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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16)] 왜 모든 종교는 피와 물에 주목하는가 

기독교 이전의 수많은 다신교 신이 선보였던 인간 영혼 정화의 역사 

와인은 예수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에 등장, 세례는 예수가 보여준 ‘물의 역사’ 출발점
피·와인·물이 상징하는 정신과 영혼의 정화는 그 누구도 풀기 어려운 인류의 영원한 숙제


▎성배를 들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신관. 신에 대한 의식용 성배 안에는 물이나 와인을 담는다. / 사진:유민호
필자의 인생 상담에 응하는 일본인 친구 Y가 있다. 한 세대 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도움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조언을 구한다. 일본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삶의 상담 역할을 하는 ‘소당야쿠(相談役)’가 일상화돼 있다. 바둑이 그러하듯, 옆에서 보면 훨씬 더 잘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와인을 둘러싼 Y의 흥미로운 체험담 하나를 듣게 됐다. 전 세계 최상이자 최고가로 통하는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와인이 주인공이다. 몇 달 전 도쿄에 있는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에서 1975년산 로마네 콩티 시음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만난 6명이 참가비 형식으로 1인당 35만 엔(약 335만원)씩 내고 진행한 사적 모임이었다고 했다. 보통 일본인이 들으면 귀를 의심할 수준의 고가다. 필자가 아는 한 Y는 지난해부터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황당한 얘기지만 Y의 부모가 70대 황혼, 아니 임종 이혼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울한 마음도 달랠 겸 일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별난 경험이란 점에서 참가했다고 한다. Y는 결코 부자가 아니다. 명품과는 거리가 먼 유니클로 브랜드 옷차림에다 100엔숍 생활에 익숙한 평범한 시민이다. 일생일대의 특별 이벤트인 셈이다.

‘누가, 왜’는 로마네 콩티 6인 시음회에서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로마네 콩티는 이탈리아 로마의 가톨릭 교황만을 위한 와인으로 출발했다. 권위와 역사가 남다르다. 그러나 그 같은 배경과 맛의 역사보다 누가, 왜 그런 모임을 주관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7년 전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 바로 앞 초대형 와인 전문점에서 봤던 로마네 콩티 한 병 가격은 최하 2만 유로(약 2684만원)였다. 로마네콩티 한 병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마실 경우 한 병에 5000만원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지만 로마네 콩티는 미슐랭 투스타와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다. 쓰리스타 레스토랑은 ‘반드시’ 로마네 콩티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특별히 제작된 고가의 와인 보관 시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35만 엔(약 335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참가비지만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의 음식과 함께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 ‘왜’와 관련해보면 돈을 목적으로 한 시음회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희귀한 암에 걸려 시한부 삶에 들어선 60대 남성이 주관했다. 도쿄에 부동산 몇 개를 가진 동네 부자 정도로 비쳐졌다. 다른 목적 없이, 젊을 때부터 수집했던 최고급 와인을 죽기 전에 사람들과 나누려는 의미에서 시음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자기가 시한부 삶에 들어섰다는 얘기도 공표하면서 로마네 콩티를 한 방울도 입에 안 댔다고 한다. Y가 그 60대 남성의 부음 소식을 접한 것은 시음회 2개월 뒤였다고 한다. “인생 마지막 순간, 함께 로마네 콩티를 나눌 수 있어서 몹시 기뻤습니다.” 딱 한 번 시음회에서 만난 것이 전부지만 저 세상에 가기 전 남겼던 편지가 Y의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에 떠오른 것은 2000년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최후의 만찬’이었다. “와인이 나의 피”라고 말하면서 제자들과 마지막 순간을 나눈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마네 콩티 시음회가 최후의 만찬을 의식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품(品)과 격(格)의 스토리로 와닿았다. 인생의 마지막을, 2만 유로(약 2684만원)짜리 고가 와인으로 끝냈다는 것에 감동한 것이 아니다. 시음회에 모인 6인 모두가 서로 생면부지 관계였다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다.

