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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의 청구서’ 바닥 모를 엔화의 추락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 엔·원 환율 4년 5개월 만에 최저, 엔·달러 환율도 20년 만에 가장 낮아져
■ 효과보다 손실이 큰 ‘나쁜 엔저’ 발생, 통화정책 바꿀 방편도 마땅치 않아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던 엔화 가치의 추락이 가파르다. 심리적 저항선마저 깨진 상태다. 연합뉴스
6월 9일 오전, 엔화 가격은 100엔당 938.44원이었다. 엔화가 950원 이하로 하락한 것은 4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온라인상에서는 “한국 물가가 더 비싼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일본여행 가면 꿀”, “일본회사 주식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장 쓸 일이 없어도 일단 엔화 환전해둘까 합니다. 기다리면 언젠가 다시 1000원 이상으로 올라갈 거라고 믿습니다” 등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엔화 약세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6월 7일 엔화 환율은 달러당 132엔을 돌파했다. 2002년 4월 4일(달러당 132.36엔) 이후 20년 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2022년 1월 1달러당 엔화 가격은 115.32엔이었다.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15% 이상 엔화 가격이 내려간 셈이다.

엔화 추락의 이유는 글로벌 통화정책과 역행하는 일본은행의 방향성 때문이다. 미 연준 등 주요국이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실행하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 완화를 고수하고 있다. 실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경제가 코로나19 위기에서 회복 중이고,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경제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딜레마에 빠진 일본 경제


▎아베 전 일본 총리는 돈을 찍어 경기를 띄우려 했지만, 인제 와서 정책을 선회하기도 어렵다. 연합뉴스
이처럼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저를 유도해서 기업 실적과 주가를 개선시켜 투자 활성화, 임금 인상, 내수 소비를 일으키겠다는 목표인 것이다. 궁극의 목적은 일본 불황의 근원인 디플레이션 탈출이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점은 잘 안 됐을 때 방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일본의 재정적자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256%에 달하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엔저가 심화하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국가채무가 엄청난 상황에서 부담일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이미 주력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한 상태다. 즉 엔저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출에 별 도움은 주지 못하면서 자국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

이미 심리적 마지노선인 1달러당 130엔 벽이 깨지면서 수습 불가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당장은 엔저로 일본 주식이 싸 보일 수 있지만, 엔화 약세는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의 장래가 어둡다는 징조다. 이에 관해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아베노믹스의 ‘청구서’ 때문에 기시다 총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덫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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