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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은빈 “우영우, 응원 없어도 혼자 노력…세상엔 외뿔고래들 많아”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 “[우영우], 쉽게 접근하면 안되는 작품이라서 고민…어떻게 표현할까 암담했다”
■ 현장 분위기 묻는 질문에 “배우들 케미는 최상…에너지 떨어지면 서로 충전해줘”
■ 자폐인 설정 비현실성 지적에는 “메시지 전달 위해 드라마적 허용 포함시키기도”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메시지를 묻자 “‘이 세상의 모든 자폐인을 비롯해 세상에는 흰고래 무리와 살아가는 외뿔고래들(소수자)이 많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진 나무엑터스
신생 채널에서 1회 시청률 0.9%로 시작해 16회 최종 시청률 17.5% 기록.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트 순위 2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유인식 연출, 문지원 극본)가 쌓아 올린 수치다. 아직 종영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만큼 길거리와 카페에서는 불쑥불쑥 우영우에 대한 화제가 튀어나온다. 제작 초 ENA 관계자는 시청률 3%만 나와도 대박이라 판단했던 만큼 제작진 모두 예상외 성공과 폭발적인 반응에 어안이 벙벙하다. 벌써 시즌2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우영우 변호사를 연기한 박은빈의 힘이 컸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았다. 박은빈은 좌충우돌 새내기 변호사의 톡톡 튀는 매력을 표현하면서도, 시종일관 특유의 빠른 어조로 방대한 대사량을 소화했다. 주연 배우로서 코로나19에 걸리면 촬영 스케줄에 문제가 생길까 봐 밥도 혼자 먹었다는 그는 제작 환경까지 고려하는 24년 차 배우이면서도, 엄마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직까지 만 29살(자칭)’ 여배우였다.

[우영우]가 종영한 다음 주인 8월 22일, 강남 모처 카페에서 우영우를 연기한 ‘본캐’ 박은빈 배우를 만났다. 하늘색 원피스에 발등이 반짝반짝 빛나는 보라색 크록스를 신고 밴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에서 그 나이에 걸맞은 발랄함이 보였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취재진의 질문에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답변하는 베테랑 배우의 면모가 보이기도 했다.

“우영우 향한 관심…크게 도취하지 않아”


▎박은빈은 처음에 [우영우]를 고사했던 이유를 묻자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은 왔지만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ENA
[우영우]의 성공을 ‘하드 캐리’한 주역이지만, 박은빈은 들뜨기보다는 도리어 차분해 보였다.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주셔서 솔직한 심정으로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박은빈은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고 노력했지만, 제가 모르는 감수성이나 무지했던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며 “작품성에는 심혈을 기울였지만, 대중성에서는 대중이 판단할 몫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목표 삼은 게 없었다고 밝힌 그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는 [우영우] 팀에게 주어지는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도취해있진 않는다”고 말했다.

박은빈이 [우영우]를 몇 차례 고사해 유인식 PD와 문지원 작가가 1년을 기다렸다는 에피소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사했던 이유를 묻자 박은빈은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은 왔지만,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라며 “배우로서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암담했다”라고 답했다. 이어 “시놉시스나 대본을 볼 때면 ‘이 드라마는, 이 캐릭터는 어떤 느낌으로 하면 되겠다’ 같이 예상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면, [우영우]는 분명 대본은 잘 쓰여있는데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캐릭터를 어떤 목소리와 톤으로 표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잡혔기 때문에 고민했다는 것이다.

우영우의 캐릭터를 작가와 상의할 순 있지만, 화면에 표현하는 것은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더군다나 이전 작품이 끝나고 [우영우] 촬영 돌입까지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은빈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캐릭터를 구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기존의 자폐 스펙트럼을 연기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는 ‘레퍼런스 기법’이지만 박은빈은 이 방법을 과감히 제외했다.

그는 “우리 드라마에서 우영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를 모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존 인물들을 모방한다면 그분들의 실생활을 수단 삼아 연기하게 될까 봐 최대한 배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아무래도 교과서로 공부하는 게 익숙한 사람으로서 자폐인에 대한 진단 기준들을 참고해 공부했다”라고 자신만의 연구 방법을 밝히기도 했다. 제작 PD와 작가들, 자문 교수까지 머리를 모아 탄탄하게 구축한 대본 위에 박은빈의 노력이 더해졌다. 덕분에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빠르게 뼈대를 갖추고 살을 붙여나갔고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이 됐다.

