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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취재] AI 기술로 스마트해진 역술업계 새바람 

용한 점집 찾아가는 건 옛말… AI가 내게 딱 맞는 역술가 찾아준다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운세 서비스 사용 경험 84.5%… 49.1%는 평소에도 이용
국내 점술 시장 규모 1.4조원대… 벤처투자업계도 주목


▎O2O(Online to Offline) 역술가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 ‘천명’은 AI 기술을 활용해 내담자와 역술가를 연결해준다. 역술가가 취업·연애·건강 등 자신의 특화 분야를 입력하면 내담자가 카테고리를 바탕으로 추천된 역술가를 선택하는 형태다. / 사진:천명앤컴퍼니
"취업운은 제가 봐 드리기가 민망할 정돈데요. 7월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요.” 5월 10일 늦은 오후, 기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자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에서 나온 대답이다. 역술가는 타로를 리딩하는 김사랑씨다. 마음속에 정해놓은 회사의 우선순위가 있는지를 물은 뒤 카드를 섞어 그 의미를 풀어낸 해석이다.

“요즘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건강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씨는 잠시 카드를 섞는 듯 말을 멈췄다 “몸 자체에 병이 있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병원을 가거나 검사를 받아도 이상이 없을 것”이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청년 세대에게 빼놓을 수 없는 궁금증인 연애·결혼 운은 어떨까? 가장 궁금했던 질문 “결혼을 할 수는 있는지?”를 물었다. “가능하다”는 답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어지는 풀이에 진한 아쉬움만 남았다. 김씨는 “지난해에 만났던 사람 중 연애를 했다면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인연이 있었다”면서도 “올해는 연애운이 없다”고 했다.

기자와 역술가와의 이 만남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바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였다. O2O(Online to Offline) 역술가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 ‘천명’은 AI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와 역술가를 연결해준다. 역술가가 취업·연애·건강 등 자신이 묻고 싶은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면 이용자가 카테고리를 바탕으로 추천된 역술가를 선택하는 형태다.

상담 내용과 후기 학습 통해 정확도 높여


▎AI를 활용한 STT(Speech to Text, 음성인식기술)로 전체 상담 내용을 메신저 대화 형태로 다시 볼 수 있다. / 사진:천명 앱 캡처
AI 기술이 활용되는 주요 분야는 역술가를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운영사인 스타트업 ‘천명앤컴퍼니’는 상담을 마친 내담자들이 남긴 후기를 바탕으로 주요 키워드를 추출한 뒤 데이터화한다. 이 키워드를 바탕으로 상담 분야, 역술가의 상담 스타일 등을 선택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천명앤컴퍼니 측은 “머신러닝 알고리즘, 리뷰 하이라이팅 등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라며 “내담자가 고민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AI를 통해 해당 텍스트를 분석한 뒤 유사한 고민으로 상담을 진행했고, 고객의 만족도가 높았던 역술가 3명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이어 “AI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의 리뷰를 의미 단위로 분리하고, 해당 의미 단위에 기정의한 태그(상담분야·상담스타일)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 파악한 후, 유저가 리뷰 태그를 선택하면 해당 의미 단위 부분을 하이라이팅하는 형태”라고 덧붙였다.

역술가의 스타일도 자연어처리 모델을 통해 세부적으로 분류한다. 천명앤컴퍼니는 “상담 후기 약 10만 개를 통해 각 역술가의 특화된 상담 분야와 상담 스타일 정보를 추출한다”며 “내부적으로 학습시킨 자연어처리 모델을 통해 리뷰별 상담 분야와 스타일 정보를 추출하고, 강세를 보이는 분야를 정의한 뒤 역술가에게 해당 특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뷰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카테고리는 세분화되고 카테고리별 정확성도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AI 기술은 상담이 끝난 뒤에도 빛을 발한다. 천명앤컴퍼니는 STT(Speech to Text, 음성인식기술)를 활용해 전체 상담 내용을 메신저 대화 형태로 다시 볼 수 있도록 제공한다. 천명앤컴퍼니 측은 “전화 상담의 경우, 상담 이후 소비자는 상담 내용에 대한 녹취본을 확인할 수 있다”며 “30분~1시간가량의 상담 내용을 모두 듣기 어렵기 때문에 STT를 활용해 상담 텍스트를 클릭하면 해당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운세 플랫폼인 ‘포스텔러’에서는 AI가 직접 운세를 풀어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포스텔러 측은 “명리학을 담은 AI 프로그램이 점괘를 내놓는 서비스를 출시했다”며 “국내뿐 아니라 별자리 운세 정도만 봐왔던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운세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긍정적이다. 올해 1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새해 계획’과 ‘운세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4.5%가 운세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2명 중 1명(49.1%) 꼴로 평소에도 운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30세대 90% “운세 본 적 있다”


