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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슈] EPL 득점왕 손흥민의 알려지지 않은 피·땀·눈물 

손흥민을 키운 건 8할이 아버지였다 

박린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아버지 손웅정 감독, 자신의 실패 반면교사 삼아 아들 월드클래스로 키워내
마법의 왼발과 ‘손흥민 존’은 초인적 노력의 결과… 父, “10% 더 성장” 주문


▎2022년 6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칠레전 출전으로 손흥민은 A매치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어느덧 손흥민은 리빙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손흥민(30)은 이렇게 말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은 2021~22시즌 EPL에서 23골을 터트려 ‘아시아인 최초 득점왕’에 등극했다. 유럽 이적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의 이적 시장 가치는 80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1079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20위이며, 네이마르(브라질, 1012억원)보다 몸값이 높다.

‘1000억원의 사나이’ 손흥민 뒤에는 그를 가르친 아버지 손웅정(60) 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이 있다. 손 감독은 무협만화 같은 훈육으로 손흥민을 키웠다. ‘손부삼천지교(孫父三遷之敎)’란 말까지 나온다. 손씨가 쓴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판매량은 최근 5배 늘었다. 교보문고 6월 첫째 주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9위를 차지했다. 아들을 ‘월드 클래스’로 길러낸 아버지의 교육법에 관심이 뜨겁다. 5월과 6월, 손흥민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을 두 차례 찾았다. 손 감독과 손흥민의 친형 손흥윤(33) SON축구아카데미 수석코치를 만났다.

오른쪽 축구화에 압정 박은 아버지


▎2022년 5월 EPL 득점왕을 상징하는 골든 부트를 품에 안은 손흥민. / 사진:손흥민 인스타그램 캡처
“100골 넣어도 소용없고, 100골 먹어도 상관없어. 가장 중요한 건 패스야. 주위 살피고, 패스는 강하게 발밑에 붙여주고.” 6월 11일 춘천시 동면의 손흥민 체육공원에서 손웅정 감독이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있었다. 손 감독은 8일부터 11일까지 아들 이름을 딴 ‘손흥민 국제유소년 친선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6개국에서 만 12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했다. 손 감독이 이끄는 SON축구아카데미는 11일 몽골과 베트남을 완파했다. 눈에 띈 건 SON축구아카데미 아이들은 계속해서 원터치 패스를 하고, 오른발만큼 왼발을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올 시즌 EPL에서 23골을 터트렸는데, 그중 무려 12골을 왼발로 뽑아냈다. EPL 통산 득점 93골 중 왼발로 38골을 넣었고, 비율이 40%에 달한다. 오른발잡이 손흥민이 왼발도 강한 비결은 뭘까.

친형 손흥윤 코치는 “흥민이가 초3 때 아버지가 조기축구 하는 데 따라갔다가 옆에서 공을 찼다. 저랑 흥민이랑 둘이 3~4시간 동안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차올리는 것)을 했다. 2만2000개,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의 실밥이 보일 정도로 직각으로 차야 했다. 공이 돌면 안 된다. 집중해서 공을 쳐다보니까 나중에 평평한 땅조차 울퉁불퉁하게 보였다”고 전했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에게 “형(손흥윤)과 매일 4시간씩 리프팅 한 게 맞느냐. 아버지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손흥민이 축구를 가르쳐달라고 청하자, 손 감독은 “나처럼 축구 하면 안 된다. 나와 정반대 시스템으로 지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세에 은퇴한 손 감독은 스스로 “난 삼류 축구 선수였다”고 말한다.

손 감독은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왼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난 중3 때 ‘왜 축구 선수는 발이 2개인데 한 발만 써야 해?’라고 생각했다. 깊은 고민 끝에 오른쪽 축구화의 텅(혓바닥) 위치에 압정을 박았다. 오른발로 슈팅을 때리면 압정이 내 발목을 찌르니 고통이 말도 못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내가 중학생 때부터 했던 양발 훈련을 흥민이에게도 시켰다. 양말을 신을 때도 왼발부터, 바지를 입을 때도 왼발부터, 경기장에 들어설 때도 왼발부터, 슈팅 훈련도 왼발부터 시작했다. 그 덕인지 흥민이는 슈팅만큼은 왼발이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고 전했다.

“돈은 쌓아두면 종이에 불과하다”는 손 감독은 춘천의 손흥민체육공원에 ‘SON축구아카데미’를 작년에 준공했다. 7만1000여㎡ 부지에 축구장 1면, 유소년축구장 2면, 돔으로 된 실내구장 등이 들어섰다. 누군가에게 터치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집안 내력상 손흥민 가족이 자비 170억원을 들여 건립했다.

