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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치료되지 않는 고질병, 해병대 가혹행위 실태 

우크라이나까지 도망치게 한 기수열외, 도대체 뭐길래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토할 때까지 먹게 하는 악기바리… 이병에게 잠자리 먹였다 적발되기도
전문가 “해병대가 존폐 기로에 서 있다는 위기의식 공유하고 근절해야”


▎극기주 행군을 마치고 해병대교육훈련단으로 복귀 중인 훈련병들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저도 부사관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한 것은 아직까지 궁금합니다. 왜 제가 당하고 있었는지.”

지난 3월 휴가 중이던 현역 해병대원이 돌연 우크라이나로 출국했다. 탈영을 저지른 A일병은 지난 3월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따돌림, 즉 기수열외를 당했다고 밝혔다. A일병은 “해병대에서 복무한다는 자체에 자부심이 있었고, 선임들에게도 이쁨받고 인정받았던 해병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부사관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때부터 따돌림이 시작됐다”며 “한 선임은 ‘얘 그냥 기수열외 처리해라’, ‘얘랑 말하다 걸리면 죽여버린다’는 식으로 따돌림당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군의 상륙 기동작전과 해안 경계의 핵심 전력인 해병대가 반복되는 악·폐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새로 실무에 배치된 신병에게 토할 때까지 음식을 먹이는 ‘악기바리’,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기수문화에서 제외하는 ‘기수열외’가 대표적인 고질병이다. 악·폐습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를 풍자하는 ‘해병문학’까지 등장했다.

우선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악기바리는 주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군 생활을 보내게 될 부대에서 이뤄진다. 새로 배치된 신병을 환영한다는 차원에서 선임병들이 식사 이외의 음식을 사주는 일종의 환영회인 셈이다. 타 군과 달리 악기바리가 악·폐습인 가장 큰 이유는 후임병이 토할 때까지 음식을 강제로 먹여서다. 선임병들이 PX(Post Exchange, 군매점)에서 10만원 내외의 냉동식품, 과자류 등을 사놓은 뒤 물이나 음료수 없이 다 먹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곤충 등 음식이 아닌 것을 먹인 사건도 있었다. 2020년 1월 군인권센터는 운영 중인 상담센터로 접수된 신고 중 한 건을 소개하며 “해병대에서 선임병이 이병이었던 피해자에게 잠자리를 먹였다”고 발표했다. 군인권센터 측은 “가해자는 잠자리의 날개 부분을 손가락으로 잡은 채 피해자의 입에 잠자리의 몸통 부분을 그대로 집어넣었다”며 “그 상태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잠자리를 먹으라고 계속 강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이 신고를 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2030 남성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해병문학에선 이러한 ‘식고문’ 행위를 풍자하기도 했다. 악기바리 중 토해낸 토사물을 다시 주워 먹게 한다거나, 먹기를 주저하는 신병을 마구 때리는 내용이다. 해병대에서 병으로 복무했던 B씨는 월간중앙 전화통화에서 “악기바리는 과거 보급이 열악했던 해병대에서 신병이 올 경우 환영하는 의미로 모든 장병이 부식류를 모아 제공해주는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2022년의 악기바리는 의미가 퇴색된 채 행위만 남아 고문 형태로 변질됐다”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수열외도 해병대의 오랜 악·폐습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3월 현역 해병대원 A일병이 휴가 중 “우크라이나로 가겠다”며 돌연 폴란드로 출국했을 때, 기수열외로 인한 가혹행위를 호소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기수열외 문제 삼은 탈영병 “투명인간 취급받았다”


▎해병대는 상징과도 같은 빨간 명찰까지 회수하며 조직 개선을 꾀했지만, 가혹행위는 계속해서 재발하고 있다. / 사진:유튜브 국방TV 캡처
기수열외는 말 그대로 해병대의 기수에서 피해자를 제외하는 것이다. 기수열외 대상자가 될 경우 선임의 무시와 후임의 투명인간 취급이 시작된다. 해병대는 해병대교육훈련단 입소 기수를 기준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선후임 문화를 자랑하지만, 기수열외를 당할 경우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밀려나는 셈이다.

A일병이 부대 내에 마련된 고충처리체계를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A일병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처음엔 마음의 편지를 썼는데 간부들이 이를 덮었다”며 “가해자들은 경위서 한 번 쓰게 하고 끝났다”고 전했다. 이어 “선임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다른 선임들에게 쌍욕을 먹고, 기수열외를 지시한 선임은 내게 ‘사람 새끼도 아니다’라고 욕했다”고 밝혔다.

