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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 신냉전시대 한국 외교를 진단한다] ‘외교 베테랑’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실리론(實利論) 

“강대국 정치의 속성 알면 ‘전방(前方) 국가’의 계책 보인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한·미 동맹 키 맞춘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 시험대는 대중(對中) 관계
■북한 최후 도발은 ‘ICBM 대기권 재진입’, 핵실험 넘는 위협 될 수도
■한·미 동맹 중심 동서축과 남북축 외교적 균형 이뤄야 국익에 도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6월 10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 동서축 외교와 남북축 외교가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우재(書友齋). 집으로 들어서자 책이 촘촘히 꽂혀 있는 책장이 벽을 채운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 위에는 책과 메모가 정돈돼 있었다. 현관 옆 벽에 걸린 액자의 ‘책과 벗을 위한 공간’이란 글 뜻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남산 자락에 있는 송민순(73)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구실이다.

6월 10일 송 전 장관을 찾았다. 1975년 외무부 공무원으로 입직한 이래 2008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퇴임하기까지 33년간 한길만 걸어온 외교통이다. 이후 민주당 비례대표로서 18대 국회에서 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한 것과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지낸 것까지 더하면 그의 외교 분야 경력은 42년에 이른다. 동서 냉전과 남북 평화 무드를 모두 겪은 외교 베테랑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세계와 한반도 정세는 급변기에 놓여 있다. 북한은 잇따른 미사일 도발을 통해 긴장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질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른 아침부터 송 전 장관을 찾은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가 소탈하고 신선하다는 평을 받는다. 어떻게 보나?

“기존 정치인들이 하는 행동과 다르니 그런 느낌은 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국내적으로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대외적으로는 다음 행동을 위한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 그래서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걱정되기도 한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도발을 두고 윤 대통령은 ‘원점 타격하겠다’고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대외적으로는 정치적 용어를 써야 한다.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는 수준이 적절하다. 의미는 같아도 직설적인 표현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면 상대는 우리가 공격하는 원점을 또 타격할 테고, 결국 포탄에서 미사일, 그다음엔 핵무기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 결국 안보와 경제가 모두 노출돼 있는 우리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은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스타일을 어떻게 보나?

“일견 단순명료해 보인다. 외교라는 것은 국가 간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데 이익의 균형이란 건 단순명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단순명료한 스타일과 외교의 속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그게 앞으로 윤 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일 거다.”

윤석열 정부는 단순명료하고 직설적

새 정부의 외교 행보를 압축한 결정적 장면이라면?

“아직 결정적 장면이 없었다. 미국과는 같은 종이를 두 장 겹치는 것처럼 간명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외교의 결정적 장면은 중국, 일본을 만나는 데서 나온다. 중국과는 미·중 강대국 정치라는 거대 구조에 직면해야 하고, 일본과는 외교적 실리보다 정서가 개입하기 때문에 시원한 해법이 없다.”

외교 기조는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달라 보이나?

“문재인 정부는 주로 한반도의 남북을 중심으로 외교를 펼쳤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국제적인 축, 즉 동서축에 치중해 있다. 우리나라 외교는 남북과 동서축 균형을 잘 맞추는 게 핵심이다. 그런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새 정부의 과제다. 벽시계의 추는 정 가운데에 서지 않는다. 늘 좌우로 움직이게 돼 있다. 다만 그 진폭이 적당해야 어지럽지 않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진폭으로 좌우를 오가야 국민이 편안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일본보다 한국에 중요도를 두고 순서를 정했다기보다 일정상 편의가 제일 많이 작용했을 거다. 기왕 일본에 오는 김에 윤 대통령이 막 취임했으니 축하해주러 먼저 오는 게 좋은 것 아닌가. 생색도 난다. 외교란 것은 정해진 자산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한국을 일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이라고 하는 건 호사가의 의미 없는 비교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내놓은 메시지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나?

