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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조선 후기史 팩트추적(18)] 전통 음악, 판소리의 원류를 찾아서 

'춘향전' 등의 소설이 판소리 가사에 근거했다는 상식은 오류 

기존 소설의 한 대목을 판소리라는 노래로 부른 것으로 봐야
‘판소리의 정의’는 20세기 후반에 연구자들이 만든 발명품


▎판소리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소리의 진수를 전한 창극 ‘심청가’. / 사진:국립창극단
창자(唱者)는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노래를 하고, 고수(鼓手)는 추임새를 넣으면서 북을 쳐서 장단을 맞춰주는 한국의 전통 음악 판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3년 [서편제]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영화사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면서, 이 영화의 소재로 쓰인 판소리는 한국 전통 음악의 대표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깊게 남겼다. 일찍이 판소리는 종묘제례악(제1호)이나 남사당놀이(제3호)에 이어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2003년에 판소리는 유네스코에서 선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들어갔고, 2008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됐다.

이와 같이 판소리가 문화재로 지정됐다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판소리가 얼마나 훌륭한 전통 예술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칫하면 판소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판소리는 한때 그 맥이 끊길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는데, 특히 1960년대에는 절멸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었다.

현재 각 대학의 국악과에는 판소리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고, 국가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한 기관 중에는 판소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1962년에 창단한 국립창극단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창극’의 공연을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창극단이다. 또 1984년에 창립된 판소리학회는 판소리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자들이 만든 학술단체로, 문학·음악·연희 등의 여러 방면에서 판소리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

이처럼 판소리는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도 많고,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이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전문 학자도 상당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판소리가 언제 생겼으며, 판소리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20세기 이전의 판소리와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판소리 연구는 대부분 전해오는 이야기나 음악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아래에서 판소리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얘기하면서 필자의 견해를 소개하기로 한다.

판소리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판소리 명창 안숙선 선생이 2017년 11월 13일 서울 강남구 헌릉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뒤 판소리 ‘춘향가’의 한 자락을 부르고 있다. / 사진:신인섭 기자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항목을 보면 판소리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숙종 이전에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공식사이트인 [유네스코와 유산]에서는 “판소리는 17세기 한국의 서남 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라고 했다.

판소리의 발생에 대한 이와 같은 소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판소리의 발생에 관해 학생과 교사가 문답하는 방식으로 돼있는 아래의 내용은 2015년에 나온 어떤 출판사의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학생: 판소리는 누가 지었고 어떻게 전승됐나요?

선생님: 판소리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조선 영·정조 시대의 명창 몇 사람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미뤄 조선 후기에는 꽤 널리 향유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판소리의 역사에 관한 앞의 몇 가지 예는 판소리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국가에서 지원하는 많은 기관이 있고, 판소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수많은 선생과 학생이 있으며, 또 상당수의 전문 연구자가 연구하고 있는 판소리에 대한 우리 이해의 현주소다. 이렇게 판소리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판소리라는 용어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판소리 전문가들도 판소리라는 용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 [유네스코와 유산]에서 판소리를 설명해놓은 것을 보면 ‘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라고 했다. 판소리라는 단어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은 판소리 연구 초기인 1950년대에 나온 것인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상 더 밝혀진 내용이 없다. 모든 노래의 공연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하는 것이니 ‘판소리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하는 노래이다’라는 설명은 하나마나한 것으로, 판소리라는 용어에 대한 적절한 정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판소리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20세기 초까지 전승됐는지도 알 수 없으며, 또 판소리라는 용어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판소리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완창판소리'는 1968년 이전에는 없었다


▎1976년 중앙일보사가 발매한 판소리 대명창이자 국가무형문화재 국악인 고(故) 김소희 선생의 춘향가 음반. 7장의 LP 전집이다.
현재 50대 중반 정도인 사람이면 아마 고등학교 때 ‘판소리계소설’이라는 용어를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소설은 판소리계소설이고, 이런 소설은 판소리의 가사를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것이 이 용어에 대한 설명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판소리의 노래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이고, 그 이전에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소설이 판소리 창자가 부르는 노래 내용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 여기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만한 근거 자료도 없고, 여기에 대한 연구도 별로 없다. 지난 30년 이상 중·고등학교의 교육 현장에서 “[춘향전]이나 [심청전]은 판소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소설”이라고 가르친 것은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연구를 비판이나 반성 없이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다.

