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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평양리포트] 코로나 대유행 속 김정은식 선군(先軍)정치의 두 얼굴 

‘한반도 운전자’ 떠나간 자리에 나 홀로 과속질주? 

北, ‘건국 이래 대동란’ 코로나19 위기에도 탄도미사일 발사
7차 핵실험 운 띄우며 주민 동요 잠재우고 협상 주도권 노려


▎북한은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방역위기’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방역 활동에 들어갔다. 만수대창작사는 다양한 선전화를 만들어 주민들의 방역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7차 핵실험 시기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간의 신경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평양의 도발이 입체화하고 있다. 현충일 전날 탄도미사일 8발 무더기 발사는 초유의 일이다. 순안, 함흥 등 4곳에서 각각 2발씩 발사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 3월 20일 방사포 4발을 발사했고 5월 25일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에 도착하기 직전에 3발을 더 발사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5월 12일 ‘건국 이래 대동란(大動亂)’이라던 코로나 사태 발생을 선언한 지 3주 만이다. 한·미가 4년 7개월 만에 오키나와 근처에서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마친 지 하루 만이고 한·미·일 북핵 대표가 서울에서 협의를 마친 직후다.

실제 미사일의 방향이 동해가 아닌 남쪽이라면 과연 방어가 가능할까? 합참은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 대응 지시로 북한 도발 다음 날인 현충일에 동일하게 동해로 지대지 미사일 8발을 발사했다. 남북 양측이 강대강 구도에 따른 비례적 맞대응 수순이다. 6월 하순 기준으로 누적 발열자 500만 명을 보유한 북한의 코로나 확산은 과연 미사일 발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 축젯날 불꽃놀이도 아니고 휴일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의도는 무엇인가? 차기 도발로 예상되는 7차 핵실험은 언제일까? 다양한 쟁점 분석이 필요한 복잡 미묘한 시점이다.

북한 도발의 초점은 일차적으로 군사력 과시다. 과거 도발에서 1회 최대 미사일 발사는 4발이었다. 북한은 여러 곳에서 무더기로 발사해 목표물 동시 타격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위협 강도와 충격을 높이고 있다. 북한은 8발 발사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 전략자산까지도 격퇴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과시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에이태큼스(ATACMS) 및 초대형 방사포 등을 연속해 남측으로 쏠 경우 한·미 양국의 요격 능력이 무력해질 수 있는 가상현실을 보여주었다. 여러 곳에서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면 원점 타격도 용이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현행 3축 미사일 방어체계로 북한의 동시다발적 미사일을 철저하게 요격시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각종 장비 구축 등 추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

다음으로는 무더기 발사를 해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채택되지 않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북한이 악용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양국 순방 직후인 5월 2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응징하는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는 미국이 의장국이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형성된 미국과 중·러의 대립 구도는 유엔 안보리를 무력화시켰다. 평양으로선 더는 유엔을 의식해 도발을 자제할 이유가 사라졌다.

유엔에서는 남북한 및 미국과 중국 대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7차 핵실험을 둘러싸고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미·북 간에 고착된 무반응(no reaction) 구도를 타파하려면 고난도 도발은 필수적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에게 “Hello(안녕)! period(마침표)”라며 할 말이 없는 바이든 대통령을 협상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과거와는 색다른 도발 카드를 고르기 시작했다. 북한이 7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이어갈 경우 유엔이 아닌 한·미·일 협력에 의한 개별 추가 제재를 발동할 수밖에 없으나 실효성은 미지수다.

북한의 전례 없는 미사일 발사는 코로나19로 최대비상방역을 선언한 후 흉흉해진 민심 관리 목적도 있다. 역설적으로 평양은 코로나 위기 국면 속에서 사회주의 정치방역(?)의 승리를 선언하며 전지전능한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전한다. 평양은 초유의 미사일 무더기 발사로 방역 실패의 위기를 교묘히 넘기고 있다. 코로나 방역에 따른 봉쇄와 경제난으로 인민의 불만이 최고 지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과의 대립구도가 나쁘지 않다. 특히 핵 항모가 동원된 한·미 연합훈련은 반미 선전 선동에 호재다. 미 제국주의의 침략 선동은 6·25전쟁 발발 72주년을 앞두고 인민에게 대미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북한 미사일 도발로 시작한 남북의 강대강 대치


