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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家) 딸들의 몫(4) 중견 패션·건설·식품 업계, 딸들의 경쟁구도 부각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딸부잣집 세아상역·서희건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
패션업계 2세들, 코로나19로 매출 곤두박질에 승계 안갯속으로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 대표.
패션업계에서는 소비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여성 리더들이 일찌감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 재택근무, 외부행사 축소가 이어지면서 옥석이 가려지는 모양새다. 패션 대기업에 이어 패션 플랫폼이 2030 세대를 공략하면서 중견 패션업계 오너가 딸들의 ‘계속 경영’이 분기점에 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원무역·세아 웃고, 한세·형지·세정 울고

오너가 2세 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곳은 영원무역과 글로벌세아그룹이다. 영원무역을 보면 성기학 회장의 차녀 성래은(44) 대표가 2016년부터 영원무역홀딩스와 영원무역을 맡고 있고, 장녀 성시은(45) 영원무역 이사가 사회공헌활동을, 성가은(41) 영원아웃도어 부사장이 내수 브랜드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후계 구도에서 앞서 있는 성래은 대표는 2016년 취임 이후 지주사 지분 매입에 나서고 해외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하는 등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회사에 합류한 그는 기업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영원무역홀딩스는 지난해 매출 3조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7%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67.2% 늘어난 57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7월 막내 성가은이 영원아웃도어 매출 신장에 힘입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후계 구도에 경쟁이 붙는 모양새다. 영원아웃도어의 2021년 매출은 전년 대비 26% 증가한 5445억원, 영업이익은 65% 늘어난 1331억원을 나타냈다.

의류 수출 1위 기업 글로벌세아그룹도 2세 경영태세를 갖추는 중이다. 창업주 김웅기 회장의 차녀 김진아(38) 글로벌세아 전략기획실 전무가 올해 초 세아상역 주주총회에서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차세대 경영자로 한발 다가섰다. 그가 이끌고 있는 전략기획실은 그룹 컨트롤타워로서 인수합병(M&A)을 비롯해 전략기획, 법무, 대외 업무 등을 총괄한다. 삼녀인 김세라(31) 상무는 세아상역 전략기획담당 임원으로 근무 중이다.

글로벌세아는 2021년 그룹 매출 3조6000억원, 영업이익 2400억원을 달성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계열사도 의류, 플랜트, 골판지 등의 사업 분야에 걸쳐 49개사나 된다. 세아상역의 성공을 기반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M&A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2019년에는 국내 1위 골판지 업체인 태림포장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쌍용건설을 인수했다.

반면 실적 악화에 ‘경영능력 우려’가 커진 오너가 딸들도 있다. 김동녕 한세예스24그룹 회장의 막내딸 김지원(41) 한세엠케이·한세드림 대표는 2019년 취임 후 성적이 초라하다. 취임 첫해인 2020년엔 전년 대비 28% 감소한 2202억원 매출과 188억원 적자를 냈다. 2021년에도 영업손실은 이어졌다. 김 대표는 온라인 유통 강화와 골프 브랜드 LPGA, PGA 성장으로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NBA 슬리퍼(슬라이드)를 내놓으며 신발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의 장녀 최혜원(42) 형지 I&C 대표는 패션그룹형지 전략기획 이사, 캐리스노트 사업부장을 거쳐 2016년 취임했다. 그 또한 실적이 부진하다. 형지I&C의 지난해 매출은 650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줄었고, 영업손실은 40억원으로 더 확대됐다. 2017년 중국 사업을 정리한 최 대표는 온라인 강화, 브랜드 리뉴얼 등 체질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프리미엄 아울렛으로도 유통망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의 셋째 딸 박이라(44) 세정 사장은 세정과미래 대표, 세정씨씨알(CCR)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올리비아로렌, 인디안 등 사업을 진행하는 세정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690억원, 영업이익 2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세정은 최근 대표 패션 편집숍 웰메이드에서 신규 라인 ‘인디안골프’를 선보이기도 했다.

