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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룡당했다’, 8·16 부동산 대책은 왜 ‘맹탕’이었을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 5년간 270만 호 공급 약속에도 구체성 미흡, 재건축 대책도 사실상 유예
■ 1기 신도시 등 재건축 단지 집값 하락 전환, 정부는 폭등·폭락 원치 않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5년간 270만 호 공급을 약속했지만, 시장은 그 구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희룡당했다.” 국토부의 8·16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 새로 등장한 신조어다. ‘희롱하다’를 패러디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이럴 줄 몰랐다’는 배신감을 강조한 것이다. 부동산 가격에 민감한 네이버 부동산 카페 등에서는 ‘원현미’라는 합성어까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는 정책마다 헛발질이었던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과 원 장관이 다를 바 없다는 야유다.

원 장관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과 더불어 윤석열 정부의 실세 장관으로 꼽힌다. 국토부 장관직을 차기 대권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원 장관이 취임 100일 즈음해 내놓은 8·16 대책(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은 ‘향후 5년간 27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시장을 이기려다 최악의 폭등을 자초했던 과거 문 정부와 달리 원 장관은 공급의 주체를 민간으로 두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서울대를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수준이라는 혹평도 듣기 어렵지 않다. 일단 “서울 등 수도권에 공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언제까지 지을지는 명시된 것이 없다. 시장에서는 “서울에 이를 수용할만한 땅이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시장의 최대 관심사였던 재건축부담금과 안전진단 기준 완화, 1기 신도시 재건축 마스터 플랜에 관한 구체성도 사실상 전무했다. 특히 재건축이익환수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이 통과시켜줄 가능성은 미미하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역시 속도를 올리려면 특별법 신설이 필요하지만, 윤 정부 공약 사업에 민주당이 선선히 협조해줄 리 만무하다.

실제 8·16 대책 발표 이후 약 1주일이 지났지만, 부동산시장의 하락 기조는 변함없다. 특히 1기 신도시나 재건축 기대감이 높았던 목동의 실망감은 가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4년 총선 이슈로 넘어간 1기 신도시 재건축


▎8·16 대책 이후 일산을 비롯한 1기 신도시의 아파트값은 재건축이 기약 없게 됐다는 실망 속에 일제히 하락 전환했다. 연합뉴스
왜 이렇게 밋밋한 대책을 내놓았는지에 관해 원 장관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은 (국토부가) 결론을 미리 제시하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변경이 생겼을 때, 매우 큰 혼란을 줄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또 ‘주택 공급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관해선 “입법과 지자체와의 실행 계획 논의가 필요해 10월부터 차례로 발표하겠다. 분양 일정 등에 대해서는 9월부터 하나씩 완성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의 재건축 이슈는 적어도 종합 계획 수립 시점인 2024년 이전까지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실제 대책 직후인 8월 21일 발표된 부동산114 시세 조사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일제히 하락 전환됐다.

재건축을 고대한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정서가 좋을 리 없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2024년 총선까지 희망 고문을 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재건축을 건드려 집값이 상승하는 것은 윤 정부와 원 장관이 바라는 방향성이 아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윤 정부에서 그나마 전임 정부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 ‘집값 안정’이다. 그렇다고 윤 정부가 폭락을 의도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집값 폭락이 만에 하나 현실화하면, 이는 가계 부채 문제나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력 대권 후보로 꼽히는 원 장관은 2024년 총선을 전후해 거취를 정할 것이다. 익명의 부동산 전문가는 “원 장관은 국토부 장관으로서 확실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리스크를 감당하는 쪽보다 상황을 관리하며 임기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장관직에서 내려올 타이밍을 실기하며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뒤집어쓴 김현미 전 장관의 전철을 원 장관은 밟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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