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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윤석열·이재명에게 주는 고언(苦言) 

“尹, 지금 잘하고 있는지 냉혹한 고민 없으면 실패한다”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정권 요직에 만만한 사람 쓰다 보니 차기 총선도 위험해져”
■“이재명 대표, 국방 관련 엉뚱한 말로 국민 속이면 안 돼”
■“민주당, 정당한 비판과 지적을 적과의 대결로 간주해 대처”
■“일본의 개헌과 재무장은 한국과 아시아의 새 위협 요소될 것”
■“국정원, 국가 기간시설과 전략물자 등 보호·관리 역량 강화해야”


▎10월 11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s 9층 대회의실 벽면에 내걸린 주요 사건 보도사진 앞에서 선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두 번에 걸친 대한민국 수평적 정권 교체에 깊숙이 관여했다.

먼저 1997년 대선 당시 야당이던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도와 사상 첫 정권교체에 힘을 보탰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의 초대 국정원장에 그를 기용한 것만으로도 그의 대선 기여도와 비중은 가늠하고도 남는다.

올 3월 대선을 앞두고는 전직 국정원 직원 1000명과 함께 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이 전 원장은 윤 후보의 오랜 절친(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부친이었다. 세상은 이 전 원장을 ‘윤석열의 멘토’라고 불렀고,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아버님’이라 불렀다.

이처럼 두 개 정권의 심부(深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전 원장이 10월 11일 월간중앙과 진행한 장시간 인터뷰에서 현실 정치에 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아들의 친구가 대통령인 정부의 한계와 과제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6개월 정도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정권의 대항마인 더불어민주당이 그들이 추앙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권 출범 5개월이 지났습니다. 조마조마하지 않나요?

“많이 서툰 면이 있지요.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보스 기질도 있고요. 본인이 하는 대로 그냥 봐야 하는 시점입니다.”

윤 대통령이 막말 끝내 사과하지 않은 이유

국정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우려가 많은데요?

“지금의 여권은 미숙합니다. 허나 여권이 추구하는 전반적인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아요. 혹자는 윤 대통령에게 비전이 없다고 해요.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출발점부터 비전을 제시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이가 윤 대통령 아닌가요. 윤석열은 준비가 잘돼서 대통령 선거에 나온 게 아니라 그야말로 국민이 불러서 나온 사람입니다. ‘네가 나와서 문재인 정부가 망가뜨리고 있는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놓으라’는 국민의 명령에 호응했던 것이죠. 기준이 무너지는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만으로도 윤석열 정부는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공평무사한 사람이라 그런 기대를 가져봅니다.”

정상화의 과제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나요?

“과거 문재인 정부를 보세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 성장 등으로 가계와 기업, 경제를 망가뜨렸죠. 탈(脫)원전이라고 해서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게다가 진실을 왜곡하거나 공정한 규칙을 어기는 일들은 얼마나 많았나요. 법치주의 확립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렇게 윤석열 정부는 제 기능을 못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면 됩니다. 공정과 상식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면 족합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왜 떨어지는 건가요?

“지지율 하락도 이렇게 봐요. 한동훈 법무장관이 한마디 하면 지지자들로부터 꽃다발 세례가 쏟아집니다. ‘조선 제일 검’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정의의 칼을 들어 부정부패를 일소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이는 윤 대통령에게도 적용됩니다. ‘당신도 빨리 굽은 나라를 바로 펴라’는 주문으로 봐야 해요. 이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퍼포먼스는 좀 부진합니다. 제 주변에서는 ‘윤 대통령은 도대체 나라를 바로잡는 일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라며 푸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물론 검찰의 인사(人事)가 최근에야 마무리됐고, 수사 결과가 바로 나는 것은 아님을 잘 압니다. 그래도 국민은 명확한 메시지를 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헝클어진 나라를 정상화하지 못하면 윤석열은 대통령에 괜히 당선된 것이지요. 윤 대통령이 확실히 알아야 할 철칙이 있다면 자신의 책무는 ‘각 분야 개혁을 통한 나라의 정상화’ 딱 거기까지라는 사실입니다.“