▎한·미 군 당국은 6월 6일 북한이 전날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8발을 발사하자 이에 비례해 지대지 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8발을 동해상으로 대응 사격했다. / 사진:합동참모본부
한편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정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지적에 “몽유병자들의 개꿈”이라며 발끈했다. 앞서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의 더그밴도우 수석연구원은 6월 3일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북한이 팬데믹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미·일 3국은 북한의 붕괴에 대해 체계적이고 차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미국 간에 코로나를 둘러싼 심리전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중반 필자는 서울대병원에서 1년쯤 사용한 의료기기를 북한에 전달하고자 평양을 방문했다. 서울시 관계자와 당시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등이 동행했다. 의료기기를 전달받은 평양의 특급병원인 조선암센터 수술실 갓등에는 ‘made in Czech(체코) 1974’라고 쓰여 있었다. 진열장에 있는 수술 가위 등은 녹슬고 낡아서 침대에 누워 있는 말기 암 환자 수준이었다. MRI 등은 전달했지만, 소모품은 어떻게 조달할지 의사들은 긴 한숨을 쉬었다.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열악한 수술실 기기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4월 중순 태양절 행사 이후 평양과 신의주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 장비가 없어 확진 표현보다는 유열(有熱, 발열)자란 표현을 사용했다. 청정국을 선전하던 북한은 마침내 코로나 발생을 전격 선언하며 최대비상방역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평양은 코로나 비상방역을 공표한 지 2주도 안 돼 코로나의 거센 불길을 잡았다고 한다. 500만 명에 이르는 유열자가 발생했지만, 봉쇄와 격폐 및 사회주의 방역의 효율성으로 위기를 극복 중이라고 했다. 사망자는 여전히 100명 미만에서 멈춰 있으며 사망률 0.002%는 남한의 0.13%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코로나 극복 사례이나, 외부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코로나19 대유행 선뜻 인정한 김정은의 속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쓰고 평양 시내 약국을 찾아 의약품 공급실태를 확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며 비상방역체계 가동을 지시했다. / 사진:연합뉴스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왜 김정은은 코로나 청정국에서 갑자기 건국 이래 대동란을 선언하며 코로나 발생을 인정했을까다. 북한에서 감염병 발생은 무조건 비공개가 원칙이다. 인간 대상의 전염병 확산은 전지전능한 최고지도자의 무오류성과 부합하지 않는다.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2009년 조선중앙통신이 신의주와 평양에 확진자 9명이 발생했다고 밝힌 사례가 유일하다. 2003년 사스(SARS),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MERS) 유행 당시에는 검역 조치 설명 외에 어떤 발병 보도도 없었다. 반면 코로나 발생 첫해부터 지금까지 [노동신문]의 보도만 5000여 건에 달한다. 분명 과거와 다른 대처다.

[노동신문]은 발병 선언 전까지는 2년 3개월간 의심진단자는 있지만 확진자는 없으며 육·해·공 방역의 중요성만 강조했다. [노동신문] 보도와 물밑 정보로 추정컨대 신의주, 순천, 해주 등지에서 환자가 발생했으나 극단적인 봉쇄로 막아냈다. 하지만 경제가 발목을 잡았다. 북한은 2020년 2월 초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1400㎞ 북·중 국경 빗장을 완전히 걸었다. 2년간의 봉쇄는 북한 경제를 마비시켰다. 광물자원을 중국에 수출하고 받은 의류 및 공산품 원자재를 임가공해서 재수출하는 무역 공급망이 붕괴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지난 2년간 북한 경제의 자금 조달 창구를 그럭저럭 차단했다. 김정은의 사금고가 비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생존이 바이러스 차단보다 우선이라는 판단으로 평양은 올해 초 중국과의 물자 수출입을 전격 재개했다. 북·중 화물열차는 2020년 8월 운행이 완전히 중단됐다가 지난 1월 중순 재개됐다. 화물열차 운행 재개로 올해 1분기 북·중 교역액은 1억9689만 달러(약 2493억원)로 작년 동기 대비 10배 증가했다. 단둥-신의주 루트를 통해 화물과 북한에 귀환하지 못했던 중국 거주 북한 근로 인력이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도 동행했다. 지난 2년간의 철통 봉쇄에 구멍이 생겼다. 북·중 화물열차 운행은 4월 말 다시 중단됐다.

