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신세돈의 돈이 보이는 경제(7)] 한국 물가는 왜 일본에 비해 불안정할까? 

소비자 두려워해야 물가 덜 오른다 

비슷한 조건에서 한국 6%대·일본 2%대 물가 상승, 수입 의존도 차이
비싸면 사지 않는 일본과 더 오를까봐 미리 사는 한국의 문화도 원인


▎물가가 치솟아도 한국의 소비는 줄지 않고 있다. 그나마 경제를 떠받치는 동력이지만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 사진:연합뉴스
1998년 11월 이후 24년 만에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6%를 넘었다. 9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 소비자상승률은 5%대(5.7%)로 내려왔지만, 6월 6.0%→7월 6.3%까지 치솟은 바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고(高)물가 상태는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우리와 대조적으로 이웃 일본의 물가는 놀랍게도 매우 안정돼 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야 2% 물가도 높다고 하겠지만, 우리에 비하면 불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원유나 원자재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나 소비문화가 대체로 비슷함에도,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물가는 매우 안정적이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많은 여행자가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가격이 오른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충격적으로 오른 것은 아니고 몇 엔 오른 수준에 그쳤고 대부분 가격변동이 없다”, “당장 필요한 식료품 및 생필품 구매와 외식비에서 저렴한 물가를 확연히 느꼈다”는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10개 단위로 포장해 파는 달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4000원 정도인데 반해 일본 도쿄 대형마트에서는 2000원 대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에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품목별로는 일본 가격이 더 비싼 것도 있다. 교통비나 무선통신비, 의약품 가격에서 일본이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확실히 일본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안정적이다.

2022년 6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였지만, 일본은 2.3%에 불과했다. 또 우리나라는 2022년 1월부터 물가상승률이 계속 올라갔지만, 일본은 6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물가 안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일본 물가는 안정적이다. 1971년부터 2021년까지 50년 동안 두 차례를 제외하면 항상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우리나라보다 낮았다. 그 두 해는 1973년 1차 오일쇼크 그리고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 약세가 발생한 2014년이었다.

일본의 물가가 왜 안정적인지에 관한 첫 번째 해답은 국가 경제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이 있다. 수입 비중이 클수록 수입원자재 가격이 오를 때 물가가 많이 올라간다. 원자재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원자재 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수입 규모는 6000억 달러다. 국내총생산(GDP)이 2조 달러이니까 34% 정도의 비중이다.

환율 폭등에도 움직이지 않는 일본 물가


▎사진:연합뉴스
반면 일본의 연간 수입금액은 2021년 약 7700억 달러이고, GDP가 약 5조 달러쯤 된다.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4%에 불과하다. 이러니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엔화 환율이 상승해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나라보다 덜 할 것은 당연하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베노믹스가 한창 도입되었던 2013년 이후 2015년까지의 3년이다. 이때 일본 엔화는 달러 당 80엔에서 120엔까지 50% 가까이 치솟았지만, 물가는 2%대밖에 오르지 않았다. 환율변동의 불과 4%만 물가로 나타난 셈이다. 2022년 4월 이후 엔화 환율이 달러 당 110엔에서 거의 140엔까지 약 30%나 올랐다. 그럼에도 물가가 2% 이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것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수입 비중이 매우 낮은 경제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율이 10% 상승하면 물가가 1% 정도 오른다. 1997년 IMF 위기 직후 원화 환율이 80% 올랐다. 이때 소비자 물가가 약 8% 올랐다. 환율변동의 정확히 10%가 물가변동으로 나타난 셈이다.

수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당연히 수입물가가 국내물가에 영향을 덜 미치겠지만, 일본과 호주는 수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5%와 16%로 거의 같다. 하지만 환율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이 호주보다 훨씬 낮다. 호주의 경우 환율변동은 거의 100% 물가변동으로 나타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환율변동의 76%만 물가변동으로 반영된다. 호주에 비해 일본의 물가가 환율변동에 무디다는 뜻이다. 미국도 수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보다 낮은 12%에 불과하지만, 환율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100%로 호주와 거의 비슷하다.