새 정부에 크고 작은 실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중요한 리스크의 상당수는 윤 대통령 본인에게서 나오기도 했지요. 방미 과정에서 일어난 ‘막말 논란’만 해도 사후 대처 과정이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윤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 일어난 ‘막말 논란’ 대응 과정을 보면 대통령 비서실이 왜 필요한지 묻게 됩니다. 적절한 대응을 못하고 15시간을 멍청하게 보냈잖아요. ‘이 XX’라는 표현이 그렇게 엄청난 비속어에 들어가나요? 그냥 일상에서 입에 붙은 말이지요. 그런 말이 나왔을 때 비서실에서 대통령에게 ‘좀 과하셨다’고 진언했어야 했고, 대통령은 ‘내가 잘못했다’고 쿨하게 인정하면서 끝냈어야 할 사안이지요.”

윤 대통령은 왜 끝내 사과를 하지 않은 건가요?

“아마 섭섭함이 들었겠지요. 자신이 악의(惡意)로 얘기한 것도 아닌데, 그냥 얘기한 것을 두고 문화방송에서 자막까지 넣어 보도하는 바람에 한·미 관계가 이상하게 꼬였다는 그런 기분 말이죠.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애쓴 것은 뒷전이고 비속어를 꼬투리 잡아 이렇게 보도하면 섭섭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사과를 안 하는 거지요.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돼버렸어요.”

대통령의 용인술을 평가한다면?

“김대중, 윤석열 두 사람은 기호 2번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인물이라는 점에서 닮았어요.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두 사람의 국정 운영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초기 가신, 측근들을 뒤로 물리고 강인덕 통일장관,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 이종찬 국정원장 등 보수 진영의 인사를 전진 배치했어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만만한 사람만 가까이 쓰는 겁니다. 검찰 출신 또는 관료 출신이 권력의 중심이죠. 그러니까 ‘윤핵관’이라는 엉뚱한 말들이 나오는 겁니다. 누구는 김대중은 성공했지만 윤석열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도 했어요. 2024년 총선에도 패배한다고 하더군요.”

“윤 대통령, 서투르지만 아직 큰 실수 한 것 없어”


▎지난해 6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남산예장공원 내 이회영기념관에서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그렇게 가는 구조적 배경을 아는지요?

“리더십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위임하지 않는 리더십,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리더십 말이죠. 윤 대통령이 따르고, 윤 대통령을 아끼는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가 그러더군요. 검찰에 오래 몸담고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큰 병에 걸리는데 그게 바로 남에게 위임 못하는 병이라는 겁니다. 거물급 피의자를 기소하거나 구속할 때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요. 늘 찬반양론이 맞서거든요. 결국 자기 스스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이 검찰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검찰에 오래 몸담을수록 위임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다는 겁니다. 검찰총장은 더더욱 그렇죠.”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도 위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위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 적재적소에 두고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고 어젠다만 챙기겠다”고 말이죠.

“본인이야 그렇게 참모를 잘 쓰겠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잘 되던가요? 인사와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장점이 하나 있었어요. 자기는 공부도 덜 하고 준비도 안 됐으니까 이제부터라도 현명한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준비가 돼 있었지요. 초창기 전두환 대통령은 귀를 열었어요.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기가 많이 안다고 생각해요. 윤 대통령은 다른 것들이 이미 많이 입력된 상태라 안 받아들여지는 게 많지요. 그래서 위임이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편하고, 그런 사람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 말은 어려운 사람은 멀리한다는 말입니다. 쓴소리하는 사람도 써야 합니다. 대통령은 이런 걸 뛰어넘어야 하는 자리거든요.”

부실 인사, 편중 인사 논란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여론조사에 나옵니다.