“윤 대통령이 ‘글로벌 피벗 스테이트(Global Pivot State)’, 즉 세계 중심축이란 표현을 했다. 한국의 전략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일치시킨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중국 견제는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공급망 동참이나 기후변화, 인터넷 표준, 인도·태평양전략 등 모든 문제에서 일치시킨 거다. 작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회담했을 때는 약간 간격이 있었는데 이번엔 거의 완전히 일치시켰다. 그렇게 해야 할 부분도 있고, 앞으로 운용에 유의해야 할 부분도 좀 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른 점으로는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선언이 대부분 빠졌다. 문재인-트럼프-김정은 삼각 구도로 돼 있던 모래 위의 가건물 흔적을 없앤 거다. 두 정상으로서는 현실에도 안 맞고 실적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회담을 재론할 여지가 사라진 건가?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선언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를 우리가 잘못 이해했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서 시작된 거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남쪽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제거하고 결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게 바탕에 깔렸다. 그런 의미는 카펫 밑으로 밀어두고 그냥 북한이 핵 포기하겠다는 말로 포장해서 세 명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마치 연극처럼 움직인 거다. 결국 아무 진전이 될 수 없다는 게 판명됐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나 바이든이 취임하자마자 그건 아니라고 한 거다. 그렇다면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선 왜 나왔느냐? 문 대통령이 자기 유산으로 생각하는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을 넣자고 끝까지 요청하니까 미국에서 받아주면서 거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만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구절 말이다. 이건 대만해협 안정이 파괴되면 같이 움직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바이든은 ‘일자리’를, 윤석열은 ‘안보 우산’을 얻었다”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의 투자를 얻었다. 우리가 얻은 건 무엇인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핵심 모토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다. 외교를 통해 미국 내 일자리를 확보하겠다는 말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삼성, 현대 등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음으로써 바이든은 자국에 가서 보여줄 게 생겼다. 우리의 국내 투자 재원을 미국에 주느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판단은 결국 기업 스스로가 경영 실리를 따져 결정할 영역이다. 우리가 얻은 건 안보와 경제에 걸친 한·미 동맹 강화다. 우리는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살고 있잖나? 지금 안보 우산을 걷어내면 비 맞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이 들고 있는 핵무기 위협에 직접 노출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사가 걸린 한·미 동맹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서로 득실을 나눈 회담이었다고 평가한다.”

윤 대통령이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회의에 참석한 걸 두고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을 폐기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IPEF 참여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미국이 그렇게 참여하라고 요구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당연히 참여해서 우리 권리를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IPEF는 문자 그대로 ‘프레임워크’, 즉 ‘틀’이다. 앞으로 내용물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IPEF 참여를 통해 어떤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IPEF는 미국 중심 경제 질서를 강화하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녹아 있다. 과거의 무역협정이나 경제 협력체는 서로 시장을 열어서 함께 이익을 교환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 미국은 자기 시장을 열 수가 없다. 시장을 열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표를 안 준다. 그래서 미국은 시장을 안 열면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한테 중국과의 공급망을 축소하라는 거다. 이러면 아시아 국가들은 옹색해진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일본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처럼 미국을 포함해 IPEF 참여국들이 서로 시장을 열자고 주장한다. 상호 시장을 개방하고 기술을 교류하는 틀로 가야지, 미국은 닫아놓고 아시아는 중국으로 못 가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미·중의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 위축, 북한 오판할 수도”

현 정부가 추구하는 한·미 동맹 강화 또는 재건에 따른 손익계산을 따져본다면 득실 중 어느 쪽이 클까?

“한·미 동맹에 있어 손익계산은 의미 없다. 우리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손익계산의 기준이 없다. 문제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계속 높아지고 있고, 미국은 중국·러시아와 전방위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이 걱정된다.”

한·미 동맹 강화보다 ‘재건’이란 얘기도 나오는데 강화와 재건은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 재건은 집이 붕괴된 걸 복원하는 걸 의미한다. 나는 재건이란 말보다 ‘강화 발전’이란 표현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한·미 동맹이 붕괴했다고 표현하는 건 국내 정치용어일 뿐이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북핵 위기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 징후로 볼 수 있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군사적 기술 발전 목적이 있다. 다음으로 국내 정치용이다. 핵 보유를 과시함으로써 주민들이 강력한 국가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하려는 거다. 또 대남·대미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쓰려는 목적도 있다. 적어도 이 세 가지 목적은 기본이고, 여기에 북한의 주 수입원인 무기 수출을 위해 자기들 군사기술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다. 요즘 상황은 좀 걱정스럽다. 과거에는 북한 도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면 어느 단계에 가서 미국과 중국이 나서서 대화로 유도했다. 그런데 미·중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한반도 위기관리 기능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

북한이 무모한 수를 둘 가능성도 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핵실험을 여섯 번이나 했는데 한 번 더 한다고 그걸 큰 사고라고 할 수는 없다. 진짜 사고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는 거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다만 재진입 실험을 언제 할지, 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이 지금까지 대기권 재진입 실험을 한 적이 없었나?

“유사 실험은 했지만, 실제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모형의 재진입 실험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판단이다. 화성-15형을 쏘았을 때도 탄두 크기와 중량을 줄이고 단축 발사했기 때문에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 실제 실험이라고 평가하기가 어렵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한·미 군사적 대응 수위와 적극성이 전과 달라졌다. 대응이 적절하다고 보나?

