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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家) 딸들의 몫(1) CJ·금호석화에서도 ‘남매 경영’ 시작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콘텐트 책임지는 이경후, 돈줄 꽉 잡은 박주형
‘남매의 난’ 속 기사회생한 조현민·구지은의 성과는?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구매재무담당 전무,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브랜드전략실장).
장자(長子)·아들 중심 승계 등 보수적인 기조가 여전하지만 실력을 앞세워 ‘남매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너가(家) 여성 경영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매출 등 경영성과뿐 아니라 주요 회사에 대한 지분 확보로 승계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부적 기회’를 잘 살려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은 이미 경영자로서 자리를 탄탄히 잡았다. 박주형 금호석화 전무, 이경후 CJ 경영리더는 새롭게 부상하는 오너가 여성 경영인이다. ‘남매의 난’ 진흙탕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조현민 한진 총괄사장과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은 이미지 쇄신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남매 경영’의 닻 올리다- 박주형·이경후

최근 새롭게 부상한 오너가 여성 경영인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 회장의 장녀 박주형(42) 구매재무담당 전무다. 지난 7월 금호석화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1년 6개월 동안 진행됐던 박 회장과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 간 경영권 분쟁, 이른바 ‘조카의 난’을 끝냈다. 이 자리에서 금호석화 사내이사로 선임된 박준경(44) 영업본부장(부사장)과 금호석화의 CFO(최고재무책임자) 격인 박주형 전무의 ‘남매 경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박주형 전무는 2015년 그룹 합류와 동시에 금호석화의 ‘돈줄’을 쥐었다. 당시 금호석화는 구매담당 파트 임원이 원자재를 수입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뒷돈을 챙긴 혐의가 발각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재무 전문가’로 알려진 박찬구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에서 일하던 박 전무를 재무·자금담당 상무로 불러들였고, 그는 부친의 막강한 신임을 바탕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박 전무는 금호그룹에서 ‘금녀(禁女)의 벽’을 깬 인물로도 유명하다. 금호그룹은 창업 이래 여성의 경영 참여는 물론이고 지분 소유 및 상속도 금했는데, 2012년 박 회장이 딸에게 현금을 증여해 금호석화의 지분을 취득하게 하면서 이 장벽을 깼다. “딸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박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재계에서는 금호석화가 남매 경영 안착 후 사업분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진행한 금호리조트 인수에 대해 박 전무의 몫이라는 말도 나온다. 향후 박 부사장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박 전무가 레저 계열사를 나눠 가질 것이란 분석이다. 금호석화는 최근 2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CJ그룹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딸 이경후(37) CJ ENM 경영리더(브랜드전략실장)와 아들 이선호(32) CJ제일제당 경영리더(식품전략기획1담당)가 지주사 CJ의 지분율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는 것. 올 들어 이경후 경영리더가 1.19%에서 1.27%로, 이선호 경영리더는 2.75%에서 2.89%로 지분을 늘렸다. 두 사람은 신형우선주도 매입하고 있는데 2029년 신형우 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지주사 지분율은 이경후 4.3%, 이선호 5.87%로 확대될 전망이다.

얼마 전 CJ올리브영의 상장 작업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CJ올리브영의 최대 주주는 CJ로 지분 51.15%이며 이선호 경영리더(11.04%), 이경후 경영리더(4.21%)도 지분이 많아 오너가 경영 승계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 가치가 4조원까지 언급된 만큼 기업공개(IPO)를 통해 CJ 지분을 매입하면 상당한 승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IPO 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재계에선 CJ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두고 남매간 경쟁구도가 아닌 계열사 분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이재현 회장처럼 이경후 경영리더가 CJ ENM 등 문화콘텐트 사업을 맡고, 이선호 경영리더가 지주사 등을 책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경후 경영리더는 동생보다 빠르게 임원을 달며 실력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팅팀장 재직 시절엔 비비고 만두로 미국 내 만두 시장 1위를 달성하면서 사업 역량도 검증받았다. 2020년 CJ ENM 부사장대우에 올랐으며, 브랜드전략실을 총괄하고 있다. 같은 해 이재현 회장은 보유한 CJ 신형우선주를 남매에게 50%씩 증여하면서 딸의 역할을 평가했다.