“윤 대통령이 그게 무슨 사심(私心)이 있어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격에 맞지 않은 사람이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그건 윤 대통령이 (그 사람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 알고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윤 대통령이 크게 실패한 것은 아직은 없다고 봐요. 그가 작심하고 탈(脫)원전 같은 걸 고집한 적이 없으니까요. 영빈관 짓는 문제도 아닌 건 아니라며 바로 시정했습니다. 주변 4강국 주재 대사만 해도 전문가로 채웠지요. 문재인 정부같이 중국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을 중국 대사로 보내는 일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사적으로 뭘 도모하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서투름이 문제지요. 윤석열 정부는 홍보하는 것도 서투르고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도 서툴러요.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은 불안하기 짝이 없어요. 그러나 진정성은 있지요. 아마 윤 대통령이 서툴러서 못하는 일은 있어도 어떤 악의(惡意)로 인해 사태를 그르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서투름이나 막말 이런 문제는 차츰 나아지겠지요.”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조언을 들자면?

“저는 윤 대통령이 연말까지, 또는 내년 3월까지 아주 고민을 많이 했으면 해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잘하는 일인가, 잘못된 판단은 아닌가를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런 냉혹한 자기 물음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민주당은 신흥 종교에 심취해가는 정당 같아”


▎국민의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이종찬 국가정보원장(왼쪽).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도 들려요. 반대파들은 윤 대통령이 무능하다는 공세를 폅니다.

“역대 정부에 주어지는 6개월가량의 허니문이 현 정부 들어서는 사라졌지 않나요. 이는 정권 출범 한 달 뒤에 치러진 지방선거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해요.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야당이 트집 잡는 상황이 벌어진 탓이죠. 저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민주당에 입당해 그들과 손잡고 정권교체를 해본 사람입니다. 저는 어떤 진영 논리에 따라 얘기하진 않아요. 그저 나타난 현상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요즘 민주당 내부를 보면 무슨 신흥 종교에 심취해가는 정당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쏠린 80%에 가까운 지지는 정상적이라 보기 어려워요. 무슨 비판이라도 하면 이른바 ‘개딸’이라는 사람들이 마구 폭언을 퍼붓고 무차별 댓글로 언론과 언어를 봉쇄하는데 이건 정당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지요. 비이성적인 대중에게 휘둘리는 정당은 굉장히 위태롭습니다.”

민주당 중진, 원로 인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제가 이런 얘기를 그쪽에다 하면 민주당 원로들은(강성 지지층과) 말이 안 통하는지 그냥 놔두라고 합니다. 시간이 해결할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시간에 맡겨 해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긴박해 보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기소되는 등 사법처리 절차가 시작되면 여야가 비정상적으로 대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파국이 올지 모를 일이죠.”

신념에서 나오는 의견이 위험하다고 본 플라톤


▎지난 4월 제103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에 만난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박지현 당시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이 전 원장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자정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 사진:연합뉴스
어떤 경우를 상정할 때 파국이 오나요?

“예를 들면 국회에서 무슨 (대통령) 탄핵을 한다든가 해서 어떤 기능이 정지되거나, 국회에서 대규모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국회가 공전되는 상황 말입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하는 걸 보면 그런 예견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걸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당의 자정 능력이 전제돼야 합니다. 지금 민주당은 자정 능력 상실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쓰루는 ‘모두가 전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 실은 잘 살펴보면 어떤 근거도 없는 얼토당토않은 거짓이었다는 일도 곧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이렇게 통찰하지요.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일정 수를 넘으면 누구도 자신에게 그 말에 대해 검증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그런 구조에서는 근거 없는 망언이 순식간에 폭주한다는 게 우치다의 비판입니다. 독일 출신 미국 사상가 해나 아렌트가 경계한 ‘악의 평범성’이 사회를 지배하면 이성(理性)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저는 이른바 ‘이재명 현상’을 보면서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악의 평범성’에 함몰될 것 같다는 불안을 억누르기 어렵습니다. 자정력(自淨力)을 회복하지 못하면 민주당은 나중에 굉장한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이 절대 이런 정당과 지도자를 신임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지나친 대결주의와 제로섬 경쟁의식이 나라의 미래를 잠식하는 듯도 하네요.