SON축구아카데미는 손흥민을 키운 방식 그대로 유망주들을 가르친다. 축구장에는 각각 높이가 다른 ‘특수 계단’이 있다. 손흥윤 코치는 “아버지가 직접 설계했다(2년 전 특허 출원). 아이들은 계단을 오를 때도 왼발부터 딛는다. 무의식중에도 익숙하지 않은 발을 써야 경기에서 양발을 5 대 5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에세이에 “내가 중학생 때 (춘천) 우둔산 충열탑 계단에서 훈련했던 방법을 SON축구아카데미로 옮겨왔다. 네 종류의 서로 다른 높이 계단으로 설계했다. 어떤 계단은 일반 계단 두세 칸을 합친 높이에 달한다. 아이들에게 하체 강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다. 중학생 때 일률적인 높이의 계단에서 훈련하며 늘 생각했다. 높낮이에 따라 쓰이는 근육이 다른데, 단순히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임상실험 그리고 2011년 지옥훈련


▎2011년 춘천에서 손흥민(왼쪽)과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지옥훈련을 함께 견뎠다.
“손흥민은 끝났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치르고 소속팀 독일 함부르크로 돌아온 손흥민을 향한 혹평이었다. 당시 19세로 대표팀에서 교체출전에 그쳤던 손흥민은 몸 관리에 실패해 체중이 5㎏이나 불었다. 독일로 돌아온 손흥민의 몸은 무거웠고 경기력은 바닥을 향했다. 2010~11시즌을 마친 손흥민은 “아빠가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 한국에 들어가자”고 요청했다. 그렇게 ‘손씨 부자’는 춘천 뙤약볕 아래에서 5주간 지옥훈련에 돌입했다. 손흥민은 “매일 오른발 500번, 왼발 500번, 1000개씩 슛을 때렸다. 슈퍼마켓에서 사 온 초콜릿과 바나나로 떨어진 당을 채웠다. 독일 공항에서 에이전트가 얼굴이 반쪽이고 새까맣게 탄 손흥민을 알아보지 못할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손흥민이 때리면 들어간다는 페널티 박스 좌우 45도. 일명 ‘손흥민 존(zone)’도 그때 만들어졌다. 손 감독은 “(슈팅 훈련) 위치는 다섯 개 존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손흥민 존’은 그중 두 군데를 말한다. 다섯 포인트 지점에서 각도를 정하고 감아 때리는 훈련을 했다. 내가 반대쪽에서 강하게 차주는 방식으로 훈련했다. 골키퍼가 ‘가제트 팔’이 아니고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위치로 때리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춘천에서 만난 손 감독의 몸은 소위 ‘막노동 근육’처럼 온몸이 잔근육으로 가득하다. 28세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가족 생계를 위해 급여 27만원짜리 헬스 트레이너, 청소일, 막노동 등을 전전했다. 손 감독은 체육관에서 어떤 운동이 손흥민에게 좋을까 연구한다. 아들에게 시키기에 앞서 먼저 운동을 해보는 것인데, 결국 자신의 몸으로 임상실험을 하는 셈이다.

손흥윤 코치는 “아버지는 요즘도 매일 영국 런던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근력과 근지구력을 몇 %씩 배분해야 할지 풀어갔다. 직접 먼저 몸으로 임상실험을 해서 흥민이란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뛸 당시 손 감독은 ‘훈련장의 신비한 남자’라 불렸다. 마르첼 얀센 함부르크 회장은 2019년 “훈련장 펜스 뒤에서 누군가 공을 던져줬다. 누구냐고 물으니 손흥민 아버지였다”는 비화를 전했다. 독일로 건너가 아들을 뒷바라지한 손 감독은 하루도 빠짐없이 철망 너머로 아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부족한 점을 피드백해줬다.

당시 손 감독은 3년간 훈련장 옆 하루 50유로(6만7000원)짜리 3평 남짓한 여인숙 같은 호텔에 투숙했다. 손 감독은 에세이를 통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게도 배고팠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호텔에서 조식으로 제공하는 빵 몇 조각을 먹는 게 온종일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고 회상했다. 손 감독은 새벽마다 손흥민을 깨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했다. 손흥민은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나도 멈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손 감독은 2018년 인터뷰에서 “흥민이는 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손흥민이 EPL 득점왕이 됐지만,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없느냐’는 질문에 손 감독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답했다.

“흥민이 월클 아닙니다, 10% 더 성장해야”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게리 네빌, 리버풀 출신 마이클 오언 등 축구 레전드들이 “손흥민은 분명 월드 클래스”라고 인정했지만, 손 감독만큼은 생각이 달랐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월드 클래스’의 기준은 뭘까. 손 감독은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에서 (주전으로) 생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흥민이가 모든 분야에서 10% 정도 더 성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음악가들이 ‘솔’에 해당하는 음높이를 유지하려면 (한 음계 위인) ‘라’를 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습한다. 늘 10% 성장을 꿈꾸고 상상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EPL 득점왕에 올랐을 때 아버지의 심경을 묻자 또 한 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손 감독은 “함부르크 시절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었을 때만큼이나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손흥민이 18세이던 지난 2010년 쾰른을 상대로 데뷔골을 넣은 날, 손 감독은 아들이 들뜰까 우려해 노트북을 압수했다. 그러곤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만 흥민이가 망각증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1년에 책을 100권 정도 읽는 손 감독은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전기 창업자가 ‘호황은 좋고 불황은 더 좋다’고 말했다. 흥민이에게 ‘호사다마(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를 자주 언급한다”며 아들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길 바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표현을 쓰며 “열흘 이상 지속되는 꽃이 없고, 영원한 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리미어리그 최종전까지 득점왕을 다툰 모하메드 살라(리버풀)를 신경 썼을까. 손 감독은 “아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흥민이가 득점왕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3~4경기 남았을 때부터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말해줬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아프다”고 했다.

손 감독이 손흥민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손 감독은 “흥민이에게 ‘어떤 구단이든, 어떤 도시든, 혹여 연봉이 적더라도 행복하게 뛰며 은퇴하는 게 최고의 바람’이라고 말해준다. 내가 늘 해주고 있고,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덧붙였다.

- 박린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207호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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