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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기업] 창립 70주년 한화그룹, 우주·친환경·스마트 방산 앞세워 ‘100년 기업’ 속도 

김승연 회장 취임 40년 만에 그룹 자산 300배 ‘껑충’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결정적 순간마다 과감한 M&A로 재계 7위 그룹 일궈
‘신용과 의리’의 경영 철학으로 피인수 기업과 시너지


▎올해 취임 41주년을 맞은 김승연 한화 회장. 한화그룹은 김 회장 취임 이후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 사진:㈜한화
"함께 보람 있는 삶, 더 나은 삶을 위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갑시다.” 김승연(70) 한화 회장이 1981년 9월 취임식을 대신한 ‘신입사원과의 대담’에서 밝힌 포부다. 임직원의 보람과 더 나은 삶을 우선하기로 다짐했던 김 회장이 어느덧 취임 41주년을 맞았다.

10월 9일은 한화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일이다. 한화는 1952년 고(故) 현암 김종희 창업주가 화약 국산화를 목표로 설립한 한국화약이 모태다. 현암은 ‘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을 바탕으로 1959년 1월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성공했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다이너마이트 생산국이 된 순간이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 취임 이후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김 회장은 1981년 7월 부친 현암이 59세에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그해 8월 29세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 회장은 국내 최연소 그룹 총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특유의 배짱으로 보란 듯이 떨쳐냈다. 결정적 순간마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한화를 재계 7위 그룹으로 키웠다.

한화그룹은 그간 수많은 M&A 속에서도 불협화음 없이 더 큰 도약을 이뤄냈다. 피인수 기업 직원에 대한 차별 없는 대우는 물론 상대의 장점까지 배우는 한화 임직원의 열린 태도 덕분이었다. 이는 ‘신용과 의리’를 바탕으로 한 김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른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한화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총자산은 김 회장이 취임한 1981년 7548억원에서 2021년 229조3360억원으로, 연매출은 1조1000억원에서 61조1300억원으로 증가했다. 한화그룹의 성장은 멈춤이 없다. 김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바람이 거셀수록 활시위를 더욱 강하게 당겨야 한다”며 “지난 시간을 통해 증명된 우리의 위기극복 역량과 도약의 본능을 믿고, 100년 기업 한화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타고난 혜안과 승부사 기질로 성과 이뤄내


M&A는 한화그룹 성장사의 핵심이다. 김 회장의 통찰력과 승부사 기질을 대표하는 키워드 또한 M&A다. 옥석을 가릴 줄 아는 김 회장의 선구안은 취임 직후부터 증명됐다. 그는 ‘제2차 석유 파동’의 불황 속에서도 1982년 12월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 케미칼·첨단소재 부문)을 인수하며 한국의 석유화학을 수출 효자 산업으로 키웠다.

김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2년 당시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의 적자 규모는 각각 75억원, 430억원에 달했다. 그룹 경영진이 김 회장의 인수 검토 지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이유였다. 하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석유화학 업종의 장래가 어둡지 않고, 머지않아 국제 경기도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김 회장은 직접 나서 다우케미칼 측과 가격 협상을 벌였고, 매매 대금 전액 분할 납부 등의 유리한 조건으로 두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두 회사는 한화그룹에 편입된 지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들 기업은 그룹의 외형 성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1980년 7300억원 규모였던 한화그룹의 매출은 1984년 3배 가까이 증가한 2조1500억원이 됐다. 이 중 두 기업의 매출이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현재도 한화그룹의 주력 기업이자 한국의 수출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 분야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중후장대(重厚長大) 위주의 그룹 사업 구조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을 연이어 인수하면서였다. 김 회장은 두 기업의 인수를 기점으로 유통·레저 사업을 그룹의 주력 업종으로 육성했다. 한화가 업종 다각화와 함께 10대 그룹의 지위를 다지게 된 계기였다.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은 한화그룹 편입 4년 만에 매출을 2배(2100억원)로 늘렸다. 한국 명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예상해 국내 최초 명품백화점을 개점하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운영을 주력으로, 해외 패션 브랜드 독점 수입, 자체 편집 매장 운영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종합 레저·서비스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410개 객실을 갖춘 특급호텔 더 플라자와 100실 규모인 여수 호텔 벨메르를 운영 중이다. 2021년 7월 강원도 양양에 국내 최초 서핑&힐링 콘셉트의 브리드 호텔 양양을 오픈하기도 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또한 총 5200객실인 국내 12개 리조트와 해외 리조트 1곳(사이판 월드리조트), 국내외 골프장 5곳(총 108홀)을 운영하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한 뒤 금융업에도 진출