“민주당은 정당한 비판과 지적을 적(敵)과의 대결로 간주해서 대처하는 듯해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대, 공통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 진리, 공익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영역이 실종되고 모든 걸 적대적 관계로 귀속시키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이는 아주 위험한 흐름입니다. 제가 민주당을 모르지 않기에 하는 얘기입니다. 어떤 책에서는 정체성 정치가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도착점이자 궁극적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고 하더군요.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 지지자들이 생각해볼 화두 같아요. 어떤 목표를 따르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눈이 멀면 곤란하지요. 플라톤도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도 진리의 지위는 불안정했던 모양이죠. 그래서인지 플라톤은 “의견들이 진리가 아니라 신념에서 온다”고 갈파했다는 것입니다. 나치즘도 공산주의도 오피니언(의견)이 진실이 아닌 생각이나 신념에서 오기 때문에 위험했던 것입니다.”

그런 비판에서 국민의힘도 자유로울 순 없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나름 건강한 구석이 있어요. 원내대표 선거에서 외부에서 온 이용호 의원에게 40명이 넘는 의원이 표를 준 건 당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준석 대표 파동이나 법원 가처분 신청 등 비정치적 행동에 제가 찬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할 얘기가 많아 보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실패한 사람 같아요. 저는 그가 다시 인간 수업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성남 FC 후원금 의혹, 대장동 의혹 등 자신이 거론되는 여러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저는 이 대표에게 절망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민주당에는 이 대표 말고도 차기 주자감으로 좋은 사람이 적지 않아요. 정직하고 성실하게 정치를 하는 분도 많은데, 왜 저런 모양으로 당이 굴러가는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말씀이 아주 직설적이고 신랄한데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비판입니다. 이 대표가 보여온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업적의 대부분이 가짜로 귀결되고 있어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가짜라는 생각을 들게 하거든요.”

“이재명 말고도 민주당에 차기 주자감 많아 ”

이재명 대표가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친일 국방’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지요?

“그에 앞서 드릴 말이 있어요. 일본은 김일성 3대에게 굉장한 덕을 본 나라입니다. 김일성의 한국전쟁 도발로 일본 경제가 단번에 일어섰지요. 김정일의 일본인 납치 이후 일본의 우익이 저렇게 강성해졌습니다. 이제 김정은이 저렇게 미사일을 쏴대는 통에 일본은 재무장과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개헌을 해야 하는데 일본 국민의 3분의 2가 개헌 지지로 가고 있어요. 일본의 재무장은 일본의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적, 외교적 힘의 확장을 가져오므로 이웃한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달갑지 않은 변화입니다. 일본의 개헌과 재무장은 아시아의 새로운 위협 요소가 되므로 일본이 전쟁 능력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게 한국에게 유리합니다. 오랜 세월 일본의 재무장 및 개헌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온 저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사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으로 대처하면 됩니다. 이 훈련은 일본으로 하여금 개헌을 하지 말라는 압력과 견제의 역할도 하는데, 이 대표는 친일 국방이니 일본군 한반도 상륙이니하는 엉뚱한 얘기를 해요. 지금이 제국주의 시대도 아니고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본이 한반도에 상륙한다는 겁니까? 이 대표는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이 대표와 일대일로 얘기하라면 하겠어요. 국가가 ‘truth(사실)’를 놓아버리는 지경으로 전락할 때 벌어지는 일이 전체주의라고 해나 아렌트가 지적하지 않았나요. 국민께서 경각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일본의 군사력을 키워 중국과 맞서게 하자는 게 미국의 계산 아니던가요?

“그건 신냉전주의적 관점입니다. 저는 신냉전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시아의 전체 군비를 가급적 축소하는 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에 이로운 환경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604호에서 문재인 캠프 출신 인사가 부원장으로 부임해 여성들이 한밤에 출입, 술판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망가뜨렸다고 했는데 이 사건도 산 증거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임을 줄이고 금지하는 마당에 어떻게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그런 국가 시설에 연회장을 만들어 따로 술을 마시나요? 특권의식이 없으면 그러지 못합니다. 안보를 다루는 그런 민감한 장소에서 술 먹고 음행(淫行)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엄벌해야 합니다. 문재인 일파가 전횡하고 횡포를 부린 것을 윤석열 정부가 다 청산해야 합니다. 물론 국정원 기능의 복원을 포함해서요.”

