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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5)] BTS, K팝에 화두를 던지다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따로 또 같이, 천천히 오래도록 

쥐어짜는 아이돌 시스템, 1970년대 압축성장 연상시켜
개인 활동으로 숨 고르기, 지속가능한 활동 위한 선택으로 봐야


▎지난해 9월 20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 청년세대 대표로 참석한 방탄소년단(BTS)이 각국 정상들이 연설하는 유엔 총회장을 누비며 유쾌한 화합의 무대를 선사했다. / 사진: 사진:빅히트 뮤직
최근 방탄소년단(BTS)이 단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물론 잠정적인 것이고 솔로 활동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 담겼지만, 이 선언은 곱씹어볼 부분이 적지 않다. 이것은 K팝이 지금껏 달려왔던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새로운 비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 해도 I don't care. I'm proud of it. 난 자유롭네. No more irony. 나는 항상 나였기에. 손가락질해.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네.”

2018년 방탄소년단이 부른 ‘Idol’에는 이들이 가진 자신감이 넘쳐난다. 아티스트로 부르건 아이돌로 부르건 상관없고 자신들은 자유로우며 심지어 아티스트와 아이돌은 상충하는 ‘아이러니’도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방탄소년단은 실로 이 아이러니 같고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돌이면서 아티스트인 길을 걸어왔다. 즉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라는 기획사에서 연습생 과정을 거치는 전형적인 K팝 아이돌의 행보를 따랐지만, 자기 목소리를 가사나 곡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아티스트의 면면들이 더해졌다.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소통이 글로벌 팬덤 ‘아미(ARMY)’를 탄생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들이 가진 아티스트적인 면들, 즉 메시지가 전 세계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아미로 끌어모은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강요되는 나’가 아니라 그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하는 나’에 대한 화두가 그것이다. 이 화두는 방탄소년단이 ‘Idol’에서 자신을 아이돌이라 부르건 아티스트라 부르건 상관 않겠다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만의 메시지로 글로벌 ‘팝스타’ 반열에 올라

그런데 그 후로 불과 4년이 흐른 뒤 방탄소년단은 갑자기 단체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6월 14일 공식 유튜브 채널 의 ‘찐 방탄회식’ 영상에서 리더 RM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Butter)’랑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중요하고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졌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러 차례 ‘기계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2018년의 자신감과 2022년의 답답함 사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첫째, 이들의 위상 변화다. 2018년만 해도 이 소년들이 일으키는 엄청난 열풍이 아미 같은 특정 마니아 팬덤에 의한 것처럼 치부되곤 했었다. 하지만 매해 위상이 급부상하면서 방탄소년단은 굳이 ‘K팝 아이돌’이라 지칭될 필요가 없는 세계적인 ‘팝스타’ 반열에 올랐다. RM이 거론한 ‘다이너마이트’가 국내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고 그 후에 나온 ‘버터’로 1위를 재탈환했다. 하지만 이들 곡은 모두가 좋아할 만한 대중성을 가진(심지어 가사도 모두 영어다) 곡들이었지만, 방탄소년단 특유의 색깔이나 메시지가 강한 곡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하게 흡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기를 위한 선택들이 그 곡들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글로벌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들의 색깔이나 메시지는 흐려진 셈이었다. 2018년 ‘아이돌’이라며 편견 어린 시선을 던지던 시절에도 스스로 ‘아티스트’라는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방탄소년단은 명실공히 글로벌 팝스타로 최고 위치에 올랐지만, 아티스트의 길에서 멀어져 아이돌이 돼가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방탄소년단이 단체 활동 중단을 선언하면서 K팝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놨다는 점이다.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성장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슈가 역시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어찌 보면 K팝 아이돌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그들이 이 시스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지적은 누구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이 가진 한계에 대한 ‘진심’이었다.

기획사들이 어린 나이에 연습생들을 트레이닝시켜 데뷔해 활동하는 K팝 아이돌 시스템은, 마치 1970년대 개발시대의 압축성장을 해낸 그 시스템과 유사하다. 아이돌 연습생이란 결국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한 압축적 성장통을 겪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해외시장에서도 통하는 빛나는 아이돌이 됐다. 이런 성공은 마치 개발시대의 압축성장 모델이 개발도상국에는 일종의 롤 모델이 되었던 것처럼, 아시아권 대중문화 산업의 롤 모델처럼 지금껏 추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압축성장은 자연스럽게 탄생한 게 아니라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도 ‘빨리 결과를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1980년대 벌어진 민주화 운동과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요구됐던 경제적 민주화의 요구, 그리고 최근 들어 일어나고 있는 삶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개발시대가 강요했던 희생을 더는 반복하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몸부림이다. 그 모델을 그대로 가져온 K팝 아이돌 시스템도 성과를 내긴 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혹한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나, 최대 7년 기간을 넘지 못하는 아이돌의 짧은 수명은 단적인 사례다. 또 K팝 아이돌은 아티스트와는 거리가 먼 기획사가 만들어낸 ‘상품’이라는 해외의 비판도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한계에 부딪힌 K팝 아이돌 시스템에 대안을 던진 존재들이다. 그 대안은 다름 아닌 ‘아티스트의 길’이다.

