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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6) 장성 편백나무산에서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어머님과 함께

내 어머니는 18살에 시집와 덕진골 첩첩산중을 쬐그만 두 발로 고구마 한 가마니, 산더미 같은 뽕 바구니…. 수많은 생명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지고 서에 번쩍 동에 번쩍 종횡무진 누비시며 우리 6남매를 먹여 살리고, 가르치셨다.

이제 겨우 84살, 그 강건하고 튼튼한 육신은 다 어디 가고, 허리는 소 잔등처럼 굽어 지팡이를 짚으시고, 평길 50m도 못 가셔 가쁜 숨을 몰아치신다. 거의 매일 상추 깻잎 푸성귀를 양푼 가득 맛있게 비벼, 게눈 감추듯 맛있게 드시고, 쉴 새 없이 일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3살 유아처럼 밥 몇 숟가락에 김칫국물로 식사하신다. 어느 누가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만드셨을까?

이웃 마을 지인의 소개로 백양사 근처 하늘 아래 첫 동네에 편백나무 산자락에 황토로 지은 펜션이 있다고 하여 두 달 전, 어쩌면 어머님하고 마지막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예약을 했다.

마치, 동화 나라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사는 집처럼 이쁘게 꾸민 황토방에 드러누워, 사연 많은 어머님과 이모님 두 자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과연 인생이 뭐고, 삶이 뭔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에 휩싸여 편백나무 숲을 헤매다가 정상에 다다랐다.

곱고 길게 뻗은 편백나무 피톤치드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며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잇더니, 우주 창조와 생명 탄생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알려주고, 인간 발전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3권의 책을 소환했다.

동서고금 수많은 인간이 그렇게 알고 싶고, 깨닫고 싶고, 평생을 구도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진리를 한눈에 보는 듯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에 의하면

135억 년 전, 우주는 대폭발 빅뱅에 의해 태어났다. 까마득히 아득한 그 어느 날에 우주에 떠돌던 최초 원소, 수소 분자가 핵융합처럼 뭉쳐져 밀도가 높아졌고, 마침내 뭉쳐진 수소 덩어리가 고압을 견디지 못하고 대폭발 빅뱅을 하면서 수천 도의 열이 발생, 연쇄적으로 화학작용이 일어나면서 헬륨, 철, 금 등의 우주 기본 원소 92개가 만들어졌다.

그 원소들이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가 합쳐지면서 밀도가 높아져, 폭발 산화 과정에서 스스로 밝게 빛을 내는데, 그 별을 항성이라 하고, 그 항성 주위를 어린 자식처럼 도는 별, 지구 금성 화성 등을 행성이라 하며, 행성 주위를 도는 손자 같은 별이 위성, 달이다. 행성과 위성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빛나는 별들, 즉 항성이 수천억 개씩 모여져 있는 것이 은하이며 그 은하가 수천억 개가 있다고 하니, 미천한 인간으로서 그 광활한 우주의 끝과 개수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별들, 항성, 행성, 위성은 우리 인간사처럼 생로병사가 있고, 생명 에너지가 다하면 폭발과 함께 우주 물질들이 이 우주 속에 다시 흩어져 정처 없이 떠돌다가, 그 원소, 우리가 말하는 먼지가 합쳐지면 다시 별이 된다.

47억 년 전, 그렇게 우연히 태어난, 대우주로 보자면 벼룩의 간보다 더 작은, 태양계 식구 중의 하나가 지구이고, 그 일부의 일부가 어머니이고 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란 책에 의하면

그렇게 우주에 떠돌던 원소, 먼지가 융합하여 불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던 지구가, 수십억년의 세월이 흘러 차츰차츰 식어가 적당한 온도가 된 어느 날,

바다의 어느 모퉁이라 추정된 곳에서 아주 적당한 물과 우주 물질이 담긴 웅덩이에 태양 빛, 에너지가 가해지면서 수프 같은 건더기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화학작용을 거듭하면서 미생물이 생겨나고, 그놈들이 끊임없이 세포분열, 진화, 돌연변이를 통해 적자생존, 약육강식, 종족 번식, 섹스, 사랑이라는 법칙으로, 즉 이기적 유전자의 꼭두각시놀음에 의해 지금의 너와 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식물 사람 등 모든 생명체는 한 뿌리이며, 생명이란 우주 원소가 하나로 뭉쳐져 지속해서 에너지를 만들면 생이요, 그것이 흐트러지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의하면

그렇게 태어난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수렵. 방목 생활을 하다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 초승달 모양의 비옥한 땅에서 최초로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잉여 생산물이 발생, 소유물의 차이가 나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났고, 가족 단위 사회에서 씨족사회, 부족사회로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과 같은 고도화된 국가가 탄생 되었다는 것이다.

그 국가는 결국 총. 균, 쇠의 발전과 적응에 의해 힘의 균열이 생겨났고, 그 차이 즉 힘의 차이에 의해 선진국, 후진국 즉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로 나뉘게 되었고,

대한민국이란 작은 개발도상국에서 어머니는 아등바등하며 온몸을 다 바쳐 세속적으로 말하는 성공한 인생, 어쩌면 본인이 바라는 모든 자식 건강하고 잘사는 밑거름 밀알로 살다가, 이제 목적지 종착역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3권의 책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아무리, 인생이 그렇고 그런 덧없는 먼지 같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위해 희생만 하신…. 어머님 인생이 잘 살고 행복한 인생이었을까?

우리의 선조들처럼…. 우주 법칙, 세월의 순리에 따라 사랑하는 어머니는 이렇게 허무하게 흩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아! 어머니가 참 고맙고 가엾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3권의 책을 통해 우주의 냉정한 원리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은데… 그럴수록 인생 참 무상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고,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 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 하늘 아래 첫 동네 장성편백숲 황토 펜션을 둘러싸고 있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자기들처럼 여유롭고 넉넉하게 모든 것을 품으면서 함께 사는 것이, 진짜로 멋진 삶이라는 듯 산천초목이 어깨동무하고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5월 어느 날이 그렇게 어머님과 함께 아름답게 물들어갔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 어머니와 함께한 하늘 아래 첫 동네 장성편백숲 황토 펜션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 필자명: 김희범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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