’를 설치해 비서실 협의제를 도입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인사추천위원회’, 박근혜 정부의 ‘인사위원회’,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인사추천위원회’ 등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비서실이 협의해 인재 발굴과 검증 등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좌하도록 한 제도는 존속돼왔다.

후보군을 물색할 데이터베이스도 중요하지만, 인사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검증 과정이다. 주로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후보군의 도덕성과 경력을 검증한다.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실 폐지를 대선으로 공약했다. 이에 따라 법무비서관만 남기고 민정수석실 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또 인사수석비서관도 인사비서관으로 급을 낮췄다. 인사수석이 ‘옥상옥’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비롯됐다.

새 정부의 이런 방향이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 확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단하긴 어렵다. 저자는 “큰 틀에서 역대 정부와 차별성을 보이기 어렵다”고 진단하면서도 “인사 추천과 검증 파트 사이에 칸막이를 쳐서 완벽하게 분리하겠다는 원칙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검증을 ‘외주화’함으로써 비선 개입을 차단할 수 있어서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대통령 인사권이 오·남용되는 데는 한계가 불분명했던 점이 큰 이유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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