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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의 ‘아빠 찬스’ 논란과 조선의 상피(相避) 정신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두 자녀 경북대 의대 특혜 입학 의혹
■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하필 아버지가 병원장인 학교를…” 질타
■ 조선시대에는 친인척 간 유관 업무 금지해 ‘부모 찬스’ 사전 차단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3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성룡 기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빚으면서 출범을 앞둔 새 정부 내각 구성에 차질이 생겼다. 정호영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았던 ‘조국 사태’와 닮았다. 바로 ‘아빠(부모) 찬스’ 의혹이다. 조국 사태 이후 부모 찬스에 대한 국민의 감정선은 날이 서 있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로 떠오른 것이다.

앞서 5월 3일 열린 정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파행으로 끝났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저녁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멈추고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라며 집단 퇴장했다. 민주당은 정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 태도가 불량하고, 의혹 관련 자료 제출이 늦었다고 문제 삼았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아침부터 청문회를 하면서 자료 미제출과 불량한 답변 태도로 더는 우리가 밝혀낼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밝혀지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강기윤 의원은 “법적 문제가 없다 해도 후보자의 자녀 두 분이 왜 경북대 의대에 편입했느냐. 굉장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자는 경북대병원장으로 있던 시절 두 자녀가 경북대 의대에 편입한 사실이 알려져 ‘아빠 찬스’ 의혹을 받는다. 민주당은 이를 ‘조국 시즌2 국힘편’이라고 부른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국무위원 후보자가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도덕적 결함을 보인 것은 윤석열 정부에 작지 않은 부담이다.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은 “우리나라에는 오랫동안 상피(相避)제도가 있었다. 부끄러운 것은 피한다는 문화와 전통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버지 임지에 아들 가까이하는 것 원칙적으로 금해

이 의원의 지적처럼 상피제는 고려·조선 시대 관료 체제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한자 그대로 ‘서로 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정한 범위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이나 업무상 관계가 있는 곳에 근무하지 못하게 한 제도다.

조선 세종 때 세부 규정을 만들었다. 친족·외족·처족 등 4촌 이내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의정부(議政府), 군사기관, 법을 다스리는 청송관(聽訟官)까지 상피제 적용을 받았다. 조선 후기에는 제도를 더욱 강화해 과거 응시자와 시험감독인 시관(試官) 사이에도 적용했고,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것도 금지했다.

지방관도 특별한 연고가 있는 곳은 임명을 금지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선비가 고을살이를 나갈 때는 가루(家累, 처자식)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공직에 나갈 때 혈족 관계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소지를 아예 차단하란 의미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수령으로 부임하면 아들은 그 곁에 가까이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했다.

이 때문에 관아 뒤쪽 후미진 담을 살짝 허물어두는데, 이를 파장문(破墻門), 즉 ‘개구멍’이라고 불렀다. 관아에서 부자(父子)간의 만남조차 떳떳지 못한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조선 초 우의정을 지낸 유관(柳觀, 1346~1433)의 아들이 경기관찰사로 임명되자 유관은 이를 완강히 반대했다. 아들의 관직명(관찰사, 觀察使)에 아버지의 이름인 ‘관’자가 들어 있으니 상피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숙종 때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은 사간원을 총괄하는 대사간에 임명되자 곧바로 사직상소를 올렸다. 아버지인 김수항이 영의정에 있는데, 묘당(의정부)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대사간의 직무를 아들이 맡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만큼 조선의 상피 정신은 선비의 도덕성과 명분을 지켜주는 바탕으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혈연에 따른 부정부패와 폐단을 막기 위해 상피(相避) 제도를 시행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과거시험 응시를 못 하게 했고, 일정 범위의 친인척이 응시자와 시험 감독관으로 만나는 것도 금지했다. 중앙포토
“상피 정신,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자”는 목소리도

예나 지금이나 ‘부모 찬스’에 대한 국민 정서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김도연 전 장관은 2008년 스승의날을 맞아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교육부 간부들이 방문해 특별교부금을 지원한 일 때문에 사퇴한 적이 있다.

그래서 상피제는 오늘날에도 공정 사회 실현의 도구로 소환되곤 한다. 2019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 이후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금지한 ‘현대판 상피제’가 도입됐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수는 “공정이 화두가 된 지금 상피 정신을 재해석해 사회 전반으로 보다 폭넓게 확산하는 게 교훈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끄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 후보자는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돌파 의지를 보인다.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언론 기고에서 “도덕적 성품을 함양하지 못한 사람은 도덕을 윤리가 아니라 논리로 활용한다”며 “도덕 논리로 개인은 당장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지 모르지만, 공동체는 심대한 악영향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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