“시청자가 우영우 응원하게 만드는 게 내 과제였다”


▎박은빈은 “현장에서 한바다즈 배우들의 케미는 최상이었다”고 말했다. 주종혁(왼쪽부터), 강기영, 박은빈, 강태오, 하윤경. 사진 강기영 인스타그램
[우영우]는 우영우 못지않게 주변 인물들도 주목을 받았다. 우영우보다 더 비현실적인 ‘유니콘 상사’ 정명석(강기영),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권모술수’ 권민우(주종혁)를 비롯해 절친 동그라미(주현영) 등 화면을 뚫고 나오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촬영장 분위기를 궁금해 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은빈은 “현장에서 한바다즈(극 중 법무법인 한바다팀) 배우들의 케미(연기합)는 최상이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7개월간 이어진 촬영에 힘이 부칠 때도 잦았는데 그 공백을 우리 팀이 함께 채워줬다”며 “법정 신을 촬영할 때면 누군가 한 명씩 퓨즈가 끊기는데 그러면 다가가서 급속충전해주고, 또 저 사람이 배터리가 떨어진다 싶으면 충전해주는 식이었다”라고 덧붙였다.

7개월 동안 우영우로 살아왔던 ‘본캐’ 박은빈은 자신의 배역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는 우영우 변호사를 ‘응원해주지 않아도 혼자서 어떻게든 해내 보려 노력하는 친구’라고 표현했다. 박은빈은 “그 용기 있는 선택을 응원하게 되는 순환 구조가 있었던 것 같아서 영우를 제 친구처럼 여기기도 했고 부모 같은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시청자들이 우영우를 응원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로서 제 과제이자 영우로서 극에서 해내야 할 몫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박은빈은 ‘그럼에도 우영우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모순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극 초반에서 묘사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하지만 변호사로서 일하고 누군가는 이상하지 않게 봐줘야 하기 때문에 배우로서 정도를 지키는 것이 어려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드라마 외적으로 ‘장애인 희화화’ 논란도


▎박은빈에게 시즌2 제작을 비롯해 추후 활동 계획을 묻자 “차기작 검토조차 못 해 아무런 계획도 정해지지 않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 나무엑터스
한때 ‘현실 우영우’라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자폐인 변호사가 조명된 적이 있다. 하지만 수백, 수천만분의 1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인물을 두고 ‘평범하다(ordinary)’고 말할 순 없다. 그런 면에서 우영우는 ‘이상한(extraordinary)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영우]는 일정 부분 판타지가 가미된 드라마다.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따라다녔다. 박은빈은 이러한 논쟁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영우라는 캐릭터를 자폐증 증상에만 초점을 맞춰 전달하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묻힐까 봐 드라마적인 허용을 포함한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준호(강태오)와의 러브라인도 이러한 드라마적 허용이 개입한 경우다. 박은빈은 “개인적으로 인간의 성장이 꼭 사랑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면서 “우영우가 자기로만 가득한 세계에 ‘나와 너’로 이뤄진 타인을 초대하는 것은 굉장한 성장”이라고 했다.

드라마 외적으로는 ‘장애인 희화화’ 논란도 있었다. 우영우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자 어느 유명 유튜버는 반향어(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타인의 말을 따라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를 모방한 영상을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박은빈은 우려되는 지점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연기하는 우영우는 세계관 속에서만 살았으면 좋겠다”라며 “우영우의 모습을 어떤 의도로 구현하든 극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의도와는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영우]가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근간은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포용적이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박은빈이 생각하는 [우영우]라는 작품의 메시지는 ‘이 세상의 모든 자폐인을 비롯해 세상에는 흰고래 무리와 살아가는 외뿔고래들(소수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박은빈은 최종회에서 태수미(진경)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장에 들어가기 전 우영우와 대화하는 신을 ‘최애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우영우가 엄마와 대화할 때 외뿔고래를 언급하며 ‘이게 제 삶이니까요’라고 인정하는 모습과,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세상의 모든 외뿔고래에게 향유될 수 있는 작품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 장면은 배우로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심했던 장면”이라고 덧붙였다.

벌써 [우영우] 시즌2 제작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박은빈 배우에게 차기작 등 앞으로 계획에 관해 물었다. 그는 “현재로써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논의된 것이 없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촬영을 끝내고 아직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박은빈은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까 고민하게 되는 하반기”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 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lee.seu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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