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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파일 | 윤석열의 사람들(2)] 대통령과 ‘자유의 정신’ 공유하는 김병준 前 지역균형발전위원장 

尹이 ‘1호 독자’ 자처한 ‘노무현 우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30대 초반에 교수 임용, 인맥 의존 없이 실력으로 盧·尹 두 대통령에게 신뢰 얻어
와인 6병 회동으로 尹과 자유주의 가치동맹… ‘국가주의’ 저지가 필생의 소명


▎김병준 전 인수위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의지하는 멘토 중 한 명이다. 그런 만큼 윤 정부를 향한 연대의식이 각별하다.
윤석열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처럼 윤 대통령의 ‘움직이는 복심’들을 일컫는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멘토 그룹이 존재한다. 김병준(68)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위원장,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이 이에 속한다. 전자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하부구조를 구성한다면, 후자는 정권의 철학과 방향성에 관여하는 상부구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를 총 35번 읽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다”,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 등의 문장이 담겼다. 김 위원장은 이 취임사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뼛속까지 자유주의자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이 평생에 걸쳐 추구한 가치와 윤 대통령의 지향이 겹친다는 의미다.

김병준 위원장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TK 친노’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생겨난 배경이다. 어렸을 적 그의 가정은 유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형적인 자수성가 인생 궤적을 그렸다. 대구상고~영남대~한국외대 석사 등 주류 학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해 델라웨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강원대와 국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30대 초반 나이에 대학교수가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인들은 증언한다. 그는 국민대 교수 시절에 지방자치 분야의 권위자로 일가를 이뤘다. 이 시절 김 위원장은 상아탑 속 학자보다 인텔리겐치아(사회참여적 지식인)에 가까웠다. 시민단체를 대표하던 경실련에서 활동했고, 당시 야인으로 지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참여했다.

#1. 노무현과 윤석열을 매료시킨 정책 브레인


▎노무현(오른쪽) 전 대통령은 교수 김병준(왼쪽)의 정책 기획력을 높이 샀다. /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어떤 정치인과 연대할 때, 수직적 위계나 이해관계보다 가치관의 교감을 중시한다. 이는 아랫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비대위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인사는 “소수지만, 김 위원장을 따르는 이들은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 세속적 이득을 추구하며 좇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를 수행하는 비서는 “내가 운전하고 모실 때 김 위원장은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는다”며 “나이나 지위로 사람을 하대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언젠가부터 유튜브에 빠져 있다. 외국 학자의 강연을 즐겨 찾고, 독학으로 유튜브 제작하는 방법도 익혔다. 의전을 당연시하는 상당수 정치인들과 달리 혼자서 일상을 해결하는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그의 이런 기질과 부합하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흠모해온 건 익히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은 우파의 노무현을 지향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겉으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소탈하고 실용적인 성향이 닮았다는 함의가 있지만, 정작 김 위원장은 “자유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둘의 내면에 주목한다. 철학적 결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생래적으로 김 위원장은 정치를 ‘진영 간 철학과 가치의 대결’로 규정하려는 시각이 짙다. 자연스럽게 그는 정략보다 거시적 스케일의 정책 경쟁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본다. 이런 그의 관점이 가장 강렬하게 투영된 사례가 2002년 대선이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을 맡은 김 위원장은 ‘충청권 수도 이전 공약’을 내놔 이슈를 장악했다. ‘포지티브 이슈’가 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나중에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무산됐지만, 이는 훗날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의 밀알이 됐다.

2004년 노 대통령은 탄핵에서 돌아왔지만, 국정운영 동력을 복원하지 못하자 김 위원장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호출했다. 그는 훗날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원해서 맡았던 공직”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둘은 기질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맞지 않았다. 친노 주류와 결이 달랐음에도 노 대통령은 끝까지 김 위원장을 중용했다. 독대하면 “어떤 자리를 주면 나를 도와주겠소?”라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신뢰감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11월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후보로 지명됐을 때, 수락 이유로 “노무현 정신”을 꺼냈다. 이후 2018년 7월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된 직후에는 봉하마을을 참배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일관된 존경을 표시했다.

