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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일 관계 개선을 꾀하는 윤석열 정부에 주는 제언 

윤 대통령, 동맹 우선주의 빠져 자국 이익 등한시하면 곤란 

일본, 한·미·일 결속 강화할 적기라고 판단… 새 정부에 기대 품어
바이든이 원하는 건 미국 대신 중국·북한과 ‘싸워줄’ 한국 군사력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본 의원단을 접견하며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제시한 김대중- 오부치 회담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 3월 1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5월 10일 출범하며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본 의원단을 접견하며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회담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일 관계 회복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내온 만큼 일본 각계에서 거는 기대감도 크다.

이렇게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대(對)중국 전선 형성과 쿠릴열도 영토 분쟁 속 동맹을 대하는 태도는 ‘동상이몽’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동맹을 재건하고 우방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는 기조를 지키면서도, 무조건적인 동맹 우선주의에 빠져 자국의 이익을 등한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 TBS TV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방송이 한국의 새 대통령에 대해 조명했다. 전문가가 코멘트를 통해 한·일 관계를 전망하는 비교적 ‘중립적인’ 프로그램에서는 일본이 윤석열 정부를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일본이 보는 윤석열 당선의 세 가지 긍정적 측면


▎지난 3월 26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이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다. 정진석 단장이 기시다 총리에게 윤 당시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 언론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한국갤럽이 5월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임 직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지한다’ 41%와 ‘지지하지 않는다’ 48%로 나타나는데, 이를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지지율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일본 측이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주목하는 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떨어지면 반일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 참여 이전에 정당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적 수완은 미지수이지만, 윤 대통령의 휘하에 우수한 인재가 많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이 향후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기대와 우려 섞인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선 이틀 뒤인 3월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했고, 그 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도 전화 회담을 했다. 그때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가능한 한 빨리 대면으로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일본에서도 보도됐다.

일본에서는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 앞서 4월 25일 일본에 한·일 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한 것이 큰 화제가 됐다. 이때 대표단은 기시다 총리와 약 25분간 면담했고 정진석 단장이 윤 대통령의 친서를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했다.

일련의 노력으로 일본 측은 “윤 대통령이 일본을 중시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의 TBS TV는 윤 대통령이 당선돼서 일본에게 세 가지 긍정적인 면이 생겼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서 일본 측에 해결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여소야대가 됐지만 윤 대통령이 한국 국회를 잘 설득해서 이 문제에 대해 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다소 희망 섞인 분석이다.

대중국·대북한 전략에 있어 일본에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니 한·미·일 결속을 강화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 함께 미국 측 요구를 잘 활용해서 중국과 북한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본 내에서도 사실상 일치된 견해라 할 수 있다.

일본 언론들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강제징용 재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대중국 포위망 구축과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처를 보다 시급한 한·일 간의 공동 과제로 보고 있는 듯하다.

지난 4월 정책협의단은 일본에서 방위상·외상·경제산업상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등 일본 정계의 실세를 만날 수 있었다. 기시다 총리도 4월 26일 정책협의단을 총리관저에서 만났다.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룰에 입각한 국제질서가 위협받는 국제정세 속 그 어느 때보다 한·일,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가 필요하다. 한·일 관계 개선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쿠릴열도 분쟁 등 고조되는 러·일 갈등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용산 대통령실 접견실에서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으로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취임 축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기시다 총리가 말한 ‘위협받는 국제정세’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시다 총리가 말하는 ‘한·일 관계 개선’이란 ‘위협을 받는 국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공조’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 같은 수준의 고강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왔다. 재임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7번이나 만나 나름대로 ‘우정 관계’를 쌓은 아베 전 총리도 강연을 다니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강력히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돕기에 올인하고 있다.

그런 일본 측 태도에 반발한 러시아는 일본과의 평화조약 체결추진을 중지했고 홋카이도 동쪽 쿠릴열도에서의 러·일 협력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쿠릴열도에서는 러·일 경제협력이 실시되고 있었고 일본인인 구 도민들이 쿠릴열도를 왕래하기 시작했는데, 러시아가 관련 사업을 모두 취소해버린 것이다. 이어 러시아 국내 제3당(정부계 야당)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당수가 ‘홋카이도의 주권은 러시아가 갖고 있다’는 발언을 해 일본을 협박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러시아는 일본 외교관을 추방했고 쿠릴열도에서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발사 실험을 수차례 감행하기도 했다.