“보통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방법은 외교 수단과 억지 수단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있다. 두 가지가 잘 맞물려야 기능을 발휘한다. 한·미 공히 협상의 문은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외교적 수단보다 억지력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하다. 윤 대통령이 우리가 충분한 억지력과 단호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표시하고, 또 내부적으로 실행 태세를 유지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건 북한의 의도에 맞춰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기에 미사일 한 발만 실험해도 남쪽 대통령이 새벽부터 안절부절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진짜 위기는 북한의 ICBM 대기권 재진입 실험


▎미·중 갈등으로 두 나라의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이 약화하면서 김정은 북한의 미사일·핵 도발 위협에 따른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유엔 차원의 국제 공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형식적이나마 제재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제는 미·중·러 관계가 더 나빠져서 그나마 안보리 결의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유엔의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요구를 잘 들어주면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한·미, 한·중 관계를 제로섬으로 보는 거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는 외줄 타기만큼 어렵다. 윤석열 외교의 시험대는 대중 관계에서 시작된다. 중국은 안보든 경제든 한·중 관계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한국이 먼저 할 경우 그에 대해 공개·비공개 방식으로 유·무형의 대응을 할 거다. 중국을 겨냥한 한·미 관계를 강화할 때는 중국의 대응을 기정사실화하고 행보를 정해야 한다. 한쪽과 거래를 늘리면 다른 쪽 손님이 그만큼 떨어져 나간다는 냉혹한 현실을 계산에 넣지 않고 양쪽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면 사업을 잘 꾸려나가기 어렵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중국으로서는 사드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 주석의 방한이 어렵다고 볼 것이다. 중국은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그게 해결 안 된 상태에서 시 주석이 오는 건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관계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합리보다 정서가 끼어 있어서 참 어렵다. 서로 체면을 살리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양쪽 국민 정서와 정치 풍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을 충분히 갖는 수밖에 없다. 뉴스를 보니 6월 말에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만나서 해법을 찾을 거란 전망이 나오던데, 한·일 문제는 두 정상이 만나서 갑자기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제와 정치적 교류는 꾸준히 이어가되 과거사 문제는 토론과 시간이 제공하는 지혜를 통해 의견차를 좁히는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신냉전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설정도 꽤 복잡한 문제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도덕적 문제에 대해 우리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은 누구 편이니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비치기보다는 ‘침략과 전쟁 반대’라는 보편적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다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적·인도적 지원은 좋지만, 직·간접 무기 지원 같은 건 조심해야 할 거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신남방정책과 현 정부가 참여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어떤 차이가 있나?

“신남방정책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우리에게 제2의 수출시장이다. 지난 정부에서 했던 거라고 소홀히 하기보다 국익을 고려해서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중국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대해 거부감이 크다. 저들은 미국 손도 잡고 중국 손도 잡아 살아가길 원한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의 속성과 호혜적 협력의 확장 전망에 대해서도 정부가 좀 큰 전략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는 국민 정서 영역, 충분한 시간 필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대중(對中), 대일(對日) 외교가 본격화할 때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이 비로소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정부가 또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면?

“강대국 정치의 속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한·미, 북·중 관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긴 하지만,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을, 북한은 중국을 각각 믿고 움직이지 않나? 하지만 대립하는 강대국은 자기 몸 다치기 전에 먼저 전방(前方) 국가들의 희생을 기다린다. 한반도의 사정과 같지는 않지만,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자. 푸틴이 침공해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하루 평균 100명씩 죽어가는데 미국, 영국,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가서 피 흘리나? 안 한다. ‘내가 앞장서서 막아줄게’ 이런 강대국은 없다. 전방 국가들이 먼저 희생하는 걸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개입하는 거다. ‘전쟁을 준비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금언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금 한·미는 이런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동맹을 믿고 행동할 때도 종국적인 자기 계책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국 대사들 면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태용 주미 대사와 장호진 주러 대사의 경우, 본부에서 핵심 정책 분야는 물론 해당 국가에서 외교 현장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다. 외교가에서 말하는 ‘safe hands’(양국 관계를 ‘안전하게 다룰 경험이 있는 손’이라는 의미)에 해당한다. 정재호 주중 대사와 윤덕민 주일 대사도 두 나라에 대한 오랜 연구와 넓은 교유를 갖고 있어 직무를 수행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모든 대사가 그렇지만, 특히 한반도 문제에 영향을 직접 미칠 수 있는 국가나 국제기구에 나가는 대사들은 임지에만 몰두하지 말고 다른 나라에 주재하는 우리 대사들과도 직접 횡적 교신을 통해 균형 있는 정세 파악과 무게 있는 정책 건의를 할 책무가 있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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