#2. 밀턴 프리드먼과 윤기중 교수로부터 잉태된 인연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은 대선 캠프가 차려진 직후 세종시부터 방문하며 김병준(왼쪽)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을 배려했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관계는 일종의 ‘가치동맹’이다.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인연은 한 건의 신문 기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8월 21일 [중앙일보] 인터뷰가 그것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라는 꽤 긴 제목의 책을 탈고한 직후였다. 출간을 앞두고 그는 [중앙일보]와 가장 먼저 인터뷰를 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9월 두 딸에게 건네는 고백 형식 에세이 [아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이름]을 중앙북스에서 출판한 바 있다.

[중앙일보]는 당시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를 ‘곧 출간될 책’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의 초판 1쇄는 2021년 9월 9일에야 나왔다. 김 위원장은 “출판사의 작업이 예정보다 늦어져 사실 [중앙일보] 인터뷰 시점에는 표지조차 완성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인터뷰에 책 사진이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김 위원장은 “급한 대로 표지라도 만들어달라”고 청했다. 김호석 화가의 [똥꽃 - 아르가르의 향기]는 김 위원장이 직접 채택한 것이다. 아르가르는 몽골어로 소똥을 뜻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경 메시지처럼, 자유주의 가치가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란 것이다.

이 책이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읽어본 ‘1호 독자’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21년 7월 윤 대통령은 대선 출마 선언만 했을 뿐, 국민의힘 입당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경로로 김 위원장이 책을 썼다는 소식을 접한 윤 대통령은 “책의 가(假)제본이라도 달라. 그걸 보고 공부하겠다”고 부탁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제작비가 더 들더라도, 일단 제본을 3부 만들라”고 출판사에 전했다. 그렇게 1부는 출판사, 1부는 저자인 김 위원장 그리고 1부가 윤 대통령에게 갔다.

누군가가 나의 신념에 그토록 열렬히 동조한다면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윤석열 후보의 지원 요청에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당시 그는 최재형 후보에게서도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까지 지낸 사람이 특정 후보 경선 캠프에 들어갈 수 없다”며 거듭 사양했다.

‘행동인’ 윤석열은 체념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결행했다. 김 위원장의 평창동 자택을 찾아온 것이다. 나중에 ‘와인 6병 회동’으로 알려진 첫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다. 윤 대통령은 다음 날 지방 유세가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밤새 대화했다.

김 위원장이 쓴 책의 부제는 ‘자유주의와 사회안전망을 위한 혁명’이다. 그는 성장담론 없는 진보는 ‘사이비 진보’, 분배담론 없는 보수는 ‘사이비 보수’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분배는 “시장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1차 분배와 국가가 세금을 거둬 배분하는 2차 분배로 구분된다”고 정의했다. 김 위원장은 이 가운데 1차 분배가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는 성장담론일 뿐 아니라 분배의 가장 중요한 출발이라는 관점이다.

#3. 사회안전망 갖춘 자유주의로 의기투합


▎김진태(왼쪽) 강원지사를 비롯한 국민의힘 자치단체장들은 6월 지방선거에서 김병준(오른쪽 셋째) 전 인수위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의 인사이트를 빌렸다. / 사진:연합뉴스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이런 맥락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윤 후보가 자유주의에 대해 이렇게 이해도가 높은 줄 몰랐다”고 탄복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저희 아버지가 사회통계 학자였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1999년 3·1 문화상 학술상을 수상했다. 3·1문화재단은 ‘윤기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미개척 분야인 소득과 부의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한국 경제의 불평등 분석]이라는 저서로 체계화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낳게 한 성장의 배경을 분석하고 학계의 논쟁과 연구 사례를 검토하는 한편, 경제적 불평등도를 계측하는 방법과 발전 과정을 살피고 상호관계를 수리적으로 해명하는 어려운 연구를 수행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윤 교수는 아들 윤 대통령이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자 밀턴 프리드먼의 책 [선택할 자유]를 선물했다. 이 책은 윤 대통령의 ‘인생 책’이 됐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정부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옹호했다. 윤 대통령 덕분에 2022년 한국에 재출간돼 흥행 역주행 중인 [선택할 자유]는 프리드먼의 사상이 응축된 경제학의 고전이다. 프리드먼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스주의와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는 규제 중심의 국가주의 정책은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비도덕적이라고 공격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 설화에 휘말렸던 ‘부정식품’ 발언도 엄밀히 따지면 [선택할 자유]의 영향이었다. ‘주머니가 홀쭉한 사람이라면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질 낮은 식품을 고를 권리도 있다. 그렇지 않고 위생 기준을 충족하느라 가격이 올라간 제품만 골라야 한다면 소비자의 선택할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정부의 규제는 비록 선의가 깔려 있어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신념이 배어 있다. 이에 관해 [선택할 자유]는 “식품의약청이 범하고 있는 위해는 담당 책임자들도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야기된다. (…) 사회·정치·경제적 압력이 아마도 (…) 훨씬 광범위하게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마치 멍멍 짖는 고양이처럼 아주 드문 일이다”라고 적시했다.