기획된 ‘상품’으로서 아이돌이 가진 한계


▎6월 14일 방탄소년단(BTS) 공식 유튜브 채널 [BANGTANTV]의 ‘찐 방탄회식’에서 리더 RM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중요하고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 사진:[BANGTANTV] 유튜브 캡처
K팝 아이돌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아이돌’이라는 틀에서 생겨난다. 많아야 20대인 나이에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하는 존재로서 규정된 ‘아이돌’은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기다려주기보다는 빨리 성장시켜야 하는 존재들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야 그나마 더 오래(그래 봐야 7~8년에 불과하다) 활동할 수 있으니 더 어린 나이에 연습생으로 맹훈련시킨다. 이 조급함은 아이돌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고, 나이가 들어 더는 아이돌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들게 했다. 이런 불안감은 더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여유가 있어야 자기 생각을 음악에 담는 등 창작자로서의 작업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이 하는 일들의 가치를 찾을 수 있지만, ‘아이돌’이라는 틀은 이를 원천적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돌이면서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방탄소년단은 달랐다. 이들이 내놓은 ‘불타오르네’(2016), ‘피 땀 눈물’(2016), ‘봄날’(2017), ‘작은 것들을 위한 시’(2019) 같은 곡들에는 세상에 대한 날 선 메시지들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날 선 메시지들은 비틀스의 존 레넌이 그러했던 것처럼 가사에 공감하는 전 세계 팬들의 가슴에 닿았다. 아이돌에서 아티스트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아이돌이라는 틀의 한계를 깨는 일이다. 즉 20대가 아닌 30대, 40대 그 이상이 돼도 이들은 아티스트로서 계속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계속 노래를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춤을 선택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연기를 하려는 이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생각을 자신이 원하는 표현 방식으로 펼쳐나가는 것. 아이돌의 한계를 가볍게 깨면서도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고픈 방탄소년단에게 이보다 좋은 선택과 비전이 있을까.

물론 팬들에게는 더러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보다 지속가능한 방탄소년단을 위해서 어쩌면 새로운 국면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방탄소년단이 그간 아티스트로서 자신들의 생각을 진솔하게 가사에 담아왔던 그 진정성 있는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만일 이러한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활동을 계속 강행했다면 어땠을까.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것을 팬들과 나누며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해온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숨길 일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야 할 일이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일이 맞다.

방전된 에너지·감정 재충전하는 시간 가질 듯

또 아티스트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아이돌 그룹이라는 단체 활동은 여러모로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제한하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나의 곡을 노래와 가사와 안무, 프로듀싱으로 나눠 창작에 참여한다 해도 전체의 합을 위한 절제와 자기희생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스템 속에서 숙성되기는커녕 ‘소진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각자 자신에게로 잠시 돌아가는 길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로써 그들 스스로 말했듯 ‘챕터1’을 끝내고 개인 활동에 들어갔다. 정국은 미국의 팝가수 찰리 푸스와 ‘Left and Right’를 컬래버했고, 제이홉은 솔로곡 ‘모어(More)’를 공개했다. 뷔는 유명 브랜드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텍터 에디 슬리먼에게 초청받아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이들이 각자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갈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개인이 하고픈 분야에서 하는 개인 활동을 통해 저마다 방전된 에너지와 생각과 감정들을 다시금 충전해나갈 것이라는 건 분명한 일이다.

또 개인 활동은 방탄소년단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는 병역 문제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 개인 활동 기간을 통해 순차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순수예술인, 스포츠인과 달리 대중예술인인 방탄소년단이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현재 국내의 정서상 병역 관련 법규들은 그리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쨌든 치러야 할 일이라면 이런 시기에 치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방탄소년단이 지금껏 걸어온 길과 현재의 선택,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사실상 K팝의 새로운 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K팝 아이돌이라는 과거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와 보다 지속가능하고 자기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K팝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대안처럼 제시되고 있다. 젊은 날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아이돌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두고 활동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시스템. 그래서 아이돌은 그 아티스트로 가는 길에 젊은 날 잠깐 했었던 어떤 선택 중 하나가 되는 그런 새로운 K팝의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고, 오래 하려면 내가 나로 남아 있어야 한다.” RM이 한 이 말은 이러한 시스템 변화를 추동하는 하나의 주춧돌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개인 활동이 더욱 궁금해지고, 향후 더 성숙해진 개개인들이 모여 내놓을 단체 활동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K팝 시스템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테니 말이다. 그 시스템의 혁신 끝에는 이런 문구가 비전처럼 세워지지 않을까. 따로 또 같이. 천천히 오래도록.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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