일본의 군사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일본 홋카이도를 침공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냉전 시대에는 구소련의 홋카이도 침공을 상정한 미·일의 군사 합동 연습이 있었지만 현재는 없어진 지 30년도 더 지났다. 실제 ‘홋카이도의 영토주권은 러시아가 갖고 있다’는 말이 일본으로 전해지자 많은 일본인이 공포심을 느꼈다. 따라서 한국의 정책협의단과 만났을 때의 기시다 총리 발언은 일본을 둘러싼 어려운 국제정세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으로서는 남쪽에 있는 센카쿠열도 문제도 심각하다. 일본의 군사전문가들은 센카쿠열도를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는 있지만, 중국이 침공해올 경우 미군이 파견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전망한다. 미·일 안보조약 제5조를 보면 미국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대신 조건이 붙어 있다. “미국은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일본을 돕는 군사행동을 본격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는 조건이다. 따라서 일본의 군사전문가들은 미 의회가 작은 센카쿠열도를 지키기 위해 미군의 군사행동을 본격 승인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경우 지난해 5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일본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만 유사시에 자위대를 출동시켜 대만과 미군을 돕겠다고 약속까지 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를 앞세워 대응할 생각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런 아시아의 분쟁에 한국군이 움직여줄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군에 거는 기대도 마찬가지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반도 유사시에 윤석열 정권이 일본 자위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일본 측의 속마음은 대만·센카쿠·홋카이도 유사시에 대비해 한국군과 군사협력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예산 증액 없이 ‘억지통합’ 전략 추진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 태세를 강화하고자 하지만 동맹을 대하는 한·미·일의 태도는 동상이몽이다. 지난 3월 24일 기시다 후미오(왼쪽) 일본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의 안보와 군사협력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먼저 방문해 5월 21일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일은 과거 50년간 없었다고 한다. 일본 내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목적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하게 촉구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북아에서 미군의 비중과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 대신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를 동북아 방어선에 투입하고자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일 양국에 방위비를 약 5배 증액한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방위비의 무리한 인상 요구 대신 동북아에서의 동맹국 군사력 비중을 높이려고 계획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한·일 양국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3월 말 발표한 ‘미국의 쇠퇴하는 군사력’이라는 사설에 따르면 바이든 정권의 2023년 군사예산은 7~8%에 달한 최근의 고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사실상 감액됐다. 미국의 이번 군사예산으로는 해군 함정도 유지를 못해 현재 298척에서 280척으로 줄어들게 된다. 중국 억제에 필요한 500척 목표는 불가능해진 것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기로 결정한 해양 발사 순항 핵미사일 개발계획이 취소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군사 예산을 증액하지 않는 대신 ‘억지통합’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억지통합’ 전략이란 방위에 군사력뿐만 아니라 외교, 동맹관계 강화, 경제제재, 기후변화 등 종합적인 요소를 담아 억지전략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으로 볼 때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후 윤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은 바로 ‘동맹관계 강화’이고, 미국을 대신해서 동북아에서 중국이나 북한과 싸워줄 한국의 ‘군사력’이다.

‘부다페스트 각서’ 효력 없어… 우크라이나의 교훈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북아 방어선에서 미군 비중과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을 투입하고자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쿼드 등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에 한국이나 동남아 각국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이 나라들이 안고 있는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관계를 대신할 수 있는 아시아의 경제협력체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 듯하다. 그것이 쿼드의 경제판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한 대안이 인도·태평양 권역에서 쿼드와 IPEF인 셈이다. 많은 동남아 국가들은 이것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 구축용’이라는 의도를 알기 때문에 IPEF 참여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진로를 결정하면 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교훈을 알아보자. 1994년 12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미국·영국·러시아 정상들이 서명한 각서를 ‘부다페스트 각서’라고 한다. 이 각서는 벨라루스·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 3국이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이 3국에 미·영·러가 안전 보장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각서 내용을 환영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모두 폐기해 러시아로 보내며 비핵화를 완수했다. 그런데 부다페스트 각서의 어디에도 미국과 영국이 이번 러시아의 침공에 대처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키고자 군사력을 즉각 투입해준다는 합의는 없었다. 이 각서의 제4항을 보면 “미국·영국·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등 3국이 침략당할 경우 유엔 안보리에 지원 행동을 요구할 의무가 있다”고만 적혀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 각서에 따라 유엔 안보리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결국 유엔군이 편성되지 않았다. 각서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때의 어리석었던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에 대해, 일본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정치학자 글렌코 안드리는 “우방이나 동맹국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의 말을 무조건 따르면 그 나라는 망한다. 우방도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우방의 조언을 의심하고 때로는 거부하는 이성과 근성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속화하는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교훈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대우교수 hosaka@sejong.ac.kr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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