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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위기의 프로야구 재건 나선 허구연 KBO 총재 

“정용진 같은 구단주 더 나와야 리그 가치 올라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코로나 끝났지만 마케팅·국제경쟁력 다 위험, ‘짤방’ 금지로 MZ 세대 유입도 힘겨워
잠실돔은 LG·두산이 협상 통해 풀어야… 부산과 대전, 청라 야구장 신축은 잘될 것


▎‘야구 대통령’이 된 허구연 KBO 총재는 프로야구의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고 있다. 발로 뛰며 KBO 조직의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야구 대통령에 해당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직을 감당하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수다. 2022년 3월 25일 프로야구 10개 구단 대표들은 허구연(71) MBC 야구 해설위원을 KBO 수장으로 추대했다. 원래 총재는 각 팀 구단주가 돌아가면서 맡아야 했다. 그러나 혹독한 비판에 노출되는 자리에 어느 구단주도 오려고 하지 않았다. 범 LG 출신인 구본능 전 총재가 마지막이었다. 이후 국무총리 출신 정운찬 전 총재는 실적 없이 연임에 실패했고, 두산 CEO 출신 정지택 전 총재는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2월 자진 사퇴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10개 구단 대표들은 사상 첫 야구인 출신 총재로 선회했다.

3월 29일 취임식에서 허 신임 총재는 ‘리그의 가치를 높이는 총재’, ‘일하는 총재’를 약속했다. 경남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허 총재는 실업팀 상업은행, 한일은행에서 선수로 뛰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40년간 방송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지켰다. 그의 임기는 2023년 12월 31일까지다. 정 전 총재의 잔여 임기를 대행하는 ‘구원투수’인 셈이다.

5월 9일 강남구 도곡동 KBO 총재실에서 만난 허 총재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이 에너지를 조직 전체에 전파하고 싶어 했다.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먼 상황일지라도, 정확한 지도를 지니고 있다면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비쳤다.

“위기인 줄 모르는 게 진짜 위기”


▎5월 들어 야구장에 관중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전 관중 수준을 회복하는 게 KBO의 목표다. / 사진:연합뉴스
취임식 날, “9회 말 1사 만루에 올라온 투수”에 비유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중이 감소했다. 경기력은 답보 상태다. 구단들의 적자를 해소할 산업화의 기미도 없다. 이렇게 위기인데 위기감조차 없다. 그래서 이야기한 것이다.”

어디서부터 솔루션을 찾을 것인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팀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양분되는 과정으로 가고 있다. 마케팅에 적극 투자하는 팀에게 ‘페이버’를 줄 수 있는 ‘조정’을 생각하고 있다. 또 기술적 측면에서 우리 수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거품이 많다.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우승했지만, 최근 두 차례(2013년·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예선 탈락했다. 이제 국내에서 잘하는 것만 갖고 안 된다. 국제대회에서 잘해야 팬을 확장할 수 있다.”

KBO가 투자 많이 하는 팀에게 페이버를 줄 수 있는 현실적 방편이 있나?

“구단 간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않는 한, 없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면 메이저리그(MLB) 매장은 있다. 하지만 KBO 매장은 없다. 지금 그런 구조가 안 돼 있다. (30개 구단의 콘텐트가 집결된) MLB.com 홈페이지는 있어도 KBO.com(현재의 KBO 홈페이지는 기록만 모아놓았다)은 없다. 구단 이기주의 때문이다. 컵 하나 만들려고 해도 10개 구단 승인을 다 받아야 한다. (구단 입김 탓에) KBO의 힘이 약화됐고, (해결이) 난감하다.”

입장료는 홈팀과 원정팀이 오랫동안 72%:28%로 나눴다. 이 관행에 대해 허 총재는 ‘원점에서 들여다보자’고 이슈를 제기했다. 돈이 걸려 있어서 무척 민감한 영역인데.

“MLB는 100% 홈팀이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니다. 48%를 뗀다. 이 48%를 리그 기여도에 따라 30개 구단이 (차등적으로) 나눈다. (공동 배분의 비율은)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겠지만, 어떻게 가야 합리적인 것일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잠실의 LG, 두산 등 빅마켓 팀들은 홈팀에게 최대치로 입장 수입이 할당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키움이나 NC, KT 등 팬 베이스가 약한 팀들은 원정팀 몫이 줄어드는 것을 반대한다. 가령 고척 LG-키움전의 관중 70%가 원정팀인 LG 팬일 수 있다. 이래도 LG가 28%만 가져가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비인기 팀이나 지방 스몰마켓 팀은 “차라리 서울을 돌아가면서 홈으로 사용해야 공정하다”고 맞선다. 실질적 결정권이 없음에도 허 총재가 이슈를 띄운 이면에는 ‘투자 없이 무임승차하는 팀을 각성시키자’는 경고가 담겨 있다.