▎천명앤컴퍼니는 지난달 알토스벤처스로부터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사진은 전재현(왼쪽부터)· 유현재 천명앤컴퍼니 공동대표. / 사진:천명앤컴퍼니
운세를 점쳐보는 방법으로는 스마트폰 운세 앱이 가장 많이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중 56%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운세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다만 유명한 점집(24%)이나 타로 점집(18.9%), 사주 카페(17.9%)를 방문한 비율도 낮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운세 서비스를 이용할까? 응답자의 86.7%는 ‘마음의 위안과 걱정 감소’를 꼽았다. 64.4%는 ‘긍정적 에너지와 희망을 얻고 싶다’고 답했으며, ‘불확실성 해소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해 운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응답자도 각각 41.3%와 35.3%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감도 운세 서비스의 높은 이용률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응답자의 79.9%가 ‘사회가 불안할수록 운세나 점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답했으며, 78%는 ‘운세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라고 바라봤다. 10명 중 6명(60.9%)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불안감으로 온라인에서 신년 운세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는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2030 청년층의 관심도가 높다. 구인구직 포털서비스 알바천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30세대 회원 1608명 중 90%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운세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2.7%가 ‘막연한 호기심’을 제시했으며, 22.9%는 ‘미래가 불안해 위안감을 얻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13.2%는 ‘스트레스와 고민을 덜기 위해’라고 답하기도 했다.

교사로 재직 중인 A(25)씨는 월간중앙에 “사주·타로 등 운세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특히 연애가 잘 안 풀리거나 임용시험을 앞둔 시점에 자주 봤었다”고 전했다. A씨는 “삶에서 큰일을 치르기 전에 사주나 타로를 보면 그래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다”며 “홍대입구나 강남역 등 번화가에 갔을 때 눈에 띄면 자주 찾아간다”고 말했다. 직장인 B(26)씨도 “지난 3월 운세를 봤다”며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다”고 전했다. B씨는 “금전적 부담이 있다 보니 자주 보지 않았지만, 최근에 한 번 보니 다른 곳에서도 운세를 보면 어떨까 싶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송모(24)씨는 “사실 운세라는 게 비과학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진짜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동기부여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운세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원인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목한다. 곽 교수는 월간중앙에 “사람의 심리 속에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사주·타로 등 운세를 예측하는 행위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30 청년층 사이에서 운세 서비스가 성행하는 것에 대해 곽 교수는 “과거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워야 할 계획이나 투입해야 할 노력이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가 어렵다”며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더욱 얼어붙은 만큼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운세와 AI가 만나며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4월 19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벤처캐피털(VC) 알토스벤처스가 천명앤컴퍼니에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진행했다.

알토스벤처스는 다수의 유니콘 기업에 투자한 바 있는 벤처캐피털인 만큼 이번 투자 결정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동안 알토스벤처스에서 투자해온 국내 기업은 배달의민족,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지만, 천명은 역술·신점·사주 등 한국 특유의 정서에 기반을 둔 업체여서다.

알토스벤처스는 투자 배경에 대해 “점술은 현대인에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해소와 재미 요소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던 영역”이라며 “천명은 이런 점술 산업을 양성화하고 서비스 품질 고도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중에 인기 끌자 억대 규모 투자 줄이어

투자에 대해 천명앤컴퍼니는 월간중앙에 “소비자와 역술가에게 최상의 점술 상담 경험을 제공해 1조4000억원 규모의 국내 점술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배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신규 회원가입 150만 명과 신규 역술가 2000명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역술과 AI의 결합은 AI 활용이 무궁무진한 분야로 확장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높인다.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센터장은 월간중앙 전화통화에서 “문화현상에 AI를 접목한 사례”라며 “AI는 데이터만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화된 베이스가 있다면 모든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술 관련 데이터를 컴퓨터가 직접 읽어들이는 머신러닝과 STT를 이용한 편의성 향상이 결합하는 등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운세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만큼 활용법에 대한 조언도 이어진다. 곽금주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맹신하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좋은 풀이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되, 부정적인 풀이가 나올 경우 이를 보완해나가는 형태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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