진흙탕 싸움에서 살아남다- 조현민·구지은


▎조현민 한진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사장,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2018년 ‘물컵 갑질’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조현민(39)은 당시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여객마케팅부 전무, 진에어 부사장(마케팅본부장), 한진칼 전무, 정석기업 대표이사 부사장, 한진관광 대표이사 부사장, KAL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 부사장 등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1년 남짓 지나 지주사 한진칼 전무로 복귀한 그는 지난해 부사장, 올해 초 한진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갑질 행위에 대한 공분이 가시기도 전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원태(46) 한진 회장과 조현아(48) 전 부사장 간 ‘남매 전쟁’에서 오빠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월말, 4년 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한 조 사장은 로지스틱스와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 마케팅’을 통해 물류 혁신이 일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조 사장은 현재 한진의 미등기 임원이다. “아직 능력 검증이 안 됐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한진은 올 상반기 매출 1조4131억원, 영업이익 6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5%, 56.6% 늘었지만 조 사장이 담당하는 신사업부문은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성과를 내어 ‘갑질 오너’라는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떨치는 것이 그의 당면 과제다.

구지은(55) 아워홈 부회장도 6년에 걸친 ‘남매의 난’에서 살아난 케이스다. 지난해 6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한 그는 부실 거래처 최소화, 비용 절감을 바탕으로 신규 수주 물량 확대에 공을 들였다. 미국 우정청 구내식당 운영 계약을 따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주력인 단체급식과 식품 사업 모두 매출과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지난해 257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은 1조7407억원으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아워홈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고 구자학 회장이 세운 회사다. 일찌감치 구 회장의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해 회사를 키웠지만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2016년 말 장남 구본성(65) 전 아워홈 부회장이 경영에 나섰다. 그러나 구본성 전 부회장이 보복 운전 혐의로 처벌되면서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 이 와중에 구본성 전 부회장의 방만 경영과 배임·횡령 논란까지 불거졌다. 현재 아워홈 지분은 구본성(38.56%), 장녀 구미현(19.28%), 차녀 구명진(19.6%),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20.67%) 등이다.

재계에서는 ‘오빠의 귀환’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2004년 아워홈에 입사한 이후 구매물류사업부장, 외식사업부장, 글로벌유통사업부장 등을 두루 거친 구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아워홈은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서 삼성웰스토리에 이어 2위 사업자다. 올해 목표는 매출 2조원, 단체급식 사업 1위 달성이다. 또 케어푸드(환자식) 등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제 ‘남매 경영’ 타이틀 떼어주세요- 이부진·정유경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이부진(52) 호텔신라 사장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오너 일가로는 드물게 정기 주주총회에서 직접 의사봉을 잡고 있다. 호텔신라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창사 이래 처음 18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나 지난해 영업이익 118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매출은 3조7791억원으로 전년 대비 18.5% 증가했다. “내실경영 기조로 수익성 개선에 노력한 결과”라는 게 이 사장의 진단이다.

3월 주총에서 “올해가 호텔신라의 대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이 사장은 뷰티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신규 럭셔리 뷰티 합작법인 ‘로시안’ 설립을 공식화한 것. 신규 브래드 론칭과 운영은 로레알이 주도하고, 호텔신라는 호텔과 면세점 등 화장품 판매 채널을 담당한다.