와인은 공유 의식의 상징물

로마네 콩티를 최후의 만찬 재료로 삼을 경우 대부분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시야에 둘 듯하다. 아예 아들이나 손자에게 선물로 안길 수도 있다. 그러나 60대 남성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교황의 와인을 공유했다. 가족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 와인을 생면부지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것이 인상 깊다. Y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6개월 시한부 삶에 들어설 경우 최후의 만찬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봤다. 로마네 콩티는 엄두도 못 내겠지만 과연 어떤 것을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지 상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생 마지막을 눈앞에 둘 때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답일지 모르겠다.

예수의 만찬에서 보듯 와인은 공유 의식의 상징물이다. 로마네 콩티라고 하지만 인간이 만든 와인 중 하나에 그친다. 인간 모두가 환호하는 권위나 가격 이전에 모두 함께 나누는 상징물 중 하나다. 항상 의문으로 남지만 아무리 좋은 와인이라도 혼자 마시면 별로다. 반면 싸구려 와인이라도 많은 사람이 나눠 마실 경우 한층 더 감미롭다. 와인 잔에 담아 테이스팅부터 하고 와인에 관한 위키피디아 지식을 총동원해 대화하면서 마실 경우 맛도 수직상승이다. 멋을 전제로 한 맛이 와인의 특징이다.

와인은 예수의 삶 곳곳에 등장하는 신의 아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의 출발과 마지막이 와인에 녹아 있다. 예수의 마지막 삶에 등장하는 와인의 무대는 최후의 만찬이 아닌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처형장을 통해서다.

바이블 곳곳에 나오지만 예수는 못 박힌 신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함께 서서히 죽어간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예수는 “목이 마르다”고 말한다. 십자가 오른쪽 아래에 서 있던 사람이 스펀지가 달린 긴 막대기 끝에 와인을 묻혀 예수의 입에 묻혔다. 바이블에는 예수의 입술을 적셨던 와인을 ‘비니거(Vinegar: 식초)’로 기록하고 있다. 와인은 오래되면 식초로 변한다. 당시 유대인들이 ‘와인=비니거’로 불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수의 최후가 와인이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예수는 와인을 입에 댄 뒤 곧바로 세상을 떠났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가 남긴 최후의 언어 중 하나다.

골고다 십자가 처형 성화(聖画)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십자가 아래 왼쪽에도 긴 막대기를 든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날카로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식으로 묘사돼 있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신학자들은 오른쪽 비니거 막대기의 주인공은 유대인, 왼쪽 창살은 이탈리아 로마의 군인으로 분류한다. 인간의 무지와 잔인함은 예수가 죽은 뒤에도 계속된다. 예수가 진짜 죽었는지를 알기 위한 확인사살이 로마 군인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예수를 두 번 죽인 셈이다. 예수의 옆구리를 깊게 찌르자 ‘몸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생전 마지막에는 오른쪽의 와인이, 숨이 끊어진 뒤에는 왼쪽의 피와 물이 뿌려진 셈이다.

와인은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처형에 등장하는 공통분모다. 사실 와인은 예수의 최후만이 아닌 출발점이기도 하다.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 앞에서 보여준 첫 기적이 와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적을 갈망한다. 100번의 설교보다 예수의 기적 하나에 환호했다. 예수는 총 7번 기적을 행한다. 예수가 가나(Cana) 결혼식에 초대받아 갔을 때 얘기다.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도 함께였다. 수많은 사람이 참석한 연회인데, 도중에 와인이 떨어진다. 당시 와인은 고가품에 속했다. 마리아가 와인이 없다고 말하자, 예수의 말 한마디로 물이 와인으로 변한다.

십자가 처형 당시 예수의 입술을 적신 와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사진:유민호
물은 예수의 삶 곳곳에 등장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와인으로 변한 물, 창에 찔린 뒤 예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을 보자. 와인만이 아니라 물도 예수의 출발과 마지막의 공통분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나 할까? 물과 와인, 나아가 피는 예수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한 메타포(Metaphor)로 느껴진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와인과 피는 육신적 의미로, 물은 정신적 표상으로 비쳐진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땅은 붉은색 와인과 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는 투명한 물로써 표현한다고 할까?