사회안전망에 관한 관점을 논외로 하면, 김 위원장 역시 큰 틀에서 프리드먼의 자유주의와 교집합을 갖는다. 그는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에서 ‘평등우선론은 평등을 죽이지만, 자유우선론은 (성장뿐 아니라) 평등도 살린다’, ‘국가는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적(敵)’, ‘국가주의는 망국의 늪’이라고 설파했다. 그 대안으로 그는 자유와 자율, 개인의 창의성에 입각한 ‘i노믹스’를 내놓았다.

#4. “尹 정부 실패하면 ‘국가주의’ 득세” 우려

윤석열 선대위는 시작과 동시에 헤게모니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최정점에 위치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의 관계는 시종 매끄럽지 않았다. 당시 선대위 참여 인사는 “독일식 사민주의를 중시하는 김종인 위원장과 미국식 자유주의자인 김병준 위원장은 태생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 입지를 다지는 방식도 둘은 상이했다. 보수 정당 비대위원장을 역임한 두 정객을 모두 겪어본 국민의힘 인사는 “김종인 위원장은 감각적이고 자신의 세(勢)를 중시한다. 그의 이런 면모를 김병준 위원장은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일례로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수행하며 2021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김병준 위원장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망가진 상황에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드러난 성과로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도드라지지만, 김병준 위원장 기준에는 ‘승산이 있을 때만 전면에 나서는 건 대도(大道)가 아니’라는 쪽이다. 김종인이 ‘현실’을 우선시한다면, 김병준은 ‘가치’를 우위에 둔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선대위 ‘원톱’ 김종인 위원장이 줄곧 ‘캠프의 슬림화’를 주장한 이면에는 김병준계를 포함한 비(非)김종인 라인을 제거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 단일대오가 흐트러진 윤 캠프는 탄력을 받지 못했고, 그러다 결국 2022년 1월 3일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가 하는 대로 연기(演技)만 해달라”는 김종인 위원장 발언이 터졌다. 당시 한국거래소 개장식 참석 중 이 소식을 접한 윤 대통령은 격앙됐다. 이 타이밍에 김병준 위원장은 “나부터 내려놓을 테니 이 참에 캠프를 일신하라”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1월 4일 김종인 위원장과의 결별을 선택했다.

곡절 끝에 3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은 다시 김병준 위원장을 불러들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첫 출근한 3월 14일, 지역균형발전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인수위 이후에도 김 위원장은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자치단체장 후보들의 정책 조언을 해줬다. 박형준 부산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등이 김 위원장의 ‘컨설팅’을 받았다. 특히 김 지사의 핵심 공약인 강원특별자치도에는 김 위원장의 지문이 묻어 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 선출직에 도전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 대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세종에서 출마했다. 대구에서 출마했으면 승산이 아주 높았지만, 김 위원장은 당의 뜻에 따라 험지인 세종으로 향했다. 세종을에서 그는 39.68% 득표율로 낙선했다. 하지만 보수 정당 후보가 세종에서 이 정도 득표율을 기록한 전례가 없었다. 국민의힘 소장파 그룹에서는 “2년 후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세종시장 선거를 이긴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는 2년 전 김 위원장이 저변을 다져놓은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이대로 가면 이재명이 대통령”이라는 ‘우려’를 주변에 털어놓고 있다. 그에게 문재인, 이재명으로 대변되는 민주당은 국가주의 그 자체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친소 관계를 떠나 ‘자유주의가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 여부를 가르는 시험대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보며 김 위원장은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절박함을 호소한다.

윤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할수록 정치권 일각에서 김 위원장 등판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직접 대통령실에 들어가 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외곽에서 조언 그룹으로 남아야 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정작 김 위원장은 현실 정치 참여보다 자유주의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방편을 구상하고 있다. 생각보다 일찍 위기에 빠진 윤 대통령은 언제, 어떤 형식으로 김 위원장에게 손을 내밀까. 18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상황이 포개진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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