현재 국립창극단의 공연 레퍼토리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완창판소리]가 있다. 국립창극단의 공연 소개를 보면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아홉 시간까지 오로지 고수의 북 장단에 의존해 판소리를 완창(完唱)한다는 것은 소리꾼에게나 그 자리에 함께하는 관객에게나 특별한 도전이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매달 이런 도전 의식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무대가 바로 [완창판소리]다’라고 했다. 몇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소리꾼이 계속 노래를 부르는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창자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무대이고, 판소리 애호가들에게는 긴 시간 동안 판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판소리 완창을 전통적인 판소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형식의 판소리 공연은 1968년 박동진이 처음 시작한 것이다. 박동진 명창은 1960년대 거의 없어질 위기에 처한 판소리에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섯 시간 반 동안 [흥부가] 전체를 불렀다고 한다. 국립창극단의 [완창판소리] 공연은 대중에게 꽤 알려져 있는 인기 프로그램인데, 이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중에는 판소리는 처음 생겨날 때부터 이렇게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판소리를 부르는 일은 1968년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완창판소리]와 함께 또 하나 말해둘 것이 ‘창극’이다. 창극은 문자 그대로 노래로 하는 연극으로, 창극에서는 서양의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여러 명의 창자가 각기 배역을 맡아서 자신이 맡은 부분의 노래를 한다. 창극은 20세기 초에 조선에 처음으로 상설극장이 만들어지면서 생겼으므로 20세기 이전에는 이런 양식의 대중 예술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공연하는 창극에서 배역을 맡는 창자들은 대부분 판소리를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창극의 노래는 남도소리 창법으로 부르고 있으나 20세기 초의 창극도 남도소리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가운데는 의외로 최근에 만든 것이 많다. 음식이나 기호품 가운데도 원래부터 한국에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을 확인해보니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고추나 담배가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조선에 퍼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고구마나 감자가 18세기 후반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꽤 있을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est Hobsbawm, 1917년~2012년)이 1983년에 펴낸 책 [The Invention of Tradition]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던 많은 전통이 근래에 새로 만들어낸 것이고, 그런 과정은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임을 밝힌 책이다. 한국에서는 [만들어진 전통](휴머니스트, 2004)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는데, 원래의 제목인 ‘전통의 발명’과는 약간 다른 의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표현이 한국의 실정에는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내용의 책과 논문이 여러 나라에서 많이 나왔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판소리는 홉스봄이 말하는 전통의 발명이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것 같다.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대중 예술


▎임권택 감독이 만들고 오정해 등이 주연한 영화 ‘서편제’. 판소리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던 영화로 꼽힌다.
지금까지 판소리에 관한 논문이나 저서는 수천 편이나 되는데, 이 많은 연구의 시작은 1940년에 나온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다. 이 책은 판소리 창자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으로, 특히 당대 전라도 창자가 중심이다. 이 책은 야담집과 같은 성격의 책이므로, 이 책을 학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책의 내용을 정밀하게 검토해 사실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가려낸 후에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던 ‘이날치’가 유명해진 계기는 한 퓨전밴드가 이 19세기 가수의 이름을 자신들의 밴드 명칭으로 쓴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치에 관한 기록은 앞에서 얘기한 [조선창극사]에 들어 있는 몇 가지 전해오는 이야기가 전부다. 전설 속의 명창 이름을 밴드의 명칭으로 사용해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전통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존의 판소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창작해낸 음악에서 판소리의 원형이 무엇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밴드 이날치가 20세기 초까지의 판소리 역사를 정리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판소리의 역사나 판소리의 정의와 같은 학술적 문제에서는 ‘예술적 창조’가 용납될 수 없다. 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판소리의 역사가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판소리의 정의’는 20세기 초까지 있던 대중음악의 한 양식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대중 예술이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추정과 함께,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희망사항까지 덧붙여서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의 판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판소리는 한국 역사의 한 부분


▎[춘향전] 등의 소설이 판소리 가사를 옮겨놨다는 상식은 잘못된 것이다. 판소리 춘향가 등이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 맞다. 사진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춘향이 신문을 당하는 장면. / 사진:한국영상자료원
고전 소설 연구자로서 필자가 판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소설이 판소리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라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등의 소설이 판소리 가사를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판소리 [심청가]나 [춘향가]가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심청가]나 [춘향가]는 소설 [춘향전]이나 [심청전]이 나온 후에 생겨난 노래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노래의 가사를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원래 ‘판(가사)’이 있는 ‘소리’라는 의미다.

판소리 연구자들은 원래 판소리는 열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일곱 가지는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1930년대에도 고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해 녹음한 새로운 판소리가 여럿 남아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당대의 유행가로 끊임없이 새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서양 음계를 바탕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양식의 노래가 유행하면서 20세기 중반에 그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판소리는 전통을 보존하는 사람들과 이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의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판소리를 잘 부르면 되는 것 아닌가? 판소리 역사를 잘 안다고 해서 판소리가 재미있어지는가? 등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꿔서 해볼 수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정확하게 서술하고, 이를 잘 이해하면 현재의 삶이 나아지는가?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판소리의 역사는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이고, ‘판소리’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해낼 수 있는 능력도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능력의 일부다.

※ 이윤석 -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다.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6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했다. [홍길동전]과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을 연구해서 기존의 잘못을 바로잡았다. [홍길동전] 이본(異本) 30여 종 가운데 원본의 흔적을 찾아내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 방법을 서술했다. 고전소설과 관련된 저서 30여 권과 논문 80여 편이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와 같은 대중서적도 썼다.

202208호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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