A일병은 “우크라이나로 오게 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부대에 남아 선임병들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싫었다”며 “극단적 선택을 할 바에 죽어도 의미 있게 죽자는 생각으로 왔다”고 말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월간중앙 전화통화에서 “기수열외의 경우 군형법상 처벌이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방 팀장은 “악기바리는 명백한 식고문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되나, 기수열외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폭행 등의 위법행위가 없을 경우 처벌이 쉽지 않다”며 “기수열외의 단초가 보일 경우 각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리나 근절까지 이어지기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빨간 명찰’까지 떼어봤지만… 재발하는 가혹행위


▎울진·삼척 산불 발생 당시 경북 울진군 한울에너지팜 앞마당에서 진화 작전에 투입됐던 해병1사단 신속기동부대 장병들이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 사진:연합뉴스
해병대가 악습 근절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해병대의 조직 개선 노력은 2011년 7월 해병 2사단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건 당시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동료 해병 4명을 살해한 범인 김모 상병은 문답 조사에서 자필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구타·왕따·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범행 전 분위기에 대해선 “○○○ 일병 주도로 후임병들이 (나를) 선임병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과정에서 김 상병은 “기수열외는 없었다. 다만 곧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을 번복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는 타 군에 의한 감찰을 실시하고 가혹행위를 저지른 해병을 구속 수감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시행했다.

총격 사건 2주 만에 해병대는 가혹행위에 가담한 병사의 빨간 명찰을 일정 기간 떼어내고 타 부대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빨간 명찰은 총 7주간의 신병훈련 기간 중 극기주가 끝나는 6주차 금요일에 받는 것으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해병이 됐다는 상징이다.

해병대 측은 “빨간 명찰은 해병에게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식물이 아니라 해병대에 소속된 한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명령인 동시에 징표”라고 밝힌 바 있다. 빨간 명찰이 없는 해병은 사실상 유령과 마찬가지로, 이를 회수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고강도 조치였다.

당시 해병대 관계자는 언론에 “조직 내부 악·폐습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해병대의 위상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각오로 고강도 병영문화혁신안을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빨간 명찰 회수는 실제로 시행되기도 했다.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만인 2011년 8월, 사건이 벌어졌던 해병2사단에서 선임병이 후임병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해병대 측은 “가해자가 영창에서 복역을 마치는 대로 방침에 따라 빨간 명찰을 회수한다”고 전했다.

해병의 상징인 빨간 명찰까지 회수하는 강경 조치에도 조직 내에서 가혹행위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해병대의 역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해병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오대훈 한국군사연구소 교수는 월간중앙 전화통화에서 “해병대 창설 당시 있었던 일본군의 잔재가 6·25 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내무실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전시 상황을 거치면서 악·폐습이 하나둘씩 이어져 내려왔고, 이것이 일부 인원에 의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병대 인적자원 선발 체계에 문제 있다” 지적도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해병대 특유의 끈끈한 결속력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방 팀장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끈끈하게 뭉치자는 ‘해병정신’이 어떤 경우에도 침해 받아선 안 되는 고유의 해병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방 팀장은 “문화가 한번 자리 잡았을 때 이를 고치기 위해선 훨씬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해병대 차원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가해자분리, 정신전력교육, 인권교육 등의 필요 조치는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고유의 문화를 타파하기엔 부족해 보인다”며 “문제의 싹을 자르는 정도가 아닌, 근본적인 뿌리 뽑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해병대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적자원 선발 트랙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병대 C 예비역 대위는 월간중앙에 “타 군과 달리 해병대의 부사관과 병은 모두 훈련단에서 입소 기수를 부여받고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며 “해병대의 부사관 선발 과정을 다양화하면서 복무 여건을 함께 개선해나간다면 고질병을 해소할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회 전체가 해병대 내 가혹행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오 교수는 “어릴 때 충분히 인성교육을 받지 않은 채 입대하게 되다 보니 군 생활 도중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라며 “기본 인성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자원들이 일으키는 지금의 문제는 해병대가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된 만큼 사회에선 의무화 형태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군에선 집단생활과 임무 수행에 필요한 협력적 태도를 추가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반복되는 악·폐습 문제를 해병대 구성원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해병대사령부에서 참해병혁신운동 등 조직 개선 방안을 계속해서 추진해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며 “0.01%의 인원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는 순간 조직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구성원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는 월간중앙에 “조직 전체가 꾸준히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며 “개별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지휘관리에 있어 소홀해지지 않도록 일선 부대에 명령 형태로 책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해병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 원칙으로 두고 수사하되,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답했다.

- 이민준 월간중앙 인턴기자 19g2970@naver.com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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