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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이슈] KBO리그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SSG 랜더스 

성적과 흥행 쌍끌이, 정용진의 ‘신세계 유니버스’ 구현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BO리그 최장기간 1위·개막 10연승 신기록… 투타 밸런스 탄탄
관중 1위 힘입어 계열사와 마케팅 시너지, 최종 목적지는 청라돔


▎막강한 선발진과 출중한 득점력을 앞세워 SSG 랜더스는 한국시리즈 우승 후보 1순위로 주목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SSG 랜더스는 6월 15일 신기록 하나를 세웠다. KBO리그 41년 역사상 최장기간 1위가 그것이다. 종전 기록은 2011년 SK와이번스(SSG의 전신)가 세웠던 63경기였다. 당시 SK는 4월 2일 개막일부터 6월 27일까지 1위를 유지했다. 반면 2022시즌 랜더스는 84경기가 진행된 7월 11일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KBO 사상 최초로 개막전부터 시즌 최종전까지 1위로 끝내는 전인 미답의 ‘퍼펙트 우승’에 근접해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1위로 마친 뒤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해낸 걸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라고 부른다. 1903년 월드시리즈 시작 이래 미국에서도 5번밖에 나오지 않은 희귀한 기록이다.

이미 랜더스는 개막 이후 최다 연승 KBO리그 기록도 썼다. 4월 2일 NC와의 개막전부터 4월 13일 LG전까지 10연승을 해냈다. 2003년 삼성과 동률 기록이다. 개막 10연승은 랜더스 정용진 구단주의 시구를 현실로 만들었다. 정 구단주는 2021년 SK와이번스를 인수한 뒤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10연승 하면 시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정 구단주는 4월 16일 홈구장인 인천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전에 시구자로 등장했다. 어깨 통증이 있었지만, 김광현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투구 연습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후에도 쾌속 항진을 거듭한 랜더스는 7월 3일 KIA전 승리로 시즌 최소경기 50승에 도달했다. 종전까지 최소경기 50승을 달성한 팀이 시즌 1위를 달성한 케이스는 31번 중 22차례에 달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투자로 우승 전력 만들어


▎2022년 7월 2일 인천 랜더스필드에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랜더스의 티켓파워는 KBO리그에서 압도적 1위다. / 사진:연합뉴스
랜더스는 2021시즌 6위였다. 66승14무64패로 승률 5할을 가까스로 넘겼고, 5위 키움에 0.5경기 차이로 밀려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 팀이 1년 만에 KBO 역사를 새로 쓰는 강자로 환골탈태한 배경에는 민첩한 준비, 과감한 투자, 긍정적 문화가 자리한다.

창단 첫해 마지막 144번째 경기에서 패하며 포스트시즌 문턱을 넘지 못하자 랜더스 프런트는 빠르게 2022시즌을 준비했다. 11월 16일 추신수와 1년 재 계약에 합의했다. 40살 추신수의 현역 연장 의지를 확인하자 연봉 27억원을 제시해 사인을 받아냈다. 12월 4일에는 외국인타자 케빈 크론과 총액 1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이어 12월 17일 2021시즌 실력이 검증(145.2이닝 8승5패 평균자책점 3.46)된 외국인 에이스 윌머 폰트를 150만 달러에 붙잡았다. 그리고 12월 21일에는 뉴욕 양키스 선발투수 출신 이반 노바를 총액 1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선수단 연봉 재계약도 해를 넘기지 않고 12월 26일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정 구단주는 창단 첫 시즌 가을야구를 못했지만, 민경삼 사장·류선규 단장·김원형 감독을 문책하지 않고, 오히려 더 힘을 실어줬다. 그 덕분에 팀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기민하게 약점을 보강할 수 있었다.