연이은 정치행사 개최는 코로나 확산의 무대를 제공했다. 연초 노동당 전원회의는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10주년, 2월 16일 김정일 출생 80주년 등 꺾어지는 해를 맞이해 대규모 정치행사 개최를 결정했다. 2월 막을 올린 정치행사는 4월 태양절 행사를 거쳐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행사에서 절정에 달했다. 행사를 마치면 김정은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정치(photo politics)’를 감행했다. 참가자들은 최고 지도자와 사진을 찍는 것에 목을 맨다. 사진을 찍어야 해당 단체나 군부대는 선물도 받고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노(no) 마스크 대중 집회는 코로나 확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다. 발열자가 평양에 집중되면서 사달을 은폐하는 것이 한계에 왔다. 중국 수입 물자의 최종 도착지인 평양에 환자 발생이 집중됐다. 인구 300만 명인 평양을 봉쇄하려면 코로나 확산 선언은 불가피하다. 스마트폰 사용자 600만 명인 북한으로서는 괴담을 확산시키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오히려 코로나 위기를 봉쇄와 격리 등을 활용해 민심 안정과 정권 강화의 계기로 활용했다.

둘째, 실제 확산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다. 6월 하순 기준 발열자 500여만 명에 도달했고 전체 인구의 25% 수준이나, 실제는 50%를 상회할 것이다. 북한 당국 발표에 따르면 백신 접종률이 0%이지만 사망자는 100명 미만이며 이마저도 5월 하순부터는 사망자 ‘제로’다.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고려한 통계조작이다. 보건 당국은 사망자가 발생하면 과로사나 장티푸스 등 여타 전염병이나 약물 부작용에 의한 단순병사로 보고한다. 조선중앙TV는 최대비상 방역체계가 가동된 5월 12일부터 20일간의 기록을 담은 편집물을 통해 지난달 19일 함흥시 회상구역의 한 병원 근무자가 아픈 몸을 이끌고 주민 280여 명을 돌보다 순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환자 사망이 아니라 의료인 사망을 미담으로 발표했다.

‘최고 존엄’ 훼손될까 전전긍긍하며 통계 조작


▎4월 26일 북한 조선인민혁명군 (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는 각종 미사일을 선보였다. 이날 열병식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군중이 운집해 코로나19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은 5월 12일 당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이후 공식행사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북한은 코로나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우리 당의 정확한 영도와 특유의 조직력과 단결력의 결과’라고 홍보했다. 김정은의 영도력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정치방역의 승리라고 선전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북한 도시와 농촌구조의 특성상 철저한 격폐 조치가 성과를 거두며 정점을 지난 것처럼 보인다. 5월 말 평양 주재 외국인들의 자택 격리가 해제됐다. 평양은 큰 불길을 잡았지만, 농촌은 상황이 녹록지 않다. 농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내기 전투에 매진하고 있다. 하위 30%, 대략 700만 명의 인민은 장마당에 생계를 의존하는 만큼 발열에도 불구하고 장사에 나선다. 결핵 유병인구는 13만여 명,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40만여 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북한의 선전과 달리 상황이 가볍지 않다고 평가했다. 코로나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만큼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

마지막 쟁점은 남한의 코로나 약재 등 인도적 지원을 수용할 것인가다. 2004년 4월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 북한은 지원을 요청하고 국제사회 및 남한의 인도적 지원을 받았다. 정부 차원의 9억원을 포함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 648억원 상당 물자를 북한에 지원했으며 국제사회도 2044만 달러 상당을 지원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 등은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코로나 백신 대북지원 방침’을 밝혔다. 미국도 인도적 지원 방침을 선언했다. 하지만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의학과 민족 공조는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비록 버드나뭇잎을 우려먹고 버티지만, 남한 지원은 미사일과 핵실험 임박 상태에서 불가하다. 중국은 수망상조(守望相助: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를 강조하며 즉각 지원에 나섰다. 김정은은 중국식 방역의 장점을 거론하며 심양에 고려항공 비행기 3대를 보내 물자를 실어 왔다. 붉은 깃발을 단 고려항공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와서 화물을 수송해가는 이미지는 공격용 핵 사용을 선언한 대원수 김정은의 위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산과 군이 보유한 약재를 ‘사랑의 불사약’이라며 인민들에게 배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현재까지 의약품 430여 종 3억6000여만 점이 치료예방기관과 각지에 공급됐다고 보도했고 [노동신문]은 “방역 위기 상황에 대처해 치료방법과 치료전술을 보완하는 사업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약재는 턱없이 부족해 인민들은 동의보감 처방의 민간요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노동신문]은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게 화폐 소독을 철저히 하고 평소 녹차와 마늘, 조개, 당근, 시금치, 버섯 등을 섭취해 면역력을 높이라고 당부했다. 고위층을 제외하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식 해법이다.

