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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미학(14)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역시, 우리 선조 단군왕검은 탁월하셨다

지금으로부터 4355년(단기 2333년) 전, 한 무리의 인간들이 정갈하고 엄중하게 하늘을 향해 제를 올리고 있었다. 그곳은 백두산과 한라산 중심에 위치한 해발 472.1m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의 참성단(塹星壇)이었다. 참성단의 크기는 상단 한 변의 길이가 6.6m이고 하단원형 지름의 길이는 8.7m, 총면적은 1695평(5593㎡) 정도로, 석재로 쌓아 올린 제단 상부는 정방향 단이다.

제사장은 단군왕검이다. 하늘을 다스리는 왕, 환인의 아들 환웅과 쑥과 마늘만 먹고 21일 만에 곰에서 예쁜 처자로 변신한 웅녀 사이에 태어난 존재였다. 그들은 무리에는 비·구름·바람을 관리하는 자가 있었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지혜를 담당하는 자가 있었다. 또한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애민박애 사상을 널리 펼치고자 했고, 만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간절히 기원했다.


먼 훗날 그들의 우두머리이자 제사장 단군왕검은 1908세를 살다가 신선이 됐으며, 그의 재위 기간은 단기 2333~108년으로 긴 세월동안 유지됐다. 국호와 통치자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역사는 유구하게 흘러 서기 2022년 현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건국 시조이자 영원히 죽지 않는 신화의 주인공, 거룩한 단군 성인님이 되셨다.

등반 친구들과 이런 성스럽고 고귀한 건국 신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 마니산 참성단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그들은 왜, 팔도의 넓고 넓은 금수강산 여러 산하 중에 이런 작은 강화도 마니산을 골라 하늘에 제를 올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렇게 봄·가을 매년 2번씩 하늘에 제를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 계단 한 계단, 한 발 한 발 마니산을 오르면서 나는 단군왕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영국의 속담에 “가까운 이웃 사이에는 영웅이 없다”라는 명언처럼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반도를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내가 어찌 만인과 똑같은 사람의 자식, 혈통이겠는가! 나는 보통사람들과 다른 이 나라의 중심이자, 하늘에서 내린 혈통으로 재탄생돼야 권위와 위엄이 자체 발광해서 만백성들이 나를 믿고 따르고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그것을 상징하기 위해 한반도 고조선의 중심이자 바다와 육지가 조화롭게 어울려 신비롭고, 마니와 혈구로 우주의 기가 강한 곳이 필요하다. 비교적 쉽게 제단을 쌓을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어여쁜 칠선녀들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바로 이곳 강화도 마니산 참성대가 퍼포먼스 장소로 최적이 아니겠는가!

이곳에서 하늘과 소통하고 통섭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단군왕검인 내가 천자의 손자임을 만인에게 선포하고,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군주로서 초자연 앞에 풍요를 기원하는 것, 그리고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자 의무다. 진정으로 백성들이 편안하고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단군왕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이런 바람을 떠올리며 깊이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단군왕검, 한 나라 왕으로서 소망하는 것들이 사무치게 간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구나! 4천여 년이 지난 21세기에 단군왕검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후손들이 네모나고 반듯한 석재계단길을 정상까지 잘 정비해 나를 기리고 반겨주니 참으로 기쁘고 고맙기가 한량이 없구나! 나는 정말 신비롭게도 단군왕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마니산을 온 몸으로 느끼며, 야릇하고 거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마니산 정상을 오르는 영광스러운 등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렇게 즐겁게 등산을 마치고 시장끼를 해결하고자 아늑하고 포근한 자리를 잡아 방석으로 사용할 멋진 돌을 들던 찰나, 갑자기 보지 않았으면 좋을 오물 덩어리를 만나고 말았다. 마치 원효대사의 갈증을 해소한 달콤하고 멋진 꿀맛 같은 장소였다가 해골바가지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듯, 나는 아름다운 환상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참으로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하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로 기분이 순식간에 좋아졌다가 나빠지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니 말이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하는 이치에 합당하면 옳지만, 이치와 합당하지 않으면 그르다는 ‘합리적’이라는 기준이라는 것이 정말 ‘절대선’이 맞는지에 대해 벼락같은 회의가 들었다. 내 눈은 그 오물이 싫지만, 달리 보면 그 오물조차 자연 속 일부로써, 딱 그 자리 있을 만한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세상을 내 기준이 아닌 포용과 조화의 시선으로 본다면 모든 산천초목 삼라만상이 나름 다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치에 꼭 맞아야 한다는 ‘합리(合理)’도 좋지만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가치를 서로 인정해 주고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마음가짐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 인간들은 너무 합리적이고 자신의 생각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만 추구하기에 지금의 이 풍요로움 속에서도 만족하지 못한 채 빈곤과 불행을 느끼고, 열등감과 부러움에 스스로 자멸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단군왕검이 꿈꾸었던 세상은 더 부자가 아니더라도 모두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세상,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이 우리 마음속에 살포시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산길에 마니산 근처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감상하고 행복한 산행을 마쳤다. 역시, 우리 선조 단군왕검은 탁월하셨다.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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