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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아리아 들으면 우크라이나 비극 생각나… 보편적 정서에 세계인 공감할 것”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대중성 위해 오페라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다큐·연극·뮤지컬적 요소 차용
‘제주4·3사건 특별법’ 제정에 따른 감사와 헌정의 의미로 전석 무료 공연


▎국내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이 9월 2~3일 이틀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 사진:스튜디오 더존
페이소스(pathos)는 동정과 연민의 감정, 비애감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시·공간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향유되는 데는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품에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창작 오페라로 제작돼 9월 2~3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따른 감사와 헌정의 의미로 전석 무료로 공연된다.

소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 당시 북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집단에 몰아닥친 비극을 그리고 있다. 특히 소설 속에서 두 자식을 잃은 부모의 깊은 슬픔에는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인류보편적 가치가 내재해 있다.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이 기획된 것도 제주민이 겪은 깊은 슬픔이 세계인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4·3사건이라는 비극을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난 사건으로 조명하기보다 순이삼촌이 느꼈던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을 보편적인 정서로 치환하고자 했다. [순이삼촌]의 작곡을 맡은 최종원 작곡가는 “어진아(순이삼촌의 대표 아리아)를 듣다 보면 지금 지구촌 사람들을 깊은 슬픔에 빠뜨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생각날 것”이라며 “전쟁 속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에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예술총감독이자 순이삼촌 역을 맡은 강혜명 소프라노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더 많은 이가 제주의 비극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오페라의 목표”라며 관객과의 공감대를 이루는 데 집중했음을 밝혔다.

소설 [순이삼촌]은 4·3사건 발생 후 30여 년이 지나 세상에 나왔지만, 한때는 이 책을 읽거나 갖고만 있어도 잡혀가는 일이 허다했다. 활자로 존재하는 [순이삼촌]은 이처럼 그늘 속에 갇혀 있던 작품이지만 오페라라는 공연 장르와 만났을 때는 달랐다. 특히 8월 1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야외무대에서 열린 오페라 [순이삼촌] 제작발표회에서 강혜명 소프라노가 선보인 ‘어진아’는 폭발적 에너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 소프라노는 “리허설 때도 아리아를 부르면 다들 눈물바다가 돼 서로 다독여주기도 했다”며 “감정에 이입하다 보면 모두가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작자인 현기영 작가도 오페라가 지니는 확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해 집단적인 제스처와 몸짓, 음성이 더해지니 방방곡곡이 울리는 것 같아서 웅장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역시 오페라라는 장르가 굉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페라는 서정적인 선율로 노래하는 ‘아리아’와 대사를 실어 말하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로 구성된다. 하지만 레치타티보에는 운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와는 거리가 멀어 대사 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다. [순이삼촌] 제작진은 낯선 오페라 장르를 관객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준비했다.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장은 “이번 공연에서는 삽화·낭송 같은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음악 등 뮤지컬스러운 요소를 넣어 재탄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명 예술총감독은 “2020년 초연 때는 세 시간이 넘는 장시간 공연이었다. 작년에 재연을 준비하며 등장인물 역할 자체를 성악가에서 연극배우로 바꿨고, 극장적인 부분을 가미했다”며 “대사를 대사체로 풀었다는 점은 연극적인 요소가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자인 현 작가도 “연극적 요소나 미술적 요소를 넣어 어떤 동화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오페라를 고집하는 고정된 양식이 아니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모습을 보고 감독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 느꼈다”고 말했다.

2024년 일본 공연도 기획 중


▎강혜명 소프라노의 절창 [순이삼촌] 아리아 ‘어진아’에는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이 담겨 있다. 이는 제주도만의 비극이 아닌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다. / 사진:이승훈 기자
제작진은 [순이삼촌]이 순수 우리말로 만들어진 오페라라는 점도 관객에게 다가가는 주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빼고는 자막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대사를 들을 때는 시각적으로 50%가량을 버리는 반면 [순이삼촌]은 우리말로 전달돼 관객이 온전히 극에 집중하여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작곡가는 “우리말은 비음악적 요소가 강하고 뚝뚝 끊어지지만 이탈리아 오페라는 음악적이다”라면서 “작곡을 할 때 단순히 이탈리아 오페라를 흉내 냈다면 전달력이 떨어지고 지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페라 [순이삼촌] 제작진은 작품의 국내화를 넘어 세계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벌써부터 2024년 해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원작자도 바라는 바다. 현 작가는 “미국의 경우 4·3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점에서 미국인들 모두 이 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우선 우리와 예술·문화적으로 관련이 깊은 일본 공연을 먼저 진행하고 미국에서도 공연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202209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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