▎한화시스템과 미국 오버에어가 개발 중인 UAM 기체 ′버터플라이‘. / 사진:한화시스템
김 회장 취임 이후 한화그룹은 10여 년간 순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7년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한화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김 회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고난을 헤쳐나갔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37개였던 계열사 수를 17개까지 줄였다.

김 회장은 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덕분에 여유 자금이 1조원 정도 되던 때였다. 김 회장이 주목한 곳은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이었다. 당시 대한생명은 대주주의 전횡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 감사를 받고 있었다. 누적 결손금이 3조원에 달했고, 보험업의 핵심인 영업 조직은 붕괴 직전이었다.

김 회장은 주요 경영진의 반대에도 금융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고, 2002년 12월 마침내 대한생명을 손에 넣었다. 김회장은 대한생명 인수와 동시에 M&A 후유증을 없애고, 조직과 경영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당시 맡고 있던 그룹 내 계열사 대표이사 직을 모두 내려놓고, 무보수로 대한생명 대표이사에만 2년 동안 전념했다.

김 회장은 M&A 후 통합(PMI)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대한생명의 조직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였고, ‘고객 중심’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기존 대한생명 경영진을 대부분 중용하는 대신 한화그룹 파견 임직원은 20여 명으로 제한했다. 한화생명은 김 회장의 신용과 의리의 경영 철학에 화답하듯 ‘알짜 회사’로 변모했다. 한화그룹에 편입된지 6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데 성공했고, 인수 당시 29조원에 불과했던 총자산도 2020년 127조원으로 증가했다. 한화생명은 대형 생명보험사 최초로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고, 한국 생보사 중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김 회장의 M&A 타깃은 한국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김 회장은 태양광 사업의 수직계열화와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방안으로 독일 기업 큐셀(현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을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죽어가던 獨 태양광 업체를 1위 기업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에서 직원들이 항공 엔진을 검수하고 있다. /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큐셀은 2008년만 해도 태양광 셀 생산 능력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경쟁력 있는 회사였지만 글로벌 태양광 산업 불황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2012년 4월 파산했다. 한화그룹이 인수한 2012년 10월에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회사였다. 누적 영업적자만 4420만 달러에 달했고, 공장 가동률은 20∼30%에 불과했다. 당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한화그룹의 결정을 두고 일제히 ‘매력적이지 않은 거래’라고 깎아내린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큐셀은 당시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또 2011년부터 시작된 태양광 시장 침체로 수많은 한국 기업이 사업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주요 국가의 탄소중립 정책이 확대되면서 태양광 산업이 다시 빛을 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김 회장은 시장의 반대에도 “태양광 사업은 회사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길”이라며 큐셀 인수를 강행했다.

김 회장은 큐셀 인수 뒤 새로운 기업 문화를 도입해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장기간 파산 상태이던 기업인 만큼 조직의 목표가 없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 했다. 한화는 큐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최고 경영자(CEO) 면담과 상황 설명회 등을 실시하며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은 임직원에게 단순히 돈을 버는 사업 차원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태양광 기업이 돼야 한다는 강력한 목표를 주문했다”며 “그것이 기존 큐셀 직원들에게도 잘 전파돼 목표 의식이 생겼고 회사도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한화큐셀)은 미국, 독일, 영국, 한국 등 세계 주요 태양광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부활한 상태다.