일본 소비자와 기업의 독특한 가격 억제


▎더 오를까 봐 미리 사두려는 수요 덕분에 명품은 가격을 올려도 매출이 줄지 않는다. 이런 패턴이 아직까지 한국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물가안정을 고령화에 따른 소비 수요의 결핍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소득이 없는 고령 인구 비중이 늘면서 소비 수요가 감퇴하고 그것이 물가상승을 억제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진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선진국도 인구 정체나 고령화 면에서 일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일본과 같은 물가안정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 6년간 인구가 5100만 명에서 정체되거나 감소 추세에 접어든 우리나라 역시 빠르게 고령화가 진전되고 있지만. 물가안정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많은 분석가는 가능한 한 가격을 올리지 않으려는 일본 기업의 독특한 경영 행태를 물가안정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올리면 판매가 줄어들기 때문에 올릴 수가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결국 극도로 가격에 민감한 일본 소비자들의 행태가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과 소비자의 대응방식 차이”가 일본의 독특한 물가 안정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즉, 저물가에 익숙한 일본 소비자들이 가격에 매우 민감하고, 기업이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수입원자재 가격 혹은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상승 압력을 자체적으로 흡수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일본과 매우 대조적이다. 수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보다 더 크기 때문에 당연히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입 비중의 차이만으로 국내물가 상승을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스위스나 독일의 경우 수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39%와 34%로 우리나라의 34%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이후 12년 동안 물가변동과 환율변동의 비율을 보면 스위스와 독일이 각각 88%와 104%로 우리나라의 120%보다 현저히 낮다. 환율변화에 따른 물가상승률에 있어서 한국이 다른 어떤 선진국들보다 더 민감하다.

한국 물가가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민감한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가격 전가 행태를 들 수 있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상승압력을 즉각적으로 제품의 가격에 반영하려는 기업의 행태가 그대로 물가상승으로 나타난다. 일본은 기업의 가격 전가 행태가 극도로 억제되기 때문에 환율 혹은 원자재 가격이 100% 물가 상승으로 나타나지 않고 일부는 기업에 의해 흡수된다.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에는 환율변동이 거의 100% 물가상승으로 반영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율 혹은 원자재 가격 상승보다 물가가 124% 올라가는 독특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 혹은 환율 상승 폭보다도 물가변동 폭이 더 크다는 말이다.

물가안정 원하면 소비자도 동참해야

이런 현상은 기업들이 향후의 원자재 가격 혹은 환율 상승을 미리 앞당겨 가격 상승으로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가격 결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된다. 미래의 원자재 가격 상승 혹은 환율 상승의 기대를 기업들이 앞당겨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은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 소비자들과 같이 가격이 상승하면 즉각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올라도 가격이 더 오를 것을 예상하고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지 않는 관행이 있다면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특히 경쟁상품이 없는 독점적 시장이라면 가격 상승은 더욱 크고 즉각적일 것이다.

일본처럼 원자재가격 상승이나 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상승압력을 기업 내에서 흡수하는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은 없지 않다.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한 비용 인상분을 기업이 보충하기 위해 인건비를 억누르면서 소득과 소비 여력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임금 수준은 거의 정체되면서 저성장을 고착시켜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입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상승 이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절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일본 소비자들처럼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비싸면 소비를 과감하고 확실하게 줄여서 기업이 가격 기능이 확실하게 작용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줄 필요가 있다. 또 기업들도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믿고 과도하게 가격을 인상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수입에 대한 비중을 가능하면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의 수입 비중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로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사실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 신세돈 - 미국 UCLA에서 경제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 조사부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1989년부터 숙명여대에서 33년째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세종대왕의 통치 업적을 분석한 [외천본민]을 저술했으며, 중국 고대 역사서 [자치통감]을 깊이 연구하고 있다.

202210호 (2022.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