코로나19 시국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관중 추이는 어떻게 평가하나?

“2019년(728만6000명) 정도만 가도 대성공이다. 현재까지 2019년 대비 -25%인데 -20% 이내로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동안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는 스토리텔링이 나와야 할 것이다.”

유튜브를 향유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프로야구 하면 ‘올드 콘텐트’ 이미지가 짙다.

“(유튜브 등에 소위 ‘짤방’ 업로드를 금지한) KBO의 뉴미디어 중계권 계약은 소탐대실이었다. 이 탓에 MZ 세대가 더 멀어졌다. (계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짤방 규제를 완화했다. 게다가 야구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 구단들의 열의가 떨어지면서 어린이 회원, 어린이 야구 교실도 다 없어졌다. 단기적으로는 헤어날 길이 없다. 이제 구단주들이 야구단 운영에 대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정용진 SSG 구단주, 김택진 NC 구단주, 박정원 두산 구단주, 구본능 LG 구단주 대행 같은 분들은 관심이 굉장히 크다. 그러나 다른 구단은 별로 그렇지 않다. 자꾸 적자 운운만 하면 산업으로 가지 못한다. 구단주가 (프로야구를) 특수한 분야로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왜 야구단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국가대표 순혈주의 집착 버릴 때”


▎잠실 MICE 조감도. 잠실돔을 원한다면, 홈팀 LG와 두산은 이를 설계한 한화 컨소시엄과 협상해야 한다. / 사진:서울시
스트라이크(S)존이 넓어졌다. 타고투저가 투고타저로 바뀌도록 유도한 것은 경기시간 단축과 국제경기 적응 때문인가?

“S존 확대는 전임 총재가 결정한 사안이다. 다만 왜 S존이 그동안 좁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 경기에 350~400구가 들어온다. 이 볼을 일일이 측정해서 심판 고과를 매겼다. 이러니 심판도 살아야 하니까 S존을 좁게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야구는 아직도 30대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등에게 의존하고 있다. 왜 일본처럼 오타니 쇼헤이나 사사키 로키 같은 20대 대형 선수가 안 나올까?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트레이닝도 메디컬도 미치지 못한다. 프로에 와서야 코어 근육 강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야구 쪽의 투자가 거의 없다. 인성, 품성 문제도 프로에 와서 일회성으로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미 성인인데 구단이 교육하고 감독이 원한다고 해결되겠는가?”

허 총재는 2023년 WBC에 한국계 메이저리거들을 대표팀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화된 다문화 시대에 순혈주의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육상은 아프리카 선수를 귀화시키기도 했지만, 우리는 우리 피를 가진 사람을 쓰겠다는 것이다. 가령 세인트루이스 내야수 토미 에드먼(어머니가 한국인)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면, 김하성(샌디에이고)과 키스톤 콤비를 이룰 수도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선수협과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한국계 외국인 선수나 재일동포처럼 우리 피가 흐르는 선수는 외국인 선수로 분류(현재 각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는 3명까지)하지 않고, KBO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싶다. 당장 WBC에서 일본과 대만 전력이 쉽지 않다. 우리 선수만 가지고 안 된다.”

인프라 이야기를 해보자. 잠실돔은 정말 실현되는 것인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만남이 공개되면서 더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잠실 MICE 개발은 이미 한화 컨소시엄이 기본 설계를 마쳤다. 그 계획에 따르면 잠실역에서 도보로 15분 걸리는 축구장 인접 땅에 야구장을 신축한다. 예산은 1600억~2000억원이 들어갈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내가 총재가 되자 LG와 두산이 부탁했다. 야구장을 지하철역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옮겨달라고 오 시장에게 말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건의했더니 오 시장이 ‘검토를 하겠습니다’라고 원론적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다. 문제는 야구장을 LG, 두산이 원하는 곳으로 옮기면 기본 설계도상 돔구장밖에 안 되는 것이다. MICE의 핵심 시설은 야구장이 아니라 컨벤션센터다. 여기에 야구장 빛이 새어들어오고 소음이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잠실에 돔을 짓자고 한 것이 아니다.”

잠실돔이 실현되려면 LG나 두산이 돈을 보태야 되겠다.

“LG, 두산이 돔구장을 지을 의향이 있다면 한화 컨소시엄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안 되면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권고’까지다. (MICE 프로젝트에 KBO 땅이나 돈이 포함된 바가 없으니) KBO도 관여할 수 없다. 언론 플레이로 될 일이 아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공약했던 사직구장 리모델링도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박 시장은 공약을 이행하려 했지만) 부산시의회에서 ‘돔구장으로 하자’고 틀었다. 시장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시에서 인준을 안 해주니 안 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부산에 내려가 시의회 의장 등을 만나 왜 돔구장이 안 되는지 설득했다.”