북한은 백신 접종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보인다. 코로나 백신에 불신을 드러내며 거리두기 위주 방역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평양 봉쇄를 해제하고 중국산 백신을 들여온 정황까지 포착돼 북한의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노동신문]은 6월 5일 자 ‘혼란스러운 세계 방역 상황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기사에서 “새로운 변이 비루스(바이러스)들의 끊임없는 출현으로 왁찐(백신)은 더 이상 ‘만능약’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WHO는 세 차례에 걸쳐 북한에 코로나19 예방백신 지원을 제안했으며 현재도 계속 지원을 제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WHO는 대북지원에 있어 중국·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면서 협력체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이 직접 WHO로부터 백신을 받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백신을 받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서방의 모더나, 화이자 등은 냉동시설 미비와 불신 등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1974년 무상치료제를 선언했지만, 실제 의약품이 없으니 무상 선전이 의미가 없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라고 선언했지만 예방이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다. 북한의 국영 보건의료 4대 체계는 경제난으로 무너지고 있다. 1974년 전반적 무상치료제 실시를 선언했으나 실제는 90% 이상 주민이 의료체계에서 소외됐다. 약 또는 진단, 환자 이송 시 뇌물 지불은 공공연한 관행이 되었다. 약 구입을 위해 90% 이상이 의사에게 별도로 돈을 지불했고 약 매대 및 장마당에서 약재를 구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산, 러시아산 및 동남아산 약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한의 사회보험+공공부조 체계와 대조적이다.

선군정치 고수하면서 보건의료체계 사실상 붕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2일 오산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 (KAOC) 작전조정실을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1966년 선언한 예방의학에서는 위생선전, 각호 담당의사제도와 예방접종을 강조하나, 실제는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각종 질병 예방 및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 남한의 예방의학과 치료의학의 균형적인 발전 정책과 대조를 보인다. 1966년 선언한 의사담당구역제를 통해 무의촌, 위생선전 등을 강조하나, 의사에 대한 처우와 지원 미흡으로 형식적 치료에 그치고 있다. 북한은 고려의학 강화로 서양의학과 복합 진료를 강조하나, 의약품 생산 부족으로 1차 진료 80% 이상을 고려의학에 의존한다. 남한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의료체계 이원화로 각자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요컨대 북한은 200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보건의료 기반이 붕괴해 영유아 사망률, 결핵 사망률, 감염성 질환 사망률, 평균 수명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 선군정치 속에서 의료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터키 의사들이 경제난에 따른 최악의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독일 등으로 출국하는 현상은 의료와 경제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시사한다.

이제 김정은에게 윤석열 정부와 거친 샅바 싸움을 마다할 이유가 사라졌다. 김정은은 5년간 문재인 정부와의 달콤한 동거가 사라진 데 대한 허망함을 미사일로 상쇄하고 있다. 올해 들어 18번째, 9일에 한 번꼴의 도발이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은 새 정부 안보태세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이라며 한·미 확장 억제력과 연합방위태세의 지속적인 강화를 지시했다. 새 정부의 강대강 정책은 불가피하다. 다양한 요격 능력 구축은 필수적이다. 다만 남북 당국 간 직접 소통은 물론 중·러를 통한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우리의 경제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워싱턴 도착 직전에 북한이 발사한 ICBM 등 3개 미사일 8발의 가격은 2000만 달러, 단거리탄도미사일 가격은 1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평양이 군사비를 보건의료에 투자한다면 서울도 상응하는 지원을 할 수 있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코로나 치료제 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는 물밑 남북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지, 무더위 속에서 서울·평양의 창의적이고 스마트한 지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 대동란이 북한에는 치명적이지만 남북이 접점을 찾고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된다면 진정한 민족 공조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남북 양측이 비례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한이 7차 핵실험으로 도발의 쐐기를 박는다면 양측은 돌파구를 찾기가 여의치 않아질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가 핵에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핵 없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 벌일 평양의 자충수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2022년 여름은 더위 속에서 7차 핵실험, 미사일 발사 소식과 씨름해야 할 것 같다. 평양에서 도발을 중단하는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 같은 희소식을 기대한다.

※ 남성욱 -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한 뒤 2002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 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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