세례는 예수가 보여준 ‘물의 역사’의 출발점이다. 가나 결혼식에서의 와인 기적 직전에 벌어진 것이 요르단강(江)에서의 세례다. 예수의 사촌인 세례 요한이 거행한 의식이다. 물을 통한 세례 의식을 행한 뒤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기적에 나선 셈이다. 요르단강은 예수 당시 천국으로 향하는 성수(聖水)의 원천으로 풀이됐다. 예수 스스로가 강물 세례를 통해 영혼 정화에 나섰다. 기독교 교리지만 구원의 역사는 세례를 끝낸 뒤부터 시작된다. 세례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 신의 아들 예수조차도 영혼의 정화를 거쳐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6년 전 예수의 흔적이 서린 요르단강 세례 현장 방문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강 외곽에 늘어선 높이 3m의 철책으로 인해 포기했다. 이름에서 보듯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슬람 나라 요르단을 중심으로 흐르는 강이다. 이스라엘에서 출발할 경우 국경선을 넘어야만 요르단강 세례 현장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장 접근이 허락되는 날은 금요일 단 하루다.

또다시 이스라엘에 가야 할 명분이기도 하지만 방문을 계획했던 날은 수요일이라 국경선 출입이 불가능했다. 때마침 지나던 10여 명의 중무장한 이스라엘 국경 수비대를 통해 알았지만 국경선을 넘어 좁게 연결된 길을 따라가야 세례 현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길이 좁은 이유는 곳곳에 매설된 지뢰 때문이다. 철책과 지뢰는 한반도만이 아닌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장 분위기지만 한마디로 살벌하다. 강 주변의 황량한 사막 풍경도 척박하지만 멋모르고 철책 국경선을 넘을 경우 곧바로 총살될 듯한 살(殺)풍경이다. 예수가 재림해 철책으로 분단된 자신의 세례 현장을 본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잘 알려져 있듯이 물을 통한 의식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맹자(孟子)가 말한 목욕재계(沐浴齋戒)에서 보듯, 부정(不淨)을 면하기 위한 목욕의식은 인류 문명·문화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목욕재계의 대부분은 심신수양 차원에 그친다.

반면 서양은 종교 의식으로서의 물의 정화에 주목한다. 심신을 넘어선 신의 세계로 연결되는 영혼의 정화다. 동양에서 물의 힘은 개인과 사회, 국가 차원에서 국한된다. 세속적 목적이 대부분이다. 서양에서는 하늘과의 약속에 기초한 물이다. 가톨릭은 인간이 행해야만 하는 ‘일곱 가지 선행(The Seven Works of Mercy)’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선행이라기보다는 예수가 실천했고 인간이 지켜야 할 삶의 기본에 가깝다. 불교나 힌두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서도 볼 수 있지만 7개 선행의 실천을 통해 인간의 품격과 신의 의미를 재음미할 수 있다. 배고픈 자의 배를 채우고, 죽은 자를 묻어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집 없는 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병든 자를 위문하고, 감옥에 수감된 사람을 방문해 위로하라는 것이 일곱 가지 선행의 내용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물에 관련된 부분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물을 원하는 사람을 외면할 리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탄생지인 이스라엘이나 메소포타미아 주변 지역의 상황을 보면 달라진다. 물이 ‘아주’ 귀하기 때문이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싶어도 어렵다. 한국에는 지천에 널린 것이 물이다. 이스라엘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다르다. 물이 흐르는 곳이 일정한 지역에 국한돼 있고 우물을 깊게 파야만 물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만 비가 내리고 여름철에는 하천 전부가 바짝 마르는 가뭄 상태로 변한다. 그나마 비가 오는 즉시 땅 아래로 스며드는 사막형 토지가 대부분이다. 메소포타미아 하류 지역은 지하 수로(水路) ‘카나트(Qanat)’의 탄생지다. 지하를 통하는 인공 시설인데, 기원전 2000년 전에 이미 탄생했다. 물 부족이 낳은 발명인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물이 풍부한 한반도의 빈약한 관계시설과 대비된다.

