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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⑫ 삼척 덕항산 환선굴에서 

 

신이 빚은 자연도 인간의 과학이 더해져야 경이롭다

새벽 6시 50분, 서울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가 엄청나게 오른 기름값도 아낄 겸 씽씽 내달리는 고속도로를 포기하고 꼬불꼬불 산길로 들어섰다. 지름길을 선택하면서 거리로는 50km를 줄였는데, 첩첩산중이라 속도를 내지 못해 예정된 시간보다 50분이 늦은 오전 11시 정각에 드디어 삼척 덕항산 입구에 도착했다.

느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그 덕분에 말로만 듣던 높은 산 고랭지 배추밭을 눈앞에서 보게 됐다. 차창 너머 산 중턱에 고랭지 배추들이 지천으로 줄을 맞춰 파랗게 속이 들어가고 있었다. 배추밭을 보면서, 나를 유독 사랑해 주셨던 오래전에 귀천하신 할아버지 생각에 잠시 잠겼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의 친형이 큰 민사재판에서 뛰어난 변론으로 실세 일본인을 이긴 일이 있었다. 많은 재산을 잃은 그 일본인의 보복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큰할아버지는 만주로 급히 피신 가야 했단다. 그 바람에 하루아침에 집안이 몰락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광산 김씨 양반집 도련님 할아버지도 할 수 없이 장성 백양산 자락의 산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덕진골 도장굴 산 1000평과 언덕배기 산 600평을 일궈, 돌과 나무뿌리를 캐고 퇴비를 뿌려 밭을 만들어 우리 가족을 근사하셨다. 급경사 산비탈을 개간하고 농사짓는 그 수고스러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릴 적 사무친 옛 산골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향 땅은 밭을 일굴 사람들이 없어 오래전에 다시 산으로 묵혔는데, 지금 내 눈앞의 고랭지 배추밭은 장관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옛 고향이 그리워졌다.

삼척 덕항산은 1071m나 되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지여서 800m 고지까지 차로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걸어서는 채 2시간도 안 돼 정상을 정복했다. 산 정상 이정표엔 무명 병사의 묘지처럼 표지석 하나 없이 1071m 정상이라는 글씨만 쓰여 있었다. 길이 갈라지는 중요한 곳마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여간 애간장을 녹여댔다.

함께 온 일행들을 잠시 뒤로 하고, 그 크기가 동양 최대라는 '환선굴'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등산 베테랑들과 헤어지면서, 나는 연약하고 외로운 늙은 수사슴으로 혼자서는 절대 안전하게 하산할 수 없음을 곧바로 직감했다. 다행히도 몇 걸음 앞에서 지도를 보고 휴대폰으로 GPS 방향을 잡는 경험 많고 지혜로운 대장 코끼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나의 산행 대장이 돼달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함께 하산을 시작했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1071m 고지가 절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환선굴로 내려가는 동쪽 방향 하산길은 급경사 바윗길로, 가도 가도 멀고도 멀었다. 그래도 아프리카 어느 부족민의 격언처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실감하고 실감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가운데 안전하고 무사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인생사가 다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을 잘 만난 운명의 행운아는 성공의 길도 자가용으로 8부 능선을 타고 간다. 단지 2부 능선만 내 힘, 내 발로 걸어서 정상에 도달한다. 그런 성공은 우아하고 편안해 보이기는 하다. 반대로 가난해서 10부 능선을 오로지 내 발, 내 힘으로 딛고 올라가는 인생길은 힘들기는 해도 모든 부품 및 회로가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어, 비록 작고 빈약하더라도 그 성공은 참으로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이 한 걸음 한 걸음은 조각조각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고, 그렇게 지나온 아픈 흔적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이요, 너무나 소중한 보배가 아닐까! 지나고 나면 가난과 고생도 어쩌면 아름다운 인생의 한 일부이자, 예술작품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생에서 가난과 고생이 너무나 저평가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성공은 어렵게 탄생해야 진짜 맛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동양 최대’ 환선굴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환상의 굴이었다. 참으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웅장했다. 5억 4천만년 전 시생대(始生代) 시기에 이곳은 바다였다가 지구의 순환과 지각 변동으로 육지가 됐다. 석회암의 물에 잘 녹는 성질 때문에 큰 동굴이 생겼다고 했다. 총 길이가 6km가 넘는데, 아직 미개척한 곳이 많아 현재는 겨우 1.6km만 사람이 다니는 관광지로 개발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기가 높은 산 중턱 700여m 고지로 먼 옛날 바다였다는 것이 단 1%도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네 사는 집 지붕처럼 오랜 세월 풍파와 작은 물망울이 거대 석회암 바위를 깎고 파고 뚫어 마침내 구멍이 나고, 바위에 갇힌 물이 노자의 무위자연처럼 운명처럼 스스로 알아서 가장 약하고 얕은 곳으로 길을 내 웅장한 폭포가 흐르고, 오랜 세월 화학적·물리적 작용으로 여러 흔적과 이끼가 쌓이고 쌓여 이 아름다운 큰 굴이 만들어진 것이다.

옛날 어느 도인이 이 굴에 들어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해 신선이 됐을 것이라고 해서 환선굴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 도인이 까무러치게 천지개벽해 깜짝 놀랄 만큼 인간들은 발전했고, 무위자연에 인간의 과학이 더해져 형형색색의 무지갯빛으로 5억 년의 역사를 조명했기에 비로소 지금처럼 아름다운 환상, 환선의 굴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하기조차 하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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