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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돈이 보이는 경제(3)] 돈을 풀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길게 보면 불가능, 짧게 보면 긍정적일 수도 

돈 풀리면 물가 불안, 임금 인상 요구 등 불안정성 높아져
적절한 곳으로 돈 쓰일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이 더 중요


▎길게 보면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되고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질 뿐 경제 불안정성만 높아진다. 그러나 짧게 보면 실물경제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치인들은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리려고 한다. 선거철이 되면 그런 요구가 더 극성이다. 돈을 풀어야 표가 되기 때문이다. 여든 야든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지 돈은 풀리기만 할 뿐 거둬들이기는 매우 힘들다. 선거에 의해 민주적으로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일수록 만성적인 돈 풀기가 자행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나 장치가 별로 없다.

문제의 핵심은 돈을 풀면 과연 경제가 살아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부터 정의해야 한다.

일단 여기서는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을 ‘실질성장률이 올라가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사실은 실질성장률이 올라가더라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1984년같이 생산된 것이 팔리지 않아서 재고가 잔뜩 쌓이는 경우에는 실질성장률이 올라가지만,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라고 치고 실질성장률이 높아지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자. 그렇다면 돈이 늘어나면 실질성장률이 올라가는가?

돈이 늘어나면 실질성장률이 올라간다고 보는 학자들의 논리는 이렇다. 일단 돈이 늘어나면 소비 수요가 늘어난다고 본다. 돈이 늘어난 만큼 부, 즉 실질잔고(Real Balance)가 늘어나고 이것이 소비를 촉진한다고 본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실질잔고효과(Real Balance Effect)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행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밤새 현금을 살포하게 되면 현금을 주운 국민이 그 현금으로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만약 국민이 살포된 현금을 소비하지 않고 들고만 있다면 소비는 살아나지 않는다. 이렇게 국민이 품속에 품고만 있을 뿐 소비하지 않는 현금을 시재금(hoarding)이라고 한다. 결국 중앙은행이 현금을 살포하면 실질성장률의 증가 여부는 살포된 현금을 국민이 소비하는가 아니면 시재금으로 품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현금을 100조원을 살포한다면 국민은 당장 얼마나 소비를 늘릴까? 100%? 50%? 이런 걱정은 사실 안 해도 된다. 한국은행이 현금을 살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공개시장 조작으로 통화 관리


한국은행이 현금을 풀 때는 절대로 헬리콥터를 동원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프로세스’가 여럿 있다. 일반은행을 대상으로 대출을 늘리거나 아니면 시중에 나와 있는 국공채 혹은 통화안정증권(한국은행의 일종의 자기앞수표)를 사들이는 방법, 즉 소위 공개시장조작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은행이 시중에 있는 대형은행이나 증권회사같이 자격을 갖춘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해 자격을 갖춘 증권(주로 국공채나 통화안정증권)을 사들이는 방법을 쓴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돈을 풀면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으로 돈이 들어가게 된다. 일반 국민은 거의 풀린 돈을 못 만진다는 말이다. 대출을 받거나 국공채 증권을 팔아서 한국은행으로부터 돈을 공급받은 금융기관들은 그 돈을 운용하게 되는데 운용 방법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에 투자(a)하거나 아니면 기업의 투자자금으로 대출(b)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운용하는 경우(a) 풀린 돈은 그 자산을 매각한 사람에게로 옮겨갈 것인데, 그 사람들이 그 매각자금으로 소비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또 다른 자산으로 갈아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경우 늘어난 돈은 자산시장의 가격과 거래를 촉진할 뿐 실질경제성장률을 높일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만약 금융기관이 국공채를 매각한 자금으로 기업에 대출(b)하는 경우에는 투자가 늘어나게 되므로 실질경제성장률을 높이게 된다.

결국 한국은행이 돈을 풀었을 때 경제가 살아나는가 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돈을 수혈받은 금융기관들이 그 늘어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국공채를 팔고 취득한 자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다면 실질성장률이 올라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만약 늘어난 돈이 기업의 대출로 흘러 들어간다면 투자 확대로 인한 실질성장률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과 같이 주식 가격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이라면 풀린 돈은 자연히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불안정하게 폭등시킬 것이다. 게다가 미·중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추세라면 기업의 투자수요는 자연히 쪼그라들 것이므로 설혹 자금 공급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투자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한국은행을 포함한 거의 모든 중앙은행은 통화 총량을 관리하는 대신 정책금리를 관리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통화 총량을 관리해왔으나 그 결과 시중 금리가 너무 급변동하는 폐단이 생기면서 1980년대 중반 미국을 시발점으로 거의 모든 나라가 기준금리 관리 체제로 변경했다. 우리나라도 총통화 총량을 관리하던 방식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로 들어가면서 2000년부터 기준금리 목표 관리 체제로 변경했다.