인간이 행해야만 하는 ‘일곱 가지 선행’


▎에페소스의 요한 교회 내 요한의 무덤. 원래 무덤이 4개의 기둥 아래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 사진:유민호
예수 여행지의 대부분은 물과 무관한 땅이다. 여행에 앞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물이다. 7개 선행에서의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라’는 말은 주변에 넘치는 물을 나눠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소에도 아끼면서 마시는 귀한 생명의 원천을 나누라는 것이 선행의 요지다. 그 같은 배경을 이해한다면 물을 통한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 탈레스는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말하면서 신이 아닌 과학에 기초한 세계관을 피력했다. 귀하고도 신성한 물을 종교만 아닌 과학의 출발점으로도 활용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부는 문명만이 아닌 신앙과 종교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유일신이자 일신교 사상의 원조 격인 아브라함을 통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탄생한다. 아브라함의 활동 영역은 메소포타미아다. 간과하기 쉬운데, 유일신은 다신교를 전제로 한 신앙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곳곳에 넘치던 다양한 얼굴의 신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유일신 사상으로 확립된다.

흔히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을 다신교의 모델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가 아닌 내륙의 메소포타미아가 다신교 탄생의 원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나 비너스 신의 원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토된 비만 지수 90 정도의 여성상(像)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변은 일신교만이 아닌 다신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집트도 다신교 출발점에 넣을 수 있지만 태양신에 해당하는 파라오를 중심으로 한 다신교라는 점에서 메소포타미아와 구별된다. 반(半)일신교에 기초한 다신교 체제라고 할까? 결국 이집트 다신교는 파라오 체제가 무너지면서 전부 사라진다. 메소포타미아 다신교는 나라가 망한 뒤에도 후대로 전승된다. 다신교는 이슬람이 등장하는 7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지중해·에게해에 풍미한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다신교에 대한 관찰 없이는 일신교의 이해도 불가능하다. 피·와인·물로 연결되는 기독교 상징물도 마찬가지다. 놀랍기도 하고 당연한 사안이지만 피·와인·물은 다신교에서도 볼 수 있는 종교 의식의 상징들이다. 재활용이라고 할까? 예수를 통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전의 수많은 다신교 신이 선보였던 종교적 상징물이 바로 피·와인·물이다.

예수의 제자 요한의 무덤에서 만난 우물


▎키빌레 의식에서 소의 피를 씻기 위한 목욕 시설. 보통 지상에 있지만 암반을 판 대규모 지하 목욕 시설이 튀르키예(구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 곳곳에 남아 있다. / 사진:유민호
지난 5월 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요한(St. John)의 무덤에 들렀다. 에게해 동쪽 고대 도시 튀르키예(구 터키)의 ‘에페소스(Ephesus) 요한 교회(The Basilica of St. John)’ 내부에 들어서 있다. 한국 기독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필수 코스 중 하나인 곳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처형이 아닌 자연사로 세상을 마친 유일한 인물이 바로 요한이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자살을, 나머지 제자 열 명은 처형과 순교로 생을 마친다. 요한만 무려 94세까지 장수하면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남긴다. 요한은 예수가 처형된 뒤 에페소스와 에게해의 섬 파트모스(Patmos)로 피신한다. 유다를 제외할 경우 열두 제자 가운데 열 제자의 시신을 모신 교회가 세계 곳곳에 들어서 있다. 그러나 요한의 흔적을 보관한 교회는 그 어디에도 없다. 에페소스 요한 무덤도 ‘설(説)’로만 남아 있을 뿐 진짜 유무는 모른다. 에페소스는 대략 7세기 이후 이슬람권에 들어간다. 교회 자체가 철저히 파괴된다.

