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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전시] 법화경展, 만인존엄·인류공생의 메시지 

‘장대비는 초목을 가리지 않는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불교 경전의 정수(精髓) [법화경] 유물 190여 점 한자리에
서울·부산 이어 대구에서 4년 만에 선보여, 9월 30일까지 전시


▎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꼽히는 [법화경(法華經)]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법화경-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이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한국SGI 대구광역수성문화회관에서 열린다. 9월 30일까지 [법화경] 관련 유물 19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 사진:한국SGI
"아, 둔황의 천년 신비가 되살아난 것만 같구나.”

전시관을 둘러보던 한 관람객이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 관람객이 서 있는 방은 천장과 벽마다 고색창연한 옛 벽화로 치장돼 있었다. 석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조에 미디어아트를 이용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의 밍사산(鳴沙山) 동쪽 끝단에 있는 불교 유적인 둔황 막고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막고굴은 남북으로 1600m가량 펼쳐진 절벽에 석굴 492개를 파서 부처를 모신 성역이다. 4만5000㎡에 달하는 면적에 2400여 점에 이르는 불상과 소조상, 광대한 벽화가 있어 세계 불교 문화 유산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실크로드가 번성했던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00년 우연히 16굴 북벽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의 한국SGI 대구광역수성문화회관에서 6월 11일 개막한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이하 법화경전)은 막고굴 일부를 재현했다. 1000여 년 전 벽화를 그린 화공(畫工)들의 숨결을 미디어아트로 되살렸다. 막고굴 전시관에 들어서면 쟁기로 땅을 일구는 농부와 농작을 마치고 불탑 앞에서 예배하는 무리가 한쪽 벽에 등장한다. 이들은 벽화에 고정돼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때마침 시원한 빗소리가 산천초목을 적신다. ‘장대비는 크고 작은 초목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내린다’는 [법화경]의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를 표현한 장면이다.


▎중국 간쑤성의 세계문화유산인 둔황 막고굴을 재현한 막고굴 전시관. 미디어아트를 이용해 생동감을 더했다. / 사진:한국SGI
법화경전은 2006년 홍콩을 시작으로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비롯해 현재까지 17개국에서 열렸다. 연인원 90만 명이 관람해 호평을 받았다. 희귀유물 10만 점을 소장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양고문서연구소와 중국 둔황연구원,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 등 6개국 12개 연구기관이 협력했다. 국내에선 2016년 서울과 2018년 부산 전시회에서 18만여 명이 관람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중단됐다가 4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모처럼 열린 전시회인 만큼 전보다 짜임새를 제대로 갖췄다. 2000여 년간 여러 언어로 번역돼 전승된 [법화경] 사본을 비롯해 세계 연구기관들이 소장한 [법화경] 관련 문물 등 190여 점을 선보였다. 특히 러시아 동양고문서연구소가 보유한 페트로프스키본(중앙아시아에서 출토된 범문 법화경)을 비롯해 일반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던 인류의 지보(至寶)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6월 11일 한국SGI 대구광역수성문화회관 특별전시장에서 개최된 ‘법화경-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 개막식 참석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 사진:한국SGI
[법화경(法華經)]은 불교의 최고 경전으로 꼽힌다. 석존(釋尊)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들 중에서도 으뜸이다.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하다’는 만인존엄(萬人尊嚴) 메시지가 [법화경]의 요체(要諦)다. [법화경]의 가르침은 중생의 구제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토대가 됐다. 2000여 년에 걸쳐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돼 전해 내려온다. 전시회를 공동 주최한 한국SGI 김인수 이사장은 “법화경을 통해 불안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간존엄의 회복이라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면, 진흙탕 속 연꽃처럼 이 사회에 평화와 공생의 꽃이 활짝 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불교 태동과 법화사상의 전파 과정 한눈에


▎대승경전의 최고봉인 [법화경]은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세계로 뻗어 나갔다. 법화경전에서 여러 사본을 만날 수 있다. / 사진:한국SGI
[법화경]의 특징은 석존의 진리를 비유로 풀어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했다는 데 있다. 누구나 석존이 깨달은 진리에 다가감으로써 만물공생의 이치를 체득하고 평화 창출을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다. 석존은 부처가 되기 위한 길을 설파하면서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일곱 가지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가 [법화경]의 근간을 이루는 ‘법화칠비(法華七譬)’다. 전시회에는 법화칠비를 쉽게 풀어써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관을 둘러보면 불교의 태동과 전파 과정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동아시아 3국으로 전래된 법화사상은 각 나라의 백성을 구하는 염원이 담긴 저마다 특색 있는 불교 문화를 잉태했다. 한반도에서 꽃피운 법화사상의 정수(精髓)는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이다. [법화경]에는 다보불(多寶佛)이 석존과 제자들 앞에 나타나 석존의 설법이 옳다고 증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바로 이 장면을 형상화했다.


▎6월 11일 개막한 법화경전에는 불교의 태동과 동아시아 각국에서 법화사상이 뿌리내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사진:한국SGI


일본으로 건너간 법화사상을 정립한 니치렌(日蓮, 1222~1282) 대성인의 친필(일본 국보로 지정)도 만날 수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남편을 잃고 절망하는 한 여신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끝까지 신심(信心)을 지속하면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듯이 범부도 반드시 부처가 된다”고 위로했다. 니치렌 대성인은 1260년 당시 최고 권력자인 호조토키요리에게 전한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사상이 바로 서야 국가도 편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다보불(多寶佛)과 석가(釋迦)가 만나는 〈법화경〉의 한 대목을 형상화했다. / 사진: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다보불(多寶佛)과 석가(釋迦)가 만나는 〈법화경〉의 한 대목을 형상화했다.


법화사상이 중국 불교에서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구마라습 번역본도 만날 수 있다. 5세기 초 구자국 출신 승려인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이며 [법화경]의 여러 번역본 중 최고로 꼽힌다. 이와 함께 ‘젊은 구마라습상’(구자석굴연구소 소장), 인도 아소카왕 석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의 주두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6월 11일 법화경전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커팅식을 하고 있다. / 사진:한국SGI


전시회는 중앙일보S, 공익법인 동양철학연구소, 둔황연구원, 재단법인 한국SGI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구광역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양고문서연구소,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 등이 후원한다. 전시는 오는 9월 30일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연휴(9월 9~12일)를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린다. 사전 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없다.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展이 개최되는 한국SGI 대구광역수성문화회관 전경.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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