호텔신라는 면세 시장이 제자리를 찾는 동안 호텔사업과 면세사업의 디지털 전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300%대로 증가한 부채비율과 3%대로 쪼그라든 영업이익률은 이 사장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기한 공사 중단 결정을 내렸던 장충동 전통호텔에 대한 결단도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삼성에 이부진 사장이 있다면 신세계에는 정유경(50)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1년 신세계로부터 대형마트 부문을 인적 분할해 별도법인 이마트를 출범시키면서 남매의 ‘따로 경영’을 시작했다. 정용진(54) 신세계 부회장은 이마트를 맡아 식품과 유통채널에,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을 맡아 패션·뷰티 시장에 집중하면서 그룹의 유통 지도를 넓히고 있다. 정 총괄사장은 일찌감치 정 부회장과 이마트 지분 맞교환으로 신세계 지분 18.56%를 확보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같은 유통업이다 보니 남매는 자주 견주어진다. 올 2분기 성적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정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온라인 투자로 인해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반면, 정 총괄사장이 책임지는 신세계는 백화점뿐 아니라 패션·화장품 성장세로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 수입 패션 브랜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 호텔 투숙률이 상승하면서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는 센트럴시티, 현대리바트를 누르고 가정용 가구 시장 3위에 오른 신세계까사 등이 효자로 꼽힌다.

男보다 앞선 행보 ‘女회장’ 나올까- 정지이·조연주


▎정지이 현대무벡스 아시아지역 총괄전무,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
조용하게 그룹 내 장악력을 높여가는 오너가 여성 경영인으로는 정지이(45) 현대무벡스 아시아지역 총괄 전무와 조연주(43) 한솔케미칼 부회장이 있다. 2대 주주 등극, 여성 회장도 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정은 회장의 삼 남매 중 장녀인 정지이 전무는 2004년 현대상선에 입사, 2006년 현대유엔아이(현 현대무벡스) 실장(상무)으로 임원을 달며 현재까지 현 회장을 밀착 보좌하고 있다. 범현대가 갈등과 계열사 매각이라는 후폭풍, 현대상선 경영난 등을 겪으며 경영자로서 맷집이 다져지면서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현대그룹은 지난해부터 양대 주력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무벡스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월 현대엘리베이터 공장과 본사를 충주로 옮겼는데 기존 공장 대비 연간 생산능력 25%(2만5000대), 인당 생산성 38%(4.8대→6.6대) 향상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3월 코스닥에 상장된 물류자동화 및 IT서비스 기업 현대무벡스는 매출액이 2018년 1765억원에서 지난해 2401억원으로 36%, 영업이익은 109억원에서 154억원으로 41.2% 늘었다.

정지이 전무의 경영 승계 속도는 두 회사의 성장세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 능력 입증뿐 아니라 지분율을 늘리기 위한 실탄 확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은 현대네트워크가 최대주주로 10.6%, 현 회장 7.8%, 현 회장의 어머니 김문희씨 5.5%, 임당장학문화재단 1.4% 순이다. 정지이 전무는 지분율 0.3%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인 현대네트워크의 지분은 현 회장이 91.30%, 정지이 전무가 7.89%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무벡스의 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 35.66%, 현 회장 25.31%, 정 전무 4.22%다. 차녀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은 0.14%, 장남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도 0.18%에 불과하다.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은 올 초 부친인 조동혁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조 회장은 지분 일부인 31만4000주를 자녀 3명에게 증여했는데 장녀 조 부회장에게 15만7000주, 차녀 조희주와 아들 조현준에게 각각 7만8500주를 증여했다. 한솔그룹은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는 지주사 한솔홀딩스(한솔제지)와 조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솔케미칼 체제로 나뉜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이 증여를 계기로 경영 승계에 속도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0.03%에 불과했던 조 부회장의 지분이 1.41%로 늘면서 숙부인 조동길 회장을 제치고 2대 주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조 부회장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한솔케미칼 경영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 웰즐리대에서 미디어학,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경영학(MBA)을 공부한 그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와 글로벌 의류업체 빅토리아시크릿 연구원 등을 거쳐 2014년 한솔케미칼에 기획실장으로 합류했다. 이듬해 사내이사로 선임돼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조 부회장의 위치를 탄탄하게 하는 것은 실적이다. 경영에 참여한 이후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고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사업재편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재계에서는 조 부회장에 대해 “별다른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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