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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⑧ 수락산 불암산 소풍길에서 

 

인생은 먼지에서 왔으니… '지금'을 사랑하자

천상병 시인의 시어처럼 우리는 지구 나라에 잠시 소풍을 왔는데, 오랜 세월 이끼가 끼어야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소풍 나온 것을 깜박 망각하고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다 가지려고 하고, 움켜만 쥐고, 자기가 사는 영역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길은 왠지 가까운 소풍도 낯설고 먼 나라,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

서울 둘레길 제1구간인 수락산, 불암산 소풍길. 잠시 익숙한 것을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사고의 물꼬를 트고, 참 나를 돌아보게 하고, 정체성을 점검하게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풍길 순례길이 있고, 우리네 인생사처럼 그 맛은 십인십색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비슷비슷한 인생길이자 소풍길이고,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면 모든 인간은 갖가지 사연과 아픔을 먹고 산다는 것을 알게 한다.


수락산 불암산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불과 10여 년 만에 산은 건강한 사람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남녀노소 누구나 산을 타고, 걸으며,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소풍길 순례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새로운 길을 설계한 제주올레길의 전설 서명숙 이사장으로부터 몇 년 전에 직접 들은 강의가 생각났다.

어쩌면, 문헌에 남은 세계 최초의 소풍길 인생길 마음의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로,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전도와 번뇌 해탈 무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역사적인 길이며,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북쪽 끝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트델라 성당까지 이어진다. 그 길은 장장 800km에 달하며, 10개의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길이다.

서명숙 제주올레길 이사장은 시사저널, 오마이뉴스 등 23년간 언론계에서 종사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밀려오는 삶에 대한 회의와 우울, 번뇌가 죽음 직전까지 쌓여,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곳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왜 내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편집장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며 괴로워하는가? 그리고 왜 13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와서 비싼 돈을 들여 이런 고생을 하고 이런 깨달음을 얻는가?”라는 원초적인 물음 속에서 평화를 찾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아름다운 제주도를 떠올렸다고 한다.

마침내 2007년 제주올레를 설립, 전국에 확산하면서 서울 둘레길도 빛을 보게 된 후 오늘에 이르러 내가 지금 온전히 그 길을 걷고 있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으리.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창조적 파괴 실천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삶의 질을 바꿔 놓았다고 생각하니, 새삼 생각의 위대함을 생각해보며,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둘레길이지만 높은 산처럼 때론 고개도 넘고, 개울도 건너고, 채석장도 지나며 정상에 올랐다. 마치 성냥갑을 쌓아놓은 듯한 서울 시내가 보였다. 아! 저런 곳에서 내가 아등바등 살고 있었구나…
세상만사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다가왔다. 진수성찬을 펼쳐놓고, 동행한 이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하이라이트는 ‘임사체험’ 경험담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먹고,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8시간 후 깨어난 곳이 어느 병원 응급실이었다고 했다. 정신이 들면서 60여년간 살아온 인생 파노라마가 10여 초간 빠르게 스쳐 갔는데, 대부분 순간이 점으로 누군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다가 점차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온 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8시간 중 무의식 세계에서 오로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0여 초, 정신이 들어오는 찰나의 시간이었는데, 단연코 사후의 세계는 없고, 인생은 먼지에서 왔으니, 지금을 사랑하고, 남을 해코지하며 살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막걸리 한잔 들이키며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웃고 울다 걷다 보니 도봉산역에서 시작하여 화랑대역까지 서울 둘레길 1구간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마음을 함께하면서 웃고 울며 걸을 수 있는 형과 동생, 선배 후배가 있고, 이렇게 행복한 소풍길 인생길 순례길이 가까이 있으니, 서울은 참 살 만 한 멋진 도시가 아닌가!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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