즉, 그때그때 기준금리의 목표치를 설정해 놓고 시중 금리가 기준금리 목표치에 도달하도록 수시로, 지속해서 통화를 공급하는 체제란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중금리란 은행과 은행 사이에 거래되는 하루짜리 자금금리, 즉 익일물 콜금리를 말한다. 따라서 익일물 콜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면 한국은행은 즉각 환매조건부로 채권을 사들여 자금을 풀면서 익일물 콜금리를 낮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목표치를 설정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경우, 기준금리를 낮추면 한국은행은 즉각적으로 은행과의 환매조건부 거래를 통해서 자금을 공급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풍부해진다. 일단 시중에 유동성도 공급되면 동시에 시중 금리도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게 되면 일반 시중금리도 낮아지면서 소비 수요나 투자수요가 살아나고 실질경제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중금리, 특히 시중 대출금리가 낮아지지 않으면 소비 수요나 투자 수요가 늘어날 이유가 없다. 통화 공급이 늘어나는 경우에서와 같이 기준금리가 낮아져서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확대되더라도 그 자금이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 시장으로 몰릴 경우에는 대출금리가 낮아질 이유가 없고 따라서 소비 수요나 투자 수요가 늘어날 이유가 없다.

통화 총량 관리 아닌 기준금리 관리의 시대


▎전국 8개 지역 버스 노조와 사용자 측이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협상에 돌입한 4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조원들이 임금 인상과 근무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통화 공급 확대에 따라 금리가 낮아지는 경우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 이자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침체의 현실화다. 일반적으로 이자율이 낮아지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줄어들면서 소비가용자금이 늘고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예금주들은 이자소득이 줄어들고, 따라서 소비가 줄어들게 된다. 한국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쓰는 경우 이자 부담 감소 효과와 이자소득 감소 효과 중 어느 것이 크냐에 따라 소비에 미치는 효과가 결정될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p 낮추면 대출금리는 0.4%p쯤 내려가지만 예금금리는 0.8%p 내려간다. 가계대출 규모는 약 1850조원이고 은행예금도 약 1850조원이므로 기준금리가 1%p 내려가는 경우 대출이자 부담은 연간 7.4조원 줄어들지만, 예금이자 소득은 14.8조원 줄어드니까 국가 전체로 보면 오히려 7.4조원 소득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 수요도 위축된다.

지금까지 논의는 실물경제의 혁신이나 기술 발전이나 생산성 증대를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정태적’인 분석이었다. 좀 더 동태적으로 보면 기준금리의 인하로 인해 실질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즉, 낮아진 시중금리로 인해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그로 인해 혁신적인 프로젝트나 벤처 투자가 용이해지면서 기술 발전과 생산성 증대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혁신성장이나 벤처 투자 활성화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규제·인재·리스크·사회인식 등 매우 다양한 인자가 있지만, 이자율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저금리 정책이 이들 혁신투자나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궁극적으로는 물가가 올라가게 된다. 피셔 이론처럼 돈이 10% 풀리면 물가가 10%까지는 올라가지는 않는다 해도 6~7% 정도의 물가 상승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돈 풀어서 인플레 기대심리가 살아나는 경우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은 인플레를 더 빨리 예측하고 발 빠르게 대처할 것이다. 이런 경우 기준금리를 낮추고 통화를 공급하게 되면 기업은 가격 인상에 혈안이 되고 근로자들은 줄기차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국민은 소비를 줄이고 또 인플레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에 몰두하게 되면서 인플레가 장기적으로 굳어진다. 기준금리를 낮추고 돈을 공급해도 실질성장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플레만 가속하는 상태가 된다.

금리가 낮아도 리스크가 높은 혁신성장에 대한 투자수요는 사라지게 된다. 돈을 푸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물경제를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돈을 풀어서 실물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길게 보면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되고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질 뿐 경제 불안정성만 높아진다. 그러나 짧게 보면 실물경제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풀린 유동성이 대부분 기업 대출로 연결되고, 특히 혁신 투자나 기술 생산성 투자로 유도될 때는 실물경제의 성장이 촉진되기도 할 것이다.

결국 풀린 돈이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에 실물경제성장이 달렸지 무작정 돈만 푼다고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기준금리만 낮출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곳으로 돈이 풀리게 하는 세심한 정책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 신세돈 - 미국 UCLA에서 경제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조사부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9년부터 숙명여대에서 33년째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종대왕의 통치 업적을 분석한 [외천본민]을 저술했으며, 중국 고대 역사서 [자치통감]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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