딸 셋 모두 뛰어든 ‘서희’, 따로 챙기는 ‘호반’


▎김지원 한세엠케이 대표, 최혜원 형지I&C 대표, 박이라 세정 사장.
건설업계에서는 서희건설과 호반건설 딸들의 경영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에서 역대 최대 순위인 23위를 기록한 서희건설의 이봉관 회장은 딸만 셋을 두었다. 현재 장녀 이은희(49) 부사장이 통합구매본부장을 맡아 주로 자재 매입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차녀 이성희(47) 전무는 재무본부에서 재무와 원가관리 등 회사 살림을 챙기고 있다. 검사 출신 삼녀 이도희(40) 이사는 2020년에 미래사업본부 기획실장으로 합류했다.

업계에서는 아직 세 자매 중 누가 경영권을 이어받을지는 안갯속이라는 분석이다. 맡은 핵심 업무가 각각 다른 데다 보유하고 있는 서희건설과 지주사 유성티엔에스 지분 현황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평소 “서열을 따지지 않고 가장 능력이 출중한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공언해왔다. 업계에선 그 능력 평가의 잣대를 ‘신사업’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이 시설관리업, 영상방송통신업, 기숙사운영업, 폐기물처리업 등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사업 수익 안착에 몰두하고 성과를 보여준 딸이 경영권 승계에 한걸음 다가설 전망이다.

김상열 전 호반건설 회장의 둘째인 김윤혜(31) 호반프라퍼티 부사장은 상업시설 브랜드 ‘아브뉴프랑’의 마케팅실장으로 근무하다가 2020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승진했다. 호반프라퍼티는 주택건설 및 분양공급업 등을 진행하는데, 김 부사장이 최대주주(30.97%)다. 앞서 호반프라퍼티는 2019년에 농산물 도매법인 대아청과 지분 51%, 삼성금거래소의 지분 43.11%를 인수하고 2020년 11월 ‘아브뉴프랑’을 흡수합병하는 등 활발하게 M&A를 진행했다. 업계에선 김상열 전 회장이 두 아들에게는 호반건설(주택사업)과 호반산업(토목사업)을 물려주고, 딸에게는 호반프라퍼티를 물려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상은 ‘한지붕 자매 경영’ 시작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 임상민 대상 전무.
국내 대표 식품기업인 대상에서는 3세인 임세령(45)·임상민(42) 자매의 ‘투톱 경영’ 체계가 가시화되고 있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은 그룹 주요 사업 전반의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와 대상 부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대상홀딩스 전략담당중역과 대상 마케팅담당중역까지 맡고 있다. 차녀 임상민(42) 대상 전무는 2016년 전무 승진 후 전략담당중역을 맡고 있으며 그룹의 글로벌 사업과 신규사업, 전략기획도 총괄한다.

사실 몇 해 전만 해도 대상의 후계구도는 임상민 전무에 쏠려 있었다. 지난 2020년 대상의 사내이사로 선임된 데다, 올해 3월 기준 대상홀딩스 지분을 보면 임 전무가 36.71%로 임 부회장(20.41%)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승진한 임 부회장이 M&A 전면에 나서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면서 존재감이 급격히 커졌다. 임 명예회장과 모친 박현주 부회장 등으로 이뤄진 대상홀딩스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면서 경영구도에 묘한 기류도 감지됐다.

지난 3월 대상이 친환경 유기농식품 유통 프랜차이즈 자회사 ‘초록마을’을 정육 스타트업인 정육각에 900억원에 매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대상홀딩스 및 임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소유하고 있던 초록마을 지분 99.57%를 팔았는데, 지분을 보면 대상홀딩스가 49.10%, 임 부회장이 30.17%, 임 전무가 20.31% 등이다. 이 매각 대금으로 대상홀딩스 주식을 사면 각각 임 부회장은 8.39%, 임 전무는 5.68%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대상홀딩스에 대한 두 사람의 지분율이 좁혀지는 것이다.

대상그룹은 지난해 좋은 실적을 보였다. 매출은 전년 대비 11.46% 증가한 3조470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1532억원을 거뒀다. 종합식품과 조미료는 물론 바이오전분당 사업 등이 성장을 이끌었다. 주목할 점은 국내와 해외 매출 비중이 각각 2조3019억원, 1조1681억원이며 해외 매출이 34%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해외 시장 확대 전략을 다각도로 펼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상그룹은 21개 해외법인을 두고 있다. 글로벌 사업의 가시적인 성과가 향후 경영승계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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