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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8) 

 

우리 시대 고르디우스의 매듭1: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월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전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은 이상론적이고 정부 만능적인 무리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파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높아지는 가운데, 실제로 지난달 말 충남지역 중견 건설사가 부도에 이르렀다. 이자율은 계속 상승하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 일로에 있다. 서울시 도봉구 창동의 집값도 30%가 떨어졌고 수원의 강남 광교도 아파트 가격이 12억원에서 8억원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올해 적용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1.5%로 지난해 70.2%에 비해 1.3%p 상승했다. 시장은 깊은 골을 이루며 추락하는데, 현실화율은 계속 상승만 하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상승만이 문제일까? 그보다는 현실화율 로드맵에 내포된 불공정성, 그리고 불투명성이 더 큰 문제다.

내 집, 옆집에 다르게 적용되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실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1월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대비 90%까지 끌어올리는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첫째, 현실화율 로드맵은 공정하지 않다. 내 집에 적용되는 현실화율과 옆집에 적용되는 현실화율이 다르다. 즉 현실화율 로드맵은 납세자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납세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아 납세자 조세 형평성을 위배한다).

2020년 현실화율 로드맵이 만들어질 당시 정부가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을 가정한 논리적 근거도 문제가 있지만, 적용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모든 납세자는 내 집과 옆집의 공시가격이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정부가 목표치로 세운 올해의 71.5%라는 현실화율이 내 집과 옆집에 동일하게 적용됐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옆집은 61%, 내 집은 82%를 적용해 둘의 평균이 71.5%라고 정부가 주장한다면 과연 납세자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일 수 있다. 현실화율 로드맵이 실제 이렇게 적용돼왔다.

그러니 현 정부는 집집마다 ‘현실화율 적용 전 산정가격’을 공개하고, 그것에 ‘공정시장가액 비율’(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 되는 과세 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의 비율)을 낮춰 일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미국 캔자스시티 과세국은 그 적정가격에 과표비율(Assessment Ratio)이라고 해 주택은 11.5%, 상가는 25%, 건물이 없는 토지는 12%로 적용하고 있다. 모든 납세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됨은 물론이며, 그 가격과 적용산식 또한 미국에서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공시가격의 산정근거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다.

2020년 4월 7일 부동산가격공시법이 개정돼 제26조에 공시보고서의 제출을 명시했으나, 그 공개의 정도를 명하는 대통령령, 즉 부동산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는 ‘형식적인 공개’만 규정돼 있을 뿐이다. 현실화율은 종종 시세 반영률이라고도 불리는데, 부동산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2조에는 시세 반영률을 집집마다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유형별 종합적인 시세 반영률’을 공개한다고 돼 있다. 즉 아파트의 종합적 시세 반영률 얼마, 단독주택의 종합적 시세 반영률 얼마라고 공개하는 것이다. 이런 공개는 실제론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현실화율 로드맵은 공시가격의 투명성을 가리는 베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 베일을 걷어버리고 현 정부의 ‘투명성’을 전 정부와 차별화해야 할 것이다. 공시가격의 조사 산정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이 만든 그 가격들은 집집마다 적용한 현실화율과 함께 비공개 상태다. 현재 ‘공시가격알리미’에 공개되는 주택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의 ‘적정가격’에 현실화율을 곱한 것이다. 하지만 세금을 투입해 만든 모든 주택의 적정가격, 현실화율을 곱하기 전의 그 가격을 한국의 납세자는 손에 받아볼 수가 없다. 현실화율을 적용하기 전의 그 ‘적정가격’이 정말 정확하다면, 전세 사기도 발붙일 곳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것이 공개되기만 하면, 전세 세입자는 전세계약을 맺기 전에 그 ‘현실화율 적용 전의 적정가격’을 기준으로 해 판단을 내리면 될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프롭테크(첨단 정보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기업 입장에서 모든 주택의 적정가격 자료는 정말 반가운 공공자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 자료만 공개된다면 소위 ‘전세사기꼼짝마 앱’을 개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민간의 프롭테크 기업들이 각자의 능력을 뽐내며 경쟁하고 더 좋은 품질의 앱 개발에 매진할 것이다. 공공은 직접 무언가를 하기보다 민간이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현 정부의 모토가 아니었던가. 현실화율 적용 전의 적정가격을 공시가격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간이 그 공공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면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 공정성과 투명성은 자연스레 높아질 수 있다. 전 정부는 그 투명한 공개를 ‘현실화 100%’로 변형시켜 이야기하며 증세만을 논했으나, 현 정부는 투명한 공개 속에 모든 납세자에게 동일한 비율로 공평하게 적용할,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공평 과세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현실화율 폐기하고 공정화 로드맵 세워야


▎집값 하락세로 공시가격이 시세를 웃도는 ‘역전 현상’이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는 이르면 11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에 대한 수정·보완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사진 정수연 제주대 교수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것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수많은 사람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매듭을 풀려고 했을 때 과감히 그것을 칼로 내리쳐 끊어냈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됐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은 한국판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그것은 현재 꼬일 대로 꼬여있다. 애초에 현실화율 로드맵이 왜 등장했는가? 2018년 공시가격 논란이 처음 촉발됐을 때 ‘저가주택의 실거래 반영률이 높고, 고가주택의 실거래 반영률이 낮다’는 학계의 지적 때문이었다. 전 정부는 이를 공시가격이 저가주택에 가혹하고 고가주택에 관대하니 정의롭지 못하다고 받아들여 고가주택 공시가격만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그 이후 공시가격 현실화율 100%로 가는 로드맵의 긴 여정을 발표했다. 그 부작용이 2022년 나타나고 있다.

당시 학계의 지적은 사실 ‘저가·고가주택 상관없이 공시가격이 정확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모든 납세자는 주택가격이 높건, 낮건 간에 그저 그 가치에 비례해 세금을 낼 수 있으면 된다. 주택의 가치, 주택공시가격이 적정하게 만들어질 방법을 찾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는데, 전 정부의 현실화율 로드맵 발표 후 엉뚱하게도 공시가격 오류는 그대로 둔 채 현실화율이 몇 퍼센트여야 하는가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전 정부가 만들어놓은 유산, 현실화율 로드맵에 현 정부가 얽매일 필요는 없다. 현실화율을 낮춘다고 해서, 공시가격이 정확해지는 것이 아니고, 집집마다 현실화율이 다르게 적용되는 불공평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 공시가격제도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 정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결단력으로 이 현실화율 로드맵을 폐기해야 한다. 현실화율을 폐기하는 것이야말로 ‘적정가격 반영을 위한 계획’이라고 하겠다. 이어 현 정부는 공정시장가액 비율로 무지막지한 증세 로드맵을 우려하는 모든 국민, 집을 가지고 있는 납세자와 앞으로 집을 가지게 될 우리 청년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미래’의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의 철학은 제도를 통해 구현돼야 한다. 전 정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불투명한 현실화율 로드맵을 버리고, 공시가격 공정화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이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 필자 소개: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감정평가학회장.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감정평가학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서울부동산포럼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부동산경제학·부동산대량감정평가·부동산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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