삼성과의 빅딜로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


김 회장은 큐셀 인수 뒤 삼성과의 빅딜마저 성사시키며 ‘M&A 스토리’에 정점을 찍었다. 김 회장은 2014년 11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삼성의 방산·화학 4개 계열사를 약 2조원에 인수하며 그룹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한화와 삼성 간 빅딜은 과거 외환위기 시절 등과 달리 민간 주도의 자율형 사업 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 회장은 빅딜을 마무리한 뒤에도 신용과 의리의 경영 철학을 지켰다. 인수한 계열사들의 역량을 존중해 4개사 경영진을 포함한 대부분의 임직원을 중용했다. 4개 계열사의 완전한 독립 경영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의 정년, 급여, 복지 등 각종 처우와 근로 조건도 유지했다.

빅딜로 국내 최대 방산 업체가 된 한화그룹은 이후 각 계열사의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연이은 물적 분할로 사업 부문별 전문성을 살린 독립 법인들을 설립했고, 중복된 사업은 과감히 합쳤다. 한화그룹은 삼성에서 인수한 삼성테크윈을 일련의 과정을 거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항공엔진, 항공 사업)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한화디펜스(방산), 한화시스템(IT·방산), 한화정밀기계(정밀·공작 기계), 한화파워시스템(에너지), 한화테크윈(시큐리티) 등의 자회사가 자리하는 사업 구조를 완성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국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한 민간 인공위성 제조 업체 쎄트렉아이의 경영권을 2021년 1월 인수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를 통해 자사의 항공 엔진과 쎄트렉아이의 위성 시스템 역량을 완성하는 우주 산업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됐다. 한화시스템은 한국 기업 최초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시장에 진출해 에어택시의 기체인 ‘버터플라이’를 개발하고 있다. UAM 기체 개발과 함께 항행·관제 부문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화 부문에서도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뒀다. 2014년 영업이익이 1727억원에 불과했던 한화토탈에너지스는 한화그룹 편입 3년 만에 1조5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화임팩트 또한 인수 당시 42억원의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상태다. 한화임팩트는 수소 관련 그린 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다. 2021년 3월 가스터빈 성능 개선 및 수소 혼소 개조 기술 보유 업체인 미국 PSM과 네덜란드 토마센에너지를 인수해 수소를 기반으로 한 ‘민자 발전 사업자’를 꿈꾸는 중이다.

김 회장은 지난 40년의 도약을 발판 삼아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항공 우주, 미래 모빌리티와 친환경에너지, 스마트 방산과 디지털 금융 솔루션이 그것이다. 김 회장은 우주 사업 등 신사업이 대규모 장기 투자가 필요한 어려운 길임에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도전에 나서고 있다.

김동관 체제 ‘3세 경영’에도 속도 낸다


▎ 사진:㈜한화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에 쎄트렉아이까지 가세한 스페이스허브로 상상 속 우주를 손에 잡히는 현실로 바꾼다는 목표다. 한화는 UAM 분야에서도 미국 오버에어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연구·개발(R&D) 등을 바탕으로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그린 수소 에너지 분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효율을 높인 수전해 기술 개발, 수소 운반을 위한 탱크 제작 기술 확보 등으로 다가올 수소 사회를 가장 앞서 준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는 향후 수소 분야를 친환경 민자 발전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은 방산 분야에서도 한국 최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첨단 기술 적용과 무인화 등의 R&D를 통해 스마트 방산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의 금융계열사들은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에 나서고 있다. 최초의 디지털손해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을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솔루션을 바탕으로 소비자 금융 생활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목표다.

한편 한화그룹의 후계 구도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9) 한화솔루션 사장은 지난 8월 29일 한화그룹 9개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김 신임 부회장은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 부문 대표이사에 더해 ㈜한화 전략 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 부문 대표이사도 맡게 됐다. 김 부회장은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 한화그룹 회장실에 차장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한화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김승연 회장의 미래 사업 구상을 구현해나가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며 “주요 주주로서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김 회장이 3남 가운데 장남인 김 부회장에게 방산·에너지·석유화학 등 그룹 주력 사업을 맡기고, 차남 김동원(37) 한화생명 부사장에게 금융 사업을, 삼남 김동선(33)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 겸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신사업전략실장에게 호텔·리조트·유통 사업을 넘기는 승계 구도를 거의 굳힌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10호 (202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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