모(母)기업 신세계그룹은 랜더스의 재정비에 그치지 않고, 대대적 투자를 감행했다. 이미 2021년 팀 연봉 1위 팀이었고 2023년 샐러리캡(salary cap·연봉 총액 상한제) 도입을 앞두고 있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윈나우(win now) 노선을 관철했다. 외부 프리에이전트(FA)를 영입하지 않는 대신, 2022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 내부 인력을 미리 붙잡는 파격을 감행했다. 투수 박종훈과 문승원, 외야수 한유섬의 장기계약이 성사됐다. 랜더스는 12월 14일 “박종훈과 5년 총액 65억원, 문승원과 5년 총액 55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비(非) FA 최초의 다년계약이었다. 게다가 두 투수는 2021년 6월 나란히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재활 중이라 복귀 기약이 없는 몸 상태였음에도 랜더스는 장기계약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2월 25일에는 외야수 한유섬도 5년 총액 60억원으로 잡았다. 두 투수와 달리 한유섬은 몸에 문제가 없었지만, SSG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후 삼성이 2022년 2월 외야수 구자욱과 5년 총액 120억원 계약에 합의한 것과 견줘보면 랜더스 프런트가 얼마나 ‘합리적 가격’으로 계약을 끌어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화룡점정은 3월 8일 전격 발표된 김광현 영입이었다.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이 끝난 좌완 투수 김광현과 4년 총액 151억원이라는 KBO 사상 최고액으로 유턴시킨 것이다. 김광현의 가세로 단숨에 SSG는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노바가 기대를 밑돌았지만, 폰트~김광현~노경은~이태양~오원석의 선발진은 리그 최강으로 작동했다. 폰트는 NC와의 개막전부터 ‘9이닝 퍼펙트(0-0으로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퍼펙트게임으로 인정 못 받음)’를 달성했다. 또한 폰트는 5월 7일 키움전부터 6월 24일 NC전까지 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QS+,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달성했다. 이는 역대 외국인투수 신기록에 해당한다. 김광현도 7월 11일까지 평균자책점 1위(1.65)다. 김광현(9승1패)과 폰트(10승4패)는 극강의 선발 원투펀치로 기능하고 있다.

랜더스필드, 코로나 이후 최초의 2만 관중

2021년 겨울 테스트로 영입한 38살 노경은(4승3패 평균자책점 3.44)과 2020년 트레이드로 데려온 32살 이태양(6승 2패 평균자책점 2.93)도 최고의 가성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헐거운 불펜을 강화하기 위해 랜더스 김원형 감독은 계속 변형을 주고 있다. 마무리만 해도 김택형에서 서진용으로 교체했다. 2군 투수들을 지속적으로 테스트하며 서동민, 장지훈 등이 중용되고 있다. 당초 선발로 분류됐던 문승원도 복귀하면, 불펜으로 투입할 방침이다.

타선은 한유섬(11홈런 72타점), 최정(11홈런 48타점), 추신수(11홈런 38타점)가 나란히 0.8 이상의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추신수는 타율은 0.267이지만 출루율이 0.404에 달하며 ‘눈 야구’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랜더스가 지명해 팜에서 키워낸 최지훈(102안타 타율 0.313), 박성한(95안타 타율 0.330), 전의산(5홈런 타율 0.333)도 잠재력을 만개하고 있다. 랜더스는 약점으로 지목된 포수 포지션도 5월 9일 KIA에서 김민식을 트레이드해오며 보강했다.

정용진 구단주는 선수 몸값에만 돈을 쓴 것이 아니라 인프라에도 눈길을 돌렸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애초부터 정 구단주의 눈길은 (한국 구단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팀에 맞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출장을 갈 때마다 정 구단주는 인스타그램에 야구장 견학 사진을 올리며 진정성을 표시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2022년 3월 20일 공개된 랜더 스필드 클럽하우스 전면 리모델링이었다. 10개월에 걸쳐 진행됐고, 약 40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라커룸은 메이저리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사우나까지 집어넣었다. 또 실내 타격연습장과 체력단련실, 전력분석실도 최고 수준으로 새로 단장했다.