요한 교회를 돌아다니며 주목한 것은 팔각형의 작은 우물이다. 대략 지름 1m 정도에 깊이 50㎝ 정도의 우물로 교회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 영혼의 정화를 위한 세례용 시설이다. 요한 교회는 이슬람권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에게해를 대표하는 기독교 성지였다. 순례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교회 내 요한의 무덤을 만지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병이 완치된다고 믿었다. 관광과 미식은 21세기 성지순례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질병 치료가 최대 이유였다. 천국행 티켓 확보와 함께 눈앞의 병을 고치는 데 주목했다. 몸이 아파 못 나서는 사람을 위한 가족이나 대리인의 여행도 일상적이었다. 순례지 현장의 흔적이나 유물을 갖고 와 몸에 대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요한의 무덤과 팔각형 세례용 우물은 당대의 만병통치 현장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며 교회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뜻밖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교회 위에 들어선 성(城) 내부에서 만났다.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바위 위에 새겨진 지름 20~30㎝ 정도의 작은 홈(구멍) 10여 개를 만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맹위를 떨친 고대 종교 키빌레(Cybele)의 흔적이었다. 두 마리의 사자를 거느린 여신으로, 이후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신앙으로 연결된 종교다. 바위에 새겨진 작은 홈은 죽은 자를 기리는 제단 정도로 볼 수 있다. 보통 갖고 온 물을 홈 안에 담아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랬다. 봄에 열리는 키빌레 축제 때는 우유나 꿀을 홈 안에 보관했다. 저세상에 가서도 마실 수 있는 선물로 볼 수 있다. 키빌레 신앙의 특징이지만 간단한 목욕 시설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 키빌레 신자들은 소를 제물로 바쳤다. 섬뜩하게 들리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소의 피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다.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 바른다. 눈에 안 보이는 영혼의 정화와 달리 눈에 보이는 의식으로서의 소의 피다.

21세기의 스페인 투우는 키빌레 종교 의식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키빌레 제단에 들어선 목욕 시설은 몸에 젖은 피를 씻기 위해서다. 요한 교회 주변의 성은 그리스·로마·비잔틴·로마·이슬람으로 이어진 2000년 역사의 압축판이다. 성벽 건립 과정에서 주변의 바위 대부분이 깎여나갔을 것이다. 키빌레 의식용 작은 홈 몇 개는 발견했지만 목욕 시설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물이 있어야 영혼 정화를 위한 세례도 가능


▎고대 로마 도시 이즈밀에서 만난 도시의 수로 시설. 물은 의식만이 아니라 문명과 도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요한 교회는 요한이 세상을 뜬 직후인 1세기 말 세워졌다. 키빌레의 역사는 요한 교회보다 400여 년 앞선 기원전 3세기 때 본격화했다. 원래 키빌레를 위한 공간이 요한 교회의 터로 변한 셈이다. 아주 기본적 사안이지만 식수가 흐르는 공간만이 고대 종교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고대 신전은 바위나 산 위에 들어섰다. 신전에 신자들이 몰릴 경우 그들을 위한 식수가 필요하다. 물을 통한 의식을 고려할 때 가능하면 많은 물이 필요하다. 필자의 체험이지만 산꼭대기에 들어선 고대 신전 그 어디에 가도 물이 있다. 신비하게도 바위틈을 비집고 산꼭대기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보통 높은 산에서는 물을 찾기 어렵다. 키빌레의 목욕 시설과 작음 홈은 주변에 물이 풍부하다는 증거다. 요한 교회가 키빌레 공간에 들어선 이유도 바로 그 같은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변에 물이 있어야 영혼의 정화를 위한 세례도 가능하다.

물을 가진 혹성이면 제2의 지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피를 인공 제조하는 날이 과학의 최정점, 아니 인간이 신으로 업그레이드될 순간이란 말도 있다. 영원불멸 무병장수는 인류가 갈망하는 꿈이자 희망이다. 그 같은 인류의 욕망에 대응한 결과지만 종교 의식의 대부분은 물과 피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물과 피는 육체를 초월한, 정신과 영혼의 세계에서 다뤄질 문제다. 제2의 지구도 발견하고 인공 피도 곧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정신과 영혼의 정화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신이 인류로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사라질 수도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글을 쓰면서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 올릴 인생의 마지막 공유물이 생각났다. 요르단강에 흐르는 물이 주인공이다. 1리터 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비행기로 공수를 해서라도 최후의 만찬용 음료로 사용하고 싶다. 로마네 콩티의 권위에 버금가는 신의 축복이 깃든 최후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키벨레 여신. / 사진:유민호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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