예를 들자면?

“제가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민의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국가적 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요소가 한 300개 정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그게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국가는 그에 대한 데이터를 늘 확보해야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겁니다. 화물차량 운행 중단을 불러온 요소수 부족 사태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지요. 그런 난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전략 물자의 경우 미리미리 파악해서 대비토록 하는 게 국정원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정원 기능이 워낙 위축되다 보니 이런 기본적인 국가안보에 관한 필수 활동조차 주춤했던 게 사실이지요. 국정원에서 이 기능을 강화하려고 해도 법적 규제에 묶이는 활동도 많을 것입니다. 국민이 이런 국정원의 활동을 격려, 촉구하고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 조치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의 방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술과 인력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답니다. 기업이 방어를 하는 게 먼저겠지만 기업의 역량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는 국가적 방어 체계가 작동해야 합니다.”

“보수주의자들, 역사 기반 독자 가치 체계 수립할 때”


▎육상자위대 사열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일본의 재무장은 아시아에 불안을 가중한다고 경고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전 원장의 발언 중에는 얼핏 듣기에는 직관적으로 맥락이 닿지 않는 얘기가 있었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주장인가 해서 되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 무릎을 치게 하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다. 한국의 보수 정당의 가치 재정립 문제도 그랬다. 이 전 원장은 국민의힘 등 보수주의자들이 100년 역사를 통찰하는 “‘보수적 가치’를 정립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민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비전과 야심이 있나요?

“국민의힘도 ‘보수적 가치’를 정립했으면 해요. 일제 강점기 항일 독립운동한 분들의 생각을 살펴볼까요? 1917년 조소앙,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은 대동단결선언을 채택했어요. 이분들은 1910년 한·일합방에서 나라가 일본에 병합돼 주권이 일본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군주(君主)가 독점했던 주권이 국민에게 넘어간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됐는데, 일본이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있어서 주권행사를 못한 것으로 본 것이죠. 그래서 독립운동은 우리 영토에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 1조에 공화제를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주권 의식을 대변한 것이죠. 그 생각이 대한민국 헌법 1조로 넘어온 것이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기반으로 독자적 가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구상도 그래요. 항일독립운동 시기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보면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과거와 강역(彊域)을 얘기해요. 1절 첫 구절이 ‘서북으로 흑룡태원 남의 영절’입니다. 유대인들이 과거 시오니즘에 따라 자기네 국가를 세웠듯이 우리 선열들도 만주 벌판 등 중국 동북 지역까지 아우르는 대한민국을 꿈꾸었지요. 지금 이런 얘기하면 침략주의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당대의 우리의 전통이 그러했다는 점을 저는 말하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의 이상과 시야도 이렇게 역사에 근거한 원대함을 꿈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아가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로 갔으면 합니다. 나라가 바뀌어야 할 시점이므로 그에 합당한 제도적 혁신을 입혀야 하는 것이지요. 그 일에 여당인 국민의힘이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내각제 개헌,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필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좌(左)와 우(右)의 주관에서 자유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재정리하고 싶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치 얘기는 이쯤에서 정리하겠습니다. 개인에게 남은 과업이랄까, 숙제가 있다면?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몰라도 저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모든 대통령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고전적 교과서에 나오는 틀에 박힌 현대사가 아니라, 저 나름대로 본 현대사를 글로 남기고 싶어 준비하고 있죠. 오늘날 대한민국은 성공한 스토리의 나라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버텨내고 발전한 나라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후배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같은 기록은 각기 편향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있어요. 건국 전후 역사와 관련해 저는 월간중앙에 연재 중인 복거일 선생의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어진 이름]의 애독자입니다. 이 소설은 미처 제가 정교하게 보지 못했던 점들을 아주 구체적이고 논증적으로 보여주지요. 이같이 자유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어요. 아마 많은 비판이 따르겠지만 그 비판은 받아도 좋습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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