실제 박 시장 측에서도 “사직구장 리모델링은 원안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확인해줬다. 6월 1일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고, 국민의힘 출신 시의원 당선자가 늘어나면 한층 탄력을 받을 듯하다.

“총재로서 SSG 랜더스에 고맙다”


▎SSG 랜더스 정용진 구단주는 최전선에서 야구단 마케팅을 지원하고 있다. / 사진:정용진 구단주 인스타그램
취임식 날, 대전시가 새 야구장에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한화가 연고지를 옮길 수도 있다는 폭탄발언을 꺼냈다. 이로 인해 대전 출신 모 정치인으로부터 ‘건방진 허구연’ 소리까지 들었다.

“4년 전, 대전시장 선거 당시 야구장 공약을 꺼낸 후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꼭 한화가 대전에 있어야 하나? 천안이나 청주로 홈을 옮기면 안 되냐?’라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지역에서 난리가 났다. 후보들이 전부 야구장 공약을 집어넣었다. 그 결과 대전은 이미 야구장 신축 예산을 확보해놨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정치논리로 일부 후보들이 새 야구장을 반대하더라. 그래서 내가 대전 새 야구장 공동자문위원장으로서 (취임식 날) 화가 난 것이다. 다음 대전시장이 누가 되든 야구장은 2025년 2월 예정대로 개장할 것이다.”

SSG 랜더스 정용진 구단주와도 야구장에서 만났다. 정 구단주는 청라돔 프로젝트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이 체육 시설은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복합문화공간은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왔고,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런 쪽으로 가지 않겠나. 단 인천시는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서울, 부산도 돈이 없어 돔구장을 못 짓는데 인천은 기업이 나서서 돔을 짓겠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꽃길을 깔아줘야지, 왜 시비를 거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시장 후보들이 선거 나오면 ‘기업 유치하겠다’, ‘고용 증대하겠다’ 해놓고 왜 이걸 반대하나? 나는 외곽에서 언론을 통해 SSG를 도울 것이다. 청라 스타필드는 별문제 없이 된다고 본다.”

정용진 구단주 같은 스타일이 KBO리그에 들어온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지금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스타는 정용진 아닌가?(웃음) 물론 어떤 (사업적) 목적이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주는 것이 야구에는 굉장히 고맙다. 특히 정 구단주가 김택진 NC 구단주와 나이도 비슷하고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두 구단주가 야구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서울, 부산에 비해 작은 시장인 인천을 연고지로 삼고 있음에도 관중이 급증한 SSG의 마케팅 성공은 울림을 남긴다.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구단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을 SSG가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리그의 가치를 높이고 균형 발전으로 가는 길이다. 이런 구단이 있는 반면에 일탈을 일삼고 리그 인기를 떨어뜨리는 이상한 짓을 하는 구단(허 총재는 꼭 집어 언급하지 않았지만, 어지간한 야구팬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도 있다. (이에 관한 신상필벌을 두고) 내가 고민이 크다.”

“KBO 개막전, LA 개최 추진할 것”

야구판 돌아가는 사정을 너무 잘 아는 총재가 부임해서 KBO 직원들은 힘들겠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KBO가 한국 프로야구의 리더 그룹이 돼야 하는데, 구단들 뒷바라지나 하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러면 구단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이 있을 때 KBO가 컨트롤하기 힘든 구조가 된다. KBO는 예산권이 없다. 우리 직원들 연봉도 우리가 못 정하고 구단들이 정한다. 마케팅이라도 뭘 해보려면 ‘KBO는 좀 빠지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러니 직원들이 기가 죽어 있었다. 내가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야구가 발전하고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정자 역할을 되찾도록 하겠다.”

KBO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허 총재는 “롭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를 만나서 결정짓겠지만, 2023년 KBO리그 개막전을 LA에서 할 생각”이라며 “2024년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우리나라에서 여는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의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시범경기에 우리 팀이 참여하는 아이디어도 공개했다.

허 총재는 평소 “나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야구당이다”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총재 역할에 충실하려면 정치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한 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번에 왜 총재로 추천됐을까 생각해봤다. ‘구단들이 못 푸는 것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일례로 새 야구장을 짓는 것만 해도 정치인은 야구를 몰라서 못하고, 재벌은 정경유착으로 비칠까봐 못한다. 미국처럼 완전 자유시장 경제 체제가 아닌 만큼 우리 야구는 정부, 입법부, 행정기관,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재벌 출신 회원사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그래서 오히려 나처럼 정치색이 없는 총재가 시장도 만나고, 청와대나 국무총리 등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202206호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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