정 구단주가 랜더스에 유독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야구에 열정적이면 본업인 유통과 연결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포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성적이 잘 나올수록 이슈를 일으킬 수 있고, 랜더스 재무제표가 개선될 수 있다. 랜더스의 2022시즌 랜더스필드 평균 관중수는 7월 4일 시점에 1만3629명이다. KBO 10개 구단 중 1위다. 같은 기간 KBO 평균 관중 8412명보다 무려 62% 이상 높다.

특히 김광현의 복귀전이었던 4월 9일 KIA전 관중은 2만1005명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처음으로 2만 관중이 들어찬 ‘일대사건’이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열린 한화전에는 창단 후 첫 2만3000석 매진을 달성했다. 이어 7월 2일 KIA전에서 또 한 번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

랜더스 관련 굿즈(goods) 매출도 이미 5월에 2019년 연간 매출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계열사 이마트는 4월 랜더스필드에 14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SSG 랜더스 굿즈 샵을 오픈했다. 이후 매장을 이마트 전국 점포로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노브랜드 버거 랜더스필드점 매출도 3배 이상 늘어났다. 노브랜드 버거 매장은 전국에 170여 개가 있는데, 야구경기가 열리는 날 랜더스필드점 매출이 전국 1등이다.

매일 매일이 축제인 ‘신세계 유니버스’


▎SSG 랜더스는 매달 마케팅 이벤트를 선보인다. 5월 열렸던 ‘스타워즈데이’에는 정용진 구단주까지 동참했다. / 사진: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 차원에서도 시즌 개막에 맞춰 17개 계열사가 총출동하는 할인 행사, ‘랜더스데이’를 기획했다. “야구공이 담장을 넘듯, 상상을 넘는 혜택을 준비하겠다”는 광고를 내며 수백만 고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4월 개막에 랜더스데이가 있다면 하반기인 10월에는 ‘쓱데이’가 마련돼 있다. 두 행사 사이에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6월 ‘스타벅스데이’, 7월 ‘노브랜드데이’ 등이 배치된다. 랜더스의 콜라보 파트너는 신세계 계열사만 해당하지 않는다. 5월 3~5일 월트디즈니와 협업한 ‘스타워즈데이’ 이벤트처럼 타사와도 마케팅 시너지를 내고 있다.

신세계그룹 수장으로서 정용진 구단주의 비전은 ‘신세계 유니버스’의 설계다. “고객이 먹고, 자고, 보고, 사고, 즐길 때,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지 않고 신세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모든 것을 불편함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신세계 유니버스’의 뼈대다.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겠다”는 정 구단주의 발언은 락인(lock-in) 전략을 향한 강한 집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SSG 랜더스 야구단의 가치가 발생한다. 경영인 정용진의 문법을 빌리면, “지금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얼마짜리로 키우는 게 중요”하다. 야구단은 당장 돈을 벌어주지 못하지만, 계열사가 더 많은 돈을 벌어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 구단주가 야구단을 활용해 닿으려 하는 최종 목적지는 ‘청라돔’이다. 랜더스 관계자는 “우리의 모든 지향과 행위는 청라돔을 종착역으로 놓고, 역순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인천 청라에 돔구장과 스타필드를 짓고, 야구경기·콘서트·쇼핑·식사·레저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겠다는 발상이다. 플랫폼과 콘텐트의 결합이기도 하다.

SSG 랜더스라는 팀 명에서 알 수 있듯, 메인스폰서 SSG는 이커머스 유통에서 쿠팡과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랜더스 야구단을 통해 SSG의 인지도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다.

정 구단주는 2022년 신년사에서 “오프라인조차 잘하는 온라인 회사가 되기 위한 실천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2의 월마트도, 제2의 아마존도 아닌 제1의 신세계”를 꿈꾸고 있다. SSG 랜더스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모두 1등을 하겠다는 CEO 정용진의 꿈을 잇는 가교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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